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2:28:43

아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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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3. 여담

1. 개요

阿Q

루쉰의 소설 아Q정전 주인공. 정신승리의 원조. 비굴함, 사치, 도벽, 내로남불, 음탕함 같은 온갖 부정적인 면은 다 갖고 있는 인물이다.

본명도 명확하지가 않지만 줄여서 아Q라고 부른다. 특별한 직업 고향도 없는 막노동꾼. 절간에 얹혀사는 객식구이며, 별 볼일 없는 삶을 살다가 비참하게 죽는다.

아Q의 아()자는 중국에서 타인을 부를 때 이름이나 성씨에 흔히 붙이는 지소사(diminutive)격 호칭이다. 귀엽거나 친근하다거나 어리다는 느낌을 주며, 영어권으로 치면 Little이나 Lil에 해당한다. 그리고 Q는 주인공 이름의 발음인 Quei를 뜻하는 데, 이것도 역시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이다. 루쉰은 작중에서 아Q의 이름이 무슨 자를 쓰는지 자신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면서 Q자가 정확하게 무슨 글자인지 명시하고 있지 않는데, 이 설정은 아Q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무지한 당시의 중국인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다는 해석을 할 수 있게 한다. Q라는 글자가 변발한 중국인의 뒷모습을 상징하고, 마침 변발도 영어로 '큐'(표기는 Queue)라고 읽는다. 애초에 이 작품 자체가 당시 중국의 사회상을 풍자하는 소설이다.

Quei는 한어병음이 정착하기 이전에 루쉰이 당대 영국인들의 표기를 따라 만들어낸 표기이다. 현대 중국어 한어병음으로는 'gui', 웨이드 자일스 표기로는 'kuei'에 해당하며 한국 외래어 표기로는 '구이'이다. 실제로 화자가 아Q의 이름으로 추측하는 '계(桂)'나 '귀(貴)'는 모두 Guì에 해당하는 글자다. 오늘날에 쓰이는 한어병음에서 Q(/ʨʰ/)는 오히려 한국어 에 대응하며 따라서 Quei는 '구이'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 표기다.

루쉰은 가장 흔한 글자의 의미로 Quei라고 썼지만 도리어 지금은 있을 수 없는 글자의 발음이 된 것이다. 너무 흔해서 특정할 수 없는 전자든, 있을 수 없는 이름으로 인해 불특정한 개인이 된 후자든 아Q라는 이름이 중국인 전체를 풍자하게 된 것은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2.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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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Q는 가족도 없고 도 없어 마을 사당에서 살면서 날품팔이로 먹고살지만 이 생길 때마다 노름으로 탕진하는 찌질이이다. 체구도 볼품없었던 아Q는 머리에 흥분하면 빨갛게 충혈되는 부스럼이 있었고, 그 부스럼을 부끄러워해서 사람들이 부스럼과 비슷한 발음도 못 쓰게 만들고 사람들이 실수로라도 그 글자를 자기 앞에서 쓰면 그 부스럼을 온통 붉히며 화를 냈다. 이게 점점 갈수록 정도가 심해져 밝다, 빛나다 라는 말만 들어도 버럭 화를 낸다.[1] 그래서 건달들은 놀려댔고, 아Q는 거기에 대고 익히 알려진 그 정신승리법을 쓴 것.
건달들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계속 그를 놀려댔고, 그러고서 마침내는 때리기까지 했다. 아Q는 형식상으로는 패배했다. (중략) 건달들은 그제야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아Q는 잠시 선 채로, "나는 자식에게 맞은 셈 치자… 요즘 세상은 정말 개판이야……." 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는 그도 만족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아Q는 자기가 쓰고 있는 정신승리법을 나중에 자기 입으로 줄줄 불어버리는데, 그 얘기를 전해들은 건달도 어이가 없어서 아Q를 구타하며 아Q 자신의 입으로 정신승리법을 부정하도록 위협한다.
"아Q, 이건 자식이 애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 짐승을 때리는 거다. 네 입으로 말해봐! 사람이 짐승을 때린다고!"
" 벌레를 때린다, 됐지? 나는 벌레 같은 놈이다…… 이제 놔 줘!"
그리고 아Q는 그 자리에서는 자신의 정신승리법을 부정하다가 돌아서자마자 그 치욕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정신승리법을 만들어 낸다.
그(아Q)는 자기가 자기경멸을 잘하는 제1인자라고 생각했다. '자기 경멸'이라는 말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제1인자'이다. 장원도 '제1인자'이지 않은가? "네까짓 것들이 뭐가 잘났냐?"
즉, 장원 급제한 엘리트도 1인자이고 자신도 (자기 경멸이라는 점을 제쳐두고 생각하면) 1인자이므로 그런 엘리트와 자신은 동급이라는 발상. 인터넷상에서 쓰이는 '정신승리'라는 말은 아Q정전에서 가장 처음 나오는 정신승리법을 뜻하는 의미로 자주 쓰이는데, 그건 작중에서 아Q가 쓰는 수많은 정신승리법의 일부 중 일부에 불과하고, 그런 정신승리법이 깨질 때마다 정말 징하게도 새로운 정신승리법을 만들어서 덧대는 것이 아Q정전의 진짜 백미.

