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은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뺄 것도 없을 때 완성된다.
'Perfection is achieved, not when there is nothing more to add, but when there is nothing left to take away.’
— Ostian Delafour, Man of Stone
'Perfection is achieved, not when there is nothing more to add, but when there is nothing left to take away.’
— Ostian Delafour, Man of Stone
1. 개요
오스티앙 델라푸르는 대성전과 호루스 헤러시 시기의 리멤브란서로 직업은 조각가였다. 3군단의 프라이마크인 펄그림의 기함에 타고서 그가 이끄는 28차 대성전에 함께 했고, 펄그림이 타락해 가는 과정 속에서 펄그림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2. 대성전
2.1. Fulgrim
2.1.1. 펄그림의 의뢰를 받다
아직 펄그림이 타락하지도 않았고, 시기상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날 일이되 28차 원정대가 레르 행성에 발도 디디기 전의 일이다.예술 애호가 펄그림은 귀한 원자재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펄그림이 직접 황제에게 청을 올려서 하사받은 것으로써, 벽옥 같은 4미터 높이 가량의, 그것도 황제의 고향인 아나톨리아산 백색 대리석 덩어리이다. 이 귀중한 보물을 프라이마크는 석조조형예술에 권위가 높은 조각가, 오스티앙 델라푸르에게 위임한다. 오스티앙은 이 보물을 어떻게 작품으로 만들어야 할 지 그려지지 않는 청사진에 고민하면서 괴로워하는데, 그런 그와 때때로 작업활동을 같이 하는 동료인 세레나 드 앙겔루스는 일이 안될 때에는 잠시 그것을 놓아두라는 취지를 겸해서 그야말로 극상이라고 명성이 자자한 베쿠아 킨스카의 연주회에 오스티앙이 참석하도록 권유한다.
오스티앙 델라푸르는 과거 베쿠아 킨스카를 두어번 만난 적 있었고, 오스티앙은 그녀의 실력과 외모는 인정했지만 과도한 자의식이 괴물의 수준이라고 여겨 꺼렸다. 하지만 킨스카는 어떤 이유이든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오스티앙에게 티켓을 보낸 것이었다. 오스티앙은 킨스카의 분야에 관심이 없고 예술가 중에서도 매무새 간수를 잘 하지 않는 유형이었기에 작업에 착수도 못한 상태에서 작업실을 나서기를 꺼렸다. 하지만 자신을 방 밖으로 끌고 나가는데 달아있는 세레나에 의해 그는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어정쩡히 연주회장의 혼잡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정작 베쿠아 킨스카가 극장의 무대에 올라서서 연주를 시작하자 오스티앙 델라푸르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자기를 추스를 겨를이 없었다. 세레나의 말마따나 연주에 완전히 몰입당한 오스티앙은, 관중들을 휘어잡아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 킨스카가 천상의 빛 같은 음악을 중단하자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분노해서는 베쿠아가 희생양 삼은 귀족을 질타했다. 그 준동을 가라앉힌 건 프라이마크의 목소리였고, 펄그림의 권유에 연주는 비로소 재개될 수 있었다.
2.1.2. 레르 방문에 불참하다
28차 원정대가 처음 맞닥뜨린 상대는 레르 행성의 선주민족, 즉 레란이라 명명된 외계인이었는데, 펄그림은 자존심 때문에 제국행정부의 화친 지시를 거부하고 자의적으로 전쟁을 격화시켜서 종족말살작업에 들어간다. 그 첫 번째 타깃이 된 장소는 18번째 부유 산호초였는데, 3군단의 리멤브란서들은 행성에서 다른 대성전 대비 엄청난 손실률을 기록하면서 벌어지는 격전을 모른 채 푸른 바다행성의 아름다움에 감탄만 하고 있었다. 전함의 창 너머로 율리우스 카이소론이 이끄는 공격대가 대출격하는 장관을 감상하던 오스티앙에게 곁에 있던 세레나가 28-2의 바다를 설명하다 피곤해져서 돌아가자 누군가가 접근해온다, 베쿠아 킨스카였다.그 자리에서 베쿠아 킨스카는 노골적으로 육체적 유혹을 날린다. 그녀는 오스티앙이 보기에 만드는데 몇 시간은 걸렸을 것 같은 머리모양에 방어도 높은 옷을 쫙 빼입고는 눈앞의 사냥감에게 꼐임의 감각론을 풀어놓기도 하고 남자다움을 논하기도 하면서 적나라한 대시를 하는데, 오스티앙은 그런 육식동물의 미소에 당황만 하다가 그만 "나 지금 만나야 할 사람 있다, 시간 없다, 내겐 이미 애인이 있다, 아까 그 여자다"라고 얼결에 대답을 하고 만다. 이것은 실수였고, 이 거절에 자존심이 땅속까지 파묻혀 들어간 킨스카는 오스티앙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쓰레기를 보는듯 그를 쳐다보고는 말을 끊고 돌아간다.
