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23 12:41:23

이코마 치카마사

삼중로
이코마 치카마사 호리오 요시하루 나카무라 카즈우지


파일:이코마치카마사.jpg
生駒 親正
1526 - 1603

1. 개요2. 생애3. 일화

1. 개요

이코마 치카마사는 센고쿠 시대의 다이묘이다.

2. 생애

오다 가문의 가신 이코마 치카시게의 아들로 미노국에서 1526년 태어났다. 1566년 오다 노부나가의 미노 정벌에 참전했고, 이후 하시바 히데요시 아래에서 나가시노 전투, 사이카슈 정벌, 카네가사키 전투 등에서 분전했다.

혼노지의 변 이후에는 계속 히데요시를 따르며 시즈가타케 전투, 오다와라 정벌, 임진왜란 등에 참전한 결과 1595년에는 사누키에 12만석 가량의 영지를 보유하게 된다. 도요토미 정권에서의 입지도 나쁘지 않아 나카무라 카즈우지, 호리오 요시하루 삼중로에 임명되기도 한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자식 이코마 카즈마사와 달리 본인은 서군에 참여해 가신을 보내어 동군 호소카와 후지타카가 지키고 있던 타나베 성 공략에 가세했다. 그러나 서군의 패배로 전쟁이 끝나자 삭발하고 고야산에 은거했다. 자식인 카즈마사가 동군에 가담한 덕분에 치카마사는 목숨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영지도 지킬 수 있었다. 그 후 사누키에 돌아가 1603년 병사했다.

3. 일화

본래 사누키의 주인이던 소고 마사야스의 아들 소고 센마츠마루는 아버지 소고 마사야스 센고쿠 히데히사, 쵸소카베 모토치카 등 도요토미군의 일원으로 참가한 전투에서 시마즈 이에히사가 이끄는 시마즈군에 전사한 이후로 이코마 치카마사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언제는 한번 치카마사와 그의 조카와 함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히데요시는 성장한 센마츠마루의 용모를 보고 기뻐하며 "왜 이런 아이에게 영지를 조금이라도 늘려주지 않느냐?"하며 치카마사를 면전에서 타박하였다. 치카마사는 센마츠마루를 굉장히 아니꼽게 여기며 옛 사누키 호족의 후예인 것을 혐오스럽게 여겼는데, 히데요시에 의해 당사자의 눈앞에서 망신을 당하자 방에서 나와 조카와 함께 센마츠마루를 처우를 논하기 시작했다. 한편 대담 끝에 센마츠마루는 드디어 가독 상속의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고 가문 재흥을 꿈꾸며 사누키로 귀국하였으나 사누키에 도착함과 거의 동시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너무나도 좋은 타이밍에 병에 걸려 사망했던지라 당시의 사람들은 사누키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치카마사의 소행이라 생각하였으며 그가 소고 가문의 후계자를 독살하였다는 풍문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치카마사는 센고쿠 다이묘 중에서도 악담이 집중적으로 남아있는 특이 케이스 중 한명이다. 센마츠마루 독살 소문 이외에도 마루가메 성의 축성 당시 나와바리와 이시가키, 비상통로를 작성한 설계자 하사카(羽坂) 씨를 적과 내통할 것을 두려워해 깊이 약 65미터를 자랑하는 니노마루의 우물에 들어가게 한 뒤에 돌을 떨어뜨려 죽여버린 이야기가 남아있으며 아와의 하치스카 가문과 협력해 미요시 가문의 혈통을 몰살시키려 미요시 사냥을 행했다는 이야기도 남아있다. 이 중 마루가메 성의 이야기는 니노마루 우물의 안내판에 당당히 기재 되어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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