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5 16:49:39

야율돌욕

의종(요)에서 넘어옴

요 추존 황제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숙조 의조 현조 덕조
의종 장숙제 순종 사원제
요 황제 }}}}}}}}}}}}
요 추존 황제
야율돌욕 | 耶律突欲
동란국 초대 국왕
인황왕 | 人皇王
묘호 의종(義宗)
시호 문헌흠의황제(文獻欽義皇帝)
연호 감로(甘露, 926~930년)
거란어 야율(耶律) [1]
거란어 돌욕(突欲) [2]
중국어 배(倍)
귀화 후 이름 이찬화(李贊華)
생몰 기간 899년 ~ 937년 1월 7일 (37세)
재위 기간 926년 2월 ~ 930년 11월 (4년 7개월)

1. 개요2. 행적3.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야율돌욕은 요나라 태조 야율아보기의 장남이자 태종 야율요골의 형이다. 아버지 요태조에 의해 태자로 책봉되었고 926년 발해 멸망 당시에도 아버지, 동생과 함께 종군했으며 이후 동란국의 왕으로 책봉되었다. 왕이 되었을 때의 봉호는 인황왕(人皇王)이었다. 이후 동생 야율요골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리며 황제에 오르지 못했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 동란왕의 직위를 버리고 후당으로 귀순했다. 후당으로 귀순한 이후엔 이찬화라는 중국식 이름을 하사받았는데 936년에 후당에서 정변이 일어나 그에 휘말려 암살되었다.

이후 그의 운구는 요나라로 돌아왔는데 그의 아들 요세종이 직접 변경에서 호위해서 모셔왔다고 한다. 그리고 황제로 추숭되어 의종이라는 묘호를 받고 문헌흠의황제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그 뜻은 "책을 무척 사랑한 황제"라는 뜻이다. 실제로 야율돌욕은 굉장한 다독가였다고 한다. 그의 능은 현릉(顯陵)으로 불리며 현 랴오닝성 진저우시의 이우뤼산(醫巫閭山, 의무려산)[3]에 그 능이 있다고 한다.

2. 행적

< 요사>에 따르면 본래 야율돌욕은 성품이 부드러웠으며 사냥을 싫어하고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의무려산 꼭대기에 집을 한 채 지었는데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 하여 망해당(望海堂)이라고 명명하고 그곳에 무려 수만 권의 책을 비치했다고 한다. 이런 야율돌욕의 성품은 유목민족이었던 거란족과는 맞지 않았지만 한족 문화에 심취해 있던 아버지 요태조는[4] 독서를 좋아하는 야율돌욕을 특히 총애하여 태자로 삼았고 발해가 멸망한 이후엔 동란국의 국왕으로 앉혔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야율돌욕이 다음 보위에 오르는데 초석이 되게 하려고 한 것이었다. 즉, 한마디로 야율돌욕은 차기 황제 1순위라는 걸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었다.[5]

그러나 아버지 요태조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개선하는 길에 갑자기 죽으면서 상황이 급작스럽게 바뀌었다. 어머니 순흠황후 술률평은 요태조와 달리 야율돌욕의 동생 야율요골을 총애하였다. 그 이유는 야율요골은 유목민족인 거란족 출신답게 성품이 호방했으며 사냥을 좋아하고 전투를 잘 하는 사람이었는데 야율돌욕은 앞서 말했듯이 좀 성품이 유약했으며 사냥을 싫어하고 독서를 좋아하며 한족 문화를 숭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순흠황후는 야율돌욕이 황제가 되면 거란족의 전통이 흔들린다고 판단하여 야율요골이 황제가 되도록 힘을 썼고 결국 야율돌욕은 황제가 되지 못했다.

이후 황제의 자리에 오른 야율요골은 형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것인지 928년에 동란국을 천복성[6]에서 동경도[7]로 천도하게 했다. 이에 야율돌욕은 신변의 위협을 느꼈고 결국 930년에 후당으로 귀순하게 된다. 후당의 명종은 야율돌욕의 귀순을 받아들였으며 그에게 국성인 이씨 성을 하사하고 찬화라는 이름을 내렸다. 그리하여 그는 이찬화라는 이름으로 후당의 장수가 되어 회화절도사(懷化節度使), 단주관찰사(瑞州), 신주관찰사(慎州觀察使)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당시 중원은 5대 10국이라는 혼란기에 빠져 있었고 결국 936년에 후당에서 정변이 일어나 멸망하게 되는데 그 때 이찬화 즉, 야율돌욕 역시 이종가에게 피살당하고 말았다. 이후 그의 시신은 아들 야율올욕이 수습하여 직접 호위하며 요나라로 모셔왔다고 하며 그가 책 수만 권을 비치했을 정도로 좋아했던 의무려산에 능을 조성하고 장사지냈다고 한다. 이후 야율올욕이 황제가 되자 의종으로 추숭되었다. 여기서 야율올욕이 바로 요나라의 제3대 황제가 되는 세종이다.[8]