이후 오스티앙은 베쿠아 킨스카가 세레나 드‘앙겔루스에게 무슨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레르 행성이 한달 뒤 3군단의 수중에 완전히 떨어지고 나서 베쿠아의
"저 썅년이!" 오스티앙이 주먹을 쥐며 내뱉었다. "믿을 수가 없어."
세레나가 그의 팔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말도 안돼, 자기야. 같이 갈 수 없다면 차라리 그냥 남겠어. 자기가 옆에 없으면 레란을 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단 말이야."
오스티앙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냥 내려가. 저 시퍼런 년이 지랄한다고 같이 당하게 놔둘 수는 없잖아."
"하지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 다음에 보면 되잖아." 오스티앙이 실망감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서 가."
세레나가 그의 팔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말도 안돼, 자기야. 같이 갈 수 없다면 차라리 그냥 남겠어. 자기가 옆에 없으면 레란을 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단 말이야."
오스티앙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냥 내려가. 저 시퍼런 년이 지랄한다고 같이 당하게 놔둘 수는 없잖아."
"하지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 다음에 보면 되잖아." 오스티앙이 실망감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서 가."
도리어 치미는 분노를 느낀 오스티앙은 이 울화를 작업의 원동력 삼아서 펄그림의 의뢰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대리석에 드디어 끌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2.1.3. 펄그림의 증오를 사다
이후로 세레나와 오스티앙은 서로 마주 볼 일이 없어졌다. 세레나 드 앙겔루스는 레르 신전의 빛을 캔버스 위에 재현하느라, 오스티앙은 대리석에 생명을 불어넣느라 자기 작업에만 몰두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무언가 심대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 시기는 펄그림이 은색 검의 악마에게 조금씩 좌우되기 시작할 때이며 이 때의 펄그림은 때때로 마주하는 자신의 내면에서 덧없는 자찬들과 자존심을 세우려고 부렸던 허영이 초래한 일들에 대해 괴로워 할 줄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번민은 그를 흔들리게 했고, 오히려 악마는 그런 그의 번민을 파고 들었다.아이언 핸드가 이끄는 52차 대성전 원정대와의 짧은 협조를 끝마친 3군단 본대, 그리고 에이돌론 휘하로 파견되었다가 Murder에서 메가라크니드에게 피박을 쓰고 돌아온 분견대는 곧 합류하여 Perdus라는 공역으로 향한다. 이곳은 28차 원정대가 레르 성계에 이어 2차 목표로 삼은 곳이자 네비게이터 사이에서 금기시되는 공역으로, 이곳은 제국의 우주선이 가는 족족 실종되는 버뮤다 삼각지대와 같은 곳이었다. Perdus에 28차 원정대가 머물던 시점에 오스티앙의 작업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오스티앙 델라푸르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이 흘러가는 사태를 바라보는 심란함에 휩싸여 있었다. 3군단 내부는 앞으로 군단을 덮칠 방탕한 광기가 La Fenice와 파비우스의 실험실로부터 서서히 퍼쳐나가고 있었으며, 3군단 자체도 아직은 버틸 만 하였으나 점점 썩어있는 지도층을 중심으로 무너져 가고 있던 상황이다. 군단 안에는 신실했던 장교들이 펄그림에게 눈먼 아첨을 하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거슬리는 군단 구성원과 장교를 악마의 유혹도 아니라 자의로 배척하기 시작하던 펄그림에게도 그 책임은 너무 컸다. 펄그림에게 교언영색하지 않는 군인들은 군단이 그 교만으로 인해 타 군단으로부터 스스로 고립돼가는 이 상황을 두려워했고, 그리고 그렇게 펄그림의 비위에 거슬리는 구성원 중에는 오스티앙 델라푸르도 끼어 있었다.
