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네임 |
石川 孝志 ケンドー イシカワ[1] ミツ イシカワ[2] 石川 敬士 石川 泰士 |
본명 | 石川 孝志 |
생년월일 | 1953년 2월 5일 |
출신지 | 일본 야마가타현 히가시타가와군 후지시마정 |
신장 | 180cm |
체중 | 120kg |
링네임 | 炎の旋風児[3] |
유형 | 테크니션 |
주요 커리어 |
NWA 웨스턴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 2회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 5회 BJW 태그팀 챔피언 1회 WWC 노스 아메리칸 태그팀 챔피언 1회 T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CCW 태그팀 챔피언 1회 |
피니쉬 무브 |
다이빙 길로틴 드롭 스모피온 데스락[4] 스모 래리어트 스모 태클 저먼 수플렉스 쵸크 슬램 |
테마곡 |
Edge of Insanity Hercules |
1. 개요
일본의 프로레슬러.2. 커리어
중학생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한 이시카와 타카시는 고등학생이 될 무렵에 스모를 시작했고, 고등학교 스무보에서 우승까지 하며 대학생이 돼서도 스모에 몰두하며 실적은 뛰어났다. 그러나 당뇨병을 앓은 후부터 스모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프로레슬러로 전향하며 1977년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문할려고 했지만 비슷한 스모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 있어 정식 입단을 보류하게 된다.프로레슬러로 데뷔하기 전에 미국에서 트레이닝을 받아 11월 3일에 립 호크를 상대로 첫 경기를 가진다. NWA에서 활동하며 유명한 서양레슬러들과도 경기를 갖고, 1년간의 해외 원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 IWE에서 데빌 무라사키를 상대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후 IWE에서 활약하다가 12월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본격적인 활등을 하며 락키 하타와 팀을 이뤄 닉 보크윈클 & 블랙잭 란자를 상대로 패하고, 이토 마사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싱글 및 태그팀 경기를 오가며 경기를 갖고, 1979년에 전일본 프로레슬링 소속 선수가 된다. 미국 활동과 병행하며 활동하던 중 10월에 소노다 하루와 같이 공석이 된 WWC 노스 아메리칸 태그팀 챔피언 벨트가 걸린 토너먼트에서 승리를 거둬 새로운 WWC 노스 아메리칸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며 첫 챔피언 경력을 만들고, 1980년에 NWA에서 휴고 사비노비치와 함께 NWA 웨스턴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에도 등극한다.
1981년에 사토 아키오와 같이 케빈 본 에릭 & 데이빗 본 에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 새로운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며 일본에서도 챔피언 경력을 따냈고, 이후부터 싱글보다 태그팀에서 활약하는 일이 늘며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십 전선에서 활약하며 다양한 선수들과 팀을 이뤄 챔피언십 매치에 참가하며 통산 5회까지 늘렸다.
1988년에 삼손 후유키 & 카와다 토시아키에게 패하며 챔피언 자리를 잃은 후부터는 챔피언 벨트 탈환에도 실패하며 그 후로도 태그팀 경기에 출전하고 다녔지만 챔피언십 전선에서 멀어지며 마이티 이노우에와 같이 에이겐 하루카 & 오오쿠마 모토시와의 경기에서 패한 것을 끝으로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그만두며 프로레슬러 활동을 은퇴한다.
1990년에 프로레슬러로 복귀하며 Super World Sports에서 활약해 텐류 겐이치로와 팀을 이뤄 타카기 이사오 & 야츠 요시아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Revolution 유닛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992년에 Super World Sports가 망하면서 FA가 된다.
WAR에서 뛰던 중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도 경기를 갖고, 2단체를 번갈아가며 출전하다가 1994년에 도쿄 프로레슬링을 설립하며 소속선수로도 활동하며 첫 경기에서 카와바타 히카루 & 아폴로 스가와라와 팀을 이뤄 테라니시 이사무 & 타카스기 마사히코 & 츠루미 고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1996년에는 초대 T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을 가릴 토노먼트를 개최하면서 안죠 요지와 팀을 이뤄 결승전에서 그레이트 가부키 & 벤케이 다이코쿠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챔피언에 등극한다.
인디 통일 기구 출범을 전제로하여 도쿄 프로레슬링이 운영을 중단하는 일이 생기자 이시카와 타카시는 신단체로의 이적을 거부해 신도쿄 프로레슬링을 포함한 WAR에서 활동한다. 그러다가 I.W.A.JAPAN과의 항쟁시에 단체명을 신도쿄 프로레슬링 이시카와 일가로 개칭하며 단체를 운영하게 된다.
대일본 프로레슬링에도 등장하게 되면서 카와바타 키신과 팀을 이뤄 타니구치 유이치 & 켄도 나가사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대부분 대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며 기무라 켄고와 같이 자도&게도, 켄도 나가사키 & 시가 사토루, 나카마키 쇼지 & 오카노 타카시, 타니구치 유이치 & 타지리를 상대로 페이탈 5 웨이 매치에서 승리를 거둬 새로운 BJW 태그팀 챔피언에 오른다. 야마카와 세이지 & 타지리에게 패해 태그팀 챔피언 자리를 잃고, 도쿄 프로레슬링에서 카와바타 키신과 같이 배드뉴스 알렌 & 켄 존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 CCW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한다.
대일본 프로레슬링과 도쿄 프로레슬링을 오가며 경기를 갖다가 자신이 운영하는 도쿄 프로레슬링이 서서히 관객 동원의 부진에 의해 규모가 축소되면서 오쿠무라 시게오와의 경기에서 패한 것을 끝으로 단체를 완전히 문닫는 것과 동시에 프로레슬러로써의 활동을 은퇴한다.
11월에 대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때때로 경기를 갖다가 1999년 1월에 타카기 이사오와 팀을 이뤄 카와바타 키신 & GK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끝으로 더이상 프로레슬러로 활동하지 않게된다.
3. 기타
- 팻 오코너의 제자이며, 자이언트 바바 밑에서도 트레이닝을 받았다.
- 도쿄도 세타가야에서 스포츠 용품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 프로레슬러 활동을 그만둔 후부터 빌딩의 경비 및 청소를 업무로 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4. 둘러보기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노력상 | ||||
록키 하타 츠루미 고로 초슈 리키 (1977) |
→ |
소노다 카즈하루 스네이크 아사미 이시카와 타카시 코바야시 쿠니아키 (1978) |
→ |
오니타 아츠시 아라카와 마코토 타카스기 마사히코 (1979) |
죠지 타카노 마하 하야토 프린스 통가 (1980) |
→ |
이시카와 타카시 애니멀 하마구치 마에다 아키라 (1981) |
→ |
후지와라 요시아키 코시나카 시로 (19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