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역의 실존인물에 대한 내용은 아이신기오로 인청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보보경심의 등장인물. 배우는 장뢰.실제 역사에서의 모티브는 강희제의 2황자이자 유일한 적자였던 이현친왕 윤잉이다.[1] 강희제의 2황자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적자이며 수많은 황자들 중에서도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고 극중에서는 초중반까지는 그 총애에 힘입어서 황태자의 자리에 있었다.
2. 경거망동의 화신
하지만 아버지의 총애를 믿고 이리저리 정신없이 설쳐대는데, 대표적인 일화가 바로 10황자 윤아의 생일 때의 일이였다.이때 윤잉은 직접 10황자의 생일선물로 미얀마에서 진상한 값비싼 옥여의를 선물해줬다. 여기까지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사실 이건 아버지인 황제에게 올라가는 진상품을 몰래 중간에서 삥땅쳐가지고 동생에게 선물로 준거다. 게다가 총 4개의 옥여의 중 두 개를 강희제가 이미 태후와 밀비에게 보낸 상황[2]에서, 감히 10황자가 태자로부터 이를 선물로 받는 것은 도리에도 크게 어긋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중간에 4황자 윤진이 나서서 "태자마마께서는 함부로 경거망동을 하지 말라는 차원에서 10아우를 시험에 들게 하는 거라네. 안 그렇습니까, 형님?"이라고 하여 선물은 없었던 일이 되어 간신히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이후에 황태자가 재물을 빼돌렸다는 상소가 올라오면서 그야말로 윤잉에게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번에도 4황자 윤진이 나서서 "태자마마께서는 아랫사람들에게 관대하셔서 그걸 빌미로 삼아, 태자마마의 이름을 팔아서 재물을 빼돌리는 불측한 무리들이 있다."고 변호해줬다. 하지만 이때 눈치없는 10황자 윤아가 "뒷배가 있으니 횡령을 하는 거 아니에요? 4형의 말은 조금 어폐가 있고, 아마도 태자마마께서..." 라고 말하려던 찰나에 미래에는 4황자 윤진이 황제가 될거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약희가 4황자의 심기를 건드리려는 자기 소꿉친구 10황자 윤아가 너무 답답한 나머지, 그를 도와주기 위해 그의 입을 막으려고 일부러 10황자에게 차를 쏟아서 더 이상 말을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황태자의 진상품 횡령사건은 어느 불순한 무리들이 황태자의 이름을 빙자하여 재물을 빼돌린 거라고 황제가 그리 결론을 냈지만, 사실 황제는 이 모든 진상을 다 알고 있었다. 다만 가장 총애하는 아들이 잘못되는 것을 막고자 일부러 모른 척 하는 것뿐이었다.
이후 윤잉은 인재를 잘 쓰라는 황제의 조언에 "저를 탄핵한 이들 중에서 정의로운 이들이 있으며 그들은 오히려 칭찬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아바마마."라고 하여 10황자 윤아를 언급한다. 비록 웃으면서 10황자 윤아를 칭찬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빠, 저 새키가 나 고자질했어요!"라고 말하는거였다. 겉으로는 관대한 척을 했지만 실상은 나중에 반드시 보복하겠다는 심정이었다.
이후에 윤잉은 이런 사이좋은 형제간의 우애를 더욱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 이번 출새[3] 때 형제들을 데리고 가게 해달라고 황제에게 부탁하였고, 황제는 이를 허락하고 4황자 윤진에게 황태자의 일을 돕게 한다.
탄핵 사건 직후에 윤잉은 윤진과 대화를 하게 되는데, 이때 윤진은 당연히 황위에 대한 욕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가 윤잉을 정말 끔찍하게 아끼기 때문에 윤잉의 곁에서 조용히 있는다. 윤잉은 당연히 윤진이 자신을 돕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8황자 윤사의 패거리들에게 크게 한 방 먹여서 통쾌하다고 좋아한다. 윤진은 태자의 편을 들어주며 신중하게 말을 골라 그래도 형제 간에는 우애롭게 지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윤사에 대한 나쁜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잉은 "4아우. 현명한 4아우는 우애를 중히 여기지만 8황자의 패거리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아." 라면서 8황자당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윤진에게 그 방법을 물어본다.