52차 대성전 원정대의 디아스포렉스 선단 정벌에 협조하던 와중에 여러모로 심마에 들어있던 펄그림은 계획과 다르게 성급히 적을 공격한 페러스 매너스의 태도를 자신이 무시당한 것이라 여겨서 분노를 곱씹는다. 이 때는 또한 자신이 취미로 깎던 중대장들의 1:1비율 조각상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의 신경이 곤두선 때였고[1], 마침 펄그림은 이 전투가 끝이 나면 오스티앙에게 이 조각들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 볼 필요게 있겠다고 여겼다. 어쩌면 오스티앙 델라푸르라면 문제를 짚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동시에 펄그림은 조각에 완벽성을 부여할 방법을 묻기 이전부터 자신이 물어야 한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꼈다. 분명 자신은 황제의 손에서 모든 존재들보다 완벽하게 창조되지 않았던가? 프라이마크, 자신이 필멸자를 상대로 상담을 받아야 하는가? 펄그림은 자신의 완벽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렇게 작업실에 왕림한 프라이마크와 그의 작품들에 오스티앙은 긴장한다, 그가 프라이마크의 작품을 비평, 분석해야 하는, 그런 입장에 놓인 것이다. 한마디 말이 중요한 순간에서 그의 눈 앞에 서있는 것은 1중대장 율리우스 카에소론, 2중대장 솔로몬 데메테르, 3중대장 마리우스 바에로시안의 조각이었다. 펄그림은 오스티앙에게 말을 꺼냈다. 자네의 작업에 진척이 보이며 그 자네 작업의 주인공이 누구이냐고, 꿇은 무릎을 펴고 내 눈을 쳐다보라는 펄그림의 지시에 자동반사적으로 따르던 오스티앙은 작품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인류의 황제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백옥에 어울리는 주제이리라고 말하였는데, 그런 오스티앙에게 펄그림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자네는 돌에 생명을 부여하는 귀중한 선물을 받았다, 명장 델라푸르. 나도 그것과 비슷한 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는데.’
‘주군께옵서 조각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계심을 들었습니다.’
‘그렇지, 나는 보기에 즐거운 형상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것이 내가 좌절하는 부분이고 그래서 내가 자네한테 도움을 요청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 도움이라시는 말씀을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내가 내 중대장들을 본든 조각들을 하나씩 만들었어, 그런데 내가 3번째 중대장을 완성하고 나니까 말이야,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내가 받았어, 작품에 뭔가 정수나 혼이 빠져있는 그런 느낌 말이야.’
‘주군께옵서 조각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계심을 들었습니다.’
‘그렇지, 나는 보기에 즐거운 형상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것이 내가 좌절하는 부분이고 그래서 내가 자네한테 도움을 요청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 도움이라시는 말씀을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내가 내 중대장들을 본든 조각들을 하나씩 만들었어, 그런데 내가 3번째 중대장을 완성하고 나니까 말이야,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내가 받았어, 작품에 뭔가 정수나 혼이 빠져있는 그런 느낌 말이야.’
오스티앙이 보기에 세 조각은 실제같았고 깎아낸 자국이라곤 없어 마치 돌을 주조해낸 것만 같았지만 그런 완벽성에 대한 그의 감상과는 별개로 오스티앙은 위대한 예술에서 기대할 수 있는 마음을 휘젓는 열정을 펄그림의 말처럼 느낄 수 없었다. 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짓말을 한다. 그런 거짓말을 간파하고 읇조린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조각가가 쳐다본 프라이마크의 표정은 조각가의 뼛골을 얼어붙게 만든다.
‘그들은 환상적입니다.’
‘내게 거짓을 고하지 마라 리멤브란서.‘
‘제가 무엇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까.’‘주군이시여. 그들은 완벽합니다.‘
‘난 진실을 원한다, 수술처럼 아파도, 상처를 치료하는 그런 진실.‘
‘내게 거짓을 고하지 마라 리멤브란서.‘
‘제가 무엇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까.’‘주군이시여. 그들은 완벽합니다.‘
‘난 진실을 원한다, 수술처럼 아파도, 상처를 치료하는 그런 진실.‘
어찌하면 프라이마크의 심기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며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단어를 고르느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오스티앙은 생각한다. 누가 저런 아름다운 자에게 모욕을 끼치는 걸 납득할 수 있겠는가. 그런 오스티앙의 딜레마를 보고, 펄그림은 재확신을 시키는 듯 오스티앙의 등 뒤에서 그의 어깨에 두 손을 얹는다. 그리고 말한다.
