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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 사건 | 화성 연쇄살인 외 사건 |
화성 연쇄살인 사건 (사건 내용) | 화성군 태안읍 일대 연쇄 강간 사건 · 청주 여공 강간 살인사건 · 수원 여고생 강간 살인 사건 · 청주 처제 살인사건 ·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
1. 개요
1986년부터 1994년까지 8년간 이춘재가 저질렀거나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범행들 중 연쇄살인 이외의 범행들을 정리한 문서.이춘재의 자백 후 사실 확인에 들어간 사건은 14건의 살인 사건[1]과 추가적인 30여 건의 강간 및 강간 미수 사건들이다.
사건이 밝혀진 순서는 다음과 같으며 경찰 발표 기준이다.
- 2019년 9월 18일: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중 5차, 7차, 9차 사건에서 이춘재의 DNA가 발견됨
- 2019년 10월 1일: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중 4차 사건에서 이춘재의 DNA가 발견됨
- 2019년 10월 1일: 이춘재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포함한 14건의 살인 사건과 30여 건의 성범죄를 자백함.[2]
- 2019년 10월 12일: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중 3차 사건에서 이춘재의 DNA가 발견됨
- 2019년 10월 15일: 경찰에서 이춘재가 자백한 나머지 4건의 살인 사건이 각각 1989년 7월 화성 초등학생 실종 사건, 1987년 12월 수원시 여고생 살인 사건, 1991년 1월 청주 가경동 여공 살인 사건,[3] 1991년 3월 청주시 남주동 주부 살인 사건임을 정식 발표함.
본인이 자백했거나 확정된 사건에는 별표한다.
2. 1986년
2.1. 화성군 태안읍 일대 연쇄 강간 사건 ★
자세한 내용은 화성군 태안읍 일대 연쇄 강간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일대에서 1986년 1월부터 7월까지 7번에 걸쳐 발생한 연쇄강간 사건.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2.2. 폭행 납치 사건 ★
화성 2차 사건과 3차 사건 사이인 1986년 11월 20일에 발생한 폭행사건.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 한 성당 근처에 위치한 지인 집에 들른 뒤 오후 8시 30분께 귀가하던 36세 여성 정모씨가 맞은편에서 오던 범인에게 공격을 당했다.당시 상황에 대해 피해 여성은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데 '꼼짝없이 죽는구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폭행을 멈춘 괴한은 피범벅이 된 얼굴을 감싸고 있던 정씨를 끌고 어둠 속 논밭에 숨었다. 이 과정에서 정씨는 인근에 있는 똥밭에 나뒹굴었고 괴한은 정씨의 그 모습을 보고 더럽다면서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2.3. 납치 강간 살인미수 사건 ★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중 2차사건이 발생하고 1달 10일만인 1986년 11월 30일 밤 9시경 태안읍 정남면 보통2리 산9-1에서 발생한 납치 강간 살인미수 사건.시기상 연쇄살인 2차사건과 3차 사건 사이에 발생하였으나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 4차 사건 발생 이후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다.[4]
피해자는 45세의 여성으로 교회에 가려고 논길을 걷고 있던 중 갑자기 범인이 날카로운 흉기로 피해자를 위협하여 근처 논둑으로 끌고 갔다. 이후 피해자의 양말을 벗기고 양팔을 뒤로 묶은 후 거들과 팬티를 벗겨 얼굴에 씌운 뒤 2회 강간하였다. 범행 과정에서 “네 서방 있냐?”라고 묻고 나이를 물을 때 피해자가 재갈이 물려 있어 범인이 숫자를 세고 맞는 숫자에 고개를 끄떡이게 하는 수법을 사용하였다.
범인은 성폭행 후 “네 이년, 죽기 전에 돈을 내놓으라”고 한 후 얼굴에 재갈이 물린 피해자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재갈을 풀어주고 또 다시 “네 이년 소리 지르면 당장 죽이겠다”고 협박하였다. 피해자가 끌려올 때 돈이 들어있는 가방을 떨어뜨렸다고 하자 가방을 찾으러 범인이 그 방향으로 갔으며 피해자는 이 틈을 이용해 양손이 묶인채로 반대 방향으로 전력질주하여 탈출하였다.
