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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5AA65> 오수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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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수전은 무게의 단위인 수(銖)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즉 무게가 5수인 동전.오수전은 고대 중국의 동전으로, 당시 중국과 동아시아 주변 나라들까지 널리 사용했던 화폐이다. 한무제(漢武帝) 재위기인 기원전 118년부터 주조되기 시작했으며 약 700년간 꾸준히 유통되다 당고조(唐高祖) 재위기인 621년에 개원통보(開元通寶)로 대체되어 유통에서 퇴장하였다.
아직 자체 화폐가 없었던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사용되어 초기 철기시대 및 가야, 백제 유적(대표적으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다. 고대세계의 국제 화폐였던 셈[1].
한무제때부터 평제때 까지 전한시기에 발행된 오수전만 280억개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나라의 상업발전이 엄청난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
2. 종류
주조 시 표면에 생긴 기호에 따라 천상횡문(穿上橫文), 천하횡문(穿下橫文), 천상반성(穿上半星)·천하반성(穿下半星)·사각결문(四角決文), 사출오수(四出五銖) 등이 있다. 또한 둘레를 갈아버린 마곽오수(磨郭五銖)·전륜오수(剪輪五銖), 네모난 구멍을 원형으로 잘라낸 형태의 연환오수(延環五銖), 오와 수의 위치가 바뀐 반오수(半五銖 또는 傳形) 등이 있다.3. 분포
철기문화의 유입, 낙랑문화의 출현과 함께 해 출토지역도 대부분 중국과 가까운 북부 지방에 집중된다. 그리고 북부 지방의 출토량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남부 지방에도 약간 출토된다.[2]4. 의미
출현 시기가 명확하여 우리나라의 청동기 후기의 주요 유물로써 이 시기 연대결정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출토량도 소량이고, 또 당시가 화폐경제 사회가 아니었으므로 실용화폐로서 유통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장식품이나 해외로부터 물건을 수입했을때 정도에나 제한적으로 쓰이던 화폐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백제의 무령왕릉을 비롯한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도 발굴되기도 하는데, 이는 당시 한반도와 중국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을 보여준다.자매품으로 명도전, 반량전이 있다.
사족으로 삼국지 시대엔 당시 상국이었던 동탁이 천자(天子)의 명을 개무시하면서 자기 맘대로 정치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동탁은 오수전을 조잡한 품질로 마구 발행하여 인플레이션을 초래해 백성들의 삶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오늘날의 짐바브웨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셈. 이런 사례는 계속 반복되는데 유비의 촉한과 손권의 오나라는 고액전은 발행하면서 민간에 화폐로 재정이익 시뇨리지를 얻었다. 대표적으로 촉한은 100전짜리 동전인 직백오수(直百五銖), 오나라는 1000전짜리 대천당천(大泉當千)을 주조하였다.
남북조시대 양 시기에는 양주(揚州), 형주(荊州), 영주(郢州), 강주(江州), 상주(湘州), 양주(梁州), 익주(益州)만 전을 사용했고 교주(交州)와 광주(廣州)는 금과 은을 사용했으며 나머지 주는 미곡(米穀)과 포백(布帛)을 섞어서 교환했다. 이에 소연은 오수전을 주조했는데 이 때 외변과 윤곽이 없는 전을 여전(女錢)이라 칭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여전을 사사로이 교환했으며 그것을 금지시켰음에도 계속 사용하자 마침내 논의하여 동전을 폐지했다. 후에 마침내 철전(鐵錢)을 새롭게 주조했다.
5. 같이보기
[1]
훗날 중국
명나라의 화폐인
영락통보도 이렇게 동아시아 각국에서 국제 기축통화 비슷하게 널리 쓰였다. 그래서 전국시대 일본의 영주였던 오다 노부나가의 군대 깃발에도
영락통보가 그려져 있을 정도였다.
[2]
서울풍납토성에서 오수전 1점, 강릉 초당동에서 오수전 2점, 여수 거문도에서 오수전 980점, 창원 다호리유적에서 오수점 3점, 창원 성산에서 오수전 1점, 사천 늑도유적에서 오수전 1점, 경산시 임당동에서 오수전 3점, 영천시 용전리 돌널무덤에서 오수점 3점, 제주시 산지항에서 오수전 4점, 이 밖에도 제주도 출토품으로 전하는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소장의 오수전 11점, 신안 해저침몰선에서 오수전 2점이 나오는 등 여러 곳에서 출토되었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와 중국의 교류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