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삼한벽상공신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개국공신 | |||
1등 | ||||
홍유 | 배현경 | 신숭겸 | 복지겸 | |
2등 | ||||
견권 | 능식 | 권신 | 염상 | |
김락 | 연주 | 마난 | ||
3등 | ||||
2천여 명(사서에 전하지 않음) | ||||
삼한공신 | ||||
유금필 ·
박술희 ·
최지몽 ·
왕식렴 ·
박양유 ·
김견술 ·
서필 이상 배향공신 강공훤 · 강궁진 · 권행 · 금용식 · 김극렴 · 김선평 · 김유렴 · 김인윤 · 김일긍 · 나총례 · 류차달 · 박지윤 · 소격달 · 왕경 · 염형명 · 원극유 · 윤신달 · 이금서 · 이능일 · 장정필 · 최정헌 · 허선명 그 외 다수 |
}}}}}}}}} |
[clearfix]
1. 개요
廉湘/廉相생몰연도 미상
고려의 무장이자 개국공신
2. 생애
태봉의 마군장군으로 4명의 마군장( 신숭겸, 홍유, 배현경, 복지겸)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로 국호가 회복된 후 개국 2등 공신에 봉해졌다. 1등 공신들 중 복지겸이 야전 사령관으로 활동한 다른 3명과 맡은 역할이 달랐던 것처럼 염상 또한 같은 2등 공신으로 일선 지휘관으로 활동한 김락이나 견권 등과는 장기가 달랐다.918년 9월 복지겸이 청주 출신 순군리 임춘길(林春吉)과 동향의 배총규(裵悤規), 계천(季川: 전남 장흥) 사람 강길(康吉), 아차귀(阿次貴)와 매곡(昧谷: 충북 회인) 사람 경종(景琮)의 역모 사실을 밝혀냈을 때 왕건의 측근 중에서도 청주 출신이라 그 곳 사정에 밝았던 현율(玄律)은 경종이 매곡성주 공직(龔直)의 매제임을 들어 죽이는 대신 회유할 것을 권했다. 매곡성과 그곳을 다스리는 공직의 중요성을 모를리 없었던 왕건은 현율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들을 용서하려 했는데 염상이 나서 강하게 반대해 도망친 배총규를 제외한 일당 전원을 처형했으며 현율의 예상대로 공직은 후백제에 투항해 오랫동안 고려의 발목을 잡게된다. 이후 이흔암의 역모도 밝혀내어 그를 숙청하는데 일조했으며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 고려사>에 등장하는데 내용은 모두 축성에 관한 기록이다.
928년 2월에 대상 염상과 경(卿) 능강 등을 보내어 안북부(安北府)에 성을 쌓고, 원윤 박권을 진두(鎭頭)로 삼아 개정(開定) 군사 7백 명을 거느리고 이를 지키게 하였다.
929년 (태조 12년), 봄 3월에 대상 염상을 보내어 안정진(평남 순안)에 성을 쌓고 원윤 언수고에게 이를 지키도록 하며, 또 영청현(평남 영유)에 성을 쌓았다.
930년 (태조 13년) 8월, 대상 염상을 보내어 마산(馬山)에 성을 쌓고 안수진(安水鎭)이라 이름하였으며, 정조 흔행을 진두로 삼았다.
934년 (태조 17년) 겨울, 이해에 대상 염상을 보내어 통해진(평남 평원군 영유)에 성을 쌓고, 원보 재훤을 진두로 삼았다.
고려 건국기부터 시작해 고려에서 이름 꽤나 날린 무장들은 거의 모두 참전한 일리천 전투까지 참전 기록은 전혀 없는데 종합하면 전투 지휘보다는 축성과 진지 구축에 조예가 깊었던 공병 사령관으로 추측된다.
943년(태조 26년) 5월 왕유, 박수문과 함께 임종 직전 왕건의 유언을 받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3. 대중매체
- 2000년 KBS1 드라마 < 태조 왕건>에서는 배우 심우창[1]이 연기했다. 궁예의 내군장군인 은부의 측근으로 처음 등장했으며 한때는 은부와 함께 왕건을 견제하는 한편 아무런 거리낌없이 미향의 목숨도 거두려 하는 등 궁예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으나 철원으로 천도한 이후에 궁예의 폭정에 점차 실망하고 회의를 느끼던 차에[2] 석총대사 끔살 사건 이후 은부에 의해 내군에서 방출되어 군부로 자리를 옮겼으며[3] 그 뒤에는 배현경의 아이디어로 왕건을 옹립하려는 4마군장들의 회유에 넘어가 왕건의 쿠데타에 가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쿠데타에서 그의 임무는 내군 교란으로 내군에서 근무했던 이력 덕분에 염상이 대놓고 내군부장 장일을 찾아갔음에도 아무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고 염상의 설득으로 쿠데타에 합류한 장일이 내군의 눈과 귀를 막아버리면서 쿠데타를 마무리짓는 데 성공하여 왕건 정권이 성립될 수 있었다. 이후 조연급 무장으로서 틈틈이 최후반까지 등장하며 신숭겸 사후의 4기 오프닝에서는 박술희, 홍유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본래 박술희가 역사상으로는 궁예의 호위 무장 출신으로 알려지지 않은 경로로 어느 순간 왕건의 측근이 되었기에 <태조 왕건>에서 묘사한 염상과 장일의 행적은 역사상 박술희의 행적과 상당히 유사하다.