피해자 진술에 의하면 범인은 25세에서 27세 정도의 남성으로 키는 160센티미터에서 170센티미터의 호리호리한 몸매였으며 낮은 목소리를 가졌다. 얼굴은 갸름한 편이며 반곱슬 머리를 짧게 깎았고 올백 헤어스타일이었다. 손이 매우 부드러웠으며 범행시 운동화를 착용하고 칼을 사용하였다. 나중에 손가방을 찾아 확인해 보니 현금 7만원과 수표 10만원권 1매를 강취당한 것을 확인하였다.
피해자를 놓치고 난 후 범인은 살해의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하여 분노하였을 것이며 이후 범행부터는 나름대로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대책을 강구하였을 것이다. 또한 이 사건 이후 벌어지는 3차 연쇄살인사건에서 여성의 음부훼손이 시작되고 있는데 피해자를 놓치는 실수를 한 이후 이에 대한 분노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3. 1987년
3.1. 수원 여고생 강간 살인 사건 ★
자세한 내용은 수원 여고생 강간 살인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4. 1989년
4.1.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
자세한 내용은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4.2. 수원시 강도미수 사건 ★
1989년 9월 26일 이춘재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의 A씨의 집에 면장갑과 흉기를 들고 대문을 통해 침입해 방문 앞에서 집안을 살피다가 집주인에게 발각되었고 바로 체포되었다. 이춘재는 "낯선 청년에게 구타를 당해 그를 쫓다가 A 씨의 집에 들어가게 됐을 뿐, 강도 목적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1990년 2월 7일 수원지방법원은 1심에서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으나 이 씨는 항소했고 4월 19일 열린 2심에서 피고인이 초범이고 피해자가 입은 피해가 경미한 점을 감안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해 이 씨는 201일 만에 구금 상태에서 풀려났다. 이때 판결문에 적힌 이 씨의 감형 사유 중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웠다"는 점도 있었다. # #
이춘재는 야외 강간살인 패턴을 꾸준히 유지했는데 유독 이 사건은 뜬금없이 다른 방식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다. 그런데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중 1988년 9월 16일 8차 사건이 남의 집에 침입하는 방식이었던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 8차 사건은 당시 모방범죄로 밝혀져 윤 씨가 붙잡혀 20년형을 선고받고 출소했는데 2019년에 붙잡힌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의 범행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마침 이 가택침입 시도 사건은 8차 사건 이후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이에 일어났다. 만일 8차 사건이 이춘재의 범행이 맞다면 8차 사건으로 한 번 가정집 침입 범행을 성공한 후 약 1년이 지나 한 번 더 시도하려다가 집주인에게 발각당해 붙잡혔고 주택 침입 방식은 2번째만에 실패하면서 남의 집에 숨어드는 게 더 위험한 것 같으니 9차 사건부터는 원래대로 야외범행 방식으로 회귀했다고 볼 수 있다.
아니면 8차 사건 이후 그동안 수사대상에 오르지 않다가 몽타주가 만들어져 배포되었고 경찰에게서 음모를 채취당하는 등 수사선상이 자신을 향해 좁혀지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실제로 8차 사건에서 경찰은 용의자들의 음모를 방사선 동위원소 방식으로 검출해서 중금속이 나오자 납땜, 전자부품과 관련된 범인의 직업을 알아내려고 했고 혈액형을 B형으로 수사한 결과 하필 윤성여 씨가 농기계 수리업을 해서 중금속이 검출되었고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다. 이춘재도 자신의 음모를 경찰에 제출했고 전자부품 회사에서 일해서 중금속이 검출될 수 밖에 없었는데, 혈액형이 O형이었기 때문에 검거되지 않았다. 이춘재는 운좋게 수사의 방향이 빗겨나갔지만 분명 심리적인 압박이 있었을 것이고 몇 달 동안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이춘재는 사람을 너무 많이 죽인 자신을 보고 자신에게 자괴감이 생기는 냉각기가 왔고 더 이상 살 의지를 상실했다. 이는 대부분의 연쇄살인범들에게 생기는 현상으로, 여러 사람을 욕구로 살인하고 나서 자신에 대한 혐오가 생긴다고 한다. 자살하려 집에서 나간 이춘재는 그때 혼자 걸어가는 초등생을 발견했는데 하필이면 주변에 사람이 없었고 결국 여자아이에게 범행을 저질렀다. 이춘재는 살인욕구를 못 끊고 아예 범행 장소를 수원으로 옮겨 8차 사건에 성공했던 주거침입으로 범행 방식을 바꾸다 검거된 것이다.
