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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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철종의 황녀
영혜옹주 | 永惠翁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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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조선 철종의 왕녀
영혜옹주 | 永惠翁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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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혜옹주묘 전경 | |||
출생 | 1858년 | ||
조선
한성부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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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72년 9월 3일 (향년 14세) | ||
조선
한성부 중부
관인방 사저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30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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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606-1 | ||
재위기간 | 조선 영혜옹주 | ||
1866년 3월 29일 ~ 1872년 9월 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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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본관 | 전주 이씨 | |
부모 |
부황
철종 장황제 모친 숙의 범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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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
부황 기준 5남 6녀 중 4녀 모친 기준 1녀 중 장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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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금릉위
박영효 (錦陵尉 朴泳孝, 1861 ~ 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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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호 |
영숙옹주(永淑翁主) → 영혜옹주(永惠翁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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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철종의 넷째 딸. 조선시대 때 태어난 조선의 마지막 왕녀이다.[1]2. 생애
1858년(철종 9) 궁인이었던 범씨에게서 태어났다. 철종의 5남 6녀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녀로, 사실상 철종의 무남독녀로 볼 수 있다.[2]1866년(고종 3) 2월 13일, 8세의 나이로 정식으로 옹주로 책봉되고, 어머니는 궁인에서 종2품 숙의로 품계가 오른다. 이때 처음에는 영숙옹주(永淑翁主)로 책봉되었다가[3], 같은 날 영혜(永惠)로 작호가 바뀌었다.[4]
이후 도사 박원양의 아들 박영효와 혼인했으나,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14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5] 조선의 법도에 따르면, 부마는 왕의 사위이므로 아내인 공주나 옹주가 죽더라도 재혼을 할 수 없는 것이 국법이었다.
그러나 박영효는 고종의 허락을 받아 새로운 후처를 들이진 못했지만 궁녀 범씨 비롯한 여러 궁인들을 첩으로 들여 자녀를 낳았고 증손주까지도 봤다.[6] 첩들에게서 자식을 봤지만 당시 조선의 법도 상 박영효의 정실부인은 영혜옹주 1명이었기에 죽은 후에도 영혜옹주와 함께 묻혔다.
3. 가족 관계
- 시부 : 공조판서 증 영의정 정간공 박원양(工曹判書 贈 領議政 貞簡公 朴元陽, 1804 ~ 1884)
- 시모 : 전의 이씨(全義 李氏, 1817 ~ 1884) - 이윤행(李允行)의 딸
- 남편 : 금릉위 박영효(錦陵尉 朴泳孝, 1861 ~ 1939)
4. 관련 문서
[1]
덕혜옹주를 조선의 마지막 왕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덕혜옹주는 조선 멸망(1910년) 이후인 1912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조선/대한제국에서 왕녀로서 산 적은 없다. 따지자면 덕혜옹주는 한국사에서 '왕이었던 사람의 딸'로 태어난 마지막 사람이고, 영혜옹주는 조선이란 나라가 건재했을 때 책봉받은 마지막 왕녀이다.
[2]
헌종도 숙의 김씨에게서 딸을 얻었지만, 옹주로 책봉 받지도 못하고 요절했다.
[3]
대왕대비가 전교하기를, "
철종(哲宗) 때의
궁인(宮人)인 범씨(范氏)가 낳은 딸이 지금 9살이 되었다. 그를 영숙옹주(永淑翁主)로 봉하고 범씨는 숙의(淑儀)로 봉해줄 것에 대하여 오늘 정사(政事)에 하비(下批)하도록 하라."하였다.《고종 실록 3권, 고종 3년 2월 13일 계묘 2번째 기사》
[4]
"대왕대비의 하교를 받았으니 귀주(貴主)에 대한 봉작을 '영혜(永惠)'로 고쳐 써서 들이라." 하였다.《고종 실록 3권, 고종 3년 2월 13일 계묘 3번째 기사》
[5]
죽기 전에 병이 심하다는 실록의 기록과
철인왕후의 묘지문에서 철인왕후가 병에 잘 걸리는 옹주를 걱정하였다는 지문이 있는 걸로 보아 선천적으로 병약했던 모양이다.
[6]
박영효의 손녀
박찬주는
의친왕의 차남
이우와 결혼했다.
일본은 이우를
영친왕이나
이건(의친왕의 장남)처럼 일본 여성과 결혼시키려 했으나, 이우는 조선 여성과의 결혼을 고집하여 일제에 맞서서
박찬주와 결혼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