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6 00:57:15

이준석/생애/개혁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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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혁신당
1.1. 정강정책위원장1.2. 개혁신당 대표1.3.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1.3.1. 당선
1.4.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인1.5. 제22대 국회의원

[clearfix]

1. 개혁신당

1.1. 정강정책위원장

2023년 12월 27일 국민의힘 탈당 선언에 맞춰 선거관리위원회에 개혁신당의 창당 준비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28일 쌍특검법을 반대하는 여당을 향해 "만약 특검 반대 이유가 특검 대상이 성역이라서 그런 것이라면 오늘은 측천무후를 옹립하는 날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

이어서 천하람 이기인 또한 29일날 차례대로 탈당을 선언하고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으로 합류하였다. 본인은 정강정책위원장을 맡아 정강정책을 설계하고, 창당 실무는 천하람과 이기인이 전담한다. 창당 실무는 바른정당 때 맡아본 경험이 있는 반면 정강정책 만들기는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신년 첫 날 개혁신당 일원들이랑 국립현충원 참배로 일정을 시작해 서울역 대회의실에서 신년 하례회를 하였다. 이날 못 보던 사람들이 같이 일정을 같이하면서 신당에 합류하는 인원들이 서서히 공개되기 시작했다.

이재명 피습 사건이 터지자 즉각 입장을 내 테러 행위를 규탄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해서는 안된다며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였다. 자작극 드립 또한 정신 차리라고 일침을 놓았다.

1월 3일 허은아 의원이 공식적으로 탈당 선언을 하며 의원직을 내려놓고 개혁신당에 합류하였다. 이날 허은아 탈당 기자회견에 동행하였다.

신당 홈페이지가 개설되었다. 3일에 공개될 예정이었는데, 전날 주소가 유출되면서 인기글에 2D 짤이나 호날두가 돌아다니는 등 게시판이 난장판이 되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뚝딱 만들었는지 정말 심플하기 짝이 없는 디자인과 버그가 난무하는 것이 특징. 보다 못한 지지자들의 훈수가 난무하자 본인이 홈피에 상주하며 실시간 Q/A로 버그를 잡았다. 가뜩이나 불안정한 사이트가 당원가입 시스템까지 오픈하면서 사람이 몰리더니 결국 서버가 터졌다.

18시간만에 당원 2만 명이 모여 하루만에 시도당에서 천명 이상을 모은 곳이 7곳으로 늘어나며 중앙당 설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6일에는 천아인과 함께 대구에 내려가 길거리에서 당원을 모집하는 행사에 참여했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공천 파동이 일어날 것을 확신하였다.

8일 개혁신당 1호 정강정책으로 공영방송 관련 의제를 내놓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논란이 되풀이되는 것을 지적하며 공영방송 지배 구조를 바꾸고 재정 확보를 위해 규제를 일부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9일 양향자 의원의 출판 기념식에 참여해 연대를 시사했다.[1] 이 자리에 이낙연, 금태섭도 참석해 3지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한데 모였다.

12일에는 반 이준석으로 꼽히던 김용남 전 새누리당 의원을 개혁신당 전략기획위원장으로 영입하였다. ( 김용남, 이준석 신당 합류...尹에게 속았다) 이날 오전 방송에서 오늘 입당하는 분은 전직 의원이라고 살짝 스포를 했는데, 난데없이 김용남 입당 오피셜이 뜨면서 충격을 주었다.[2] 김용남은 입당하자마자 개혁신당 정강정책 3호(경제)를 발표하며 중책을 맡았다.

14일 민주당 비명계인 원칙과 상식이 주도한 가칭 미래대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했다. 행사 후 이낙연, 김종민과 함께 여의도 스타벅스에서 공개 회담을 가졌다. 기자회견에서는 단순히 합친다고 다가 아니라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성급한 합당은 피할 것을 말했다. 텐트가 아닌 튼튼한 집을 짓고 싶다고 한다.

