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6:32:12

이호철(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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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청와대 흰색 로고.svg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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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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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82e59><colcolor=#fff> 참여정부 제5대 민정수석비서관
이호철
李鎬喆
파일:이호철1.jpg
출생 1958년 12월 21일 ([age(1958-12-21)]세)
경상남도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2가 123번지
(현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2가)
거주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1]
원적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 463번지
재임기간 참여정부 제4대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2005년 8월 12일 ~ 2007년 12월 21일
참여정부 제5대 민정수석비서관
2007년 12월 21일 ~ 2008년 2월 24일
학력 경남고등학교 ( 졸업)
부산대학교 법과대학 ( 행정학 77 / 학사)
신체 신장 169cm
약력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민정1비서관
대통령비서실 혁신관리수석실 제도개선비서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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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정무직공무원. 노무현이 인권변호사로서 활동하게 만든 계기가 된, 부림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2. 생애

1958년 12월 21일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2가 123번지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 졸업 후 1977년 부산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77학번)에 입학해 1981년 졸업했다.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부림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바 있다. 이때 무료 변론을 맡았던 노무현 변호사를 법정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게 되었다.

19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에서 사회부장, 홍보부장 등으로 근무했고,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 홍보부장을 지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동구 선거구에 출마한 노무현의 선거를 도왔고, 1989년 노무현의 보좌관에 임용되어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각각 노무현의 선거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이후 작은 여행사를 경영하다가 참여정부 출범 후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비서관으로 발탁되어 2003년 2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민정수석비서관실 민정1비서관, 2003년 12월부터 2004년 4월까지 민정수석비서관실 민정비서관, 2005년 2월부터 2005년 4월까지 혁신관리비서관실 제도개선비서관, 2005년 4월부터 2005년 8월까지 혁신관리수석비서관실 제도개선비서관, 2005년 8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국정상황실장, 2007년 1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노무현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머무르며 친환경 생태농업, 마을 가꾸기 등 노무현의 활동을 보좌했으며,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을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의 ' 3철'( 전해철, 이호철, 양정철)로 불리는, 비선 실세 중에 한명이라는 풍문이 많이 돌았고,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공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페이스북에 자신의 심경을 밝히면서 권력이나 명예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의견과 함께 자연인으로 남을 것을 밝히며, 해외로 간다는 뜻을 밝혔다. # 그리고, 진짜로 해외로 출국했다.

2017년 6월경 귀국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관 조성사업 추진단장으로 일하고 있고, 긴 한가위 연휴가 지난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부산광역시장 출마 설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본인이 평소에도 참모기질이 적합하다고 수 차례 말한것으로 보아서는 불출마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인터뷰 형식으로 부산시장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아마 부산지역 정가에 떠도는 대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오거돈의 참모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2월 13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측의 부산시장 후보군과 어느 후보가 이기더라도 그 후보를 지지할 것을 약속하는 원 팀을 구성하였음을 발표하는 등 부산시장 선거 준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민주당 부산시당 측에서 공조직을 무시한 독단적인 판단이라고 유감을 표시하자 이호철은 자신이 대선 이후 민주당 인사 중에서 오거돈을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며 지방선거에 대한 민주당 부산시당의 미온적 태도를 비판했다. # 지방선거 이후 의도대로 오거돈이 부산시장에 당선되자, 다시 출국하여 정치와는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 동안 3 중 유일하게 정치적 직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실상은 이화영의 중국 출장을 도왔단 것이 확인됐다. # 이 후 양정철의 설득에 따라 이재명 캠프를 돕는 등 실상은 정치에 거리를 두는게 아니라, 당시 민주당내의 핵심세력이었던 이해찬과 이재명의 가까운 위치에 있었단 것이 드러나게 된다.

3. 여담

파일:이호철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용의자 수배 전단.jpg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당시 용의자 수배 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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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 책에 쓰인 원문은 "주군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놈이 무슨 면목으로 말을 합니까……. 저는 죽을 때까지 말 못합니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