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역의 실존 인물에 대한 내용은 야율분노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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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Part 1
비상]]
서도밴드
2023. 12. 15.[[고려 거란 전쟁/음악#s-2.2| Part 2
폭풍]]
김장훈
2023. 12. 29.[[고려 거란 전쟁/음악#s-2.3| Part 3
적동
(붉은겨울)]]
안예은
2024. 01. 18.[[고려 거란 전쟁/음악#s-2.4| Part 4
그 겨울에
나는]]
IYAGI (이야기)
2024. 02. 03.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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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율분노 耶律盆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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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 |
지위 | 선봉도통 (4 ~ 15회) |
등장회차 | 4 ~ 15회 |
배우 | |
이상홍[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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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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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드라마 〈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배우 이상홍이 맡았다. 본작의 중간 보스로, 용맹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2차 원정에서 맹활약을 한다.
2. 작중 행적
2.1. 4 ~ 6회
4회에선 고려 사신이 야율융서를 알현할 때 처음 등장. 이후 야율융서와 함께 출병하게 된다.5~6회에선 선봉도통으로서 투석기 발사를 지시하거나 공성전 사이에 보병을 투입하는 등 흥화진 공격을 주도하나 이틀이 지나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야율융서는 일단은 딱히 아무 벌도 내리지 않았지만, 소배압은 최대한 공격을 늦춰선 안 된다며 산성이라서 돌파하기 힘드니까 군사의 수로 밀어붙이라는 식으로 조언을 건넨다.[2][3] 7일째에도 함락하지 못하자 이에 요 성종에게 크게 질책을 당한다.[4]
2.2. 7회
인간방패까지 사용했지만, 결국 흥화진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요 성종에게 목이 떨어질 뻔하나 소배압의 변호로 겨우 살아나 통주까지 오는데[5], 1차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야율적로를 시켜 삼수채를 통해 본진을 기습해 강조를 사로잡을 계책을 꾸미게 된다. 이때 도통(소배압) 몰래 이래도 되냐는 야율적로의 말에 이대로 앉아서 도통에게 공을 다 뺏길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원래 소배압에게 라이벌 의식이 있었거나, 흥화진을 끝내 함락하지 못한 것이 못내 초조했던 모양이다. 그 뒤엔 야율적로와 함께 고려 본진을 기습해 바둑을 두던 강조와 이현운을 사로잡는다.2.3. 8회
왜 자신에게 말도 없이 독단행동을 했느냐고 소배압에게 분노어린 일갈을 당한다.[6] 이에 지휘관들을 잡았으니 흥화진에 비할 수 없이 큰 공이 아니냐고 반박하지만, 소배압은 하루만 더 있었으면 전멸시킬 수 있었을 고려군을 사방으로 흩어놓아 흥화진처럼 성의 수비만 증강시키게 될 것이라 한다. 이에 목표인 강조를 잡았으니 된 거 아니냐고 묻지만, 소배압은 야율융서의 목표는 고려의 정복이기에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소배압이 팩폭으로 야율분노의 삽질을 조목조목 지적한 덕분에 시청자들 사이에서 '이름값 한다', '분노유발자'(...) 드립이 나오고 있다.[7]2.4. 9 ~ 10회