3. 둘러보기

요사(遼史)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f6e8e1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2권 「태조기(太祖紀)」 3·4권 「태종기(太宗紀)」 5권 「세종기(世宗紀)」
야율아보기 야율요골 야율올욕
6·7권 「목종기(穆宗紀)」 8·9권 「경종기(景宗紀)」 10·11·12·13·14·15·16·17권 「성종기(成宗紀)」
야율술률 야율명의 야율문수노
18·19·20권 「흥종기(興宗紀)」 21·22·23·24·25·26권 「도종기(道宗紀)」 27·28·29·30권 「천조제기(天祚帝紀)」
야율지골 야율사랄 야율아과 · 야율순 · 야율아리 · 야율대석
※ 31권 ~ 62권은 志에 해당. 63권 ~ 70권은 表에 해당. 요사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2><tablewidth=100%><tablebgcolor=#a0522d> 71권 「후비전(后妃傳)」 ||
소탁진 · 소아리신 · 소월리타 · 소암모근 · 술률평 · 소온 · 소철갈지 · 견비 · 소황후 · 소작 · 소보살가 · 소누근 · 소달리 · 소삼천 · 소관음
소탄사 · 소탈리라 · 소사고 · 소비비 · 소귀가
72권 「종실전(宗室傳)」 73권 「야율갈로등전(耶律曷魯等傳)」
야율배 · 야율이호 · 야율준 · 야율오로알 야율갈로 · 소적로 소아고지 · 야율사열적 야율로고 야율파덕 · 야율욕온 · 야율해리(海里)
74권 「야율적랄등전(耶律敵剌等傳)」 75권 「야율적렬등전(耶律覿烈等傳)」
야율적랄 · 소흔독 · 강묵기 · 한연휘 · 한지고 야율적렬 야율우지 · 야율탁진 야율고 야율돌려불 · 왕욱 · 야율도로군
76권 「야율해리등전(耶律解里等傳)」
야율해리(解里) · 야율발리득 · 야율삭고 · 야율노불고 · 조연수 · 고모한 · 조사온 · 야율구리사 · 장려
77권 「야율옥질등전(耶律屋質等傳)」 78권 「야율이랍갈등전(耶律夷臘葛等傳)」
야율옥질 · 야율후 · 야율안단 · 야율와 · 야율퇴욱 · 야율달열 야율이랍갈 · 소해리 · 소호사 · 소사온 · 소계선
79권 「실방등전(室昉等傳)」 80권 「장검등전(張儉等傳)」
실방 · 야율현적 · 여리 · 곽습 · 야율아몰리 장검 · 형포박 · 마득신 · 소박 · 야율팔가
81권 「야율실로등전(耶律室魯等傳)」 82권 「야율융운등전(耶律隆運等傳)」
야율실로 · 왕계충 · 소효충 · 진소곤 · 소합탁 야율융운 · 야율발고철 · 소양아 · 무백 · 소상가 · 야율호고
83권 「야율휴가등전(耶律休哥等傳)」 84권 「야율사등전(耶律沙等傳)」
야율휴가 · 야율사진 · 야율해저 · 야율학고 야율사 · 야율말지 · 소간 · 야율선보 · 야율해리
85권 「소달름등전(蕭撻凜等傳)」
소달름 · 소관음노 · 야율제자 · 야율해리(諧理) · 야율노과 · 소류 · 고훈 · 해화삭노 · 소탑열갈 · 야율살합
86권 「야율합주등전(耶律合住等傳)」
야율합주 · 유경 · 유육부 · 야율요리 · 우온서 · 두방 · 소화상 · 야율합리지 · 야율파적
87권 「소효목등전(蕭孝穆等傳)」
소효목 · 소포노 · 야율포고 · 하행미
88권 「소적렬등전(蕭敵烈等傳)」
소적렬(蕭敵烈) · 야율분노 · 소배압 소항덕 · 야율자충 · 야율요질 · 야율홍고 · 고정 · 야율적록(的琭) · 대강예
89권 「야율서성등전(耶律庶成等傳)」 90권 「소아랄등전(蕭阿剌等傳)」
야율서성 · 양석 · 야율한류 · 양길 · 야율화상 소아랄 · 야율의선 · 소도외 · 소탑랄갈 · 야율적록(敵祿)
91권 「야율한팔등전(耶律韓八等傳)」 92권 「소탈랄등전(蕭奪剌等傳)」
야율한팔 · 야율당고 · 소출철 · 야율결 · 야율복리독 소탈랄 · 소보달 · 야율후신 · 야율고욱 · 야율독매 · 소한가 · 소오야
93권 「소혜등전(蕭惠等傳)」
소혜 · 소우로 · 소도옥 · 야율탁진
94권 「야율화가등전(耶律化哥等傳)」
야율화가 · 야율알랍 · 야율속살 · 소아노대 · 야율나야 · 야율하로소고 · 야율세량
95권 「야율홍고등전(耶律弘古等傳)」
야율홍고 · 야율마륙 · 소적렬(蕭滴冽) · 야율적록 · 야율진가노 · 야율특마 · 야율선동 · 소소삽 · 야율대비노
96권 「야율인선등전(耶律仁先等傳)」
야율인선 · 야율량 · 소한가노 · 소덕 · 소유신 · 소악음노 · 야율적렬 · 요경행 · 야율아사
97권 「야율알특랄등전(耶律斡特剌等傳)」
야율알특랄 · 해리 · 두경용 · 야율인길 · 양적 · 조휘 · 왕관 · 야율희손
98권 「소올납등전(蕭兀納等傳)」
소올납 · 야율엄 · 요신 · 야율호려
99권 「소암수등전(蕭巖壽等傳)」 100권 「야율당고전(耶律棠古等傳)」
소암수 · 야율살랄 · 소속살 · 야율달불야 · 소달불야 · 소홀고 · 야율석류 야율당고 · 소득리저 · 소수알 · 야율장노 · 야율출자
101권 「야율적랄등전(耶律敵剌等傳)」 102권 「소봉선등전(蕭奉先等傳)」
야율적랄 · 야율아식보 · 소을설 · 소호독 소봉선 · 이처온 · 장림 · 야율여도
103·104권 「문학전(文學傳)」 105권 「능리전(能吏傳)」
소한가노 · 이한 · 왕정 · 야율소 · 요휘 · 야율맹간 · 야율곡욕 대공정 · 소문 · 마인망 · 야율탁로알 · 양준욱 · 왕당
106권 「탁행전(卓行傳)」 107권 「열녀전(列女傳)」
소차랄 · 야율관노 · 소포리불 야율상가 · 소의신 · 소와리본 · 소뇌란
108권 「방기전(方技傳)」 109권 「영관·환관전(伶官宦官傳)」
직로고 · 왕백 · 위린 · 야율적로 · 야율을불가 나의경 · 왕계은 · 조안은
110·111권 「간신전(奸臣傳)」
야율을신 · 장효걸 · 야율연가 · 소십삼 · 소여리야 · 야율합로 · 소득리특 · 소와도알 · 소달로고 · 야율탑불야 · 소도고사
112·113·114권 「역신전(逆臣傳)」
야율할저 · 야율찰할 · 야율누국 · 야율중원 · 야율활가 · 소한 · 야율첩랍 · 야율랑 · 야율유가 · 야율해사 · 야율적랍 · 소혁 · 소호도 · 소첩리득 · 고첩 · 야율살랄죽 · 회리보 · 소특열
115권 「이국외기(二國外記)」
고려 · 서하
※ 116권은 國語解에 해당. 요사 문서 참고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a0522d><tablebgcolor=#a0522d> ||
}}}}}} ||