15일에는 언론으로부터 이준석-이낙연이 설 전에 통합을 추진한다는 설이 나왔다. # 그러자 바로 "솔직히 설 전은 이르다"며 여전히 서둘러서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

한동훈이 출근길에 들고 있던 커피가 연출 사진이라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타워팰리스 정부과천청사 사이에 던킨도너츠가 없다는 것이 논거이다. 하지만 출발지가 도곡동이 아니라는 반박이 바로 제기되었다. #

16일 이낙연 신당으로 불리는 가칭 새로운미래 발기대회에 3지대 인사들과 함께 참석했다. 축사에서는 의례적인 발언을 했으나, 직후 기자회견에서는 과거 민추협이 갈라선 일화를 두고[3] 이기심 때문이라 언급하며 지분 싸움을 벌이는 세력을 경계했다. 국민들에게 설명이 가능한 연대여야 한다는 발언도 그렇고 빅텐트에 대한 입장이 매우 신중해졌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낙연에게 불출마 입장을 철회하고 이번 총선에 출마할 것을 제안하며 같이 선봉에서 앞장서 싸울 것을 권했다. # 아예 계양 을 출마를 넌지시 언급하며 저쪽이 받아들이기 까다로운 제안을 계속 던지고 있다.

18일 개혁신당 5호 정강정책으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를 발표했다. 역세권에 안 사는 주민들은 혜택을 못 보는 정책이라며, 대안으로 지하철 뿐 아니라 버스, 택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교통약자 전용 교통카드를 국비로 지급해 형평성 재고와 교통공사,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그냥 교통카드 12만 원 지급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이 문제는 이미 각계각층에서 해결을 시도하고 있지만 정치권이 외면하면서 진전이 안 되는 것이라 논쟁이 커져야 해법이 나온다고 설명하였다. 표가 깎이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개혁신당이 총대를 메서 공론화를 시키겠다는 취지라는 의도라고 한다. #

1.2. 개혁신당 대표

파일:개혁신당당대표.jpg
개혁신당 대표로 추대된 이준석 대표
1월 20일에 열린 개혁신당 창당대회에서 대표로 추대되었다.

1월 26일,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와 관련해 대한노인회 김호일 회장과 1대1로 대담을 나눴다. #
파일:개혁신당현수막.jpg
개혁신당 홍보 현수막을 설치하는 이준석 대표
토론 후 주요 당직자들과 함께 현수막을 직접 설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소형 트럭을 타고 골목을 누비며 개혁신당 오프라인 홍보를 뛰고 있다. # 주말 동안 양향자 의원과 함께 강서구, 마포구 시장을 방문했다.

1월 29일에는 개혁신당 정강정책으로 경찰, 해양경찰, 소방, 교정 직렬은 남성과 여성에 관계없이 병역을 수행할 것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직접 발표하였다. 병력 자원이 계속 감소하고 있어 몸무게 120kg의 고도 비만자도 징집하려는 상황 속에서 공무원 여성 지원자 병역 의무화를 우선 도입하고, 다른 직렬에도 점진적인 복무 의무화 제도 확대를 검토할 것을 주장하였다.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서 "아무도 안 가는 대만식 모병제나 허황된 군 과학화 같은 주장은 의미가 없다"고 맞섰고, 갈라치기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못 하게 막을 때 쓰는 말이 갈라치기"라며 현실적인 대안을 가져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일각에서 말이 나오는 여성징병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나타냈는데, 순차적으로 의무를 나눠 가지는 것이 먼저라고 설명했다.

1월 31일에는 라보를 끌고 세종, 광주까지 내려가 정책 홍보에 나섰다. 세종시에서는 자신이 세종에서 출마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언급하였고, 광주에서는 광주공항 이전, 송정역 환승 센터 설치, 무등산 정상까지 전기차 운행을 약속했다.