이후, 출새 기간 동안에 윤잉은 황제에게 청하여 8황자에게 국정을 맡겼는데 10황자는 눈치없이 황태자가 8형님을 신뢰해서 그런거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국정을 맡긴 이유는 만약에 8황자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한 순간, 그걸 빌미로 삼아서 황태자가 8황자를 마구 공격을 가하려는 것이 목적이며, 출새 기간 동안에는 8황자가 국정을 보기 위해 경성에 있어야 하는데, 그 틈에 황태자가 황제의 곁에 붙어서 8황자에 대한 온갖 나쁜 소리들을 다하려는 것이다. 거기다가 8황자는 이러한 생각을 한 사람이 4황자라는 것을 이미 짐작했다.
출새를 떠난 곳은 몽골이었는데, 이 인간은 몽골에 가서도 말썽이다.(...) 잔뜩 술마시고 나타나서는 몽골의 공주인 민민공주에게 추근덕거리다가[4] 13황자 윤상이 말려서 포기하고 돌아간다. 물론 이 틈에 민민공주가 13황자에 대한 사랑을 더욱 불태운 것은 덤이었다.(...)
그리고 이 날 윤잉은 또다시 바보짓을 일삼는데 멀쩡한 자기 말을 내버려두고 황제의 말을 타려고 고집을 부리다가 1황자에게 들키게 되었다. 1황자는 '폐하께서는 태자 전하를 아끼시니 괜찮을 겁니다^^' 라고 부추겼고, 그걸 또 곧이들은 윤잉은 '올ㅋ 그렇지 아바마마가 나한테 화내실 리가 없지!'라고 정신승리를 시전하며 신나게 말을 탔지만(...)
그리하여 이 날, 윤잉은 빡쳐서 1황자에게 자기가 갖고 있는 황태자 자리를 노리기 때문에 그러냐고 화를 냈고, 1황자는 나는 장자니까[6] 자기도 황태자 될 자격이 있고, 폐하께서 너와 귀비랑 같이 작당모의를 하는 것을 모를 거 같냐고 응수한다.
이에 마음이 걸린 윤잉은 황제가 있는 천막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는 명을 받고 지키던 병사들의 제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에 윤잉은 궁금함을 못참고 막사 안을 엿보다가 딱걸려서 또다시 아버지의 노여움을 산다.
황제는 상심하여 약희의 차도 마다하고 슬퍼하는데 약희의 위로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황자들 중에서는 18황자가 가장 총명했지. 황태자처럼 용모도 준수하고, 짐에게도 다정하게 굴었어. 자주 시를 필사하여 짐을 즐겁게 해줬고, 큰 위로도 되었어. 황자들 중에서 짐과 가까이 한 아이들은 얼마 없단다. 모두 짐의 자식이기는 하지만 황태자는 짐이 친히 키웠지. 황태자의 모친은 황태자를 낳자마자 죽었고, 황태자는 홀로 세상에 남겨졌지. 그래서 황태자를 특별히 여겨서 제일 사랑해줬단다. 그것이 죽은 황후에 대한 유일한 길이자, 마지막 도리니까..." 라고 말한다.
그런데 윤잉은 이 날 또 바보짓을 하는데 눈치도 없이 아무도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황제를 기어코 만나겠다고 우겨서 황제의 처소에 쳐들어갔다가 또 황제의 분노를 직격으로 맞는다.
결국 잔뜩 화가 난 황제는 환궁하자마자 윤잉을 태자 자리에서 폐위시킨다고 명하였고, 그대로 쓰러졌다.