9회에선 거짓 친조 요청을 하러 사신으로 온 강감찬을 다른 신하들과 주시한다. 강감찬이 서경에 항복을 권한다는 명목으로 서경성에 가고 난 후 돌아오지 않자 소배압이 군을 이끌 때 야율적로와 함께 나오다가 강감찬이 돌아온 걸 보게 된다.10회에선 소배압 및 다른 장수들과 함께 있다가 전령 덕분에 다들 강감찬이 거짓말을 한 것을 알아차리고, 이후 서경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군사회의에 참여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2.5. 11회
서경성이 아직 함락되지 못한 상황에서 개경으로 진격해서 고려 왕을 붙잡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서 야율융서가 서경을 놔두고 개경으로 진격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이때도 지난번 삼수채 전투에서의 일로 소배압에게 질책 받았던 것을 까먹은 모양인지 대놓고 뻗대면서 자기 말대로 해야 승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결국 소배압으로부터 고려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며 이 전쟁에서 또 지게 만든다는 소리를 듣는다.[8][9]2.6. 12회
개경이 진입한 뒤, 곽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거란의 무장과 관료들 일제히 당황하는 와중에도 그냥 내려가서 고려 국왕 잡아오면 되지 않냐며, 황제께서 하시는 첫 친정이고 송나라를 비롯한 모든 제후국들이 이 전쟁을 주시하고 있는데 이대로 철군이 말이 되겠냐며 출정을 요청한다. 이에 신중론으로 반대하는 소배압에게까지 요 성종 듣기 좋은 소리로 포장하며 강짜를 부리는 등 점점 무리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소배압도 야율분노를 두고 "15살 어린애도 이런 식으로 지휘를 하지 않는다." 라면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지경까지 왔다.2.7. 13회
소배압이 강감찬과 2차 담판을 짓는 것을 부관으로부터 엿들은 후, 군사들을 보내 거란 진영을 감시하려는 강감찬을 추격끝에 붙잡았다. 이후 야율융서가 강조를 죽인 도끼로 강감찬을 죽이려하지만, 야율분노가 강감찬에게서 알아낼 정보가 많다며 만류했다. 그날 밤 강감찬을 무자비하게 고문하여 그로부터 정보를 캐는데 집중한다.2.8. 14회
강감찬을 고문하면서 고려 국왕의 현재 위치와 거짓 친조에 대한 진실을 알아내려 하지만 오히려 강감찬은 입을 열지 않으면서 모진 고문으로 죽어나갈 뿐이었고, 그 자를 살려두면서 반드시 정보를 얻어내겠다고 야율융서에게 보고한다. 이번에도 야율적로와 추격대를 보내서 몽진하는 고려 국왕의 뒤를 쫓지만 결국 잡지 못하고 실패하며, 오히려 기병들 일부가 군영을 이탈하게 만드는 사태가 벌어진다. 고려 국왕의 태도에 진심으로 분노한 야율융서가 개경의 남쪽으로 진격할 것을 명령하자 야율적로 등 다른 장수들과 함께 기뻐하며 따른다.[10] 이후에는 소배압이 군사들을 이끌고 강감찬을 탈출시켰다는 소식에 왜 못 막았냐며 오히려 부하를 갈구고 이를 간다.2.9. 15회
해이해진 군기 등으로 인해 계속된 남진에 대해 고민하던 야율융서에게 끝까지 남쪽으로의 진군을 주장[11]했으나 끝내 철군하게 되면서 당혹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는 소배압의 설득으로 인해 갈등하던 야율융서가 결국 마음을 다잡고 철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국 부장 야율적로와 함께 철군하는 부대의 선봉으로 나서는데, 실제 역사와 달리 귀주 협곡에서 양규의 효시에 목이 꿰뚫려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다.[12][13]3. 인간관계
- 야율융서 - 야율분노의 주군. 흥화진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자신을 죽이려고 했지만, 통주 전투 이후에는 자신을 다시 신임하게 된다.
- 소배압 - 야율분노의 상관. 자신을 수차례 변호해주었지만 야율분노는 공을 올리고 싶었기에 독단적으로 기습을 감행해버리고, 소배압은 야율분노에게 분노하였다. 이후에도 독단적으로 서경 함락을 포기하는 대신 개경을 공략해서 고려 왕을 잡자는 조언을 하여 갈등을 일으킨다. 초반에는 소배압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가면 갈수록 라이벌 의식을 혼자서 불태우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으나 야율분노 본인이 먼저 사망하면서 갈등관계가 끝나게 된다.
- 야율적로 - 야율분노의 부장.
- 양규 - 강감찬과 소배압이 그렇듯이 야율분노와 대적 관계에 서 있는 인물. 흥화진 전투 당시 처음 마주하며, 철군하던 중 양규 부대의 화살에 맞고 사망한다.