‘소중한 친구란 오류와 불완전을 지적하는 자요, 부정한 것을 꾸짖는 것은 숨겨진 보물의 비밀을 발견한 것처럼 존경받는 일이다. 내가 너에게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주겠다.’
프라이마크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오스티앙에게 있어서 그것은 달아날 길을 걸어 잠그는 열쇠와도 같은 통첩이었다.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감히 전과 같이 대답해서도, 대답을 피하여선 안되었다.
‘지나치게 완벽해서, 너무 완벽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마치 저들이 감성보다는 머리로 조각된 것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지나치게 완벽하다 라는 것이 있을 수가 있는 말인가?’
‘지나치게 완벽하다 라는 것이 있을 수가 있는 말인가?’
펄그림이 물었다.
‘이성과 계산의 산물은 전부 다 당연히 아름답고 고귀한 법이다.’
‘위대한 예술은 이성에 관련된 게 아닙니다. 감성에 달린 것입니다.’‘주군께서는 작업에 은하 전체의 완벽한 기술을 총동원하실 수가 있으시지만, 그 행동에 열정이 없으시다면, 그러한 노력도 허사입니다.’
‘완벽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그리고 그 완벽을 추구하고 선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는 사는 거다, 우리를 한계 짓는 모든 것들은 다 옆으로 떨려날 것이다.’
‘위대한 예술은 이성에 관련된 게 아닙니다. 감성에 달린 것입니다.’‘주군께서는 작업에 은하 전체의 완벽한 기술을 총동원하실 수가 있으시지만, 그 행동에 열정이 없으시다면, 그러한 노력도 허사입니다.’
‘완벽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그리고 그 완벽을 추구하고 선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는 사는 거다, 우리를 한계 짓는 모든 것들은 다 옆으로 떨려날 것이다.’
오스티앙은 고개를 저었고, 그는 이미 자신의 단어에 집중하느라 자신이 프라이마크의 화를 돋우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제 주군이시여,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술가가 완벽을 목표로 해서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이 완벽을 바라지 않는 것은 그들의 본질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너의 작품은? 너는 네 작품 안에서 완벽함을 찾지 않는단 소리냐?’
‘그렇다면 너의 작품은? 너는 네 작품 안에서 완벽함을 찾지 않는단 소리냐?’
오스티앙이 대답한다. 이 대답은 오스티앙의 운명을 결정할 종지부 같은 말이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그들이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찾으면서 사람들은 완벽성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에 자기를 탕진합니다만, 제가 완벽성을 기대하고 있다면, 제 작품이 완성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대답을 들은 펄그림은 ‘과연 너는 전문가로구나‘라고 비아냥거리며 으르렁거렸다. 프라이마크의 불쾌감에 대한 경각심이 갑작스럽고도 공포스럽게 오스티앙을 엄습하는데, 피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프라이마크의 턱에선 핏줄이 돋았고 그를 노려보는 흑진주같은 눈은 번들거렸으며, 그리고 오스티앙이 그 안에서 본 동경의 깊이는 그를 공포에 빠뜨렸다. 그는 돌과 천 위에 불가능한 완벽성을 성취하길 강박적으로 강요하던, 그 갈망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던 그 동안의 프라이마크를 겪어왔었다. 이미 늦었다. 오스티앙은 깨달았다. 정직하길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펄그림은 오스티앙이 정직하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프라이마크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그의 작품이 ’거장에게 입증‘받는 것이었고, 펄그림 자신의 첨탑같은 자존심을 받들어줄 꿀 같은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문젯거리도 아니었군, 너와 대화하길 내가 잘한 것 같다. 난 절대 다시 대리석에다 끌을 대면서 시간낭비 같은 짓 하지 않겠다. 시간 내줘서 고맙다, 마스터 델라푸르, 그리고 넌 이제 계속 네 불완전한 작업을 계속해도 좋다.’
