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15:16:04

알렉세이 나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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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0c0e8><colcolor=#ffffff> 미래의 러시아 초대 대표
알렉세이 나발니
Алексей Навальный | Alexei Navalny
파일:나발니.jpg
본명 알렉세이 아나톨리예비치 나발니
Алексе́й Анато́льевич Нава́льный (키릴 문자)[1]
Alexei Anatolievich Navalny (로마자)
출생 1976년 6월 4일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주 오딘초보구 부틴
(現 러시아 연방 모스크바주 오딘초보구 부틴)
사망 2024년 2월 16일 (향년 47세)
러시아 연방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하르프 제3교도소
국적
[[러시아|]][[틀:국기|]][[틀:국기|]]
학력 러시아 민족우호 대학교 ( 법학 / 학사)
러시아 정부 산하 경제 대학교 ( 법학 / 석사)
예일 대학교 로스쿨 ( 법학 / 비학위 펠로우십 과정)
부모 아버지 아나톨리 이바노비치 나발니
어머니 류드밀라 이바노브나 나발나야
형제 남동생 올레크 나발니
배우자 율리야 나발나야[2]
자녀 장녀 다리야 나발나야[3]
장남 자하르 나발니[4]
직업 정치인, 변호사, 인터넷 방송인
종교 러시아 정교회
신체 190cm[5], 80kg
최종 당적
경력 야블로코 모스크바지부 참모장[6]
야블로코 모스크바지부 부국장
유스 퍼블릭 체임버 창립자
DA!–민주적 대안 창립자
민족 러시아 해방 운동 공동대표
키로프주 주지사 고문[7]
반부패 재단 창립자
러시아 야당 조정위원회 위원[8]
러시아 야당 조정위원회 의장[9]
인민동맹 대표
나발니 본부 지도자
미래의 러시아 대표
상훈 2021년 사하로프상
2021년 자유의 기사상
2010년 예일 월드 펠로우
2024년 드레스덴 평화상
서명 파일:알렉세이 나발니 서명.svg
플랫폼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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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반부패 조사 활동2.2. 정치 활동2.3. 독살 미수 사태2.4.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탄압2.5. 사망
3. 다른 야당과의 관계4. 논란5. 호모포비아?6. 소속 정당7. 선거 이력8. 여담

[clearfix]

1. 개요

러시아 변호사, 정치인.

러시아 내 반 푸틴 세력을 상징하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블라디미르 푸틴의 독재와 부정, 침략전쟁을 비판했으며, 이로 인해 숱한 정치적 탄압은 물론 독살 미수 사건 등 러시아 정부 관계자로 추정되는 세력으로부터 암살 위협을 받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체포된 뒤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하르프의 제3교도소(IK-3)에 수감되었으며 #[17],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24년 2월 16일 옥중에서 의문사했다.[18]

2. 생애

1976년 소련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러시아 민족 우호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예일 대학교에서 유학하여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했다.[19] 영상 그의 자식들도 유학 생활을 한 터라 영어를 잘한다. ' 미래의 러시아(Россия будущего)'라는 정당을 이끌었으며[20] 완전히 독재화된 러시아 정치판에서 명망 있는 정치인들 중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과 그의 통합 러시아에 맞서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혔다. 이념으로는 참여민주주의 친유럽주의, 자유주의를 내세웠다.

생전 지속적인 탄압으로 대다수의 정적이 축출, 제거된 러시아에서 얼마 남지 않은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의 유력한 정적이고, 푸틴도 대놓고 그를 비국민으로 취급하며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일반적인 반대파들과는 아예 다르게 대응하였다. 선관위에 의해서 출마가 막히다 보니 겐나디 주가노프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등 주류 야권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정계 주류에 진입하지 못 하고는 있지만 언제까지나 푸틴이 적극적으로 탄압해서 정계에 못 가는 것뿐이고 실제 정치력이 없는 인물은 아니다.

