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승려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각관 | 각예 | 각운 | 경한 | 광지 |
교웅 | 균여 | 균정 | 김윤후 | 나옹 | |
덕겸 | 덕소 | 도휴 | 몽여 | 묘청 | |
무학대사 | 보우 | 복구 | 소현 | 신돈 | |
연온 | 요세 | 월송 | 의장 | 의천 | |
일연 | 일인 | 정현 | 종린 | 종참 | |
지겸 | 지눌 | 지인 | 징엄 | 천영 | |
천인 | 총서 | 충감 | 충지 | 충희 | |
탁연 | 탄연 | 학일 | 해린 | 허월 | |
현응 | 혜심 | 혼원 | 희랑 | }}}}}}}}} |
1. 개요
고려시대 승려이다.2. 생애
월송(月松)은 1375년 통도사 주지로 있었으며 원통무애변지대사(圓通無礙辯智大師)로 불렸다. 1377년 왜적이 통도사의 사리를 가져가려 하자 사리를 들고 도망갔으며, 1379년에 왜적이 왔을 때도 사리를 들고 도망쳤다.사리를 들고 달아났으나 왜적이 빨리 달아가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이득분의 집으로 갔다. 이득분은 중앙 조정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왕은 송림사에 사리를 두게 했다. 이때 통도사 사리 수십과가 사라졌다고 한다.[1]
[1]
이 내용은 동문선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