펄그림의 두뇌 속을 들여다 본 오스티앙은 공포로 떨었고, 뭐라 말하려는 오스티앙을 딱 자르고 펄그림은 그의 작업실을 뒤로 했다. 이 기억은 오스티앙을 계속 괴롭혔으며, 점점 레르 신전이 재현되가는 La Fenice에서 이 기억에 술잔을 기울이던 그에게 한명의 아스타르테스가 찾아온다. 세레나 드 앙겔루스의 소재를 묻는 그는 10중대장 루시우스였다.
2.1.4. 동료를 뒤로 하다
이런 오스티앙은 세레나와의 사이까지 틀어진다. 작업 진행속도가 신들린 듯 빨라진 오스티앙이 세레나를 바쁜 시간 내어 찾아가서 생긴 일이다. 오랜 시간 문을 두드려서 세레나를 만난 그는 재난지대를 방불케 하는 방과 친구의 전락한 몰골에 기겁하는데, 마른 피가 낭자한 넝마를 걸친 동료의 팔뚝엔 오래된 것부터 신선한 것까지 염증난 칼자국이 그득했다. 무엇보다도 기괴한 것은 냄새로, 사이에 철문을 두고도 진동하던 악취는 화구파편 가득한 전쟁터 한 구석에서 어떤 드럼통 한개가 내뿜는 것이었다, 거기 다가가는 그를 세레나는 눈물 맺힌 눈으로 극구 저지하면서 돌아가라고만 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옷에 묻은 피는 옷에만 묻은게 아니라 벽면 여기 저기에 튀어 있었다. 내가 어찌해야 할 줄 모르겠다고 제발 돌아가 달라고 하는 눈 앞의 여자에게 오스티앙은 솔직해 져서 그녀를 돕고자 하는데, 발작적으로 불안정서를 표출하는 그녀를 돕지 못하고 결국 대화는 말다툼으로 비화된다. 세레나를 위로하려고 오스티앙이 동료에게 한 실력의 찬사는 본의 아닌 앙심이 돼서 오스티앙에게 되돌아왔고, 자신을 천재성에 의존해 성공한 자로 매도하면서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세레나에게 결국 오스티앙도 분노해서 일침하고는 자리를 박찬다. 뒤늦게 세레나는 오스티앙에게 사과했지만 오스티앙은 그냥 떠나가 버렸다. 이 순간, 메이든 월드의 지상에서 펼쳐진 펄그림과 엘드라드 울쓰란의 회담도 역시 깨져버린 상황이었다.시간이 더 흘러 제국 황제의 형상을 거의 갖춘 아나톨리아의 빛나는 백옥에선 이제 돌 부스러기만 깎여 떨어지고 있었고 수개월에 걸친 조각은 완성을 목전에 두었다. 여행의 목적은 도달이 아니라 과정의 음미에 있다는 금언이 있었지만 오스티앙은 그 경구를 믿지 않았는데, 여정의 가치는 결과물에 있는 것이다. 다른 누구였더라면 그 조각상은 전에 이미 완성되었을 것이지만, 진정한 예술가가 돌을 예술로 끄집어 올리는 데엔 천재성의 마지막 몸부림이 요구됐다. 조각상에 마지막 숨결을 불어넣는 것은 오직 이 마지막 단계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이 마지막 불완전성에 의함인지 아니면 생의 허약함에 대한 인간의 이해인진 몰라도, 그는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스스로의 재능을 너무 세분화해서 투영해내다 돌덩어리가 그 일면들을 다시 종합해내지 못할 것을 두려워했다.