특히 야당 주자로 모스크바의 선거 판세를 움직일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반푸틴 재야 정치인들과는 격이 다른 인물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암살당한 보리스 넴초프[21]와는 격이 전혀 다를 정도로 영향력이 센 인물이기에 푸틴으로서는 더욱 경계와 제거의 대상이었다.

2.1. 반부패 조사 활동

2008년 나발니는 로스네프트, 가스프롬, 가스프롬 네프트, 루크오일, 그리고 수르구트네프트 가스, 이렇게 5개의 가스 회사 주식을 30만 루블 어치 사들였고, 이를 통해 해당 주식회사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행동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회사들이 소유한 금융 재산의 투명성을 노렸다. 이것은 법적으로 이미 요구되는 사항이었지만, 해당 회사들의 상위 직원들은 횡령과 회사 투명성을 차단하는 행위에 연루되었다는 혐의가 있었다. 다른 활동가들은 이러한 경우 경찰에 의하여 해결하려 했는데, 세르게이 마그니트스키의 경우 주 정부의 부적절한 예산 지출과 부실한 주 정부 서비스 등을 지적했다.

2010년 11월, 나발니는 트랜스네프트 가스 회사의 비밀 회계 감사 자료를 공개했다. 그의 블로그에 따르면 트랜스네프트 가스 회사의 주요 경영자들은 동부 시베리아에서 진행되던 태평양 석유 파이프라인 공사 도중, 무려 40억 달러를 빼돌렸다.

2010년 12월, 나발니는 러시아 연방정부의 행정 조달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패행위를 낮추기 위한 로스필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프로젝트는 행정상 필요한 물자 조달 등을 모든 러시아 연방 정부가 온라인에 게시 및 공고하여 입찰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낙찰 정보 또한 온라인에 반드시 게시되도록 했다.

2011년, 나발니는 로스야마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2.2. 정치 활동

특히 청년층에게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데 블로그를 통해 대중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으로 지지자들을 늘려왔다. 젊은층의 주 활동 무대인 인터넷을 공략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를 사용하여 푸틴 대통령을 공격했으며, 정치 시위를 조직했다. 또한 푸틴 대통령과 그의 부적절한 행동을 고발하는 문서를 올렸으며, 선거 운동을 홍보하기 위해 블로그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2011년 2월, 나발니는 라디오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통합 러시아를 '사기꾼과 도둑놈들의 정당'이라고 부르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사기꾼과 도둑놈들'이라는 말은 인기를 얻어 통합 러시아의 별명이 된다.[22] 그렇게 점차 인지도와 세를 불리다가 2011년 러시아 총선 사태에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민주화에 대한 연설을 하는 것으로 그 존재감을 확실히 대중에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는 푸틴 정권이 그를 본격적으로 예의주시하고 경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듬해인 2013년 지방선거에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지만 27%의 득표율을 얻으며 낙선했다. 다만 득표율 자체는 부정 선거의 여부와 정당 기반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선전한 편이었고, 주요 선거전문가들이 소뱌닌이 60% 이상을 득표해서 안정적인 재선을 거둘것이라는 예상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실제 선거에서는 51%를 득표했다.) 조금만 더 선전했어도 모스크바 시장 선거를 결선으로 끌고갔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다. 여론조사에서도 6월에는 소뱌닌 77%대 나발니 11%로 나발니가 현저하게 밀리고 있었는데, 불과 3개월만인 9월 선거에서는 격차를 51%대 27%로 줄인 것이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신진 정치인사로 주목받으면서 출마에 방해를 받았고,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 러시아 경제 위기까지 여러 커다란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졌던 2012년~2015년 동안은 눈에 띄는 활동이 없었다. 사실 해당 기간 동안은 푸틴의 지지율이 한창 80%대를 찍었을 정도로 고공행진하던 시기로서 상대적으로 눈에 띌일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2016년에 인터넷을 통해 다시 한 번 러시아 정권 우두머리들의 부패, 특히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부패 혐의를 폭로했다. 링크 2017년 3월에는 대규모 반부패 시위를 주도하여 러시아 민주주의 불씨를 살려나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2018년에는 지신이 이끌던 진보당을 해산하고 미래의 러시아라는 당을 창당했다.

