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2-09 21:13:10

이북5도 무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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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목록
2.1. 황해도
2.1.1. 1호 만구대탁굿2.1.2. 2호 서도소리‘산염불·난봉가’2.1.3. 3호 서도선소리산타령‘놀량사거리’2.1.4. 4호 화관무2.1.5. 5호 최영장군 당굿
2.2. 평안남도
2.2.1. 1호 평양검무2.2.2. 2호 평안도 향두계놀이
2.3. 평안북도
2.3.1. 1호 청자, 백자,결자 도공의 기술2.3.2. 2호 영변성황대제2.3.3. 3호 평안도 다리굿
2.4. 함경남도
2.4.1. 1호 돈돌날이
2.5. 함경북도
2.5.1. 1호 애원성2.5.2. 2호 두만강뗏목놀이소리

1. 개요

이북5도청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미수복지역 무형문화재들을 뜻한다.

2. 목록

2.1. 황해도

2.1.1. 1호 만구대탁굿

문화재청 홈페이지 : 만구대탁굿
만구대택굿은 옹진, 해주, 연백, 재령, 안악 등을 중심으로 황해도 전 지역에서 널리 행해져 온 큰 굿이다. 이 굿은 만물이 생성하는 봄이나 햇곡식을 거두는 가을에 신령님을 대접하기 위해 치러지는 무속적 의례로서, 신령의 영험력을 얻어 만 인간들의 구설수를 막고 크게는 국가의 안전과 발전을 도모하게 된다. 만구대택굿은 종교 신앙 목적의 감사제 형태로 발전된 것이며, 역사적 유래는 적어도 고대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사회에서 하느님께 감사의 뜻으로 베풀어졌던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 예(濊)의 무천, 진한의 소도 등의 제천의식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가 있다. 이러한 무속 의례들은 주로 파종이 끝난 5월이나 추수를 끝낸 시월 상달을 맞이하여 행해져 왔으며, 음주가무를 동반하여 신들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영적인 존재의 힘을 얻어 백성들의 무사태평과 국태민안을 추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2.1.2. 2호 서도소리‘산염불·난봉가’

문화재청 홈페이지 : 서도소리‘산염불·난봉가’
「산염불가」는 황해도지역 대표적 민요로서 무녀들이 굿을 할 때 불렀던 토속무가이며,「난봉가」는 홍경래의 난 이후 관서지방민에 대한 차별정치로 인한 통탄과 울분을 지역민들의 한의 소리로 승화된 향토민요이다.

특히 황해도에서는 “부처님이 노여워하시니 산염불을 모르면 절간에 가지마라”, “문 앞에 선 낭군님 난봉가를 알고 있나 물어라” 등의 말이 세간에 퍼져 있을 정도로 「산염불가」및「난봉가」는 대표적인 향토민요로서 황해도지방의 언어, 생활, 풍속 등 전통적 지역정서가 배어 있다.

2.1.3. 3호 서도선소리산타령‘놀량사거리’

문화재청 홈페이지 : 서도선소리산타령 ‘놀량사거리’
선소리산타량은『선소리』,『산타령』,『놀량』등 여러가지 이름 으로 불려 왔으며 서울‧경기를 중심으로 전승된 경기선소리산타령과 황해도를 중심으로 발달된 서도선소리산타령으로 나뉘며, 17C 무렵에 원형이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황해도지역의 대표적인 향토문화이다.

특히, 놀량은 노래와 발림 춤으로 구성된 판에서 연행되는 마당소리 한바탕으로 고도의 음악성과 대중예술성을 지녔으며, 두 옥타브의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고, 소리가 박진감이 넘치고 씩씩한 멋을 풍기며 흥을 돋구는 남성적인 음악이다.

2.1.4. 4호 화관무

문화재청 홈페이지 : 화관무
꽃은 오래전부터 종교의식에서 널리 쓰여왔으며, 불교의 연꽃이나 도교에서 꽃은 생명의 창조와 재생의 의미로 여기졌으며, 무속의례에서도 만신이 화관을 쓰고 신의 위엄을 나타낸다.

화관무에서 쓰는 화관(花冠)은 꽃으로 장식된 모자로 이와같은 모자는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궁중에서 사용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귀족과 양반계급의 부녀자들이 예복과 함께 꽃관을 썼다.

