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0:36:54

올드 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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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세대구분
현역 시절 은퇴 이후
올드 게이머 드래프트 세대 아프리카 세대

1. 개요2. 특징
2.1. 초창기 프로게이머2.2. 통상적인 의미의 올드 게이머
3. 올드 게이머의 예

1. 개요

흔히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리그에서 KeSPA 드래프트 도입 이전부터 활동한 선수들을 일컫는 명칭.

보통은 그냥 올드라고 부르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이는 e스포츠 뿐만 아니라 여타 스포츠 종목에서 활동하는 모든 선수들에게도 붙일 수 있는 광범위한 용어이므로 본 문서에서는 굳이 '올드 게이머'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떤 게임 종목이든 4~5년 이상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경우라면 올드 게이머라 할 수 있는 게이머들이 존재하지만, 가장 유명한 스타크래프트를 기준으로 하면 대략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 데뷔했던 선수들, 그 중에서도 드래프트 세대가 떠오를 때까지 선수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던 선수들을 통칭하는 말이며, 단순히 올드 게이머라 하면 경력이 오래되었다면 모두 포함시킬 수 있는, 매우 상대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브루드 워의 전략 체계가 앞마당 확보 위주의 성향들의 맵의 증가에 맞게 선수들의 빌드 오더 개발에 의한 대격변을 맞이하고, 3.3 혁명이 발발하고 김택용, 그리고 그 이후의 리쌍을 필두로 한 드래프트 세대들이 선수의 질과 양 모두 올드를 앞서는 모습이 보여진 2007년 이후에 더더욱 부각되었던 용어이다.

실제로 3.3 혁명 이후에 양대 개인 리그에서 올드 게이머가 결승전에 진출했던 경우로는 그 이후로 Daum 스타리그 2007 결승전에서 맞붙은 김준영 변형태,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포텐이 터진 송병구, EVER 스타리그 2008에서 우승한 박성준, 그리고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 준우승을 했으나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기록이 삭제된 박명수[1] 정도 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도 올드 시대에 결승에 진출했던 건 박성준만이 유일하다. 3.3 혁명을 기준으로 스타판이 리셋되었다는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

마지막 올드 게이머 세대 프로게이머는 송병구이며, 이후의 프로게이머들은 드래프트 체제로 넘어가 데뷔했다.

2. 특징

2.1. 초창기 프로게이머

대개 언급되는 올드 게이머들보다도 이전에 활동했던 1세대 프로게이머들이 있다. 사실상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처음으로 만들어내고 세간에 널리 알린 이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김창선, 신주영, 국기봉, 최진우, 기욤 패트리, 김동수, 이기석, 김태형, 최인규, 강도경, 봉준구, 변성철, 김대기, 조정현, 임성춘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의 프로게이머들이 그나마 게임단이라는 안정된 환경과 전략전술의 상호 교류 등을 통해 성적을 꾸준히 이어나갈 여건이라도 갖췄던 것과 달리 말 그대로 자신의 재능과 창의력을 기반으로 경쟁을 해나가야 하는 불리한 입지에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달리 현역으로서 왕성하게 오래 활동할 만한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이들 중에는 다른 게임 대회에서 투잡을 뛰는 경우도 매우 많았다. 제일 유명한 이기석도 스타크래프트에서 도태되자 임진록 2 리그에도 나와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고, 워크래프트 3 리그에 출전하기도 했던 봉준구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 테트리스 대회에서 수상한 적이 있던 변성철 역시 그러한 케이스. 결국 1세대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대부분 2000년 ~ 2001년 경에 경쟁에서 밀려 도태되거나 은퇴하였으며, 일부 선수들은 2004년 무렵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거나 군복무를 마친 후 현역 복귀를 꾀하기도 했으나, 모두 떨어진 기량을 상승시키지 못하고 쓸쓸히 옷을 벗어야 했다.

