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19:10:49

용유수

<colbgcolor=#29176e><colcolor=#ffde09> 용유수
Yong Yu-su
파일:용유수 감독.jpg ]
오른쪽 맨위에 있는 사진이 용유수 감독의 사진이다.
출생 1931년 ([age(1931-01-01)]세)
일제강점기 조선 황해남도 신천군
국적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제강점기 조선(1931~1945)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미군정)(1945~1948)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1948~)
학력 해주예술학교
직업 애니메이션 감독, 기획자, 영화 감독, 애니메이터, 제작자
활동 시기 1958년~ 1972년
소속 세기상사
가족 장남, 차남, 손주
1. 개요2. 생애3. 주요 경력4. 작품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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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감독.

2. 생애

1931년 황해도 신천군 출생했다.

해주예술학교에 입학했다가 졸업을 하고 1958년 영화사 세기상사에 입사하여 선전부장으로 일하게 된다. 그즈음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을 수입해서 큰 이윤을 본 세기상사에서 직접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로 하고, 그 첫 번째 기획을 신동우 화백 원작, 신동헌 감독의 < 홍길동>(1967)으로 정한다. 그리고 그 기획과 제작을 맡아 < 황금철인>(1968), < 손오공>(1969), < 보물섬>(1969) 등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연달아 제작하고, 1969년 <홍길동 장군>부터는 직접 연출하기에 이른다. 이후 <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1971), < 번개아텀>(1971), < 괴수대전쟁>(1972) 등을 연달아 연출하며 1960년대 1970년대 사이,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첫 번째 붐을 장식한다.

1970년대초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던 용유수 감독이 결국 1970년대 초반을 고비로 그 사업이 사양길로 들어서면서 작품의 보존이라던가 홍보 등을 신경쓸 수 없었다는 점 등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1971년에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성과임에도 너무 저평가되고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생길 만큼 난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다. 결국 1972년 41세의 나이로 은퇴을 선언한다.

3. 주요 경력

  • 한국전쟁 중 서울로 옮겨 와 명동 성당 인근 천주교 성구상에서 성구와 성모상 조각
  • 1958년 영화사 세기상사 공채 입사하여 선전 및 홍보 담당
  • 1960년대 중반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 업무
  • 1969년 <홍길동>의 속편인 <홍길동 장군>으로 감독 데뷔

4. 작품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