2월 4일에는 이낙연의 새로운미래 창당식에 양향자 의원과 함께 참석했는데, 조응천과 이원욱이 창당 당일 불참을 선언하더니 축사도 이준석을 시작으로 날카로운 내용이 오갔다. 우리 차이가 작지 않다는걸 인정하고 각자 위치서 공통 목표에 대해 의논하자는 발언을 했고 다른 내빈들과 새로운미래 관계자들도 이에 질세라 한마디씩 얹으며 창당식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파일:개준석합당.jpg
2월 8일 용산역 귀성길 인사
허나 이렇게 대립하던 모습도 잠시, 2월 8일에 용산역에서 새로운미래, 새로운선택의 일원들과 합동으로 귀성길 인사에 나서더니 결국 2월 9일, 2024년 제3지대 정당 4자 통합을 공식 발표했다. 당 내부에서는 통합으로 인해 잃을 게 더 많다는 의견과[4] 제3 지대 통합은 해야 한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였고, 이에 합당 발표 당일 저녁에 라이브를 켜서 합당을 결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통합론과 자강론으로 대립하던 당 내부에서도 통합 찬성 의견이 더 우세했다고 하며 자강론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원들에게 사과하면서, 그동안 냈던 사회 문제 정책 같은 입장 스탠스는 바뀔 것이 없으며, 바른미래당 분당 사태를 막기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합의안에 넣었다고 했다. 또한 류호정 배복주의 합류에 대해선, 류호정은 각각의 세력이랑 개별적으로 협상할 처지가 아니어서 어쩔 수 없었고 배복주는 새로운미래 당원이 아니라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파일:개준석20240206.jpg
합당발표 당일 저녁 라이브방송
하지만 갑작스런 합당 소식에 라이브 시작 전부터 채팅창 반응이 심상치 않았는데, 눈치 없이 콧노래나 부르거나 합의안에 구체적으로 어떤 조항이 있는지, 협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보안 유지를 명목으로 함구하였고, 이는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부은 꼴이 되어서 지지자들의 이탈을 더 가속화시켰다. 이날 합당 이후로 당원수는 급격하게 빠지기 시작하였다.

당심이 심상치 않자 류호정은 주류가 될 수 없다는 언급을 하는 등 문제되는 인사를 견제하고 있지만, 알면서 왜 합당했냐는 냉소적인 반응만 나왔다. # 거기다 배제하기로 합의한 배복주가 합당 예정인 새로운미래에 입당하고 이 점을 두고 당 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2월 19일 오전에 개혁신당 최고위원회가 열려 주요 안건을 의결했다. 그런데 최고위를 이낙연에게 장악당했다는 세간의 통념과 달리 금태섭, 조응천 최고위원이 이준석, 양향자와 뜻을 같이하면서 이준석측의 요구 조건이 전부 최고위에서 통과되었다.[5] 이로써 이번 총선은 이준석 중심으로 치르게 되었고, 이낙연계(이낙연, 김종민)는 당이 이준석 사당이 되었다고 맹비난을 하고 있으며, 최고위에서 고성이 오가더니 이낙연과 김종민이 회의장을 조기 이탈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회의 당일에 이낙연계가 결별 수순을 밟으면서 이준석-이낙연 연대는 열흘만에 깨지게 되었고, 2월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였다. # 이후 공관위원장으로 김종인을 모셔오고 여러 인사들을 영입하며 2월 말에 공관위가 출범하였다.

1.3.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파일:동탄호수공원 준석앤디리.webp
동탄호수공원에서 출마 선언하는 이준석 대표
3월 2일, 경기 화성시 을에 출마하기로 했다. #[6] 재산은 약 19억을 신고했다.

출마 선언 후 여론조사에서는 꾸준히 20~25% 정도의 지지율이 나오면서 국민의힘 한정민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2위에 랭크되어 있다. 실질적 경쟁자인 더불어민주당 공영운 후보와의 격차는 거의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격차.