두 번째 출새에서는 역시 몽골에서 가볍게 사고를 쳤는데 14황자가 몰래 8황자를 만나러 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몽골 영지까지 샅샅이 수색하게 한 것이었다. 물론 14황자가 8황자를 찾아온 것은 사실이었으나(...) 문제는 수색의 정도가 매우 무례한 수준이었다. 그렇잖아도 지난 출새에서 몽골인들이 진상한 어마를 함부로 타서, 몽골인들의 태자에 대한 감정은 썩 좋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몽골인들의 민심을 또 잃고 말았다.[7] 결국 14황자를 찾지도 못한 것은 덤이었다(...) 다행히 강희제는 가볍게 주의만 주고 넘어갔다.
세 번째 출새에서는 또 몽골에서 거하게 사고를 쳤는데 괜히 자기가 매를 길들일 수 있다고 나서다가 그 매가 황제를 공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참고로 위에 서술된 대부분의 잘못들(진상품 무단 사용, 몽골인들이 바친 말에 함부로 탑승, 어린 동생의 병세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것, 강희제의 막사를 엿본 것 등...)은 역사상으로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3. 폐위와 복위
그런데 이 날, 1황자는 이번 일들로 자신에게 황태자 자리가 올까 내심 기대하여 황제에게 아부를 하지만 황제는 이것을 눈치를 채서 4황자에게 윤잉을 감시하는 등의 여러 가지 일을 맡긴다. 4황자는 그 부탁을 수락하였는데 13황자는 2형의 자업자득인데 어째서 그를 감싸주냐고 4황자에게 의문을 표한다. 이에 4황자는 폐위는 폐하께서 홧김에 그러신 거일수도 있고, 어떻게 될지 모르니 황명에 따라 움직이자고 말한다.그렇게 황태자가 폐위당하자 궁궐에서는 누가 태자 자리에 오를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고, 시끌벅적한 가운데, 이런 와중에도 이미 모든 결과를 다 알고 있던 약희는 우리가 논할 얘기는 아니라고 하여 어전 내관인 이덕전의 신임을 얻는다.
그리고 이후에 황제는 황태자의 폐위를 거두어달라는 상소가 마구 날라와서 심기가 매우 불편해하는 와중에 3황자[8]가 들어와서는 '황태자가 방종하게 된 이유가 사실 1황자가 계책을 부려서 그에게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걸어서 황태자가 실성하게 만들었다.'라는 개드립을 쳤고, 결국 1황자의 집에서 윤잉의 생년월일이 적혀진 인형이 발견되어 황제는 대노하여 1황자의 모든 작위를 빼앗아버리고, 신분을 평민으로 강등시켜서 평생토록 가택연금을 하라 명하였다. 이때를 틈타서 3황자는 윤잉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청해보지만 황제는 피곤하다고 모두 물러나라 말하였다.
물론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니 황제는 겉으로는 믿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그저 자신이 가장 총애하던 아들 윤잉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수가 없었고, 윤잉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가장 문제적 인물인 1황자를 벌하고, 그것을 단순히 1황자가 사술을 부려서 윤잉을 잠깐 미치게 만들었다는 핑계를 내세웠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 시각에 약희는 옥단에게 "폐하께서 말하시길, 다음 태자 자리에는 누가 가장 적합하냐고 이덕전 태감을 불러서 의견을 구하셨는데, 이공공께서는 8황자님을 추천하셨다 합니다." 라는 얘기를 듣자 화들짝 놀란다. 오히려 이건 8황자가 황제로부터 미움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에 윤잉은 황제와 1:1 면담을 하게 되는데 이때 약희의 생각은 '현명한 군주라도 아버지니까 황태자를 용서하는 것은 시간문제지.'였다. 바로 이때, 8황자는 윤잉이 황제와 면담을 하고 있고, 윤잉이 복위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한다고 9황자 윤당에게 조언을 받았는데 비록 8황자당이 직접 나설 수는 없지만 황제가 윤잉의 복위를 마음먹었다면 그 마음을 돌려놓도록 하기 위해 안티 윤잉짓을 하려고 계획을 꾸몄다.