4. 묘사
원작 소설에서는 2차 전쟁 당시 나이가 62세의 노장으로 나오는데, 공신의 자손으로서 이른 나이에 관직에 등용되었으나 성격이 너무 급하고 엄격하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이 꺼려 높이 중용되지는 못하고 한직만 전전하여 평소부터 이에 대해 매우 한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14][15] 고려 정벌이 결정되었을 당시 자신의 생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여 아율융서에게 찾아가 신명을 다하겠다고 하여 선봉도통 자리에 올라 평생 처음으로 중용되었기에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정벌에 임한다고 묘사되었다. 즉, 인생 통틀어 마지막 기회이기에 매우 적극적으로 정벌에 나선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방영 당시 46세[16]의 배우가 담당하여 더 젊게 나오며, 거란의 장수로서 자신만의 공을 세우는 데에 집착하는 공명심이 강한 모습을 보인다.[17] 극 중 자신을 변호해준 상관인 소배압마저도 공을 빼앗기기 싫다는 이유와 흥화진에서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독단적으로 기습을 강행한다는 것이 소인배스럽게 비춰지기 때문이다. 참고로 소배압은 야율분노가 흥화진을 함락시키지 못할 때에도 야율분노의 잘못이 아니라 고려군이 잘 싸운 것이라고 변호해주었고,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고 처형당할 위기에서도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자고 하여 야율분노의 목숨을 구해주었기에 더 비교되는 모습이다. 물론 흥화진을 함락시키지 못한 것이 본인의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를 남겨서 그런 것으로 보이긴 하나, 꼼짝 없이 처형당할 위기에서 살려준 은인에게 저러는 것이 맞냐는 반응이 많다.[18]결과적으로 드라마의 최대 피해자 중 하나다. 실제 역사에서는 전쟁 중 딱히 특별한 실책을 저지르지도 않았지만[19][20], 아무래도 거란이 결과적으로 2차 여요전쟁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이유를 보여줄 필요가 있는데 소배압은 강감찬의 라이벌로서 보정이 들어가 유능함을 보여줘야 하다 보니 결국 야율분노에게 패배의 이유 중 상당한 부분을 몰아주려는 듯하기에 일종의 밸런스 패치인 셈이다. 또한, 실제 역사에서 전쟁 후 거란에 돌아가 북원대왕에 봉해지면서 융숭한 대우를 받았으나 본작에서는 아예 양규가 쏜 효시를 맞고 전사한다. 이는 양규를 띄어주기 위해서라도 양규에 의해 죽임을 당할 적군의 네임드 장수가 필요했는데, 야율분노가 여러므로 그에 부합하는 장수 중 한 명[21]이었던 것으로 보인다.[22]
5. 어록
Ойлголоо, удирдагч. (예, 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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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임질 테니 자넨 시키는 대로 하게. 가만히 앉아서 모든 전공을
도통한테 빼앗길 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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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십니까?
적장을 생포했지 않습니까? 그 덕에 도통께서 무너뜨리지 못하던 검차진도... 하루 아침에 무너뜨렸습니다. 이만하면, 흥화진 따위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대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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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미도에서는 훈련병 재용,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여진족 추장,
안시성에서는
이도종을 연기했다. 또한
정도전 15회에서 남은에게 곤장을 맞는 권문세가댁 마름을 맡았다.
[2]
사실 원작에서는 흥화진을 상대로 한 공성전을 야율분노가 아니라 소배압 등이 주도하며, 거란군은 이후 소배압의 명을 받들어
소혜의 지시 하에 북과 징을 치면서 공격하는 척 해서 고려군이 잠들지 못하도록 지치게끔 하려고 시도한다. 다만 흥화진이 산성이라서 급하게 공략하기 어렵다고 장수들에게 말하는 부분은 원작과 동일하다.
[3]
참고로 원작에서 야율분노가 양규의 부대와 처음 만난 것은 흥화진 전투 시점이 아니라 거란군이 퇴각하던 도중 완한령 부근에서의 일인데, 고려군은 평야에 미리 철질려 등을 뿌려놓고 산 중간중간에 매복을 하던 상태였고, 거란군이 교전 도중 화살 세례와 도끼에 맞으며 썰려나가는 등 피해가 커지자 분노하며 전투 이후 삼수채로부터 10리 지점에 영채를 쌓아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4]
소배압이 고려군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잘 싸운다고 말했지만 야율융서는 변호하지 말라고 일축하며, 그 날 안에 함락시키지 못하면 참수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5]
원작에서는 흥화진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고려군을 보고 자신만만하게 선봉으로 나선다. 그러다가 갑자기 화살 세례를 받은 채 고려군의 방패진이 뒤로 물러나며 나오게 된 고려의 검차진 및 철기병을 처음 보고서는 크게 당황하여 보병들과 기병대가 궤멸적인 피해를 입는 등의 수모를 겪는데, 소배압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라서 딱히 이를 질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이후 거란의 장수들이 고려의 검차진을 연구하면서 하루종일 격전을 벌이며 비슷한 일을 겪게 된다.
