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4 14:58:58

울티마 III: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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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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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줄거리3. 특징4. 기타5. 클리어 인증서

1. 개요

울티마 시리즈의 3번째 작품. 이 작품부터 오리진 시스템즈의 이름으로 게임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2. 줄거리

몬데인과 미낵스 사이에서 만들어진 창조물인 엑소더스가 적이다. 악의 3인방과의 싸움은 엑소더스를 봉인하면서 비로소 끝이 난다(죽지는 않는다). 엑소더스와는 전투 자체가 없다. 게임 마지막에 플레이어 파티는 엑소더스의 성에 침입해 몬스터들을 격파한 뒤 게임 중 모아 두었던 중요 아이템인 네 장의 카드를 삽입하여 엑소더스를 무력화시킨다. 이 엔딩은 1996년 게임잡지 CGW에서 뽑은 최악의 엔딩 중 15위로 선정된 바 있는데, 게임 도중에는 엄청난 전투를 치르지만 마지막 보스인 엑소더스는 너무 쉽게 처리되어 김이 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후 엑소더스의 이야기는 확장팩 - 울티마 VII: 미덕의 대장간에서 마무리된다.

3. 특징

이 작품까지도 D&D풍의 종족 개념이 남아 있어, 종족과 직업 선택을 거쳐 캐릭터를 작성하게 된다. 총 4인의 캐릭터로 파티를 만들어 플레이하게 된다.

필드에서 몬스터와 조우하면 전투 맵으로 변경되는 시스템이 시리즈 최초로 등장했는데, 후속작과 같이 전투 맵 외곽 부분으로 이동하여 도망치는 선택지 따윈 없다. 즉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너 죽고 나 살기의 데스매치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 때문에 게임의 난이도는 매우 높다.

이 작품을 끝으로 암흑기(Age of Darkness)가 종료된다.

울티마 시리즈 중 최초이자 유일하게 파티와 캐릭터를 완전히 분리한 작품이다. 플레이어는 4인의 캐릭터로 구성된 파티를 만들어 탐험을 떠나게 되는데, 도중에 파티 편성이 마음에 안 들면 메인 메뉴에서 파티를 해산하고 플레이어 중 일부나 전부를 다른 캐릭터로 바꿀 수 있다. 무기, 방어구, 횃불, 지도 보석, 돈 등등은 전부 캐릭터들이 개인 재산으로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파티를 해산해도 없어지는 아이템은 전혀 없다. 그러면 그때까지 진행한 스토리나 퀘스트는 어떻게 되나 싶을텐데, 울티마 1~3은 퀘스트나 스토리 진행이란 것이 없으며 오로지 키 아이템을 찾고 레벨을 올리기만 하면 최종보스와 대결할 수 있는 방식이다. 울티마 3의 경우 키 아이템은 엑소더스 처치용 아이템인 카드 4개, 그리고 엑소더스의 성에서 유효한 유일한 무기인 엑조틱 뿐이다. 고레벨 캐릭터들이 이것들을 갖고 있기만 하다면 곧바로 엑소더스 성에 쳐들어가 엔딩을 볼 수 있다.

반면 울티마 1, 2는 파티가 없으며(주인공 혼자 모험) 4편부터는 아바타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나머지 파티원을 전부 빼내도 아바타는 반드시 파티에 남아있으며 파티를 완전히 해산할 수는 없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월드맵에서 적과 만나 전투하면 드랍되는 보물상자가 월드맵에 그대로 남는다는 점. 이는 상자를 열지 않는 한 계속 남아있다. 이를 이용해 월드맵을 완전히 보물상자로 포장해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적들은 보물상자를 장애물로 간주하기 때문에(적이 보물상자 위에 있을 때 싸워서 해치우면 상자가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프로그래밍했다), 보물상자로 만든 벽을 건너오지 못한다. 즉 월드맵에 플레이어는 건널 수 있지만 적은 건널 수 없는 벽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4. 기타

커버에 웬 악마 같은 놈이 떡하니 있는 데다가 게임의 자유도로 선량한 시민을 죽이는 것도 가능해서 기독교인들이 악마의 게임이라고 비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냥 재밌으라고 만든 게임에 죽자고 덤벼드는 꼴을 보고 질린 리처드 개리엇은 아예 그런 해석이 있을 소지를 없애기 위해 철학적인 메세지를 담은 울티마 4를 만들게 된다... 라는 얘기가 있다.