예를 들어 축제의 노름판에서 드물게 돈을 크게 땄을 때, (누군가가 아Q의 돈을 슬쩍하고자 고의로 벌인 싸움이었는지, 혹은 다른 이유로 난 싸움에 우연찮게 말려들었는지는 몰라도) 싸움통에 돈을 도둑맞자 자기 을 후려치고 난 후 그것으로 정신승리를 한다. 아래가 그 전문이다.
…그러나 그는 금세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놓았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기 뺨을 힘껏 연달아 두 번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때리고 나서 마음을 가라앉히자 때린 것이 자기라면 맞은 것은 또 하나의 자기인 것 같았고, 잠시 후에는 자기가 남을 때린 것 같았으므로―비록 아직도 얼얼하기는 했지만―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드러누웠다.
…정신승리도 이만한 정신승리가 없다. 한심함을 넘어서 감탄이 나올 정도다(...)

또한 아Q는 이후 웨이좡 건달들 중 자기가 유일하게 하찮게 여긴 건달 '왕후'[2]에게 변발을 잡히고 벽에 몇 번이고 던져지며 굴욕을 당하기도 한다.[3]
그러면서도 자기보다 더한 약자이자 아무 죄도 없는 비구니 성희롱하며,[4] 사람들이 그걸 보고 비웃자[5] 사람들이 자신의 강하고 멋진 모습을 보고 환호하는 거라며 우쭐거린다. 거기에 취했는지 동네 부자인 조씨 집에서 허드렛일을 돕는 과부 식모에게 같이 자자며 들이댔지만, 당연히 조씨에게 들켜서 신나게 매질을 당했고 마을 사람들도 친구들도 조씨가 무서워서 아Q와 얽히길 꺼렸다.

결국 아Q는 살던 마을을 떠나 큰 성으로 들어갔다가 중추절 직후에 돌아오는데, 도 새로 사고 돈도 원없이 쓰는 등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또한 중고지만 쓸만한 옷가지들까지 가져왔기에 여자들은 그 옷가지들에 매력을 느끼고 아Q를 만나려고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묻자 아Q는 '거인[6] 영감 댁에서 일했다'고 말했는데, 거인 영감은 그 일대에서 유일무이한 명성을 지닌 위인이었기에 모두들 부러워하며 수긍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좀도둑들의 망을 봐주고 사치를 누렸다는 사실이 들통나자 다시 멸시를 받고 만다.[7]

이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그 거인 영감이 혁명당을 피해 마을로 도망을 오는 일이 발생한다. 아Q는 일찍이 서양 학교에 들어가 변발도 자르고 서양인 행세를 하던 전씨 아들을 '가짜 양놈'이라 부르며 욕했고[8] 혁명당 또한 반란을 일으켜 사람들을 힘들게 할 뿐이라며 싫어했다. 그런데 그 전씨 아들이 혁명당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혁명당만 나타나면 사람들이 벌벌 떨자, 아Q는 혁명당이 대체 어딜 봐서 자신과 통하는 데가 있다며 망상을 품고선[9][10] 혁명당원 행세를 한다. 하지만 자칭 혁명당원이라 사람들은 당연히 아Q를 무서워하지 않았고, 혁명당은 혁명당대로 아Q를 내쫓고 자기들끼리 활동했다.[11]

그러던 와중에 동네 부자인 조씨의 집이 혁명당을 사칭한 폭도들에게 도둑질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12] 마을 사람들은 예전부터 동네 유지랍시고 거들먹거리는 조씨 일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고, 아Q 또한 예전에 자신을 쫓아낸 조씨가 당했다며 통쾌해한다. 하지만 아Q는 이내 혁명당이 자신을 쫓아내고 훔친 재물을 독차지했다며 분노를 느끼고는 "혁명당은 모반자라 목이 달아난다"라면서 혁명당을 고발하겠다고 불만을 토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Q가 조씨네 집을 턴 도둑들의 일당으로 몰려서 잡혀오고, 진짜 혁명군에게 재판을 받게 된다. 결백하다고 주장해야 할 상황에서 재판관과 주위 사람들의 질타에 스스로 움츠러드는 등[13] 의심받을 짓만 일삼는다.

