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앙겔로스 (영어:Andronikos Doukas Angelos, 그리스어: Ἀνδρόνικος Δούκας Ἄγγελος) |
출생 | 1133년경 |
사망 | 1183년 또는 1185년 |
직위 | 동로마 장군 |
반란 대상 | 안드로니코스 1세 |
[clearfix]
1. 개요
동로마 제국 콤니노스 왕조의 반란자이자 이사키오스 2세와 알렉시오스 3세의 아버지, 마누일 1세의 여러 원정에 가담했고, 마누일 황제 사후 안드로니코스 1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입성하는 걸 저지하다가 실패하자 그에게 가담했다. 그러나 안드로니코스가 위험한 존재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 반기를 들려다 실패하고 아크레로 도망쳤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2년뒤, 또는 당해, 막내아들 이사키오스가 안드로니코스를 몰아내고 황제에 올랐다. 허나 이는 가문은 물론 나라 몰락의 시발점이었다.
2. 생애
1133년경 콘스탄티노스 앙겔로스와 알렉시오스 1세 황제와 이리니 두케나 황후의 막내 딸인 테오도라 콤니니의 셋째 아들로 출생했다. 1176년 형 요안니스와 함께 룸 술탄국을 정복하려는 미하일 1세의 원정에 가담하여 선봉대를 지휘했다. 그러나 미리오케팔론 전투에서 매복한 투르군에 의해 큰 손실을 입고 철퇴하는 걸 막지 못했다. 1177년 동로마 제국과 예루살렘 왕국과의 동맹을 갱신하는 임무를 맡아 예루살렘에 다녀왔다.1179년 황제의 명을 받고 프리기아의 카락스 일대로 원정을 떠났지만, 밤중에 일부 투르크군이 제국군의 후방으로 이동하여 고함을 지르자, 포위당할까봐 단독으로 도주했다. 동로마군은 사령관이 도주하자 공포에 질려 도주하다가, 마누일 칸타쿠제노스가 적이 없으니 안심하라고 다독인 덕분에 가까스로 안정을 찾았다. 마누일 1세는 이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안드로니코스에게 여장을 하고 거리를 행진하라고 명했다가 얼마 안가 취소했다. 안드로니코스는 얼마 후 아내 에우프로시나 카스타모니티사와 이혼하고 정부와 결혼하려 했지만 정교회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1180년 마누일 1세가 사망하였고, 아들 알렉시오스 2세가 황위에 올랐다. 하지만 나이가 아직 어려서 안티오키아의 마리아 황후가 섭정했다. 그녀는 라틴계 출신으로, 서방인들을 중용했다. 민심은 이에 분개하였고,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상황은 갈수록 위태로워졌다. 그때 안드로니코스 콤니노스가 어린 황제를 지켜주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거병했다. 안드로니코스 앙겔로스는 저들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들어 카락스 인근에서 반군과 교전했으나 패배했다.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귀환한 뒤 병사들에게 지급할 급료를 빼돌렸다는 비난을 받자, 수도를 탈출하여 안드로니코스 콤니노스와 합류했다. 여기에 해군 총사령관 안드로니코스 콘토스테파노스까지 협력하면서, 안드로니코스 콤니노스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했다.
그러나 안드로니코스 콤니노스가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숙청하기 시작하자, 그는 위협을 느끼고 안드로니코스 콘토스테파노스와 함께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이것이 발각되자 배를 타고 수도를 탈출한 뒤 아크레로 망명하여 조용히 지내다 1183년 또는 1185년경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