거칠고 야만적인 폭음과 폭식, 음란함의 장소가 돼버린 작금의 La Fenice를 방문할 때마다 그곳은 오스티앙에게 충격과 거부감을 안겨줬다. 그의 생활 반경은 식당과 작업실 안으로 축소되었다. 프라이마크가 진두지휘하는 개수공사의 최종단계가 그리는 그 모습엔 야생적이고 향락적인 것이 모여들었는데 마치 그것은 로마제국의 방탕함과 같았고, 그리고 오스티앙은 일상을 부정당하느니 거기서 비껴나 있기를 선택한, 레르에 발디디지 않았던 소수의 리멤브란서였다. 오스티앙은 펄그림이 세레나에게 거대한 천장화를 완성하도록 감독하는 것을 보았는데, 무시무시한 비율을 자랑하는 그것의 주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뱀들과 인간이 서로 뒤얽힌 독기어린 것이었다. 세레나와 찰나간의 눈길을 교환한 그는 전에 쏘아붙였던 혹독한 말이 부끄러웠고, 눈이 맞추쳤을 때 볼 수 있었던 고뇌에 찬 절박함을 떠올린 오스티앙은 훗날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펄그림이 그의 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광대 같은 치장과 문신, 그리고 피어싱을 한 프라이마크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굳어져 버린 오스티앙을, 전에 작업실에서 보았던 광기와 강박으로 질주하는 펄그림의 시선이 관통했다. 그 소름끼치는 기억이 그를 다시 작업실의 돌에 집중시켰다. 도피였다. 그는 군단 내에서 갑자기 반대의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서 어두운 이유가 있으리라고 수상쩍게 여기고 있었지만 어쩌면 28차 대성전 함대에서 이미 더 나은 환경으로의 “이적을 선택해서 사라져버렸다”는 말이 진짜라면 그 리멤브란서들이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설령 그의 의심이 실제로 할만 한 것이라도, 그리고 조각상에 생을 깃들게 할 인간성의 불꽃을 찾아 내는데 그가 성공해서 곧 모든 일을 끝마친다면, 그도 다른 원정대로 이적을 청할 것을 결심했다. 그에게 28차 원정대는 쓰라린 곳으로 변하고 있었고, 그는 여기서 어서 벗어나야 한다는 위기감을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었다.
3. 호루스 헤러시
3.1. Fulgrim
3.1.1. 완벽함
조각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오스티앙은 조심스럽게 작업도구들을 한켠에 내려놓았다. 대리석 덩어리를 위임받은 그 날부터 지금까지 깨어있는 그의 시간은 모두 대리석에 매달려 작업하거나 대리석을 생각하며 소모되었다. 특별한 수단이나 계산을 동원하지 않았고 속개한 작업이지만 그 결과물은 기적적이었다. 보통 이러한 역작은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변질되는 28차 원정대는 오스티앙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었고, 그리고 때문에 그는 수개월동안 작업실 밖으로 나가는 모험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하나의 작업에 매진하는 동안 대성전이 돌아가는 것도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방 밖으로 비로소 나가고 싶었다.첫 망치질로부터 2년이 걸려 완성된 조각상에 함부로 다가가지 않기 위한 노력에는 의지력이 요구됐는데, 예술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조건 중 하나는 더 손대지 말아야 할 시기를 깨닫는 것으로, 그 때가 되면 작가는 펜, 조각가는 끌, 화가는 붓을 작품에서 떼야만 한다. 자신의 천재성에 오스티앙은 지나친 겸손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완성된 작품 안에서 적절히 그가 캐치할 수 있는 흠결들은 그가 보기엔 적절한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공개하고 자신이 받을 찬사를 상상한다, 하나를 완성하고 나면 곧 끌을 새롭게 쥐게 되겠지, 하지만 그 다음에 자신이 새긴 돌이 그 전에 새긴 돌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이 황제의 상이 말 그대로 완벽하다면 자신은 앞으로 더 이상 나은 것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그를 내려다보는 창백한 황제의 형상을 외경심 어린 눈으로 올려다 보는 오스티앙은, 그의 경력동안 많은 정의를 받았다. 완벽주의자, 강박적인 자, 그러나 그가 생각하기로는 예술가가 그 이름에 걸맞기 위해선 실제로 세밀함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어야 한다고 했고, 그 결과물은 돌에 복사한 듯한 황제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완성된 작품은 이제 누구의 것도, 어느 때도 아닌 아닌 시대가 소유한 것이고, 그리고 그는 지금이 그 때임을 알았다, 이제 오스티앙은 공개될 작품과 자신에게 화살처럼 날아들 시선들을 생각하면서 세레나의, 아니, 비단 세레나 뿐만 아닌 다른 예술가들이 가슴에 품어 온 자기파괴적인 의심의 맹아를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작업실 안에 자신뿐이 아니라 펄그림이 어느 새 함께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너는 정말로 그분을 완벽히 담아냈구나.’
