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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A5445><colcolor=#fbe673> 출생 | 연대 미상 | ||
부여 | |||
사망 | 396년 추정 | ||
부여 | |||
능묘 | 미상 | ||
재위기간 | 제9대 군주 | ||
연대 미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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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A5445><colcolor=#fbe673> 성씨 | 여(餘) | |
휘 | 울(蔚) | ||
전임 | 현왕 | ||
왕호 | 울왕(蔚王)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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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여의 군주이자, 오호십육국시대 모용선비족의 전연과 후연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부여의 유민이었다. 저족이 세운 전진의 멸망에 기여했으며, 5호 16국시대의 두 강대국(전연, 전진)의 몰락을 모두 지켜본 인물이기도 했다.성이 '여'씨이고 이름이 '울'이었다. 성씨가 딱 부여의 뒷 글자와 한자도 같기 때문에 일단은 부여 당대에 이미 국호에서 따온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했거나 혹은 나라가 멸망하면서 성씨를 옛 국호에서 따와 사용하기 시작한 거라고 추정된다.
백제의 왕성인 부여씨도 여씨로 축약해 사용하기도 했기 때문에 혹시 백제의 방계 왕족이 아닌가 하는 설도 있긴 하지만 일단은 당대에 대량의 부여 유민이 모용선비에게 끌려간 정황이 있으며 또한 기록상으로도 당대인들이 그를 딱히 백제와 연관 짓진 않았기 때문에 통설은 부여 유민으로 본다. 여씨가 부여씨를 축약한 것이 아니냐는 견해에 대해서는 다른 왕족들 없이 달랑 이 인물 하나만 등장하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게다가 이전에도 부여 왕가에서 부여씨를 사용했다는 다른 기록도 전혀 없기 때문에 일단은 보수적으로 여씨를 칭했다고까지밖에는 추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울'(蔚)을 '위'(尉)의 오기로 보아 원래 부여식 이름은 따로 있었고 한자로 누군가의 2세임을 나타내려고 했다는 해석도 있으나 일단 따로 이름에 대한 별다른 기록도 없을 뿐더러 이름 표기 또한 일관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볼 때 원래 부여식 이름이 따로 있었더라도 '울'을 대외적인 이름으로 사용하긴 한 것으로 보인다.
2. 생애
부여의 마지막 군주인 현왕과의 관계는 확실치 않으나, 여울이 '옛 부여왕'(故扶餘王)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아들로 추정된다. 다만 그가 부여에서 현왕과 같이 끌려온 것인지 현왕이 모용황의 딸 모용씨와 결혼해 낳은 아들인지는 알 수 없다.370년, 황제 부견의 전진군이 전연의 수도 업성을 포위하자 당시 전연의 산기시랑이었던 그는 부여, 고구려 및 상당군(上黨郡)에서 끌려온 인질 500여 명을 이끌고 함께 업성의 북문을 열어 전진의 군대를 맞이해 전연의 멸망에 큰 기여를 했다. 이후 전진에 정착하여 지냈다.
383년, 부견이 비수대전으로 패배하고, 모용수가 다음해에 후연을 건국하자, 부여울은 모용수에게 붙어 형양태수의 관직을 받았다. 그는 창려 일대에서 영향력이 컸는지, 뒤이어 창려 일대의 선비족과 여러 부락이 모용수에게 귀순했다. 더불어 모용수는 동년 정월에 그를 정동장군, 통부좌사마, 부여왕으로 삼았다.[1] 군사를 관할하는 통부좌사마의 관직에 임용된 걸 보면 자체적으로 동원가능한 군사력이 어느 정도 있었던 모양이다.
392년, 우광록대부 벼슬에 있다가 좌복야로 승진했고, 396년에는 태부까지 되었지만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없다. 다만 태부가 죽은 사람들에게도 내려지는 것을 고려하면 이 해에 죽었다고도 볼 수 있다.
[1]
여기서 '부여왕'이라는 칭호는 부여 지역의 제후로 삼은 게 아니라 그냥 명예직이었다. 기록에서 여울이 주로 활동했던 하북성 지역은 부여의 중심지인 녹산 및 부여성이 있었던 눙안 지역과 거리가 꽤 멀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