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06 12:22:38

원가북벌

원가북벌
元嘉北伐
<colbgcolor=#3f51ba><colcolor=#fff> 시기 1차: 430년 ~ 431년
2차: 450년 ~ 451년
3차: 452년
교전국 <rowcolor=black> 북위
(수세)
유송
(공세)
주요 인물
지휘관

태무제 (북위 황제)
지휘관

문제 (유송 황제)
참가자

1차:
참가자

1차: 도언지
단도제
병력 북위군: -명 유송군: -명
피해
결과 북위의 승리
영향 유의륭의 죽음으로 북벌 종식

1. 개요2. 배경
2.1. 남조의 정세2.2. 북조의 정세
3. 제1차 북벌4. 제2차 북벌5. 제3차 북벌6.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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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가북벌(元嘉北伐)은 남북조시대 유송 전기에 벌어진 유송의 북벌로 유송의 제3대 황제였던 문제 유의륭이 주도했다. 원가(元嘉)는 유의륭의 재위기에 사용한 연호로 424년부터 453년까지 사용되었다.

2. 배경

2.1. 남조의 정세

유송의 초대 황제인 무제 유유는 제위에 오르기 전인 409년에 남연, 416년에 후진을 각각 정벌하였다. 417년 후진을 정벌하고 다음 계획을 추진하던 도중 건강에서 정무를 처리하던 유목지가 죽자 유유는 급하게 건강으로 돌아가면서 아들인 유의진을 장안에 남기고 심전자 왕진악에게 유의진을 보좌하라고 명했다. 하지만 심전자와 왕진악의 갈등, 그리고 유유가 떠난 틈을 노린 북하의 침공으로 인해 관중을 다시 상실하였다.

유유는 북벌의 실패로 위상이 흔들리자 창명 이후 2명의 황제가 있다는 참언을 날조하여 418년 안제 사마덕종을 중서시랑 왕소지를 시켜 교살하고 사마덕문을 세웠다. 그리고 420년 유유는 선양의 절차를 받아 제위에 올랐고 421년 병사들을 시켜서 사마덕문을 죽였다.

422년, 즉위 2년 만에 유유가 죽고 그의 태자인 소제 유의부가 즉위하였다. 423년, 유유가 죽은 틈을 노려 북위가 침공했고 이때 호뢰성이 함락당하면서 유송은 사주 일대를 상실하게 되었다. 424년, 고명대신인 서선지, 부량, 사회 등이 정변을 일으켜 유의부와 유의진을 죽이고 의도왕(宜都王) 유의륭을 맞이하니 이가 제3대 황제인 문제였다. 문제는 직접 정사를 다스리면서 426년 서선지, 부량, 사회를 숙청했고 국력을 키우면서 하북을 수복하려는 준비에 들어갔다.

2.2. 북조의 정세

420년 유송이 들어설 당시 북조의 정세를 살펴보면 북위를 포함해 북량, 서량, 서진, 북연, 북하가 있었고 북위의 북쪽에는 유연이 있었다. 421년 북량의 침공으로 서량이 멸망했고, 423년 북위에서는 유유가 죽은 틈을 노려 유송의 호뢰를 침공했고 모덕조를 사로잡으면서 사주 일대를 차지했다. 이후 제2대 황제인 명원제 탁발사가 죽고 그의 태자인 태무제 탁발도가 즉위하였다.

429년, 탁발도는 유연 정벌을 준비하던 도중 문제 유의륭이 하남을 노린다는 소문이 돌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북과 자라 같은 하찮은 이들이 자신을 지킬 겨를도 없는데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설사 침공해오더라도 만약 연연을 먼저 멸하지 않으면 앉아서 도적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식이니 앞뒤로 적의 공격을 받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우리의 출정은 결정되었다.
이후 태무제는 유연을 정벌하여 물리쳤고 유연의 모한흘승개가한 욱구려대단은 병에 걸려서 죽었다. 욱구려대단의 죽음으로 북위는 유연의 침공을 받을 위협이 줄어든 동시에 유송의 침공을 막을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3. 제1차 북벌

4. 제2차 북벌

5. 제3차 북벌

6. 이후

이듬해인 453년, 문제 태자 유소가 일으킨 쿠데타로 목숨을 잃으면서 북벌은 종식되었다. 태무제와 문제의 죽음으로 남북조의 대치 국면이 계속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