하지만 4황자는 이와 반대로 오히려 자기 편인 13황자도 궁에 못들어가도록 막았으며 찾아온 사람들을 모두 물리치며 얌전히 집안에 있었다. 이에 13황자는 그런 4황자를 답답하게 여겼지만 4황자는 기다릴 대(待)를 쓰면서 참을성있게 조용히 기다린다.
그러나 8황자당에 속하던 9황자는 약희를 불러서 황제와 윤잉이 무슨 얘기를 하였는지 캐묻지만 8황자가 일개 궁녀가 황제의 밀담을 얘기하다 들키면 큰일난다고 제지하였다. 하지만 9황자는 우리끼리니 뭐 어떻냐며 대꾸하면서 다시 한 번 캐묻고, 14황자도 이에 동조한다. 하지만 10황자도 이를 막아서고 약희에게 얼른 가서 다른 일보라고 말한다. 참고로 그때 약희는 이덕전의 지시로 바깥에 나간 상태여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인데 9황자는 "저것봐... 차라리 개를 키우지..." 라며 비아냥대지만 오히려 8황자는 약희가 이 사건에 끼어들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이에 약희는 역사를 바꾸지 않기 위해 8황자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서신을 쓰다가 찢었었지만 그래도 8황자가 걱정이 되어 한 마디한다. "폐하께서는 2황자님을 굉장히 아끼세요. 폐하께서 어떠한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은 기억하세요."라고 말이다.
하지만 8황자는 멀쩡했지만 문제는 8황자의 패거리들이 무뇌라서 기어코 대신들을 부추겨서 8황자를 새로운 황태자로 추천하게끔 하였는데 4황자와 13황자는 그래도 윤잉이 여전히 황태자에 어울린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때 9황자가 나서서 8황자가 태자로서 적합한 인재라고 주장하자 황제는 이를 비웃으며 "8황자가 모두가 바라는 황태자인데 황제인 짐이 2황자를 계속 태자로 둔 것은 짐이 보는 눈도 없고,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런게냐?"라고 비꼰다.
물론 8황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용서를 구하지만 황제는 자기 눈에는 8황자의 심계가 깊게 보이며 조정에 당파 분쟁이나 조성시키는 너희들이 너무나 싫다고 크게 화를 내었다. 결국 8황자는 작위를 빼앗기고 심리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14황자가 여기에 끼어들면서 8황자를 감싸며 이건 모두 날조된 죄명이라며 자기 목을 걸어도 좋다고 하자 황제는 더 크게 화를 내면서 진짜 소원대로 해주겠다며 14황자를 베기 위해 칼을 꺼내들었다. 이에 주위 사람들이 놀라서 만류하였고, 황제 본인도 진짜로 14황자를 벨 생각은 없었지만 결국 8황자는 작위 박탈, 14황자는 곤장 20대, 다른 8황자당 패거리들은 집에서 반성하라는 벌을 줬으며, 누구든 8황자를 변호했다가는 목을 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렇게 윤잉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다시 황태자가 되었다.
하지만 3번째 출새 이후에 정신을 못차리고 또 횡령을 하다가 때마침 9황자도 같이 횡령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9황자에게 덤탱이를 씌우기 위해 자기가 먹은 뇌물과 횡렴금들은 모두 토해냈다. 하지만 9황자는 여전히 횡령중... 그래서 같은편인 8황자당의 다른 멤버들도 그를 쉴드쳐주길 포기했다. 물론 이런 결과를 확인한 황제는 '저게 자식만 아니었어도...' 라고 생각했지만 자식 일이라 추궁하지 않고, 먹었던 것들을 죄다 토해내는 선에서 더 이상 아무런 죄를 묻지 않았다.
