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13 19:23:41

오오타니 신지로

파일:l-intro-1661986229.jpg
[ruby(炎, ruby=ほのお)]の[ruby(戦士, ruby=せん し)] / Warrior of the Flame
[ruby(大谷, ruby=おおたに)] [ruby(晋二郎, ruby=しん じ ろう)] / Shinjiro Otani
<nopad> 파일:오오타니신지로 프로필.jpg
<colbgcolor=#000000> ZERO1
<colcolor=#17A4BB> 본명 <colbgcolor=#ffffff,#2d2f34> 오오타니 신지로
[ruby(大谷, ruby=おおたに)] [ruby(晋二郎, ruby=しん じ ろう)]
생년월일 1972. 7. 21 ([age(1972-07-21)]세)
신장 181cm
체중 97kg
혈액형 A형
출생지
[[일본|]][[틀:국기|]][[틀:국기|]] 야마구치현 야마구치시
학력 야마구치현 코죠([ruby(鴻城, ruby=こうじょう)])고교 (졸업) [1]
유형 테크니션 + 브롤러
시그니쳐 무브 오픈 핸드 찹[2]
러닝 빅 붓
_안면 워시_[3]
케사기리 찹[4]
꼬치식 저공 드랍킥
드래곤 수플렉스
피니쉬 무브 저먼 수플렉스
드래곤 수플렉스 홀드
저먼 수플렉스
점핑 파워 밤
킹 코브라 클러치
코브라 클러치
스파이럴 밤[5]
별명 불꽃의 전사 ([ruby(炎, ruby=ほのお)]の[ruby(戦士, ruby=せん し)])
테마곡 Measure up[6]
キャッチ・ザ・レインボー〜[ruby(流星, ruby=りゅうせい)]~
(1997 - 1999)[7]
Loop Force (1999)
Believe S-Road (2001 - )[8]
데뷔 1992년 6월 25일 (19세)
일본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
후쿠시마시 체육관[9]
신일본 마스터즈 오브 프로레슬링 7일차
vs 야마모토 히로요시
마지막 경기
(비공식)
2022년 4월 10일 (49세)
도쿄도 스미다구 료고쿠 국기관
ZERO1[10] 오스([ruby(押忍, ruby=お す)])PREMIUM
~ZERO1 창설 20&21주년 기념 대회~
『프로레스』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 매치
vs 스기우라 타카시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주요 커리어 IWGP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 1회
IWGP 주니어 헤비급 태그팀 챔피언[11] 2회

1. 개요2. 커리어
2.1. 입문 이전2.2. 신일본 프로레슬링2.3. ZERO-ONE ~ ZERO12.4. 기약없는 재활에 들어가다
3. 여담4. 둘러보기

1. 개요

일본 프로레슬러. 프로레슬링 ZERO1 소속.

2. 커리어

2.1. 입문 이전

어렸을 때부터 프로레슬링, 그 중에서도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팬이었던[12] 오오타니 신지로는 항상 신일본이 고향 야마구치현에 오는 1년에 2번뿐인 기회를 기다렸다. 심지어 나중에는 관중석에서 더러운 말을 내뱉던 팬에게 직접 가서 밖으로 불러낸 후 "프로레슬링을 무시할거면 집에나 가라!"라고 직격탄을 날린 적까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신일본 선수들이 머무는 야마구치현 내 호텔에 침임했다가 경비원에게 걸려 쫓겨나기 직전에 그 광경을 목격한 안토니오 이노키가 오오타니를 쫓아내려던 경비원을 말린 후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왔고, 오오타니가 가지고 있던 투혼 하치마키(머리띠)에 사인까지 해 주었다. 오오타니는 이 때 이노키에게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2.2. 신일본 프로레슬링

파일:영라이온오오타니신지로.jpg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야마구치 코죠 고교 시절 레슬링으로 국체, 인터하이에서 16강까지 가는 실적을 남긴 오오타니는 졸업 후 이노키와의 약속대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프로레슬러가 되고자 했으나 부모님의 맹렬한 반대의 부딫히자 저금해두었던 6만엔을 가지고 가출하여 상경했고,[13] 애니멀 하마구치 짐에 다니다가[14] 1992년 2월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하는 데 성공하여 6월 25일 후쿠시마시의 후쿠시마시체육관에서 야마모토 히로요시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2.3. ZERO-ONE ~ ZERO1

파일:otani1.png
2001년 3월 2일 하시모토 신야가 세운 ZERO-ONE의 창설전 '신세기창조'에 참전하면서 ZERO-ONE으로 이적한 오오타니는 정식으로 헤비급으로 전향했다.