[1] yaruud 야루드 라는 발음에가까움. [2] 책에 따라 도욕(圖欲)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3] 고수전쟁, 고당전쟁의 지명으로도 종종 등장하는 유명한 산이다. 현재에도 만주의 3대 명산 중 하나로 통한다고 한다. [4] 거란족 귀족 중에 이상할 정도로 소(蕭)씨가 많은 이유는 한고제 소하에게 매우 큰 감명을 받은 요태조가 황실은 유(劉)씨로, 다른 부족들은 소씨로 죄다 개성시키려 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고 황성은 다시 야율씨로 돌렸으나 요태조의 "비록 난 유방은 아니지만 적어도 소하를 거느리고 싶다."(...)는 고집으로 소씨는 그대로 남게 된 것. [5] 야율돌욕이 당연히 적장자이니만큼 이 부분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유목민족은 장자상속제가 전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유력한 형제가 언제든지 그 자리를 노릴 수 있었다. [6] 옛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 [7] 요동성으로 현 랴오닝성 랴오양시. [8] 세종은 황위에 오를 때 자신의 아버지를 몰아낸 할머니 순흠황후와 삼남인 야율이호의 세력을 제압하고 나서 순흠황후를 할아버지인 야율아보기의 능묘에 가두어버리는 것으로 복수한다. 그러나 황족 야율옥질의 중재로 노기를 거둔 후 그녀와 야율이호를 조주로 유배보내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