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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DED00><colcolor=#000> 정태인 Chung Tae-in |
|
출생 | 1960년 2월 7일 |
서울특별시 | |
사망 | 2022년 10월 21일 (향년 62세) |
경기도 용인시 | |
학력 |
숭문고등학교 (
졸업)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 경제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석사 · 박사) 북한대학원대학교 ( 북한학 / 박사) |
최종 당적 |
[[정의당| |
경력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원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한국학술진흥재단 전문위원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 대통령비서실 동북아시대위원회비서관 ( 참여정부)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기획조정실장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국민경제비서관 (참여정부)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차장 (참여정부) 한미 FTA 저지사업본부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 칼라TV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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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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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위한 연대
유언
유언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고,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다.[1]
협동의 경제학 표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정치인. 국내에서는 '사회적 경제' '협동경제'의 대표주자로 잘 알려져 있다.협동의 경제학 표지
1960년생으로 숭문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다음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2020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사회주의경제에 관한 논쟁 재검토'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과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을 지냈고 성공회대 겸임교수이자 독립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1983)한 뒤 미국식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며 그 대안을 모색한다고 주장한다.
2. 상세
경제는 사회에 둘러싸여 있고, 사회에는 상품의 교환에 기반을 두지 않은 수많은 관계와 가치가 있다.
대학원에 진학해 당시 좌파 사회과학 무크지 <녹두서평>에 ‘민정우’라는 가명으로 편집자를 했다. 그때 실었던 글 ‘식민지 사회 성격규명을 위한 시론’은 그의 석사논문이다. 좌파 경제·노동 이론가로 ‘암약’하며 2년간 경찰의 추적을 피했다. 그때 그가 숨어 있던 곳이 서강대 교수 손학규 소장의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다. 그는 여기서 한국 상황을 분석·전망하는 ‘기사연 리포트’를 해외에 보내는 일을 했다.
수배와 징계가 풀린 1991년 서울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당시 지도교수는 안병직교수였다. 1991년에는 박형준과 월간 <말> 편집위원을 잠시 지냈다. 홍익대, 조선대 강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강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Visiting scholar로서 1994년 미국 실리콘밸리 UC 버클리에서 6개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도 공부했고 외환위기 후 귀국했다.
유시민과는 서울대 경제학과 78학번 동기이고 둘 다 운동권이었다. 대학 다닐 때는 서로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고 한다. “알고는 지냈지만, 시민이는 학생운동 리더(지도자)였고 난 돌 던지는 사람이었다. (웃으며) ‘신분의 격차’가 컸다.”고 한다. 두 사람이 가까워진 것은 유학을 다녀온 뒤 1999년부터 학술진흥재단에 같이 일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학술진흥재단에 근무하면서 이해찬 당시 교육부 장관을 도왔는데, 유시민과 사는 곳도 일산으로 같고 취미(낚시)도 같다보니 서로의 친분은 훨씬 더 돈독해졌다고 한다.
2000년 기독교방송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2001년 문화방송 라디오 , 2002년 한국방송 라디오 <경제전망대>를 진행하면서 일반인들한테도 익숙해졌다.
노무현정부 인수위원 시절의 정태인은 당시 인수위 경제1분과 위원이었다. 참여정부 경제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중책이었다. 초기 노무현 정부의 ‘경제 가정교사’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한다.
"대통령 선거를 1년여 앞둔 2001년 가을(11월)에 한국사회과학연구소(한사연) 후배를 만났는데, ‘누가 대통령이 돼야 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스스럼없이 ‘노무현’이라고 대답했다. 알고 보니 그 후배는 이미 노무현을 돕고 있었다. 그가 소개해서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사람들을 모아놓고 주제를 정해 토론을 벌였다. (유시민 의원이 노무현 캠프에 합류한 게 그즈음이었다.) 그가 후보가 되면 당선은 된다고 봤기 때문에 후보가 된 뒤에는 따로 돕지 않기로 했다. 경제 공약도 다른 분들이 짰다. 나중에 노 후보가 TV토론을 도와달라고 해서 더 돕게 됐다.” 당시 그와 노무현을 연결시켜준 한사연의 후배는 훗날 청와대에 행정관으로 입성하는 배기찬 동북아시대위원회 비서관이었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자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 기획운영실장으로 청와대에 입성한다. 이어 정책기획위 산업노동팀 위원, 동북아시대위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차장으로 옮겨 일했다.