한 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게임단이 가장 활성화되었던 시기는 오히려 KeSPA 체제가 확립된 2001년 이후가 아닌 1999년 ~ 2000년이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거의 60개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의 게임단이 존재했으며, 위에 언급된 대다수의 게이머들은 대부분 이러한 게임단 소속이었다. 또한 당시에는 굉장히 많은 리그가 존재했고, 리그에 따라서는 프로리그를 전문적으로 개최하는 리그들도 존재한데다 여성부 리그도 꽤 활성화되어 있어서 게임단이 다수 존재할 여건이 충분했다. 그리고 이들 대다수는 허접한 게임단도 아니고 나름 괜찮은 기업들에게서 스폰서를 받고 안정된 자금력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당시 활동했던 신주영의 인터뷰만 봐도 당대 프로게이머들이 연봉 받지 않고 상금 사냥꾼 생활이나 하는 불안정한 직업이 결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00년 말 갑작스레 IT버블이 꺼지면서 판 자체가 엄청나게 축소되었고, 여기에 스타크래프트의 광풍에 가까운 인기 또한 이 시기에 들어 조금씩 사그라들면서 스폰서를 하던 기업들 대다수가 발을 빼버리면서 이러한 게임단들 역시 소수만 생존하게 된다. 당연히 스타판에 몸담았던 프로게이머들 역시 대다수가 직업의 전망을 어둡게 보고 다른 게임으로 종목을 바꾸거나[2] 아예 프로게이머 자체를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해당 항목의 1세대 프로게이머들 대다수가 빠르게 몰락한 것 또한 이러한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불안정하기 짝이 없던 당대 스타판의 현실에서 자기 살 길이라도 찾으려면 어떻게든 게임 이외의 길을 물색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게임에만 집중하지 못해 자연스레 실력 면에서 도태된 것이다.[3]

한편 오늘날 정형화된 스타크래프트 전술의 큰 틀이 확립된 시점도 바로 이 시점이다. 세세한 빌드나 컨트롤 방법, 조합 등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테테전 테프전 메카닉 테란, 테저전 바이오닉 테란, 저저전 뮤링 같은 큰 틀이 확립된 것이 바로 이 시점이라는 것. 과도기인 99 PKO 하나로통신배 스타리그 등을 보면 저저전에 히드라 러커가 등장하거나 토스전을 바이오닉으로 상대하는 등의 괴상한 전술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이후에 정형화된 틀에 이전의 게이머들은 적응하기 어렵고, 설사 적응하려 해도 더 어리고 날래고 실력 좋은 신흥주자들보다 우위에 서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이들과 아래 항목의 올드 게이머 세대는 흔히 말하는 올드 게이머와 드래프트 세대와의 관계와 은근히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렇게 된 동기와 시대적 배경에는 물론 차이가 존재하지만...

2.2. 통상적인 의미의 올드 게이머

2007년 이후로 "올드 게이머"라고 불리기 시작한 선수들은 초창기 게이머들보다는 살짝 나중에 데뷔했으며, 그러한 이유로 1.5세대~2세대 게이머라고도 표현된다. 이 용어가 대대적으로 사용되었던 2007년 이후까지도 이 선수들은 현역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었다. 다만 "올드 게이머"라는 분류가 붙는 것도 현역 기간 동안 매우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서 스타덤에 올랐던 선수들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겠지만, 우수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면 올드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지속하기 힘들 테니까... 임요환, 이윤열, 박성준 등의 일부 선수들은 스타크래프트 2로 넘어가서도 각각 4강, 준우승이라는 유의미한 성적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같은 세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올드 게이머들도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대부분 몰락하고 은퇴하거나 팀의 정신적 지주로 남는 정도의 역할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새게 등장한 신인 선수들에 비해 나이가 너무 많아져서[4] 반사신경이나 순발력, 피지컬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 동안 검증된 전략 및 빌드를 기본기로서 익혀온 신인 프로게이머들과 달리 기존의 방식과 스타일에 익숙해졌으며 이것을 자신의 강점이자 플레이스타일로 고수해 온 이들이 새로운 트렌드에 발을 맞추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2007년부터는 전략의 트렌드가 기존의 초중반 지향에서 후반 지향으로 완전히 이향되고 이 과정에서 복잡한 난전과 멀티 태스킹 능력이 중요하게 떠올랐는데, 대체로 손이 느리고 난전에 익숙하지 않았던 올드들은 여기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2007년 이후 스타크래프트는 사실상 새로운 전략과 빌드를 짜기보다는 대부분 이미 체계화 된 빌드를 기반으로 최적화시키는 시기였으며, 이후 등장하는 일명 드래프트 세대들은 단축키와 키보드를 쓰는 방법이 매크로적으로 최적화되었다고 한다.[5] 이윤열, 박정석, 조용호, 서지훈 등 '신의 왼손'이라 불리며 올드 게이머들 사이에서 엄청난 APM을 바탕으로 컨트롤/물량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이들조차 신세대 게이머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6] 그나마 원래 컨트롤로 커리어 정점을 찍은 박성준 정도만이 저프전에서 여전한 공포스러움을 보여주며 개인리그 우승을 차지한 게 끝.[7] 실제로 이후에 아프리카TV BJ로 복귀한 올드 게이머들은 아예 단축키부터 다시 배울 정도다.