2019년 지방선거에서 모스크바 의회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지만 선관위에 막혀 출마하지 못했다. 그 대신 타 야당을 찍어달라고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당부했고, 그 결과 모스크바 의회 선거에서 러시아 연방 공산당, 공정 러시아, 야블로코당 등 타 좌파 성향 야당이 약진한 동시에 통합 러시아의 의석수가 크게 줄어 통합 러시아는 사실상 패배를 당했고 이를 계기로 푸틴을 견제할 정도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며 그 이전과는 격이 전혀 다른 인물이 되었다. 여담으로 당시 친 푸틴 성향이었던 극우 야당 러시아 자유민주당은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2019년 12월 25일에 알렉세이 나발니의 측근이 재징집당해 러시아 북극 기지에 보내졌다고 보도되자 야권인사들은 반발했다. # 26일에는 나발니의 사무실이 경찰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했다. # 29일에 러시아 법원에서 나발니에게 푸틴 측근이 운영하는 급식업체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결정했고 나발니는 항소했다. #

2020년 3월에 나발니의 가족과 부모의 계좌가 정부에 의해 강제로 동결되었다. # 6월에 나발니가 무고 혐의로 형사 입건 되었다. #

7월에는 러시아 개헌 국민투표는 사기라고 주장했다. #

2021년에 유럽의회부터 사하로프 인권상을 수상받았다. 나발니는 유럽의회에 감사를 표하며 막중한 책임이라고 밝혔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유럽의회를 비난했다. #

2022년 1월에 러시아 금융당국에 의해 테러리스트 목록에 오른 것이 알려졌다. #

2022년 2월 15일 러시아 검찰은 나발니에게 기부금 횡령 혐의와 판사 모독 혐의를 추가했다. 이에 나발니는 재판에 출석하여 모든 것이 러시아 정부의 위협이라고 비판하며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동시에 나발니의 딸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프랑스로 가서 유럽 연합에서 수여한 사하로프 인권상을 받았으며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위해 유럽 국가들이 신경써달라고 밝혔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교도소에서 독립언론 도즈드와 인터뷰를 했는데 여기서 푸틴이 자신의 부패를 숨기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며 비난했다. #

3월 22일, 러시아 법원은 나발니에게 제기된 거액 사기와 법정 모욕 혐의 모두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9년 징역형과 함께 1,200,000루블(약 14,000,000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 이에 국제 인권 단체들과 서방 국가들은 정치적 판결이라고 비난하며 석방할 것을 촉구했다. #

4월 8일, 애플은 나발니의 선거 앱 서비스를 재개했다. #

4월 14일, 나발니는 트위터에 서방의 빅테크 회사들에게 러시아 정부의 허위선전에 대적해달라고 촉구했다. #

7월 11일, 나발니는 옥중에서 '국제 반부패재단'(ACFI)를 창설했다고 밝혔다. #

8월 16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나발니는 동료 수감자들에게 노동조합 결성을 권유하다가 러시아 당국이 그에게 가석방 조건 위반과 사기, 법정 모욕의 혐의를 추가시켜 징역 11년 6개월을 선고했다. 현재 나발니는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블라디미르 인근 멜레호보에 있는 IK-6 형무소에 있는 것으로 전해다. 또한 나발니는 자신의 변호사와 지지자들에게 현재 독방에 수감되었고 수감된 독방이 매우 열악하며 친척들의 면회까지 금지시켰다고 밝혔다. #

9월 21일, 나발니는 변호인을 통해 공개한 옥중 영상 메시지에서 2022년 러시아 동원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많은 러시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고 비판했다. #

9월 30일, 나발니는 자신의 법률팀을 통해 워싱턴 포스트와 한 인터뷰의 칼럼에서 푸틴이 몰락해도 러시아의 문제는 여전하기에 러시아의 체제를 내각제로 바꾸는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독립적 사법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