4. 8황자에 대한 분노와 증오
윤잉에게 훗날 옹정제가 되는 4황자와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8황자와 그 패거리들을 상당히 싫어한다는 점이였다. 그 이유는 8황자가 자신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8황자의 어머니인 양비의 신분이 낮기 때문에 별것도 아닌 8황자가 차기 황제를 노린다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그 때문에 4황자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 크게 기뻐하며 4황자에게 스스럼없이 자신의 생각을 다 말해줄 정도이며 약희의 2번째 출새 때 14황자가 몽골인으로 변장하여 8황자와 만나고 있다는 것을[9] 심복을 통해 알아차렸을 때, 8황자와 14황자를 도둑으로 몰고, 활로 쏘려고 계획을 하였다. 그리고 그가 날린 화살은 정확하게 8황자를 맞췄다. 이에 윤잉은 8황자를 잡기 위해 몽골인들의 숙소를 다 뒤졌음에도 끝내 그를 잡지 못했다. 결국 14황자가 나선 덕분에 8황자당이 큰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8황자는 황제와 윤잉의 경계를 피하기 위해 인사이동에서 자신의 사람들을 추천해주되, 윤잉의 사람인 갈례, 4황자의 사람인 연갱요도 같이 추천해주면서 황제의 의심에서 벗어난다.
5. 약희, 그리고 몰락
민민공주의 오라버니인 합술왕자가 공무차 경성으로 왔을 때, 약희가 그와 조우하였는데 때마침 윤잉이 이걸 보고는 약희에게 심상치 않는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 윤잉은 황제에게 곧바로 달려가서는 약희와의 혼인을 허락해달라고 부탁했고, 당연히 이는 4, 8, 10, 13, 14황자의 어그로를 끄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윤잉은 이 일 때문에 자신의 강력한 아군이었던 4황자와 13황자가 전력에서 이탈하고, 그들이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8황자당과 잠시나마 손잡게 만드는 원인을 스스로 제공하였으며, 황태자가 그동안 수년간 횡령해온 것과 군권을 가진 사람들과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상소를 수시로 황제에게 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 약희는 윤잉에게 시집을 가는 것에 질색하여 병자 코스프레를 시전...[10]윤잉은 조회에서 이것들은 모두 모함이라고 주장하였고, 4황자는 황태자는 신분상 대신들과 많이 만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걸 오해하여 파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옹호하는 분위기인데 은근히 파벌을 형성하고 있다는 주장을 덧붙인다. 이에 윤잉은 기세등등하여 "아니 아버지가 파벌 조성을 그렇게 싫어하시는데 제가 어찌 그 뜻을 거역하겠어요?"라고 말하였고, 황제는 여기서 가릴 일이 아니라며 3황자를 시켜서 조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파벌 형성은 사실로 드러났다.
그리고 13황자가 유배를 떠나고 난 후, 21화에서 결국에는 황제로부터 복위 이후에도 개과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여전히 오만방자하여 민심을 잃었다하여 폐위당한다. 이때 윤잉은 관모를 벗을 때, 힘없이 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이후로는 등장 없음.
