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5년(?) ~ 1589년(?) 十河千松丸
미요시 / 소고 가문 최후의 당주 소고 마사야스의 아들.
1. 약력
소고 마사야스의 장남으로 추정된다. 여러모로 격동의 시기를 보냈는데 태어날 당시는 쵸소카베 모토치카의 아와, 사누키 침공에 의해 아버지가 정신없이 바쁜 것은 물론이오, 본거지인 쇼즈이(勝瑞)와 야마다(山田)마저 차례차례 함락되었으므로 험난한 도피생활도 경험하였으리라 추측된다. 하시바 히데요시의 시코쿠 정벌 이후로 겨우겨우 정착에 성공하였으나 이 다음에는 아버지가 전장에서 전사함에 따라 10살 남짓한 나이엔 이미 아버지마저 없는 상태였다.소고 가문은 이제 당주가 없는 상태였기에 센마츠마루가 가독을 이어 가문을 보존해야 했는데 히데요시는 센마츠마루에게 가독 상속의 허가를 내려주지 않았다. 거기에 그나마 있던 영지마저 센고쿠(仙石), 비토(尾藤) 가문의 후임인 이코마 가문의 이코마 치카마사에게 돌아감에 따라 사누키에서 소고 가문은 정말 들러리 수준으로 전락해버렸다.
이후로 센마츠마루는 치카마사의 비호 속에 자라났으나 돌연 사망하였다. 추정 나이 약 15세.[1]
2. 죽음에 대한 음모론
센마츠마루는 아버지 소고 마사야스의 죽음 이후로 이코마 치카마사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언제는 한번 치카마사와 그의 조카와 함께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히데요시는 성장한 센마츠마루의 용모를 보고 기뻐하며 "왜 이런 아이에게 영지를 조금이라도 늘려주지 않느냐?"하며 치카마사를 면전에서 타박하였다. 치카마사는 센마츠마루를 굉장히 아니꼽게 여기며 옛 사누키 호족의 후예인 것을 혐오스럽게 여겼는데, 히데요시에 의해 당사자의 눈앞에서 망신을 당하자 방에서 나와 조카와 함께 센마츠마루를 처우를 논하기 시작했다. 한편 대담 끝에 센마츠마루는 드디어 가독 상속의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고 가문 재흥을 꿈꾸며 사누키로 귀국하였으나 사누키에 도착함과 거의 동시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너무나도 좋은 타이밍에 병에 걸려 사망했던지라 당시의 사람들은 사누키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치카마사의 소행이라 생각하였으며 그가 소고 가문의 후계자를 독살하였다는 풍문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2]
[1]
사망 원인에 대해선 보통 병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이야기가 나오는 편이지만 독살이라고 말하는 학자 또한 존재하기에 이에 대해선 확실치가 않다.
[2]
치카마사는 센고쿠
다이묘 중에서도 악담이 집중적으로 남아있는 특이 케이스 중 한명이다. 센마츠마루 독살 소문 이외에도
마루가메 성의 축성 당시 나와바리와 이시가키, 비상통로를 작성한 설계자 하사카(羽坂) 씨를 적과 내통할 것을 두려워해 깊이 약 65미터를 자랑하는 니노마루의 우물에 들어가게 한 뒤에 돌을 떨어뜨려 죽여버린 이야기가 남아있으며
아와의 하치스카 가문과 협력해 미요시 가문의 혈통을 몰살시키려 미요시 사냥을 행했다는 이야기도 남아있다. 이 중 마루가메 성의 이야기는 니노마루 우물의 안내판에 당당히 기재 되어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