10월 21일, 러시아 정부에 의해 나발니는 테러 조장 혐의로 기소되었다. #

11월 27일, 나발니의 비서실장에 의하면 나발니는 현재 비좁은 독방에 수감되었고 가족의 면회도 금지당하며 변호사 면담조차 제한적이고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이야기만 간신히 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

12월 21일, 나발니는 바그너 그룹의 창립자 프리고진이 보안이 엄격한 교도소로 와서 용병을 모집했고 죄수 80~90명이 지원했다고 밝혔다. #

2023년 1월 10일, 러시아의 의사 200명이 러시아 정부에 나발니에 대한 학대를 중단할 것이며 나발니에 대한 종합건강 검진과 치료를 요구했다. #

1월 11일,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가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밝힌바에 따르면 나발니가 좁은 감옥에서 학대당하며 건강이 나빠졌다고 한다. 또한 율리아는 나발니에게 치료약을 달라고 호소했다. #
8월, 러시아 법원에게서 19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

2023년 12월 멜레호보에 있는 IK-6 형무소에서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하르프 IK-3 형무소로 이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3. 독살 미수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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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탄압

러 반체제인사 나발니 "서방, 푸틴의 덫에 빠져들고 있다"

"러시아, 민주 지도자 나발니 즉각 석방해야"

러시아의 부정부패와 권위주의에 지친 러시아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푸틴의 정적으로서 가장 큰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러시아 민주화 세력의 핵심 인사중 하나이며 푸틴과 권위주의 세력이 붕괴할 경우 러시아를 이끌 차기 지도자로 꼽히고 있다.

푸틴 정적 나발니, 징역 3년 6개월...시위 다시 열려

러 법원, ‘푸틴 정적’ 나발니에 9년 징역형 추가 선고

가로 2m·세로 3m 우리 갇힌 ‘푸틴 저격수’ 나발니…부인 SNS에 “약 좀 달라”

‘푸틴 정적’ 나발니, “하루 16시간 철제의자에” 징벌적 투옥 비판

나발니, 수면 허용 안돼 체중 8kg 감소…"건강 우려"

그러나 푸틴 정부의 정적이 되면서 러시아 정부에게서 탄압을 받고 있다. 질병에 걸려도 약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가 하면, 가로 2m, 세로 3m의 방에 갇혀 생활하고 있으며, 하루에 16시간동안 강제로 철제의자에 앉아 있도록 하고 이에 심각한 허리 통증에 시달려 의사를 요청해도 단 5분만 진료를 하고 가버리는가 하면 나발니에게 설명없이 정체불명의 약을 주사하였다.

나발니 변호사들도 체포되거나 압수수색을 당하고 있다. # 나발니의 변호인들이 러시아 테러리스트 및 극단주의자로 지정됐다. # 나발니의 정치 사무소를 이끌던 크세니야 파데예바에게 '극단주의 조직'을 운영한 혐의로 징역 9년 6개월 형을 선고했다. #

2.5.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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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껄' 웃는 영상 공개 하루 만에 나발니 옥중 의문사…배후는 푸틴? 시신은 어디로?

2024년 2월 16일 교도소에서 향년 47세의 나이로 옥사하였다. 러시아 연방교정청 시베리아 최북단에 소재한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 교도소에서 산책 중 의식을 잃고 숨졌다고 밝혔다. 정확한 사인은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

3. 다른 야당과의 관계

3.1. 러시아 연방 공산당과의 관계

그닥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푸틴 반대 활동시 제한적으로 나발니 측과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일종의 오월동주.

주로 소련 해체 이후 혼란기에서 복고주의를 주장하던 기성 세력은 푸틴, 나발니 둘다에게 적대적이다. 한편 그러면서도 푸틴이 추구하는 강한 국가와 대외관, 관습적 문화를 선호하는 중진 세력은 강한 중앙 정부·크림반도 합병·반(反)동성애 등에 대해 지지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러시아 공산당에서는 나발니를 반동분자 비슷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나발니나 푸틴이나 둘다 자본주의자니 나발니 말고 공산당을 지지하라는 입장이다.

