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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象
(? ~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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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삼국시대의 조위의 인물이며 자는 희백(羲伯)으로 병주 출신.2. 생애
어려서 부모를 잃고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어 17, 8세 때 주인이 그에게 양을 치게 했는데, 몰래 책을 읽다가 채찍으로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 양준이 그 재능과 인품을 알아보고 돈으로 샀기 때문에 노예에서 해방되었으며, 양준이 집과 함께 장가까지 마련해줬고 재능과 뜻이 남달랐다.산기상시를 지내면서 양준이 남양 태수를 지낼 때 그의 능력을 칭찬하고 은혜와 덕망이 넘친다면서 수도로 불러들이도록 추천했으며, 건안 연간 같은 군 사람인 순위 등과 함께 조비에게 후한 대접을 받았다.
위나라가 건국되자 산기시랑, 상시 등을 역임하고 열후에 봉해졌으며, 조서를 받아 황람 편찬 임무를 맡고 영비서감에 임명되었다. 220년부터 편찬을 시작해 수년 후에 완성해 비부에 보관해 두었으며, 도합 40여 부로 각 부는 수십 편으로 총 8백여만 자였다.
성품과 도량이 온화하고 두터우면서 문채는 고상했고 경사에서 자신에게 찬양할 만한 일을 남에게 돌려 사람들은 그를 유종이라 칭송했다.
222년 조비의 수레가 완에 도착할 때 조비가 저잣거리의 열기가 가득하지 않다고 생각해 양준을 잡아들이자 사마의, 순위 등과 함께 양준을 구해주도록 청하면서 머리를 조아렸지만 조비가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준이 처형되자 양준을 구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기다가 병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