- 2002년 KBS 드라마 < 제국의 아침>에서는 배우 백인철[4]이 연기했다. 순군부령(지금의 합동참모의장)으로 나오는데 혜종 사후의 행적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비중은 적다. 왕규를 지나치게 경계하고[5] 왕식렴의 반란에 맞서지 않고 동참해 왕규 일파를 몰아내지만 이내 토사구팽당하는데, 토사구팽을 당할 때도 저항하지 않고 "태조를 보좌하며 삼한 통일 전쟁에서 활약했을 때가 좋았다" 라고 한탄하는 것으로 끝. 애초부터 박술희가 왕규와 함께 혜종과 흥화군의 후견인이었건만 정작 흥화군을 몰아내는 데 앞장서면서 "그가 후계자인 것은 말도 안되는 짓"이라고 떠들어 대는 등 연달아 어리석은 짓들을 벌였고[6], 박술희의 잔당들을 일찍부터 처리할 생각이었던 왕식렴에 의해 박술희의 세력을 모조리 말아먹고 박술희마저 비명에 가게 만들었다. 그나마 극중에서 대놓고 부정적으로 묘사된 것은 아니고, 비운의 충신 정도로 나온 것이 다행일까. 하지만 보는 이가 답답한 내부의 적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왕규가 측근들의 말조차 무시하는 고집불통이 문제라면[7], 염상은 정치판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력을 말아먹고 심지어 저항조차 안하는 것으로 두 사람이 쌍으로 양대산맥급 트롤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
2003년 KBS 드라마 <
무인시대>에서는 양숙 역, 2014년 KBS 드라마 <
정도전>에서는 우현보 역. 참고로
타짜에서는 오 장군 역.
[2]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점차 궁예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궁예가 조회에서
기침한 신하를 때려죽이라고 할 때 처음에는 염상에게 명령을 내렸으나 염상이 머뭇거리자
금대가 대신 그 신하를 죽인다. 바로 "염 부장은 뭐하고 있는거냐? 어서 쳐죽이라고 하지 않았느냐?"하는 대사의 염 부장이 염상이다.
[3]
은부가 말하기를 "내군이란 궁예의 개와도 같이 무조건 충성해야 하는데 염상은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은부는
종간에게 "염상을 군부로 보냈다"고 말하면서 "목숨을 거두려 했으나 그간의 정이 있어 그렇게 처리했다"고 알린다.
[4]
2000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환선길 역.
[5]
염상의 잘못만은 아닌 것이, 극중에서는 왕규와 박술희가 서로 협력하며 혜종을 보좌하라는 것이 왕건의 뜻인 것으로 묘사되는데 정작 왕규는 군부 조직에 무지하기도 하고 은연중에 경시하는 태도를 수시로 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박술희를 유배보내려는 생각까지 하는데, 측근들조차 "박술희를 유배 보내는 방법으로 병권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고 간언했지만 "잠시 유배 보내는 걸로 병권을 빌려 왕식렴을 제거한 후에 다시 불러서 더 잘 대우해 주면 되지 않느냐"라는. 박술희나 염상 등이 들으면 분개할 만한 말을 내뱉는다. 혜종도 반대하나, 왕규만 무조건 지지하지 근시안을 가진 장화왕후 역시 박술희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나중에 다시 데려오면 그만이라고 내치는데 정작 왕식렴을 압박하고 대등하게 견제할 수 있던 것은 왕규가 아니라 박술희였다. 당장 왕식렴부터가 "태후나 시중(왕규)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저 병부령 박술희야."라고 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박술희를 두려워했다.
[6]
다만 엄밀히 따지면 박술희와 왕규는 혜종의 후견인이었다가 혜종의 혈통이 이어야한다는 생각으로 흥화군을 지지한 것이다. 작중의 혜종과 의화왕후는 박술희를 불러 흥화군 대신 태자 요를 후계자로 삼고 싶다는 뜻을 밝힌 적도 있었다. 당연히 흥화군이 대를 이어야 한다는 장화왕후의 겁박으로 철회하긴 했지만. 당장 왕식렴에게 박술희가 살해당하는 이유도 흥화군을 지지한다는 이유였다.
[7]
몰락 때 후회하는 것이 박술희의 문제였다. 당장 측근들부터가 박술희가 없어서 군대가 명령을 안 듣는다고 아무리 조언을 하더라도 강하게 밀어붙이면 그만이라는 무식한 태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