예를 들면 2021년 1월 나발니의 푸틴 별장 영상 공개 후 "우리 당의 크라스노다르 주 의원이 먼저 폭로했을 때는 언론들이 아무도 보도하지 않았으면서 나발니가 공개하니 모두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저길 어떻게 들어갔냐?"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나발니를 푸틴과 짜고치는 프락치라는 의견를 제기했다. 나발니가 여러가지 사건에 연루되어 있음에도 자유롭게 해외로 출국하고 있다며 러시아 사법당국이 나발니를 비호하고 있다는 주장은 덤이다.

반면, 21세기 이후 유입된 신진 세력들은 전통적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벗어난 최신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도 전향적이다. 이는 중립적 외교관과 보다 자유주의적인 문화관을 지지한다. #

예를 들어 실제로 2020년 하바롭스크 시위에서는 나발니 측과 공산당, 러시아 자유민주당 세력까지 가세했다.

2021년 러시아 국가두마 선거에서 나발니의 정당인 미래의 러시아 통합 러시아 후보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지지자들에게 러시아 연방 공산당 후보들에게 전략 투표할 것을 호소했다. #

4. 논란

그는 러시아 내부에서는 푸틴의 독재를 공격하는 혁명가적인 인물이나, 외국인에 대해서는 제노포비아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국수주의자 혹은 극우라는 지적이 있다. 캅카스인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급식 중단 캠페인에 관여, 캅카스계 군인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는 발언 등으로 비난받았다. 본래 나발니는 러시아의 친서구, 자유주의 성향 정당인 야블로코당 소속이었으나 이런 성향의 발언 때문에 2007년 야블로코당에서 출당 당했다.



2007년 나발니가 자신의 옛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23] 치과의사로 분장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뽑아야 할 충치에 비유하며 그들의 추방을 요구했다. "러시아인들의 뿌리가 러시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민족주의자가 되라"는게 나발니의 말. 이런 주장은 화이트 제노사이드와 통한다.

나발니의 구금과 함께 민주화 운동가로서 관심이 쏠린 시점에서 더 뉴요커지는 이러한 나발니의 내셔널리즘을 경계하는 칼럼을 실었다. 전반적인 논조는 그는 자유민주주의의 영웅 넬슨 만델라가 아니라 배타적 내셔널리즘에 찌든 (로힝야족을 탄압하는) 아웅 산 수 치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미화는 자제해야 한다는 평.[24]

그리고 앰네스티의 양심수 목록에서도 제외되었다. # 러시아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얼마 뒤 다시 재지정되긴 하였지만, 엠네스티는 여전히 해당 발언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 중이다. #

또한 나발니는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의 영토라고 인정한다. 2014년 인터뷰에서 '크림 반도는 러시아의 일부로 남을 것이며, 결코 가까운 시일내에 우크라이나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으며, 대통령이 된다면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에게 돌려줄 것이냐는 질문에도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 다만 2023년 7월에 올라온 그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는 러시아 지도 사진에 크림 반도가 빠져있다. #

한편 논란이 되는 것은 그가 공개한 푸틴의 비자금과 비밀 궁전에 대한 것이다. 물론 진위여부에 대한 문제는 아니고. 푸틴이 거대한 규모의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은 모두가 알지만, 대체 어떻게 나발니는 제 마당 들여다보듯 푸틴 궁전의 설계도며 내부 구조 같은 것들을 꿰고 있으며 어떻게 그 근처까지 침입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뒷배가 버텨줘야 하는데, 적어도 러시아의 신흥 재벌인 올리가르히 혹은 실로비키 세력과 결탁하고 있다는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푸틴의 정책 외에 따로 러시아에서 검증된 새로운 정치, 경제정책이 없는 상황에서 나발니가 극적으로 푸틴을 몰아낸다고 쳐도, 과연 그가 만든 사회구조를 개편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특별한 정치적 비전 없이 정치생활 초반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외치다, 이후 대중의 지지를 받기 위해 복지 시스템 확충을 주장하는 등 입장을 계속 선회해온 데다철새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국수주의 성향도 다분하다.[25]