그러나 2005년, 행담도 개발 사업 과정에 청와대 실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 (도로공사, 행담도 투자 외국사에 특혜의혹) (행담도개발의혹)에 휘말리면서 문정인과 함께 사직서를 내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 이와 관련 2006년에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 2007년 2심에서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고 ,2009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었다. #
2006년 2월 3일에 한-미 양국이 한미자유무역협정의 협상 재개를 선언하자 그 부당성과 졸속성을 들며 격렬하게 비판했다. 당시 그는 진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진은 임기 안에 뭔가 업적을 남겨보려는 노 대통령의 조급증때문에 시작된 전형적인 한건주의", "정부 주장대로 10개월 안에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정권이 날아가고, 그 안에 마무리하면 한국경제가 날아갈 것"이라는 등의 신랄한 표현을 써서 물의를 빚자, 비보도를 전제로 한 술자리 이야기였다면서 이를 사과하기도 했다.
2007년 8월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기사
2008년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진보신당 창당에 참여했다. 심상정의 2010년 지방선거 후보 사퇴(단일화) 직후 진보신당을 탈당했다.
2011년 10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한미FTA 끝장토론회'에 반대쪽 토론자로서 참석하였다.
통합진보당의 내홍이 한창이던 2012년 5월 13일, '진보 시즌 2'와 당의 혁신을 주장하며 통합진보당에 입당했다. 기사
2018년 노회찬 의원 사후 정의당에 입당했다. 기사
2020년 1월 28일 정의당 총선공약개발단장으로 임명되었다. #
3. 사망
2021년 7월 사무실에서 갑자기 쓰러져 응급후송되었으며, 검진결과 폐암 4기로, 이미 암세포가 뇌로 전이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 한때 병세가 호전되는 듯 보였지만, 결국 2022년 10월 21일 0시 43분 경기도 용인시의 호스피스 병원에서 사망하였다.4. 기타
과거 인터뷰에서 사상적 뿌리를 "민족경제론"의 박현채 전 조선대 경제학과 교수에 두고 있다고 하였다. 또 실제 이론에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 컬럼비아대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2]2015년 '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를 만들었다.
2016년부터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경제 문제 패널로 자주 출연하여 대중 인지도가 올라갔다.
2018년 6월 경향신문의 '원희복의 인물탐구'에 의하면 소득주도 성장 이론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정태인 소장이라고 한다.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이 성공하기 위해서 임금인상, 노조강화,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중소기업 하청단가 공동교섭 등을 들었다. 기사
[1]
정태인을 상징하는 말인데, 워낙 유명한 말이라 정치학이나 경제학을 하는 사람들은 다 한번씩은 어쩌다 봤을 수도 있는 문장이다.
이완배도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쓰는가 하면 정태인의 사후, 그를 추모하는 이들의 각종 추모사에서 등장했으며 경제학 만화의 성향을 띄는
국립자유경제고등학교 세실고의 주인공
이륙이 극 중에서 정태인의 원문 전체를 인용해서 대사로 말하기도 했다.
[2]
“스티글리츠의 말대로 미국식 자본주의는 여러 자본주의의 한 형태일 뿐이다. 참여 민주주의랄까, 대의제를 넘어선 형태가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선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 시민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얘기하면 완전히 이기적인 인간상을 전제로 한 시장의 제로섬(먹고 먹히는) 게임이 아니라 공동체적 민주주의, 공동체적인 어떤 것에 의해 플러스섬(상생) 게임을 하는 사회 체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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