다만 고려해야 할 점이, 실제로 게임을 해 보면 플레이의 방향이 '선량한 시민을 죽이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의 게임이라면 마을 밖으로 나가서 몬스터를 처치하여 경험치와 돈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은 고전 게임답게 전투의 난이도가 만만치 않은데다가, 마을 밖에서는 식량 소모 속도가 마을보다 몇 배는 빠르다. 반면 마을에서는 식량 소모 속도가 굉장히 느린 데다가 마을 주민은 죽이기도 쉽고 돈도 꽤 준다. 물론 성난 경비병들의 어그로를 먹게 되고 잡히면 맞아죽지만... 당시의 기술 한계 때문에 마을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어그로가 리셋된다! 게다가 죽었던 NPC들도 전원 부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으면서 플레이어를 맞이한다. 그럼 결론은? '경비가 없는 곳에서 NPC를 때려 잡아서 렙업 - 마을 밖으로 나갔다 와서 어그로 초기화 및 NPC 부활 - 다시 때려 잡기'의 무한 반복으로 간단하게 초반을 넘길 수 있다. 거기다 O키나 Y키를 눌러서 특수 커맨드 Bribe(뇌물 주기!)를 입력하면, 경비병을 매수해 마을 금고에 들어가 재물을 터는 것도 가능했다. 때문에 당시에도 울티마 3는 게임 좀 안다는 이들 사이에서는 마을 사람 때려 죽이는 게임으로 통했다(...). 이런 평이라면 종교계 뿐 아니라 일반 학부모들도 비난에 한몫하지 않았을까?


유명한 꼼수였던 로드 브리티시 죽이기. 은근히 통쾌하다. 네가 감히 한국돈을 먹고 튀어?!

80년대 일본 팔콤의 PC 게임 드래곤 슬레이어 2 제나두가 이 작품의 매뉴얼 일러스트를 무단 도용하여 써먹은 적이 있았다. 마침 제나두의 북미판 이식과 울티마 4의 일본 PC판 유통에 대해 오리진과 팔콤이 미팅을 하던 중 딱 걸렸다고 한다. 리처드 개리엇이 몹시 화가 나서 팔콤을 고소했다고...

패미컴 MSX울티마: 공포의 엑소더스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된 적이 있다. # 그런데 제목이나 내용은 울티마이지만 게임 시스템은 완전 드래곤 퀘스트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성우 히다카 노리코가 이미지송인 '하트 모양 자석'을 담당했고 게임에서도 같은 이름의 아이템이 등장했다.

히다카 노리코는 첫 번째 마을에서 NPC로 나오기도 하는데, 이 게임은 패미컴 판에서도 NPC를 죽이는 것이 가능하고 히다카 노리코 역시 예외는 없다. 그래서 일본판에서도 히다카 노리코 때려 죽이는 게임으로 통했다(...).

그래도 인기 자체는 꽤 많았던 모양인지 추억의 게임으로 꼽는 사람도 많고 코믹스나 게임북 등의 매체도 등장했었다.

5. 클리어 인증서

울티마 3부터 '클리어 인증서' 라는 제도가 생겼다. 게임 클리어 후 나오는 '이 업적을 오리진 시스템즈의 로드 브리티쉬에게 보고하십시오!' 라는 화면의 사진을 찍어 오리진 본사로 보내면, 로드 브리티쉬의 서명이 있는 클리어 인증서를 받을 수 있었던 것. 당시 카메라는 물론 전부 필름 카메라였고, CRT를 필름 카메라로 찍는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던지라[1] 보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모양. 그래서 종이로 된 인증서들은 현재 와서는 엄청 희귀한 아이템이 되었다. 한편으론 RP를 중시했던 리처드 개리엇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사례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현대에 와선 리처드 개리엇의 X로 클리어 인증 스크린샷을 트윗하면 개리엇이 온라인상으로 인증서를 써 준다.

파일:U3cert.jpg
공포스러운 엑소더스를 쓰러뜨린 자, ___ 를 찬양하라!
나, 로드 브리티쉬는 그대와 그대를 따르는 모험가들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그대의 용기와 인내심이 악의 손아귀에 옥죄어진 소사리아와 이 땅의 사람들을 해방시켰도다.
앞으로도 그대의 모든 노력이 결실을 맺길 바라노라.

로드 브리티쉬



[1] CRT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카메라로 CRT를 촬영할 경우 화면이 너무 밝거나 혹은 어둡게 나오거나, 조명을 맞춰도 주사선이 보여서 뭘 찍었는지 알 수 없게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당시 카메라는 전부 필름 카메라이므로 현상하기 전까진 내가 제대로 찍었는지 아닌지 알 수도 없어서 촬영 자체가 복불복 수준이었고, 애초에 카메라 자체도 고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