[6]
결과적으로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는 국가원수나 최고 지휘관의 명령도 받지 않고 일개 부하 장수가 군대를 무단으로 움직인 행위에 해당한다. 이런 행동이 용인된다면 결국 엄격하게 유지되어야 할 군기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최악의 경우에는 이런 행동이 군사 반란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상은커녕 처벌을 받아야할 위험한 행동을 벌인 것이다. 괜히 현대의 모든 국가에서 사적으로 군 병력을 움직이는 행위를 엄격히 처벌하고 있는게 아니다.
12.12 군사반란도 사적으로 군 병력을 움직인 점이
반란죄 성립에 큰 혐의가 됐다.
[7]
적군의 수장과 주요 지휘관들을 사로잡고, 주력군대를 와해시켰으니 엄청난 공을 세운 것처럼 보이지만 '고려를 완전하게 정복'한다는 전쟁의 목표를 달성하는게 더 어려워졌다. 역신 강조를 처벌한다는 주된 명분이 사라져버려 전쟁을 계속하는 모양새가 이상해진데다, 30만에 달하던 고려 본군 중에 거란군이 추적해 죽인 병력은 3만이고 나머지는 흩어져 달아났으니 고려는 시간만 있으면 이들을 규합해서 주력군을 복구할 수 있다. 게다가 한번 주력군을 잃어버린 고려는 이제 주요 거점에 틀어박혀서 방어전에 집중할 것인데, 이렇게 되면 기병 위주의 전력을 보유한 거란군에게 공성전이 강요되어 단기간에 전쟁을 끝낼 희망도 사라져버리게 된다. 단기간에 적의 주력 병력을 괴멸시키고 고려를 완벽하게 정복하겠다는 대전략이 완전히 헝클어진 셈이다. 소배압이 야율분노의 목을 그 자리에서 날려버려도 하등 문제되지 않을 일이다. 이후 소배압이 개경에서 거란 황제에게 고려의 남쪽 지형을 모르기에 성급한 남진이 더욱 위험하다고 말한 것을 보면 이런 약점까지도 계산했기에 통주에서 완전 섬멸을 계획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거란은 1,2,3차 모든 전쟁에서 한반도 남부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8]
원작 소설에서도 야율분노가 개경 진격을 주장한 것은 동일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개적인 회의 자리에서 의견을 낸 것이며 야율요질을 제외한 다른 신료들은 반대하여 철군을 주장하는데, 이때 본인은
요 태조의 위대함, 발해 멸망,
만부교 사건 및 고려가 전쟁 이전에 자신들을 송과 함께 자신들을 침공하려는 행위 등을 언급하며 야율융서를 격동시키려고 한다.
[9]
또한 드라마에서 소배압이 야율분노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원작에서 소배압은 야율융서가 야율분노의 의견을 마음에 들어하는 모습을 보았고, 본인도 예상치 못한 곽주 탈환 이후 생각이 확고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야율분노의 의견이 마음에 들었는지 개경으로 진격하면 자신들을 막을 고려군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자 야율융서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의견을 묵살하고 바로 수도로 들어가자고 주장한다.
[10]
무언가 잘못됐다는 표정을 짓고 한숨 쉬는 소배압, 한족 관료들과는 달리 고려 땅에서 정복 활동을 계속할 수 있으며 다른 제후국에게 거란의 위엄을 알릴 수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대비되는 연출이 나타난다.
[11]
회차 초반에 정전을 나오다가 만난 소배압에게 "도통을 들이지 말라는 폐하의 명령이 있었다. 이제 제가 거란군을 이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12]
사망하는 장면의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효시 특유의 삐이이이이-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와 그의 목에 박힌 순간 소리가 끊어지는 것을 들을 수 있다.
