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16:39:52

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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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md1945.com/d03567d60948b64ceb1f876a414128e7_1376442252.47.jpg 연희전문학교 시절, 윤동주[1]와 함께 찍은 사진 파일:external/www.gynet.co.kr/27261_21146_4723.jpg 말년의 정병욱 교수
이름 정병욱 (鄭炳昱)
출생 1922년 4월 22일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문항리[2] #
사망 1982년 10월 12일 (향년 60세)
본관 진주 정씨
아호 백영(白影)[3]
학력 진정공립보통학교 (전학)
하동공립보통학교 (졸업)
동래고등보통학교 (졸업)
연희전문학교 (문과 / 중퇴)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국어국문학과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 석사·박사)

1. 개요2. 생애와 학문 활동3. 윤동주와의 관계4. 저서5.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국문학자.

2. 생애와 학문 활동

1922년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문항리에서 3.1 운동 보통학교의 훈도[4]를 하던 정남섭(鄭南燮)[5]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의 교직 근무지인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에서 유소년기를 보내며 그곳의 진정공립보통학교(현 진정초등학교)와 하동공립보통학교(현 하동초등학교)를 마치고 동래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4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1944년 졸업을 앞두고 일제 학병으로 징집되어 전쟁을 겪다가 해방과 함께 구사일생으로 귀환하여 1946년 입학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1948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부산대학교, 연세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1955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박물관장을 역임했다. 197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문학자 이병기, 조윤제, 국어학자 최현배의 제자로서, 일제에 저항하며 조선의 민족어문과 역사문화의 전통을 계승 표창하려던 초창기 국어국문학자들의 민족주의 학풍을 계승하였다. 6.25로 남북 분단이 고착되자 전시 임시수도 부산에서 부산대 교수로 함께 재직하던 국어학자 허웅 교수와 국어국문학회 창립을 주도하고, 해방 후 본격적인 학문으로서 국문학 연구의 이론적 초석을 놓았다. 고전에 대한 학문적 조예와 문학에 대한 심미적 감식안을 겸비하여 고전 시가를 중심으로 국문학에 대한 문헌 역사적 연구와 문예 미학적 연구를 병행하며 《시조문학사전》, 《한국고전시가론》 등의 저서로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 3.1문화상, 외솔상 등의 학술상을 수상하고 학술원 종신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국문학계를 대신하여 대영백과사전(Encyclopedia of Britanicca)에 한국문학을 소개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과 프랑스 국립 파리 대학교에 초빙교수로 활동하며 강의와 논문 등을 통해 세계에 한국문학의 역사 전통과 특질을 알리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판소리학회를 창립하고 판소리의 연구와 함께 감상 보급 운동에도 힘썼다. 대영백과사전을 국내에 총판하던 한국브리태니커사(뿌리깊은나무사; 사장 한창기)에서 물적 지원을 하고 강한영, 이보형과 같은 학자가 도운 판소리 감상회는 그의 주도로 5년간 100회를 거듭하며 명창들을 재발굴 소개하고 대표 음반을 해설과 함께 출판 보급하는 성과로 이어져, 명맥이 끊겨가던 판소리의 부흥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이러한 판소리의 부흥운동과 함께 종합예술로서 판소리의 역사와 예술적 성격을 구명한 저서 《한국의 판소리》 등 논저를 통해 그는 판소리의 위상을 한국의 전통문화예술을 대표하는 정수라고 규정하여, 김소희와 같은 판소리 예능 원로들로부터 판소리계의 은인으로 존숭받았다. 만년에는 시가, 판소리 문학뿐 아니라 전통 음악과 무용 등을 포괄하는 한국 전통예술의 미학원리를 모색하는 연구에까지 이르렀으나 1982년 10월 12일에 급성 저혈압과 간암 등의 합병증세로 인하여 6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후에 한글과 국문학에 대한 공헌으로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3. 윤동주와의 관계

전공자들에게는 국문학의 체계를 확립한 (해방 후) 제1세대 학자로 유명하나 수험생들과 일반 국민에게는 윤동주의 친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에 1940년 봄 입학하여 신문에 발표한 글이 선배 윤동주의 주목을 받아 함께 기숙사를 나와 하숙을 하는 등, 약 2년 가까이 청년 학창시절을 단짝으로 지내며 영향을 받고 민족의식, 문학의식을 공유하였다. 윤동주가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2년 후 정병욱은 1944년 1월 졸업을 앞두고 일제 학병으로 강제징집되어 오사카의 방공포대에서 전쟁을 겪었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에 편입하여 졸업 후 바로 대학 교수가 되었다. 국문학자로서 두각을 나타낸 학설로는 한국 시가의 이른바 3음보 학설을 비롯하여, 고려가요와 조선 시조 등 고전시가의 체계와 특징을 정리한 시가 장르론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주전공은 고전시가 쪽이었으나 김시습을 연구하던 중 < 대동야승>을 모조리 읽고 학사 졸업논문을 썼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으며, 조선 왕실도서관격인 낙선재에서 고전 장편대하소설들을 대량 발굴 소개하기도 했다.