실제로 박용욱이 개인방송에서 푼 썰에 따르면 임요환이 2008년 공군 ACE 이후에도 반 년 넘게 KeSPA 공식전에 출전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가 부대 지정/컨트롤을 익히기 위해서였다고 할 정도이며, 이러한 트렌드의 변화는 빌드와 전략으로 근근히 버티던 올드들이 2007년에는 일명 피지컬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부분 몰락하게 된 원인이 된다.[8]

특히 올드 게이머 세대가 많이 포진해 있었으며 이들의 활약으로 성적을 유지해왔던 KTF 매직엔스 SK텔레콤 T1은 이들의 몰락으로 인해 연패와 부진의 늪에 빠져 한동안 암흑기를 겪기도 했다. 사실 이런 조짐 자체는 이미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시즌에는 올드 게이머가 중심이 된 전통의 강호이자 인기 구단이었던 두 팀이 정규시즌에서 중하위권으로 처지게 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기존의 약팀이자 비인기 구단이라 인식받던 한빛 스타즈, 르까프 오즈 같은 팀들은 신인 육성에서 대성과를 거두면서 이 시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강호로 차고 올라갔다. 그리고 작년까지 약체팀이라 평가받던 MBC GAME HERO 역시 신인 선수 육성이 전기리그에 이어 후기리그에도 빛을 발하게 되면서 두 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다. 게다가 HERO는 이후 후기리그 포스트시즌과 통합 챔피언전 우승을 연속으로 거머쥐면서 2006년 최고의 팀으로 거듭났었으며, 소속 선수였던 김택용 3.3 혁명으로 스타판을 리셋시키며 그 정점을 찍었다.

그나마 2006년까지는 신인 게이머들의 경험 부족으로 인해 경험에서 앞서는 올드 게이머들이 어느 정도 활약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결국 Daum 스타리그 2007/ 곰TV MSL 시즌1 곰TV MSL 시즌2,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부터는 올드 게이머들이 완전히 신인 게이머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고, 이들에 지나치게 기대 오던 기존 팀들인 SK텔레콤 T1, KTF 매직엔스, CJ 엔투스의 성적은 곤두박질치게 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팀도 암흑기에 접어든다.[9] 반면 신인 선수들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인해 기존의 약팀들이라 여겨졌던 삼성전자 칸, 르까프 오즈, MBC GAME HERO, STX SouL은 앞의 팀들과는 다르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그 중 삼성전자 칸은 최초의 프로리그 우승, 르까프 오즈는 최초의 프로리그 및 팀 단위 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한술 더 떠서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부터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중간 수준의 성적을 내던 올드 게이머들까지 모두 몰락하게 되었고, 그 중 KTF는 ' 패왕사신기'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도 얻게 되었다.[10] 그리고 T1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3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게 된다. 반면 CJ는 신인 선수들이 크게 성장을 해주면서 전기리그와는 다르게 후기리그에는 결승전까지 진출하였으며, 온게임넷 스파키즈 SKY 프로리그 2004 3Round 이후 오랜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고, HERO도 4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다. 또한 르까프는 아예 정규시즌 1위 뿐만이 아니라 지난 전기리그에 이어 2시즌 연속 결승전에 진출한 것은 물론 팀 사상 최초로 프로리그 우승까지 달성한다. 게다가 통합 챔피언전에서도 우승을 거두게 된다.

참고로 2007년에는 올드 게이머 세대뿐만 아니라 드래프트로 데뷔해서 이전까지 1군 정도의 급은 못되더라도 제법 촉망받던 신인들도 도태되거나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대체로 올드들과 마찬가지로 변화한 시류를 따라잡지 못하고 이전의 방식대로 연습해 오거나 2008년을 끝으로 폐지된 팀플레이를 전담[11]하면서 개인전에 대한 감각을 잃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대표적인 경우로는 거품으로 유명한 CJ의 장육, KTF의 김세현, 한빛의 설현호, 노준동, eSTRO의 김강호, 최욱명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올드 끝물 세대에 데뷔해서 유망주에서 크게 성장하지 못한 케이스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테윤환, 고인규[12]등이 그 예이다.

물론 조금 거칠게 퉁치자면 올드 게이머들도 2007년 이전에 몰락했던 선수들도 있고, 드래프트 세대 중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몰락한 선수들이 있던 것처럼 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긴 하다.