차가운 작업실 공기 속에서 오스티앙의 몸에선 식은 땀이 흘렀다. 완전히 실패한 얼굴화장을 한 프라이마크의 얼굴은 그로테스크한 광대 같았고,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펄그림은 곧 눈 앞의 조각상과 같은 황제를 기억한다면서 울라노르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말하는 기억 속의 황제는 냉정했다. 깨져버린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을 쳐다보는 펄그림의 보석 같은 검은 눈 안에서 그는 공포를 일으키는 잔인함을 보았다. 오스티앙의 가슴 속에서 종전에 가지고 있던 조각상에 대한 자부심은 사라지고 곧 그는 프라이마크의 싸늘한 비평을 예상했다. 프라이마크는 이렇게 말한다. 이해하지 못해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는 오스티앙을 맴돌다가 펄그림이 마침내 폭발한다.
‘너 같은 벌레는 나한테 말 걸 자격이 없어! 네놈...!! 내 작품이 너무 뛰어나다고 나한테 그러던 놈이.... 이런 작품을 만들다니... 이렇게 완벽한... 이토록 완벽한... 단 하나만.. 그러나 단 하나만 빼고...
공포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오스티앙은 폭발하는 열등감으로 떠는 프라이마크에게서 공포를 초월하는 극심한 비통함을 읽는데, 그의 분열된 혼은 오스티앙을 해치려는 욕구와 자신에게 조각가가 용서를 구걸하기를 바라는 욕망을 눈 깊숙한 곳에 품고 서로 싸우고 있었다. 동시에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오스티앙이 탄원하자 펄그림은 천번지복할 열변을 토해놓는다. 그는 황제를 끌어내릴 워마스터의 반역을 이야기했고, 이미 그 불길이 이스트반 III을 불살랐음을 알렸으며 이제 발 밑의 이스트반 V에서 몇 주 동안 준비한 끝에 이 검은 모래땅이 영광의 전설로 남을 성지가 되리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오스티앙을 향한 통렬한 비판 또한 동시에 퍼부었다.
‘이해를 못하지, 그렇지? 황제가 그러는 것처럼, 네놈은 이기적인 욕망에 혼자 너무도 도취됐었지.
리멤브란서들이 증발하고 친구들은 배신하고 한때
너한테 소중했던 사람들이 네 주변에서 다 부스러져가는 와중에도 네놈은 네 주변과 그 흐름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네가 뭘 하고 있었지? 너한테 제일 가까운 자를 던져버리고 더 귀한 일을 하겠다고 그들을 잊어버렸다.’
‘만약 네가 귀찮은 걸 참고 네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고 무슨 대업이 진행되는지 알았더라면, 넌 이 조각상에 달려들어서 박살을 내버린 다음에 나한테 네 최신작의 모델이 돼 달라고 빌었겠지. 신질서가 부상한다, 은하의 주인은 더 이상 황제가 아니다.’
뒷걸음질 치던 오스티앙의 등이 황제의 상에 부딪힌다. 프라이마크가 똑같은 높이에서 오스티앙을 마주보며 말했다. 공포가 극에 달했지만 동시에 그 괴로움에 일으러진 펄그림의 목소리는 오스티앙에게 연민도 함께 일으켰고, 펄그림이 허리를 펴서 그 얼굴을 마주보게 않게 되자 또한 그는 안도했다. 다시 그가 반역을 이야기 할 때 오스티앙은 정신을 다잡기 위해 싸웠고, 그리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죄값이라는 소름끼치는 사실과 마주한다. 그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사태를 방관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이 오늘날로 자신을 이끌었다.
‘네 작품은 아직 완벽하지 못하다, 오스티앙.’
돌로 철을 긁는 소름돋는 소리가 들렸다. 조각상을 사이에 두고 오스티앙을 마주본 펄그림이
외계의 칼을 찔러넣었다. 그 칼은 조각상을 꿰뚫고 오스티앙의 가슴팍까지도 관통했다. 마지막 힘으로 오스티앙이 쳐다본 펄그림은 경멸과 후회가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완벽해졌다.’
펄그림이 말했다.
[1]
레르에 도달하기 전 페러스 매너스가 펄그림의 미완성 조각품을 보고 감흥을 느끼지 못한 일에 대한 뒤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