국내의 대표적인 러시아 전문가인 류한수 상명대 교수는 나발니를 미국/서유럽의 기준에서 보자면 전형적인 극우라고 평가하면서, 모든 언론이 통제되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푸틴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독재 체제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과연 미국과 서유럽 미디어들이 보도했던 것처럼 유의미한 민주주의 투사였는지는 의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서울대 이문영 교수 또한 비슷한 평가를 내렸지만, 정작 러시아출신의 방송인 일리야는 나발니를 러시아의 김대중이라고 평가했다.

5. 호모포비아?

한국 인터넷에서는 위의 광고 중간에 게이를 추가해 나발니를 호모포비아 조작한 짤방이 돌아다니고 있다. 그러나 사실 '알렉세이 나발니는 크세니야 소브착[26]과 함께 푸틴 정권의 반동성애 정책을 반대하는 몇 안되는 러시아 정치인이다. 서유럽 처럼 LGBT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건 절대 아니지만 러시아에서는 이 정도로 의사 표현하는 것도 드문 만큼 러시아 기준으로는 진보적인 편이긴 하다.

사실 나발니 역시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초반까지는 LGBT에 대해 썩 긍정적인 편은 아니었지만 그 이후에는 러시아의 반동성애 정책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 여당 통합 러시아 주도로 시행된 동성애 선전금지법을 반대하며 러시아 선관위의 불허로 대선에 출마하지 못했던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는 동성애 선전금지법 폐지와 투표를 통한 동성 시민결합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 동성결혼 반대 입장에 대해서는 반대해도 괜찮지만 그 결론은 투표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6.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2000 - 2007 입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7 - 2013 제명

2013 선거연대를 위한 입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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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탈당
2013 - 2014 입당
2014 - 2018 당명 변경

2018 - 2024 당명 변경
사망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율 (득표수) 당선 여부 비고
2013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 모스크바
632,697표 (27.24%) 낙선 (2위) [27]

8. 여담

  • 부차 학살에서 '일리야 나발니'라는 사람이 살해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 사람은 나발니의 먼 친척인 것으로 밝혀졌다. 참고로 나발니의 부친은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지역 주민들은 러시아군이 알렉세이 나발니와 똑같은 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살해했다고 증언하였다. #
  • 6월 15일, 알렉세이 나발니가 교도소 안에서 '실종'되었다고 영국 가디언 지가 보도했으나 28일에 법정에 출두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 #
  • 한국 한정으로 이 사람의 이름을 니발니라고 잘못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한글 모아쓰기의 특성상 '나'와 '니'가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비슷하게 보이는 영향으로 보인다.
  • 수감 생활과 관련하여 시베리아의 영하 32℃의 극한에 고생하고 있음을 토로했는데, 최소한 10분 정도는 느긋하게 도시락 라면을 먹고 싶다고 밝혔다. 시간 제한 때문에 국물 마시다 혀를 데였다고 한다. #
  • 나발니 사망 이후 아직까지 정확한 사망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러시아 언론도 나발니의 죽음을 일기예보 직전 딱 한 번 10초정도 지나가는 형식으로 보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
  • 감옥에서 사망하기 5개월 전 저널리스트 일리야 크라실시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 한국과 대만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할 수 있었다면 러시아도 가능할 것이다"고 한국의 민주화를 언급했다. #
  • 사망하기 4년 전에 서방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비판 인터뷰를 가진적 있다. #
  • 러시아의 반 푸틴 진영에서 갑자기 프랭크 시나트라 1969년 곡, My Way가 상징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에서 해당 곡이 연주되었기 때문이다.