그 후 조선 영·정조때에 지나친 사치를 막기위해 화관이나 족두리를 쓰게 하였으나, 그 장식은 갖은 보석을 장식하여 매우 화려하였다고 전해지며, 오늘날의 화관무는 전문적인 무용가에 의해 행위예술로 승화되어졌다.

황해도(민천식류) 화관무는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動中)靜) 속에서 이루어지는 억제와 절제의 규제 속에서 기교와 재간을 극대화하고 가벼움과 무거움, 섬세함과 우람함 그리고 정교함과 장중함을 표출하며, 도드리와 삼현장단(허튼 타령장단)으로 연주되는 서도 시나위곡에 의해서 추어지고 있으며, 해서 지방의 독특한 한삼뿌림 등의 춤사위를 구사함으로써 해서 지방의 춤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2.1.5. 5호 최영장군 당굿

문화재청 홈페이지 : 최영장군 당굿
최영장군 당굿은 강림신앙의 한 형태로써 고려 충신 최영장군(1316~1388) 및 여타 신들을 강림시켜 최영장군을 초모함은 물론 여타의 신령들을 대접하기 위한 무속의례이다.

최영장군이 무교의 신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조선 세종때인 것으로 추정되며, 최영장군을 모시고 나라의 태평과 국태민안을 축원함은 물론 무당들이 장군으로부터 영험력을 얻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영장군처럼 무속신앙에서 모셔시는 영웅신은 대부분 국가적 차원에서 깊은 애국심을 갖고 활동하다가 죽음과 함께 민중들로부터 영웅시되어진 경우가 많으며, 특히 황해도 굿으로 치러지는 최영장군 당굿은 굿이 ‘드는 날’, ‘묵는 날’, ‘나는 날’ 등 총 삼일굿으로 굿이 드는 날부터 묵는 날 오전까지는 소(素)굿이며, 묵는 날 오후부터 나는 날까지는 육(肉)굿으로 치러지며, 총 24거리로 구성된다.

또한, 최영장군 당굿에서 추어지는 굿춤은 기교보다도 기능과 내용에 충실하며 선 또한 굵고 정확하며, 황해도 굿춤 음악인 거상장단, 벅구장단, 사면장단, 막장단 등에 맞춰추는 강신무적인 독특한 춤이라 할 수 있다.

2.2. 평안남도

2.2.1. 1호 평양검무

문화재청 홈페이지 : 평양검무
조선시대 각 지역의 관아와 민간 향연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던 무용이 “검무”라는 속칭 “칼춤”이고, 그 기원은 신라 관창량에 두고 있는 만큼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각 지방에 문화와 풍토에 따라 발전되어 왔던 까닭에 각 지역에 전승되는 검무는 서로 성격을 달리하여 전승되었는데 일제강점기 이후에 문화 변동으로 대부분의 검무는 전승이 끊어졌고, 지금은 경남 진주검무, 경남 통영검무, 전남 광주검무, 황해도 해주검무, 평안도 평양검무가 전승되고 있다. 이 가운데 진주검무와 통영검무는 국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지금 이북에서는 전통적인 검무를 공연하지 않기 때문에 평양검무도 전승이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

2.2.2. 2호 평안도 향두계놀이

문화재청 홈페이지 : 평안도 향두계놀이
예부터 우리 민족이 더불어 살기 위한 다양한 풍습 중 하나가 두레(계)인데 지방마다 조금씩 다른 이름이나 다른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 ‘항두계’는 평안도, 함경도 일대에 있어온 농사를 위한 공동생활조직이다. ‘향두’라는 말의 어원은 ‘향도’(鄕徒)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평안도 항두계놀이’는 농사일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사연들을 노래로 표현하는 연희극이다. ‘평안도 향두계 놀이’는 오랜 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심수(口傳心授)되어 내려온 민족전통의 연희이다.

연회 중에 향두꾼들이 부르는 호미소리는 향두꾼들의 봉건의식도 반영되어 있으나 농민들의 염원, 상층계층에 대한 풍자도 담겨져 있어 과거 봉건사회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평안도 항두계놀이’는 전통 춤과 긴아리, 자진아리, 호미타령 등 토속민요 그리고 수심가 엮음수심가 등 평안도의 대표적인 통속민요를 곁들여 연희한다.

2.3. 평안북도

2.3.1. 1호 청자, 백자,결자 도공의 기술

2.3.2. 2호 영변성황대제

문화재청 홈페이지 : 영변성황대제
평안북도「영변성황대제」는 지역성을 가지고 전승되어 온 마을 굿으로 1980년 한국민속종합조사에서도 확인된 평안북도의 고유한 민속의례이다.