6. 실제 역사
실제 역사에서도 윤잉은 황후 허서리씨[11]사이에서 낳은 아들이기에 강희제에게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다. 허서리씨랑 금슬이 좋은데다가 만주인 전통보다 중국식 종법체제에 호감을 느꼈기 때문에 황후에게서 낳은 윤잉을 고작 두살 때 황태자에 책봉했다. 이는 당시 모든 아들은 적서 차별없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 만주풍속과 다른것이어서 윤잉은 태어나면서부터 분란요소를 진 셈이다.강희제는 윤잉을 자신을 이어나갈 재목으로 키우기 위해 조기교육을 실시했다. 아이들을 응석받이로 키우면 안된다는 확고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었던데다, 더욱히 윤잉은 황태자였기 때문에 엄격하게 훈육했지만, 본인 입으로 부모는 더 사랑하는 자식이 있기 마련이라고 고백할 만큼 윤잉을 아꼈다. 강희제는 윤잉을 직접 자기 손으로 키웠는데, 이는 황족, 재상 혹은 황실의 높은 여인들 손에 맡겨 키운 다른 황자들과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강희제는 태자가 아플 때는 친히 간호할 만큼 정성을 쏟았으며, 심지어는 황제인 강희제 자신이 누리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음식과 의복, 장식 등을 윤잉에게 특별히 내려주었고, 강희제 본인이 멀리 나가 있을 때에는 아버지로서의 사랑이 가득 담긴 다정하고 따뜻한 편지를 보내면서 윤잉을 살뜰히 챙겼다. 강희제의 세심한 배려 하에, 윤잉에게는 당대 최고의 학문과 검증된 인격을 갖춘 학자들, 문인들, 화가들이 스승으로 배치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그 강희제가 직접 나서서 윤잉에게 국가를 다스리는 노하우, 정치 안건들, 글, 사냥 등을 가르쳤다. 윤잉은 강희제를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기도 했고, 폐위 직전까지 사실상의 차기 황제 대접을 받았다. 이렇듯 태자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자질도 강희제가 평가하기에도 괜찮은 지능을 지녔다고 보았지만 정치적 사건 때문에 몰락의 길을 겪는다.
강희제시절 재상을 지난 외종조부 허서리 소어투(赫舍里 索額圖)[12]가 반란에 연루되어 외가가 몰락했고, 태자에게도 불똥이 튄것, 강희제는 태자의 외가를 도륙냈기에 태자가 자신을 원망한다 생각했고 부자지간이 점점 멀어진다. 더군다나 강희제의 장자 직군왕(直郡王) 윤제(胤禔)는 소어투의 정적이며 조정관료들을 장악한 명주(納蘭 明珠)의 조카인데다가 장자였음에도 동생보다 낮은 신분이었기 때문에 둘사이는 최악이었고 다른 형제들도 황태자 윤잉을 질시하여 태자와 측근들의 행동이나 비리를 강희제에게 일러 바쳤기 때문에 자신에게 너무 엄격한 아버지 점점 엇나가다가 강희 47년 폐위 당하고, 후계자 싸움으로 아들들이 편갈러 싸우자 다시 윤잉을 복위 시키나 이미 강희제는 마음이 떠난 상태라 강희 51년에 다시 폐위 시키고 감금당하게 되고, 평생 연금생활을 당한다.
청나라의 태자였던 만큼 조선왕조실록에도 윤잉에 대한 내용이 은근 많은데 실록에서 묘사된 윤잉은 매우 처참한 수준이다. 거칠고 사람을 죽이기 좋아한다, 본시 잔인하고 혹독하여 백성들 사이에서는 불충불효의 아이콘으로 통하고 누이들을 검열삭제(...)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황장자(1황자)와는 원수같은 사이인데 나날이 심해져 근심스럽다는 평이 있다, 태자가 뇌물을 받고 당파를 만드는 등 우려스러운 지경이라 강희제가 죽고 나면 조선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방비(!)해야한다 등등.
7. 여담
호색한이다. 8황자의 말에 의하면 "태자가 색을 밝힌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라고. 첫 번째 출새의 연회에서만 하더라도, 다들 순수하고 즐겁게 춤을 감상하고 술을 마시는 상황에서, 윤잉 혼자만 유독 민민공주를 묘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만 결국 후일 민민공주에게 치근대며 진상을 피웠다. 나중에는 비록 정치적 목적이 다분히 섞여있긴 했지만 약희에게도 마수를 뻗쳤다.어렸을 때는 나름대로 뛰어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4살 때는 사서오경을 익히고, 11살 때는 3개 국어를 익혔다고.
용모도 준수하다고 한다.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강희제는 18황자의 외모를 칭찬하며 황태자처럼 준수하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태자를 편애한 강희제의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므로 그다지 신빙성은 없어보인다.