4월 2일 뉴스 하이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는 "제가 감히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제가 좋아하는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4번 낙선을 경험하면서도 험지 도전이라는 걸 잃지 않았다"라면서 낙선하더라도 정치를 계속할 것이라는 뜻을 비쳤다. #

하지만 경쟁자인 공영운 후보가 본인 및 자녀의 여러 의혹이 흘러나옴에 따라 지지율 격차가 천천히 좁혀지기 시작했다. 이에 누가 당선돼야 윤석열 대통령의 술 맛이 제일 떨어지겠냐며 정권 심판 컨셉을 꾸준히 밀었고, 공영운 후보의 의혹이 계속 제기되면서 뒷심을 발휘하여 YTN이 2~3일 조사한 자료 기준 지지율을 9%p 격차까지 좁혔다. # 여론조사가 나올 때마다 격차가 조금씩 좁혀지는 형국.

막판에는 48시간 무박 유세를 선언하고 총력전에 나섰다. # 이준석이 48시간 무박을 질러버리니 다른 후보들도 졸지에 강제 48시간 무박 선거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계획한 일이 아니다 보니 미리 일정을 짜고 척척 움직이는 이준석과 달리 길거리에서 멍하니 자리만 지키고 있는 일이 많았다.[7] 천하람도 화성시 을을 포함한 이른바 반도체 벨트 지역이 개혁신당의 핵심이라며 해당 지역에서 개혁신당의 당력을 총동원할 것이라 선언했다.

정말 미친 듯이 선거 유세를 했는데, 지역구에 있는 모든 아파트 단지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순회하는 엄청난 활동량을 보여주었다. 호응이 좋아서 가는 데마다 인파를 몰고 다녔고 이는 전국 평균을 상회하는 72%의 투표율로 이어졌다.

4월 9일 롯데백화점 동탄점 맞은편에서 마지막 유세를 벌이며 선거 운동을 마무리했다. (연합뉴스 #1) (#2) 많은 군중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언론사에서도 취재를 왔으며, 이날 이준석의 부모도 지원 유세에 함께 나서 화제가 되었다. #

1.3.1. 당선

파일:대준석.jpg
3전 4기 끝에 극적인 승리를 가져온 후 행복해하는 이준석 대표[8]
4월 10일 총선 당일 출구조사에서 약 40%의 지지율이 나오며 민주당 공영운 후보와 불과 3%p 차이로 뒤지는 접전이 나왔다.[9] 이에 출구조사가 발표되자 흡족한 표정으로 지역구 선거 사무실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봤다.

개표 초반에 48%로 치고 나가다가 자연스럽게 좁혀지면서 잠깐 득표 1위를 내주긴 했으나, 곧바로 1위를 탈환하고 쭉 1위를 수성하였다. 사전투표에서는 뒤쳐진 대신 본투표에선 확실히 앞섰기 때문에 개표 양상도 조금씩 앞서가다가 사전투표 투표함이 투하될 때마다 다시 간격이 좁혀지는 추세를 보였으며, 민주당 몰표가 자주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막판 관외 투표함도 2천표 차이로 선방하며[10][11] 끝까지 1위를 수성했다.

결국 3전 4기 끝에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다. 개표율이 60%대에 접어든 새벽 1시 반쯤에 여울공원에서 승리 선언을 했으며, 2시쯤에 공영운 후보가 승복 메시지를 띄우며 승리를 거두었다.

선거 초반 여론조사는 공영운 후보는 물론 국민의힘 한정민 후보에도 뒤지는 3위로 조사되었고 출구조사 결과에서도 뒤지는 것으로 나왔으나, 막판 여론조사에서 2위를 확실히 하고 1위 공영운 후보와의 차이도 줄이더니 결국 정당 인지도가 아닌 개인기로 민주당 텃밭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22대 총선에서 양당 소속이 아닌 당선자는 총 3명인데, 이 중 양당이 후보를 공천하고도 당선된 사례는 이준석이 유일하다.[12]
또한 과거 몇 년 동안이나 줄곧 윤석열과 대립하면서 거세게 충돌해온 이준석이기에 보수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보수 진영을 강타한 윤석열 정권 심판론도 죄다 피해버렸다. 민주당의 공영운을 뽑으면 그냥 수많은 야당 의원 중 하나를 뽑게 되겠지만 이준석을 뽑으면 윤석열을 강하게 공격하는 선거 결과가 이어지게 되는 셈. 이준석 또한 이러한 사실을 유세에서 적극 강조하며 어필하였고 성공하였다.