그리고 ZERO-ONE의 리그전인 히마츠리([ruby(火祭, ruby=ひ まつ)]り)[15]의 창설을 주장하여 2001년부터 ZERO-ONE의 한여름의 리그전 히마츠리가 시작되었고, 2001년에 우승했다.

2002년 타나카 마사토와 함께 태그팀 엠블럼([ruby(炎武連夢, ruby=えん ぶ れ む)])을 결성하여 활약했다. 7월 제2회 히마츠리에도 A블록으로 참가했고, 카네무라 킨타로전에서 카네무라가 시작 전부터 장외에서 공격을 걸어와서 난투를 벌이다 둘이 함께 링 인하자 공이 울렸고, 그 순간 오오타니가 드래곤 수플렉스 홀드를 터뜨려 그대로 승리를 거뒀다. 공식 경기 시간은 3초로 프로레슬링 사상 최단 경기 기록을 경신했으며, 다음날 발행되는 도쿄 스포츠의 1면에 실렸다.

2015년에는 감량하여 15년만에 주니어 전선에 재참가했다.

2021년 4월에는 처음으로 전일본 프로레슬링 챔피언 카니발에 참가했으나, 4월 28일에 스와마와 대결 도중 오른팔 상완이두근과 오른어깨 부상을 입어 중도 포기해야만 했다.

부상 회복 후 6월에는 간바레☆프로레슬링 레귤러 참전이 결정되는데, 간바레☆프로레슬링의 9월 12일 도쿄도 이타바시구 대회에서 이와사키 코우키와 싱글전을 치렀다가 경기는 어떻게 마쳤으나 왼팔 전완골 골절상을 입어 다시 결장에 들어가는 등 하시모토의 사망 이후 ZERO1의 부흥을 위하여 수없이 혹사해 온 몸이 점점 한계에 달해가고 있었다. 결국 간바레에서 활동은 할 수 없었지만 10월 25일자로 간바레의 현장책임자에 취임하여 인연을 이어갔다.

2.4. 기약없는 재활에 들어가다

7개월 후인 2022년 4월 10일, 료고쿠 국기관에서 열리게 된 ZERO1 창설 20주년과 21주년을 함께 기념하는 ZERO1의 최대의 흥행인 오스([ruby(押忍, ruby=お す)])PREMIUM ~ZERO1 창설 20&21주년 기념 대회~ 『프로레스』[16]에서 복귀를 발표했다.

매치 당일, 제 16매치 메인 이벤트에서 스기우라 타카시가 가지고 있던 ZERO1의 보물, 세계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되찾으러 출격한 오오타니는 스기우라를 상대로 오오타니다운 뜨거운 격전을 펼치고 있었으나...

15분이 갓 넘어가 매치가 장기전으로 향하던 시점에서 스기우라가 오오타니에게 코너 저먼 수플렉스를 날렸을 때 오오타니가 코너 매트에 저공으로 뒷목을 부딫혔는데, 바로 일어나서 반격을 펼쳐야 할 오오타니가 어째서인지 일어나지 못했다. 스기우라는 오오타니가 잠깐 의식이 흔들린 정도라고 생각하고 "안 끝났다 임마!"하면서 경기를 직행하려 했지만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의식은 있었고, 세컨드들에게 말은 할 수 있었으나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듯 하는 모습을 보이자 심판은 1분을 넘긴 이후에 매치를 중단시켰고, 결국 매치는 16분 44초만에 레퍼리 스탑으로 스기우라의 승리라는 형태로 마무리되었다. 오오타니는 즉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원 검사 결과는 설마했던 경추 손상. 결국 오오타니 신지로는 목 이하로 전신이 마비되고 말았으며, 무엇보다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되고 말았다.