약희가 그를 위해 준비한 찻잔은 목단 찻잔이었다. 이를 본 강희제는 목단은 고상하고 화려하며 웅장해 꽃 중의 왕이니 태자에게 더없이 잘 어울린다는 평을 했다.
한국 리메이크판에서는 왕건의 1황자이자 이후 고려 혜종이 되는 '왕무', 왕건의 3황자이자 이후 고려 정종이 되는 '왕요'로 로컬라이징되었으며, 김산호와 홍종현이 각각 배역을 맡았다. 황태자(정윤)의 자리와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면은 1황자 왕무가, 성격적인 면은 3황자 왕요가 각각 나누어 맡은 듯.
[1]
이름의 礽자는 원래대로라면 한국 한자음으로 '잉', 청대 북방관화로는 ʐeng이라고 읽어야 한다. 다만 현대 한어병음에서 이를 r로 표기하면서 여러 현대 중국어 화자들은 reng이라 읽는다.
[2]
후일 나머지 2개 중 하나는 민민 공주에게 내려지고, 하나는 4황자의 적복진 오라나랍씨에게 내려진다.
[3]
국경을 넘어서 변경의 땅으로 가는 것.
[4]
심지어 태도도 매우 무례하여, 일개 격격(格格, 공주) 주제에 이렇게 나오다니 꼭 같이 술을 마셔야겠다(!)고 진상까지 피웠다(...). 어린 18황자가 위독해서 다들 난리가 난 상황에 저러고 있었다. 한마디로 우애도 없다(...). 그리고 아무리 제후국 공주라고 하더라도 이런 드립을 날리는건 외교적으로 굉장한 결례이다.
[5]
하필이면 이 날 18황자가 위독하다고 하여 황제의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경거망동을 하여 크게 사고를 쳤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태자가 탄 말은 그냥 황제의 말도 아니고 몽골인들이 진상한 특별한 말(...). 황제는 물론, 몽골인 모두에게도 불경스러운 짓이었다.
[6]
몇 번을 강조하지만 윤잉은 차남이지만 엄연히 적자이다. 1황자는 장자이긴 하지만 어머니가 후궁이고, 윤잉은 차남이지만 황후의 자식이기 때문.
[7]
이 때 정말 해서는 안되는 짓을 하는데 민민공주의 막사까지 수색했다. 당시 14황자가 민민공주의 막사에 숨어있어 들킬 뻔했지만(약희가 14황자를 자신을 몰래 보러 온 애인이라고 속이고 숨겨주기로 약속했다.) 공주가 태자를 두들겨 패서(...)밖으로 내보냈다. 감히 태자를 때리냐고 항의하자 민민공주 왈 태자 전하셨어요? 어두워서 도둑인줄 알았죠!라며 발뺌했고 결국 태자는 물러났다. 아무리 도둑이 들었다지만 남의 나라 왕족 그것도 공주의 막사에 마음대로 들어가는 것은 큰 외교적 결례다. 몽골인들이 태자를 때려도 전혀 이상한 상황이 아니다.
[8]
이 사람은 병 때문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는 설정이 따로 있다.
[9]
이때 경성에서는 4황자가 8황자당 소속 사람들을 제외시키고, 윤잉과 4황자측 지지세력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사이동을 하고 있었는데 4황자는 이미 14황자가 8황자에게 찾아가는 것을 알아차렸고, 황제가 만약 8황자에게 멋대로 접근하면 대역죄로 다스리겠다는 엄명이 있었기에 14황자를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
[10]
아픈 척이 아니린 진짜 아프려고 어의가 준 약도 버리고 찬물을 자신에게 들이붓는다. 진짜 아파야 시간을 더 끌 수 있다고.
[11]
강희제가 즉위하기 전에
순치제에 의해 임명된 보정대신 4인방 중 하나인 허서리 소닌의 손녀.
[12]
허서리 소닌의 아들. 윤잉의 친모인 황후 허서리씨의 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