또 윤동주의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친필 원고를 보존하고 윤동주의 연희전문 동기 강처중 및 동생 윤일주와 유고를 모아서 시집을 간행한 벗으로도 유명하다. 연희전문을 졸업하게 된 윤동주 시인으로부터 증정받은 육필 원고를 일제 학병으로 끌려가기 전 전라남도 광양시에 위치한 본가[6]에서 모친에게 맡기면서 '목숨처럼 소중한 것이니 잘 간직해 달라'라고 당부하고 전장으로 떠났는데 이 유고가 보존되어 해방 후 윤동주와 그 시집이 알려지게 되었다. 일제가 우리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한글은 물론이요 우리말까지 공식적으로 못 쓰게 한 암울한 시절에 사실상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걸고 윤동주의 유고를 지켜내 시인 윤동주의 존재와 그 시를 우리 문학사 속에 되살려낸 공로자인 셈이다. 1955년에는 윤동주 유족이 고향에서 가져온 유작들을 초판본 시와 함께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재판본을 간행하고 발문을 통해 윤동주를 일제말 암흑기에 저항한 민족시인이라 논정하였다.

6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어》 국정교과서에는 <잊지 못할 윤동주>라는 그의 수필이 실려 있었고, 윤동주의 인품, 성격과 생활, 시작 태도와 배경 등을 알려주고 있는 이 글은 지금까지 여러 문학 교과서에 편집되어 실리고 있다. 이 글을 비롯 여러 글들과 교육 문화 활동을 통해 그는 한국 고전문학과 판소리뿐 아니라 윤동주를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데 평생 헌신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여동생 정덕희가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와 결혼하기도 했다. 사적으로는 벗일 뿐 아니라 사돈지간이 된 셈이니 윤동주와 정병욱은 개인적으로나 한국문학사를 위해 참으로 운명적인 인연을 맺은 것이다. 호인 백영도 윤동주의 시 중 '흰(白) 그림자(影)'를 그대로 따 온 것.

4. 저서

백영 정병욱의 저서는 학술 저서, 수필집, 대담집, 고전주석 및 번역서, 교과서 등 다양한 책이 있는데 이 중 주석 및 번역서와 교과서류를 제외한 저술서는 전집으로 재발행되기도 하였다.
  • 국문학산고(신구문화사, 1959)
  • 시조문학사전(신구문화사, 1966)
  • 구운몽(공저, 교주, 1972)
  • 한국고전시가론(신구문화사, 1977)
  • 고전의 바다(장덕순, 이어령 공저, 현암사, 1977)
  • 표해록(국역, 범우사)
  • 한국고전의 재인식(홍성사, 1979)
  • 한국의 판소리(집문당, 1980)
  • 바람을 부비고 서있는 말들(신구문화사, 1980)
  • 논문작성법( 정한모 공저, 1981)
  • 고전탐구의 뒤안길에서(신구문화사, 1982)
  • 백영 정병욱 저작집 8권(신구문화사, 1995)
  • 이 밖에 1970년대 고교 검인정 교과서로 표준 고전, 표준 작문 등이 있음

5. 기타

정병욱과 윤동주의 이야기는 2022년 6월 30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다뤄졌다. 이 방송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정병욱은 생전에 윤동주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이 윤동주에 관해 부연 설명을 하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윤동주의 시를 자유롭게 읽고 이해하는 데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관련 발표회 등에서 윤동주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니 설명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도 그저 추억에 잠긴 표정으로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고. 학문에서 인물 및 저서를 해석할 때 매우 가까운 관계인 인사의 해석에 의존했다가 후대의 연구로 뒤집힌 사례가 실제로 적지 않았던 만큼, 정병욱도 이를 우려하고 신중하게 대응한 것으로 추정한다.


[1] 여동생 정덕희의 아주버님이다. [2] 인근의 금음리·노량리·진목리와 함께 진주 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정몽호· 정순조· 정임춘· 정학순도 이 마을 출신이다. [3] 윤동주의 시 '흰 그림자'를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것이다. [4] 지금의 초등학교 교사 [5] 진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보통학교 훈도, 국민학교 교원으로 재직했다. 해방 후 광양군 진월면장에 취임했다. # [6] 현재 등록문화제 제341호로 지정된 정병욱 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