개혁신당이 초반 상승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원외 정당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준석의 지역구 당선으로 원내 진입에 성공하였고, 최측근 중 하나인 천하람 또한 국회 입성에 성공하면서 이준석 역시 차후 정치적 미래와 입지를 다루기 훨씬 수월해졌다.[13] 천하람이 다음날 오전 10시가 넘어서 당선 오피셜이 뜰 정도로 정말 간신히 커트라인을 넘었는데, 화성 을에서 전국 평균의 7배인 20%의 비례표를 가져온 것이 매우 컸다.

이준석의 대표적 리스크이자 조롱거리였던 일명 ‘마삼중’ 리스크, 즉 국회의원 활동 경력이 전혀 없었다는 약점이 완전히 해소된 선거가 됐다. 더욱이 거대 양당이 아닌 제3당에서 단일화 없이 1, 2당을 누르고 이긴 것이라 이준석의 체급은 한층 더 높아졌다는 관측이 존재한다.

1.4.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인

당선 후 이준석 대표와 비례대표 천하람 당선인의 각종 발언을 보면 정부와 강하게 대립할 것이 확실시된다.

당선 후 의정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회 입성 후 첫 법안으로 수학 교육 국가 책임제 도입 추진 입장을 밝히며 교육 관련 법안 발의를 예고했다. 이와 더불어 지역구인 동탄신도시를 교육 특화 지구로 지정하고, 경기 남부권 과학고등학교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4월 19일,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선에 도움을 준 세 사람으로 구혁모, 이기인과 함께한 실무자 1명을 꼽았다.[14] 또한 80년대생 의원들끼리 모임을 가져서 향후 정치 개혁 아젠다를 발굴하고 싶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아울러 국민의힘의 지지층이 65세 이상 무직 노년층에 한정되어 50대의 지지를 받던 박근혜 정부 시기와 차이가 있다고 평했다.[15] 총리 인선과 관련하여서는 첫 번째 총리 지명자는 더불어민주당이 임명 동의안을 부결시킬 것이라며 지금 총리하겠다고 먼저 나서는 사람이 하수라고 평했다. (인터뷰)

같은 날,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김종민 새로운미래 의원 등 5개 야당, 해병대 예비역 연대와 연합하여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논란에 대한 특검법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16] 다만, 조국 대표와의 연합과 관련해서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안에 공동 행동일뿐이라며 조국혁신당과의 연합에는 선을 그었다.

이후 TV조선 강적들에 출연하여 김도읍을 차기 당대표, 차기 원내대표감이라고 긍정적으로 평하였다. 이에 패널들이 '그러면 김 의원님 못 나오시는 거 아니냐'며 반응했고, 김도읍은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4월 29일, 경상북도청을 방문하였다. 경상북도지사 이철우와 회동하였는데, "TK 출신 지도자를 육성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고 혁신에 실패하면 TK는 고립된다"고 언급했다. 또 이철우와 만날 때마다 힐링이 된다고도 발언하였다. #

5월 15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개혁신당 천하람, 이주영 당선인과 함께 경남 김해에서 공수한 국화 1천송이로[17] 약 7시간 30분 동안 모든 묘지(995기)에 헌화·참배를 하며 묘비를 닦았다. #

5월 19일, 개혁신당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허은아에게 당기를 넘겨주며 약 4개월 간의 당대표직 임기를 마치고 당대표에서 퇴임하였다.