[1] 강세를 적용한 발음은 [ɐlʲɪkˈsʲej ɐnɐˈtolʲjɪvʲɪtɕ nɐˈvalʲnɨj\](알릭셰이 아나톨리비치 나발느이)이다. 러시아어 표기법상에서는 ль, мь, нь(l', m', n')이 자음 앞이나 어말에 오는 경우에는 ь(мягкий знак)를 반영하여 적지 않기 때문에 같은 ль도 표기상에서는 '아나톨리예비치'와 '나발니'로 표기가 갈린다. [2] Юлия Навальная, 1976년 출생, 2000년 혼인. 혼전성은 '아브로시모바(Абросимова)'. 인스타그램 [3] Дарья, 2001년 출생. 인스타그램 [4] Захар, 2008년 출생. [5] https://www.celebheights.com/s/Alexei-Navalny-52534.html [6] 2004년 4월 12일 ~ 2007년 2월 22일 [7] 2009년 5월 4일 ~ 9월 11일 [8] 2012년 10월 22일 ~ 2013년 10월 19일 [9] 2012년 10월 27일 ~ 11월 24일 [러시아어명] Алексе́й Нава́льный [기준] 2024년 02월 17일 [기준] 2023년 06월 28일 [러시아어명칭] Нава́льный LIVE [기준] 2024년 02월 17일 [기준] 2023년 06월 28일 [16] 라이브 방송과 뉴스 위주의 '나발니 라이브' 채널. 원래 나발니가 주도해서 진행했지만 그가 체포되어 수감되면서 미래의 러시아 및 나발니의 여러 관계자가 대신해서 운영하고 있다. [17] 소련 시절 노동교화소( 굴라크)의 일부로 설립된 교도소로, 극심한 추위와 가혹한 환경으로 악명 높다. 하술하듯 나발니는 모스크바 동부의 제6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2023년 12월에 제3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정치 활동 문단 참고). [18] 타살 의혹이 제기되고 시신의 행방을 알 수 없는 등,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었다. [19] 다만 러시아어 억양이 강한 편. [20] 다만 선관위는 몇 년째 해당 정당의 등록을 거부하고 있다. 덕택에 나발니 지지자들은 선거 때마다 별 수 없이 공산당, 야블로코당 등 다른 정당을 찍고 있다. [21] 보리스 넴초프는 1990년대 당시에는 주지사와 부총리를 지낼 정도로 정계 주류에 속했던 인물이었지만 푸틴과 사이가 벌어진 이후로 통합 러시아에 합류하지 않고 따로 정당을 차렸는데 자신이 참여한 정당들은 하나같이 군소정당에 머물렀고, 그 결과 정계 주류에서 밀려나도 한참 밀려나다보니 그저 반푸틴 인사 중 하나로 여겨졌을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그러나 푸틴이 과거의 연 때문인지 보리스 넴초프에 대해서 계속해서 신경 썼고, 넴초프도 반푸틴 활동을 한터라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게 된 것이다. [22] 통합 러시아는 이에 '사기꾼들과 도둑놈들의 정당을 찍는게 강간범들과 살인범들의 당을 지지하는것보단 낫다' 라고 응수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23] 참고로 НАРОД라고 나오는 로고는 나발니가 속해있는 러시아 국민해방운동의 로고이다. [24] 다만 아웅 산 수 치의 경우 로힝야족 탄압의 실제 주체는 군부였으며, 그녀는 군부를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억울한 면이 있다. [25] 보리스 넴초프같은 반푸틴 인사가 친서방, 친미 성향 매국노로 단단히 낙인 찍혀서 비호감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아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 것을 보면, 설령 그가 국수주의 성향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러시아의 현실 특성상 어쩔 수 없이 국수주의 성향을 어느 정도 어필해야 할 필요가 있다. [26]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전직 앵커 겸 셀럽 출신 정치인. 사실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는 이 쪽이 진짜 푸틴이 만든 어용 야권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크세니야의 아버지가 푸틴의 정치적 스승에 가까웠던 인물이기 때문. [27] 인민자유당과의 선거 연대를 통한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