4월 28일에 6월 4일 도쿄도 오오타구 종합 체육관에서 오오타니 신지로 후원 대회인 오스([ruby(押忍, ruby=お す)]) PREMIUM PRESENTS ONE TEAM ZERO1! 오오타니 신지로 에이드! 몇번이라도 일어서라![17]가 열리는 것이 발표되었다.

이날 후원 흥행 개최의 기자 회견을 연 오오타니 신지로의 형 오오타니 유이치로([ruby(大谷, ruby=おおたに)] [ruby(裕一郎, ruby=ゆういちろう)]) 씨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도와준 관계자들에 대한 감사와 인생에서 가장 큰 역경을 맞이한 동생에 대한 응원을 부탁하는 메세지를 남긴 후,
"프로레슬링은 서로 신뢰하며 전력으로 부딪히는 모습으로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기우라 선수는 신지로를 신뢰해서 전력으로 부딫혔다...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어이 오오타니! 몇년이라도 몇십년이라도 기다려 줄테니까 일어나서 다시와라!"라고 계속 전해주는 것이 신지로 본인에게 무엇보다 힘이 됩니다. 신지로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후로 변함없는 스기우라 선수의 활약을 친족 모두 바라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며 상대였던 스기우라 타카시의 죄책감을 덜어 주었으며, 스기우라에 대한 이유없는 비방을 멈춰 주기를 요청했다.

흥행 당일, 나가타 유지, 마카베 토우기, 혼마 토모아키, 아쟈 콩, 재규어 요코타 등 수많은 스타 선수들이 오오타니의 회복을 위해 모였고 모금된 전액은 오오타니의 투병 비용으로 기부되었다.

9월 1일, 부상 이후 처음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들과 관계자들에 대한 감사의 코멘트를 남겼으며, 10월 8일 부상 이후 6개월만에 처음으로 X에서 직접 근황을 알렸다. 이후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핸드폰을 조작하는 식으로 X로 간혹 근황을 갱신하고 있다.

2023년 1월 1일, ZERO1 공식 유튜브에서는 처음으로 본인이 직접 출연하여 팬들에게 신년 인사를 남겼다.[18]

2023년 5월 6일, 타카다노바바에서 오오타니 신지로 응원 대회인 오스([ruby(押忍, ruby=お す)]) PREMIUM PRO-WRESTLING SHOW~아이들에게 꿈을! 희망을!~이 열렸고, 오오타니가 부상 이후 처음으로 팬들 앞에 직접 등장하였다.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오오타니를 관객들은 오오타니 콜로 맞아줬으며, 응원해주는 모두에게 자신으로부터도 응원을 보내게 해 달라고 말한 오오타니는 이날 참가한 마지막 대전 상대 스기우라 타카시에게,
"스기우라 선수, 저는, 한가지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싶습니다. 작년 4월, 료고쿠에서 저와의 싸움에서 저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계속 강한 프로레슬러로 남아줘서, 프로레슬링을 계속해줘서 감사합니다. 다만, 다음에 싸울 때는 절대로 지지 않을 거니까!"
라고 말하며 스기우라의 변함없는 건투를 빌어 주었다.