1.5. 제22대 국회의원

5월 30일부터 제22대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하였다. 본인의 1호 공약으로 선거법 개정 법안을 발표하였는데,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중대선거제로의 전환을 주장하였다. #
파일:화성시갑을병정.jpg
화성시 국회의원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준석 의원
6월 5일 22대 국회 첫 본회의를 개최하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러 야권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며 본회의에 참석하여 우원식 국회의장 선출 관련 투표를 진행하였다. 조국, 이재명 및 여러 야권 정치인들과 이야기를 나눴으나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본회의장에 불참하고 피켓 시위를 이어갔기에 만나지 못하였다.

6월 7일, 김정숙 특활비 사용 논란이 불거지자 김정숙 특검을 추진하려는 여당을 비판하며 김정숙 여사와 같이 대통령실, 관저공사, 수의계약까지 모조리 싹 다 까자고 제시하였다. # 또한 이 의원은 해당 사안에 대하여 굳이 김정숙 여사를 파보고 싶다면 그냥 경찰이 조사해도 될 일을 왜 특검까지 해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며, 역풍의 빌미가 제공할 뿐이라고 일축하였다. 똑같은 논리로 조국혁신당이 발의안 한동훈 특검 역시 특검까지 갈 사안은 아니며, 오히려 연좌제의 느낌이 난다고 비판하였다. 이에 조국은 공정과 상식을 제대로 집행하기 위해 한동훈 특검을 발의했다고 맞받아쳤다.

6월 10일, 상임위원회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부상임위원회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배정되었다. 본래 본인이 1지망으로 희망한 상임위는 국토교통위원회 교육위원회, 부상임위는 여가위였으나 원하는 1지망으로 가게된 천하람[18] 이주영[19]과 달리 1지망에는 배정되지 못하였다.[20]

6월 11일 과방위 회의에 출석하여 서로 다른 분야 출신이지만 협력하여 일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이공계 대학생 유출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말하였다. 더 나아가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자유 침해 문제를 꼬집으며 이를 다루어야 한다고 말하며 의사 결정을 방해하는 여당 의원들에게 최민희 위원장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을 주문하면서도 귀를 기울일 것을 조언하였다. 또한 상임위를 보이콧 중인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조속히 복귀할 것을 촉구하였다.