「영변성황대제」의 재단은 북당과 남당이 있어 북부동, 남부동의 수호신으로 숭앙되었는데 북당에는 시장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장터계를 조직하여 경비를 부담하고 일부는 읍민으로 부터의 기부로 충당할 수 있어 남당보다 북당의 세가 우세하였다.1972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세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2.3.3. 3호 평안도 다리굿

문화재청 홈페이지 : 평안도 다리굿
「평안도 다리굿」은 오래 전부터 평안도 지방에서 전승되고 있는 사령(死靈) 굿으로 돌아가신 망자(亡者)의 한을 강신무(降神巫)를 통해 풀고 이승의 미련을 떨쳐버리고 저승에 편안히 안주하기를 비는 굿이다. 이와 같은 굿의 형태는 지방에 따라 오구 굿(경상도), 망뭇이 굿(함경도), 씻김 굿(전라도)등으로 비슷하게 치러지고 있지만「평안도 다리굿」은 굿의 규모가 크고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2.4. 함경남도

2.4.1. 1호 돈돌날이

문화재청 홈페이지 : 돈돌날이
함경남도 북청의「돈돌날이」는 명절(설, 한식, 단오, 추석등)에 마을마다 신명나게 놀아온 민속놀이로, 어원은 '동틀 날'이며, '회전'을 의미하며 '제자리로 되돌아온다.'는 뜻이며, 圓(원)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돈돌날이」는 북청군을 비롯하여 함경남도 함흥, 함주, 정평, 이원, 풍산, 단천, 삼수, 갑산, 함경북도 길주, 명천, 성진 등에서 널리 불리어진 민요이다.

특히 북청군에「돈돌날이」놀이는 한식 이튿날을 중심으로 속후면 모래산에서 부녀자들이 달래를 캐는 풍습이 오랜 기간 동안 전래되었다. 부녀자들은 달래를 캐고 나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심신을 달래는 대동놀이를 하였는데 이것이「돈돌날이」놀이의 기원이다.

그러다 점차 지역과 절기를 넓히면서 북청군의 젖줄인 남대천에서 단오에 부녀자들이 커다란 함지에 물을 가득 담아 바가지를 띄워 놓고 장단을 치고 함경도 민요를 부르며 흥겨운 마당을 만들어 유희를 즐기었다. 나중에는 부락별 시합을 벌이곤 하였는데 점차 남정네들이 참여를 하면서 놀이의 규모가 커지고 퉁소를 비롯한 각종 악기가 더하여져 한식을 비롯한 단오를 비롯한 각종 절기에 연희되었다.

2.5. 함경북도

2.5.1. 1호 애원성

문화재청 홈페이지 : 애원성
조선시대 6진 정책으로 새 땅을 일구어내는 시기에 원주민과 각처에서 온 이주민들의 생활사를 담은 함경도의 대표적 민요이다.

혼자서 산길을 걸을 때에나 혼자 김을 맬 때에 흥얼거리며 부른다고 한다. 임과의 이별의 슬픔, 고단한 살림살이, 유랑민의 애환 들과 같이 주로 변방 사람들이 겪는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어서 제목 그대로 애원이 깃든 노래이다.

높은 음으로 질러 내는 부분이 많아 마치 슬픔이나 시름을 한껏 토해 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음의 조직이 독특해서 〈신고산타령〉이나 〈궁초 댕기〉와 같은 '라', '도', '레', '미', '솔'이 아니고, 경기 민요 음계의 제1형과 같은 '솔', '라', '도', '레', '미'이고 종지음도 '솔'이다.

2.5.2. 2호 두만강뗏목놀이소리

문화재청 홈페이지 : 두만강뗏목놀이소리
「두만강 뗏목놀이 소리」는 두만강일대에서 벌목 및 뗏목 제작, 목재운반 등 노동을 하면서 불려진 노래이다.

함경도의 개마고원[1]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낙엽송 삼림이 있으며, 이 원목을 채벌하여 ‘소발귀’라는 썰매로 백두산 동남부의 해발 1500미터 이상되는 무산고원 하구인 삼장까지 운반한 후, 뗏목으로 묶어서 두만강에 띄워 운반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각 작업과정별로 불렀던 수많은 노래들이 구전되어「두만강 뗏목놀이 소리」로 불려지게 되었다.

[1] 원문의 '개마공원'은 오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