3. 여담

  • 어렸을 적 천식을 앓아 몸이 약했으며, 지금에야 중년이 되어 해당 사항이 없어도 영 라이온 시절에는 처진 눈까지 더해져 얼굴만 보면 차분하다 못해 소심해 보이는 인상의 소유자였으나 '불꽃의 전사'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남자답고 정열적인 성격으로 유명하며, 일본 프로레슬링계에서 불같이 뜨거운 성격의 소유자로 반드시 꼽힌다. 본인도 이 성격을 자신의 포인트로 삼아 언제나 심적 + 물리적 뜨거움을 어필해왔다.
    • 다만 '불같은 성격'이라고 해도 시도때도 없이 화내는 다혈질 스타일인 것은 아니여서 후배인 마카베 토우기 등에게는 무리한 일을 시키지 않는 등 이성적으로 대했고, 이 때문에 마카베가 존경하는 선배 중 한 명이라고 한다.
  • 프로레슬러라는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이 굉장해서, 프로레슬링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사람을 증오한다. 초창기에는 학생 프로레슬링[19]와 인디 프로레슬링에 대해서도 "프로레슬링을 얕보는 놈들"로 생각하며 무시하고 있었다.[20] 그러나 미치노쿠 프로레슬링에 참전한 이후 꾸준히 지방 상생을 위해 노력하며 자신들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프로레슬링에 진심인 그들을 보며 크게 깨달음을 얻어, 보도진들 앞에서 도게자하며 이들을 무시한 것을 공식 사과했다.
  • 3남매 중 둘째로, 히로시마에 거주하는 오오타니 유이치로([ruby(大谷, ruby=おおたに)] [ruby(裕一郎, ruby=ゆういちろう)])라는 이름의 형과, 오오타니 하즈키([ruby(大谷, ruby=おおたに)] [ruby(葉月, ruby=は づき)])라는 이름의 여동생이 있다. 형 유이치로는 오오타니 신지로의 경추 손상 부상 이후 친족 대표를 맡고 있으며, 이 둘은 오오타니 신지로의 아내와 함께 오오타니의 후원을 관리하고 있다.
  • 2003년 6월 14일,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사망 이전까지 오오타니의 어머니는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빚을 크게 져서 오오타니에게도 돈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었고, 계속되는 돈 요구에 자금 사정이 위험해진 오오타니는 결국 폭발해서 어머니에게 "이제 적당히 좀 해! 이 역병신 같으니!"라고 말했는데 이게 어머니에게 말한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오오타니 본인이 일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라고 말할 정도로 오오타니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 독신일 때는 매년 목표를 '결혼'이라고 해오다가 2013년 7월, 40세에 백화점에 근무하는 34세의 여성 에리코([ruby(江梨子, ruby=え り こ)]) 씨와 결혼했다. 슬하에는 외동딸(2015~2016년생)이 있다.
  • 신일본 프로레슬링 입단 시에만 해도 머리숱이 많은 편이었으나, 20대 중후반인 2000년 경부터 원형 탈모가 진행되기 시작됐다. 2001년 ZERO-ONE으로 이적하고 머리를 주황색으로 염색한 이후부터 점점 확대되어 2003년 30세쯤부터는 가운데 부분이 확연히 빈 것이 보이게 되었다. 결국 오오타니는 2006년경부터 염색을 그만두었으며, 삭발은 하지 않은 채 옆머리와 뒷머리만 기른 스타일을 오랫동안 유지해오다 경추 부상 투병 시작 후에 관리의 용이함을 위해 삭발했다.
  • 좋아하는 연예인은 배우 나나세 나츠미인데, 선수명감에는 컨셉상 일부러 나나세가 드라마 '따끈따끈(ぽっかぽか)'에 출연했을 때의 배역 이름인 타도코로 아사미(田所 麻美)라고 적었다.
  • 2007년부터 프로레슬링으로 이지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이에 맞춰 흥행지의 초등학교에 강연을 다니고 아이들을 ZERO1 흥행에 초대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4. 둘러보기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신인상
아키야마 쥰
(1992)
신자키 진세이
오오타니 신지로
(1993)
야마다 마나부
(1994)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최우수 태그팀 상
자도&게도
(2001)
엠블럼 ([ruby(炎武連夢, ruby=えん ぶ れ む)])[21]
( 타나카 마사토 & 오오타니 신지로)
(2002)
마루KEN
( 마루후지 나오미치 & KENTA)
(2003)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태그팀
초세대군 ([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
( 미사와 미츠하루 & 아키야마 쥰)
(1996, 1997)
통가리 콘즈
( 타카이와 타츠히토
&
오오타니 신지로)
(1998)
BURNING
( 코바시 켄타 & 아키야마 쥰)
(1999)