[13]
원작에서는 김숙흥과 보량이 이끄는 귀주군 부대에 의해 안의진 쪽에서 최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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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원작에서 그의 급한 성격은 부하에게 압록강이 얼기 전에 회군을 하자고 재촉하면서 갈구고, 완한령을 넘어갈 때에 거란에게 협력한 여진인들이 도망치자 부하를 책망하려다가 제지당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본인도 일단 정찰을 철저히 하고 불리하면 후속군을 기다리라고 말하며 긴장을 놓지는 않고, 병사들이 격전을 벌인 것을 보고 모두 힘든 상황에서 더 잔소리를 해도 나아지는 것은 없다고 판단하거나 아예 다른 마음을 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그만 두기도 한다.
[15]
재미있게도 너무 급한 성정, 한직만 전전하여 이에 대해 한스럽게 생각한다는 면만 빼면 본작의 강감찬과 똑 닮았다. 강감찬 역시 개국공신의 아들이었으나 너무 대쪽같은 성정으로 높이 중용되지 못한 채 지방만 전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원작 소설의 설정만 놓고 보면 2차 침공 당시 연배도 비슷하다.
[16]
정확히 말하자면 1977년 2월 27일생이다.
[17]
아무래도 원작 소설이나 사서의 기록 등에서 보여지는 성격적 결함을 각색하여 정석적인 소배압에 비해 승부수나 무리수를 많이 두는 식으로 묘사한 것 같은데, 이는 따지고 보면 실제 인물에 대한 왜곡이다. 원작에서 판단력이 흐려졌던 부분은 거란군의 회군 도중 고려군이 후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일부러 더 강하게 몰아붙여 섬멸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일인데,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하였고 본인도 산을 넘어가면서 불안해 하며 이를 인정하여 포기하고 그냥 회군만 잘해도 성공적이지는 않더라도 괜찮은 정벌로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18]
서경 전투에서 다시금 본인의 판단을 강력히 주장하여 다시금 소배압과 갈등을 일으키게 되면서 오히려 전쟁의 전개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역할로 묘사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정치적 감각도 상당히 모자라게 그려지는데, "목종을 시해한 역신 강조를 처단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거란의 허울좋은 명분을 그 거란의 장수이면서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작중 이것이 명분일 뿐임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막 정치에 발을 들인 즉위 직후의 정치 초보 현종 뿐이었는데, 이 뻔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강조를 생포한 뒤 이를 꾸짖는 소배압에게 역으로 반박하다 팩폭을 쳐맞는 부분이 압권이다.
[19]
원작 소설 및 실제 역사에서는 흥화진 전투의 결과를 패전에 이르게 하지 않았고, 삼수채에서 고려 본군을 격파한 것도 소배압에게 허가받지 않은 기습 같은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지휘 계통을 통해 정면에서 야율적로와 우피실군 부대를 통해 맹렬하게 공격해 방어선을 돌파했던 것이었다.
[20]
또한 서경 함락을 포기하고 개경으로 진격하겠다는 것도 드라마와는 다르게 역사상의 기록에 의하면 이미 보급 거점인 곽주가 양규에게 함락된 상황에서 그냥 돌아갈지 아니면 현종을 잡기 위해 고려 안으로 더 깊숙하게 들어갈지 고민하던 야율융서가 직접 도박을 걸어본 것이었다. 게다가 원작에서도 소배압과 야율융서 둘 다 야율분노가 회의에서 낸 개경 진격 의견에 동의하였다.
[21]
더 세부적으로 보면 야율분노는 사서 기록으로는 2차 여요전쟁 후 북원대왕에 봉해지긴 하지만 이후 원정에선 더 이상 참전기록이 없으며 사망하는 것으로 나온다. 때문에 사료적으로도 더 이상 등장할 분량이 없다보니, 원작 소설에서 (양규는 아니지만) 김숙흥과 보량에 의해 전사하는 것으로 나오며, 드라마에서도 소배압과 대립하는 장수이면서 공은 있지만 전사했기 때문에 사후추서되는 형식으로 각색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22]
이는 과거 같은 시기를 다루던
천추태후에서도 비슷한 방법으로 써먹었다. 해당 작품에선 맹장으로 설정된 강조와 양규에게 각각 야율분노와 야율적로가 사망했다. 참고로 천추태후에선 야율적로가 야율분노의 상관이자 스승이라는 설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