3. 올드 게이머의 예

3.1. 테란

3.2. 저그

3.3. 프로토스



[1] 형인 박찬수는 드래프트를 통해 팀에 입단했지만, 본인은 드래프트 이전에 입단했다. [2] 당시까지 웬만큼 인기있는 게임도 수명은 겨우 1년 내외에 불과했다. 스타크래프트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워크래프트 시리즈도 워크래프트 1이 나오고 불과 1년 뒤에 2가 나왔으며, 스타크래프트도 1년 안에 스타크래프트 2가 나온다는 루머가 당시에는 파다했다. 실제로는 11년이 걸렸지만... 그리고 이처럼 과하게 짧은 종목 수명이 게임은 바둑처럼 스포츠화될 수 없다는 인식의 주된 배경이 되었다. [3] 1세대 프로게이머의 대표주자 이기석도 게이머 생활 내내 광고에도 출연하고 iTV 게임TV의 프로그램 진행을 자주 맡았다. 심지어 레드얼럿, 임진록 2등 다른 게임 대회에도 나가 입상하는 등 그의 전체적인 커리어를 보면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라기보다는 복합 게이머나 게임 방송인에 가까웠다. [4] 보통 25살쯤에서 피지컬이 확연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5] 실제로 드래프트 세대 선수들 중 최강자라고 불리는 택뱅리쌍+ 허덴 6인은 전부 이런 성향이 있었던 이들이다. 반대로 전략 위주로 플레이하던 신희승, 이경민 등은 빛을 못봤다. 그나마 김윤환 우승도 하고 드래프트 세대 안에서는 저 6인 바로 밑까지 올라갔으나, 결국 피지컬 하락으로 기량이 떨어져 더 좋은 커리어를 쌓지 못했고,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지 못했다. [6] 그러나 이윤열은 드래프트 세대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2007년 이후에도 꾸준하게 스타리그, MSL 본선에 진출했다. 특히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는 8강까지 갔는데, 허영무를 상대로 접전 끝에 2대3으로 졌다. 이윤열은 올드 중에서 그나마 나이가 좀 어린 편이어서 득을 본 것도 있었다. [7] 박성준은 사실 피지컬이 매우 뛰어난 선수다. 드래프트 세대 이후에도 우승한 건 이런 피지컬이 있었기 때문. [8] 임요환은 전략, 타이밍, 빌드가 뛰어난 선수인데 소위 말하는 물량전이나 난전에 능한 선수는 아니었다. 특히 임요환의 고질적 약점으로 대두되던게 바로 물량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20대 후반이라 대부분 10대~20대 초반 선수들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2008년 시점이면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 은 10대고, 송병구는 20대 초였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생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성적을 내는데 임요환 나이면 사실 많이 힘든 것도 있었다. [9] 이때 SK텔레콤 T1은 먹튀원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게다가 이 무렵에는 대부분이 개인리그에서도 제대로 활약들을 못 했고, 이는 2007년까지 이어진다. 기뉴다 스진남에 출연한 박재혁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07년이 최적화 게임의 시대로 갑자기 바뀌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라고 한다. 기존 주전 멤버들이 본진 플레이와 소규모 컨트롤에만 익숙하고 최적화 개념을 못 받아들여 트렌드를 못 쫓아갔다고... 도재욱은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주전 토스가 앞마당의 캐논 12개를 박았는데 프로브는 7마리가 채취하는걸 보고 속으로 '어떻게 이기려고 저러는 거지?'라며 의아해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선배들이 일꾼 찍는 개념이 너무 안 좋았다고... 거기다 오버 트리플 크라운으로 인한 나태함, 대회 직전에만 연습을 하고 평소 기량은 등한시 하는 것까지 겹쳐 드래프트 세대가 자리잡기까지 암흑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10] 이영호가 핵심 선수로 자리잡고나서부터 희망을 보긴 했지만 정작 뒷받침할 선수들의 지원이 늦어져서 08-09 시즌까지 희망고문을 하다 탈락하였다. 하필 이 시기의 KTF의 감독이 그 희대의 졸장이라는 김철이었다는 점도 한몫했지만, 설령 김철의 감독으로서의 능력이 뛰어났다고 하더라도 당시 KTF 간판 선수들의 급격한 몰락을 감안하면 어차피 무너져가는 팀을 살리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11] 대표적인 예가 삼성전자 칸의 팀플 전담 선수들이었던 임채성, 이재황, 이창훈 등이 있다. 팀플 폐지로 팀플 전담 선수들이 대부분 도태됐다. 팀플 전담 선수에서 대성한 선수는 신대근, 박명수, 김윤환, 신노열 정도 밖에 없다. [12] 이쪽은 임요환 최연성, 전상욱을 잇는 T1 테란의 계보를 이어 갈 후계자 유망주로 부각받던 선수 치고는 생각보다 크게 뜨지 못했다. 그래도 여기 있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스타리그 8강 1회, MSL 8강 1회, 프로리그 결승전 MVP 1회 등을 수상하면서 타 선수들보다는 많이 활약하였고, ( 병행 시즌이지만) 후속작으로도 출전한 경험이 있다. 다만 기대 이상으로 더 크지 못했다는 게 아쉬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