[1] 야마구치시 소재. 동문 중 동종 업계인으로는 '쓰레기장의 블랙잭' 후지타 미노루가 있다. [2] 사선으로 짧고 빠르게 들어간다. [3] 일종의 도발기로, 상대를 코너에 앉혀놓은 후 링슈즈 밑바닥을 상대의 뺨에 대고 차면서 상대의 뺨을 긁는다. 영 라이온 시절부터 계속 사용해 오던 오오타니의 상징기. 사용할 때 마다 관중들이 박자에 맞춰 "에이!에이!에이!"하고 외쳐주며, 사용한 후에는 관중들의 "한번 더!" 반대 코너로 갔다가 마리오같은 점프를 한 후 러닝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국룰이었다. [4] ZERO-ONE의 사장인 하시모토 신야의 상징기로, 하시모토 사망 이후에 사용했다. 경기 중반 이후 카운터 래리어트같은 느낌으로 카운터기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상당히 강력하게 들어간다. 오오타니의 투병 이후에는 요코야마 요시카즈가 물려받아 사용하고 있다. [5] 일본에서는 토네이도 캐논 이라고 불린다 [6] 영 라이온 시절 사용하던 테마곡. [7] 캐치 더 레인보우~유성~. 오오타니의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의 주니어 헤비급 에이스 시절을 상징하는 곡. 평가가 꽤 괜찮은 곡이여서 신일본 올드 팬들은 아직도 이 곡으로 오오타니를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8] 2001년 헤비급 전향 이후 지금까지 사용 중인 테마곡. 신일본 이후 및 헤비급 전향 이후의 오오타니 신지로를 상징하는 곡으로, 열혈 그 자체인 역동감이 특징이다. 제목은 일본어로 '믿어라([ruby(信, ruby=しん)]じろ,신지로)'와 이름의 '신지로'의 발음이 동일한 것을 이용하여 '신지로의 길을 믿어라([ruby(晋二郎, ruby=しん じ ろう)]の[ruby(道, ruby=みち)]を[ruby(信, ruby=しん)]じろ,신지로노 미치오 신지로)'라는 의미로 붙였다고 한다. [9] 현 NCV 후쿠시마 아레나. [10] 프로레슬링 ZERO1. [11] 초대 챔피언 [12]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이나즈마 전사' 기무라 켄고였다고 한다. [13] 어머니는 결국 끝까지 반대했으나 아버지는 나중에 누그러져서 3년간만 생활비를 보내준다는 조건 하에 허락했다. 보증인을 찾기 힘들었던 오오타니는 월세 2만4천엔의 공동 화장실에 이불 하나 없는 열악한 방을 구해서 입문 전까지 거기서 지냈다고 한다. [14] 애니멀 하마구치 짐에 들어간 것은 알고 있는 프로레슬링 도장이 거기밖에 없어서였다고. 하마구치는 홀로 상경한 오오타니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서 술집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주었고, 오오타니는 알바를 하면서 직원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고 한다. [15] 불의 축제라는 뜻. [16] 20주년이라는 상징성이 있었음에도 2021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치러지지 못 하여서 동반으로 기념하게 되었다. 매치 수만 다크매치 제외 16매치, 그리고 약 40여 단체에서 80여명의 프로레슬러가 참가하는 초대형 흥행이다. [17] 何度でも立ち上がれ! [18] 타카야마 요시히로와 비슷한 상태로, 혀와 안구 등을 비롯하여 목 위로는 비교적 움직임이 자유롭고, 말은 조금 느려졌지만 또박또박 할 수 있는 상태이다. [19] 대학교의 프로레슬링 동아리. 그냥 대학교 내 프로레슬링 매니아들의 놀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의외로 타나하시 히로시, 마카베 토우기, HARASHIMA 등의 스타 선수들을 배출해내기도 했다. [20] 사실 이전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이라는 단체 자체가 그런 기조가 굉장히 강했다. 그 일례로 오오타니가 한창 신일본 생활 중이었던 1990년대 중후반 현장 감독을 맡았던 초슈 리키는 대학 출신 프로레슬러 파벌의 끝판왕 중 하나인 센슈대학 레슬링부 출신 엘리트기도 하여, 학생 프로레슬링을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21] '연무련몽'이라고 쓰고 음독으로 '엠블럼(엔부레무)'이라고 끼워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