6월 13일 지하철에서 옆자리 승객에게 기댄 채 잠든 목격담이 화제가 되었다. # 국민의힘 대표 시절부터 대중교통을 타 출퇴근하던 모습을 보여줬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21], 옆사람 승객에게 기댄 상태로 자는것은 민폐라는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1] "다른 세력과의 사이에 지금 뭐 ′한강′ 정도의 차이가 놓여 있다고 한다면 한국의희망과의 사이에는 ′청계천′ 정도가 놓여 있다..." ( 한자리 모인 '신당' 4인방‥이준석-양향자는 연대 시사) [2] 비록 김용남이 최근 들어 국민의힘을 강하게 비판하고는 있지만 개혁신당 입당까지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반응이 많다. 심지어 탈당 기자회견에 천아인이 동행했고, 천하람은 천아용인이 더 업그레이드됐다는 드립까지 쳤다. [3] 군사 정권이 끝나고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야권이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으로 나뉘는 바람에 민주화 이후 첫 대선에서 군부 인사인 노태우가 어부지리로 당선되었다. [4] 당명과 상임대표직은 유지했지만, 공동 대표와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을 이낙연 대표에게 양보했으며 최고위 구성도 이준석, 양향자, 이낙연, 금태섭, 김종민, 조응천으로 기존 개혁신당 세력이 밀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5] 선거 지휘와 정책 발의 전권을 이준석이 가져가고, 당원 자격 심사회가 설립되면서 문제되는 인사를 거를 수 있게 되었다. [6] 제일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비례대표 출마는 이준석 본인이 스스로 처음부터 비례대표 출마 생각이 없었으며, 본인의 원래 지역구 노원구 병은 선거구 정리로 인해 노원구 을로 통합되면서 사라진 상황 속에서 유권자의 평균 연령이 젊은 층에 속하고 같은 당의 이원욱 의원이 내리 3선을 했던 화성시 을 선거구를 선택하였다. [7] 사실 말이 무박 유세라는 것이지, 당연히 사람들이 없는 밤 ~ 새벽에는 유세를 할 수 없다. 대신 이준석의 경우 현수막을 정비/설치하는 등의 다른 선거 운동을 했다. [8] 사진에서 이준석 대표 왼쪽에 있는 인물은 유용원 후원회장(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된 유용원과는 동명이인), 오른쪽에 있는 인물은 서철모 전 화성시장이다. 보통 지역구 의원 투표에서 당선되면 인터뷰를 본인의 선거 사무실에서 하는데, 이준석은 예외적으로 본인의 지역구 아파트가 보이는 야외에서 당선 인터뷰를 했다. [9] 공영운 후보는 막판 여론조사와 비슷하게 나왔지만 여론조사에서 안 잡히던 중도, 무당층이 이준석으로 많이 넘어오며 접전이 떴다. [10] 보통 관외 사전투표 결과는 민주당에 유리한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보수당 인사들이 선두를 달리다 관외가 열리면 막판 뒤집기로 역전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지난 2020년 노원 병 출마 때에도 근소 우위를 차지하다 막판에 개봉한 관외 투표함에서 5천 표나 차이가 나는 바람에 뒤집어진 아픈 기억이 있다. [11] 다만 이번 선거의 경우 이준석 바람이 본투표 직전에 강하게 분 영향도 있다. 실제로 사전선거 득표율은 사전선거 직전 마지막 여론조사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지만, 본투표에서 이를 모두 상쇄하였다. [12] 나머지 2명은 민주당이 공천을 취소한 세종 갑의 새로운미래 김종민 당선인, 그리고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에서 승리한 울산 북구의 진보당 윤종오 당선인이다. 이번에는 무소속 당선자도 없었다. [13] 이 외에도 이준석 본인과 가까운 청년 정치인들인 김재섭, 김용태 또한 모두 지역구에서 당선에 성공했다. [14] 해당 실무자는 비정치인으로 성이 윤씨인 것만 드러냈다. [15]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화이트칼라 임원진급 중에 박근혜 지지층이 남아있었으나, 윤석열 정부 시기에는 직장에 가면 임원진부터 말단 직원까지 죄다 윤석열을 비판하므로 상황이 다르다는 뜻. [16] 하필 바로 전날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하여 "조국 전 장관이나 아니면 또 진보당이 저희랑 연대할 일이 있겠습니까마는 워낙 지향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라는 말을 해서 # 모양새가 기묘하게 되었다. [17] 동서 화합 메시지를 위함이었다고 밝혔다. 당초에는 대구에서 공수하려 했으나 업체에 사정이 생겼다고. [18] 그동안 변호사로 지내면서 법조인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산자위 또는 기재위를 희망 상임위로 지목했다. 그리고 6월 10일 최고위에서 비교섭단체 몫의 유일한 제3지대 세력인 개혁신당을 운영위에서 배제하려 한다고 주장하면서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찾아가서 항의하자 결국 운영위 자리에 개혁신당 원내대표로써 합류할 수 있도록 자리를 쟁취해냈다. [19] 이제 막 정치에 첫 걸음을 뗀 입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보단 본인의 직능을 살린 역할에 집중하고 싶다고 밝혔다. [20] 국토위는 동탄의 교통 공약을 실현시키기에 좋고 교육위는 동탄과학고 설립에 핵심적인 위치에 올라갈 수 있으나 과방위는 상임위에서 동탄을 위한 공약을 실현시키기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최근에 논란이 되는 R&D 삭감이나 8광구 석유 발견 가능성과 같이 각종 헤드라인에 올라가는 사안에 이름을 올릴 수 있고, 본인이 과학고 출신이라 나쁜 배정까진 아니다. 게다가 야당들이 22대 국회 임기 초반부터 방송 3법 재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어 과방위가 주목을 많이 받을 예정이기도 하다. [21] 실제로도 이준석 의원실에는 수행 인력이나 전담 기사 역할을 맡은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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