5. 1991년
5.1. 청주 여공 강간 살인사건 ★
자세한 내용은 청주 여공 강간 살인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5.2. 청주 부녀자 납치사건 ★
위의 청주 여공 강간 살인사건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김 모 씨(32)가 1991년 1월 26일 청주시 가경동 택지조성공사 현장 근처에서 약을 사서 귀가 하던 중 공사장 배수로로 납치 되어 결박 당했다가 탈출한 사건.범인은 피해자의 뒷목을 붙잡은 뒤 근처 하수도로 끌고갔다. 김씨는 "손에 낀 금반지를 줄테니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범인은 "살고 싶으면 입 닥쳐라"고 욕한 뒤 피해자의 바지를 벗겨 머리에 씌우고 스타킹으로 다리를 묶고 피해자의 옷가지로 결박하는 등 이춘재의 범행과 동일한 양상을 보였다. 피해자는 범인이 한눈을 판 사이 몸을 흔들어 결박을 풀고 배수로를 기어 나간 후 택시를 타고 탈출했다고 한다. 납치 당시 끙끙대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 자신 외에 이미 납치된 사람이 있음을 느꼈고 탈출 후 경찰과 현장을 다시 찾았지만 이미 범인과 피해 여성은 사라지고 없었다. 납치 당시 같이 있었던 여성은 정황상 청주 여공 강간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박 양(17)으로 추정된다.
5.3. 청주 남주동 주부 살인사건 ★
1991년 3월 7일, 청주시 남주동 가정집에서 주부 김홍분씨(당시 29세)가 살해당한 채 발견된 사건. 이춘재가 자백한 청주에서의 2건의 살인 사건 중 하나다. #숨진 김씨는 공업용 테이프로 눈이 가려진 상태에서 고무줄에 양손이 묶여있었고 옷으로 입이 틀어 막혀있었으며 가슴에는 흉기에 찔린 흔적이 남아있었다. 당시 경찰은 방어흔이 없는 점과, 도난품이 없는 점 등을 토대로 원한관계 또는 치정관계에 의한 범행으로 판단하고 수사에 나섰으나, 진범검거에는 실패했다.
6. 1992년
6.1. 청주 봉명동 여종업원 살인사건
1992년 4월 18일 청주시 봉명동에서는 술집 여종업원 이모(34)씨가 식당 주차장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이씨는 머리에 둔기에 맞은 상처가 있었고 하의는 벗겨져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사망 추정시각은 밤 12시경이었다. 당시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리고 27명의 형사를 투입해 사건을 수사했지만,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면서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6.2. 청주 강내면 공사장 살인사건
1992년 4월 23일 오전 8시 20분께 청주시 강내면 학천교 경부고속도로 확장 공사장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된 것을 포크레인 기사가 발견하였다.시신은 양손이 스타킹으로 묶여있었고, 40㎝ 깊이 땅속에 묻혀있었다. 경찰은 여성이 숨진 지 3~4개월 된 것으로 보고 신원 파악에 나섰지만, 여성의 신원을 파악하지 못하면서 범인 검거에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6.3. 청주 복대동 주부 살인사건
1992년 6월 24일 청주시 복대동에서 가정주부 이모씨(28)가 피살된 사건.피해자는 한 상가주택에서 하의가 벗겨지고 전화줄로 목이 졸린 채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현장 지리에 익숙한 사람의 소행일 것이라고 추정했고 사건 현장에서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나가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나왔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피해자의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했지만 끝내 단서를 잡지 못하고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사건이다.
위의 청주 여공 살인사건과 본 사건은 모두 이춘재의 신혼집 인근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
7. 1994년
7.1. 청주 처제 살인사건 ★
자세한 내용은 청주 처제 살인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1]
청주 처제 살인사건은 이미 재판을 받았으므로 제외
[2]
최초 발표에서는 8차 사건이 제외되었다고 발표했으나 이후 정정했다.
[3]
가경동 여공 살인 사건의 경우 공사현장이 복대동과 인접해있어 가경동으로 표시한 기사
#도 있고, 복대동으로 표시한 기사
#도 있다.
[4]
이 사건 13일 후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3차 사건이 발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