결국 아Q는 "그 가짜 양놈(전씨 아들)이 절 데리러 오지 않았습니다"라며 거짓 자백을 하는 것도 모자라, 자백서를 써야 하는데 문맹이라 이름을 적지 못하고 대신 동그라미를 그리는데 그마저도 을 들어본 적도 없어서 마지막에 붓을 잘못 놀리다 이 아닌 수박씨를 그려버리는 추태를 선보인다.[14] 그렇게 저도 모르게 스스로 사형 선고를 내린 아Q는 감방에서도 "모자란 놈이나 제대로 그리는 것"이라고 정신승리를 일삼으며 느긋하게 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당연히 사형 집행을 위해 묶인 채로 광장으로 끌려나간다. 아Q는 불안한 와중에도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 속에서 자신이 추파를 던졌던 조씨네 식모를 보자 안심하고 노래를 부르며 허장성세를 부리나,[15] 구경꾼들의 이리 같은 눈길을 보고 그제서야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직감한다.

결국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형을 당하는데, 유언이랍시고 "살려줍쇼...!!"라고 말하나 이마저도 입으로만 웅얼거렸을 뿐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심지어 아Q가 죽고 나서도 구경꾼들은 잘못한 게 있으니까 총살을 당한 것이라느니, 목을 잘라야 재밌는데 총살형은 시시하고 재미없다느니,[16][17] 노래 한 곡 제대로 부르질 못했다느니 하면서 고인드립을 일삼는다.

평생 동안 자신을 속이며 살았던 아Q가 진실을 깨닫는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또한, 아Q를 비웃고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와 함께 우매한 중국인을 나타내던 마을 주민들도 아Q가 사망한 뒤 재산을 몽땅 잃거나 가세가 기우는 등 저마다 몰락을 맞이한다.

3. 여담

인터넷 상에서 찌질이를 풍자할 때 ~큐(Q)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같은 중국인을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두들겨 패고 깠던 루쉰은 중국 내에서 최고 작가로 추앙받았지만, 오히려 중국인의 삶에 대해 애정을 담은 필체로 담담하게 묘사한 대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펄 벅은 그녀가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중국에서 수십 년간 입국을 금지할 만큼 거부 반응이 심했다. 자세한 내용은 펄 벅 문서로.

굽시니스트 본격 시사인 만화에서 QAnon이 이 아Q에 비유되었다. #

아큐와 비슷한 수준의 찌질함을 가진 인물로는 퇴마록 세계편의 가장 논리적인 남자가 있다. 차이점이라면 이 남자는 아큐랑 다르게 죽지는 않는다. 아쉽다 루아녹스도 아큐 못지않게 찌질함을 가진 인물이다.


[1] 명 태조 홍무제가 벌인 문자의 옥을 풍자한 것이다. [2] 별명이다. 그래서 '왕털보'로 번역되기도 한다. 대머리인데, 아Q는 대머리에 컴플렉스가 있기 때문에 별명인 '대머리 왕털보'에서 '대머리' 부분만 떼고 부른다. 덩치만 컸지 싸움을 못해 아Q에게 만만한 상대로 찍혔다. [3] 이로 미루어 본다면 아Q는 중국, 왕후는 일본을 의미하고 구시대에 사로잡혀 일본을 우습게 보다가 청일전쟁에서 털린 청국을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4] 에서 땡중이 기다리니 얼른 돌아가라는 망언을 하면서 그 비구니의 뺨을 꼬집고 때렸으며, 이에 그 비구니는 "자식도 못 낳아 대가 끊어질 아Q 놈아!"라고 소리치고 울면서 도망쳤다. 그런데 그 말은 결국 현실이 되어 버렸다. [5] 물론 군중들이 성희롱을 말리지 않고 그 광경을 보며 낄낄댔다는 점에서 아Q정전에서 비판하는 대상은 아Q만은 아닌 중국인 전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6] 擧人. 청나라 시절 과거에 급제한 선비를 일컫는 말. [7] 그것도 아Q가 스스로 자랑스럽게 건달들에게 도둑질을 했다고 불었다(...). 팔아먹은 옷가지들도 도둑패가 도둑질하는 동안 망을 보면서 담장 안에서 던져준 훔친 물건 보따리 하나를 받았는데 그 순간 도둑패가 발각되어 싸움이 벌어지는 소리를 듣고 겁을 먹고 그 보따리를 들고 고향으로 도망쳐 온 것. [8] 물론 면전에서 이 얘기를 하는 바람에 지팡이로 쳐맞았다. 이쯤되면 그 근성(?) 하나는 인정해 줘야 할 듯 [9] 그저 나도 혁명당원이라고 하면 그 동안 평소 마음에 안 들던 놈들 족치고 으스대고 다니면서 설움을 풀 수 있다는 확대해석에, 원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가질 수 있다는 탐욕의 발로일 뿐이다. 애초에 돈도 도둑들 앞잡이 활동으로 번 것이니 아Q로서는 혁명당과 도둑이 어떻게 다른지 알기는커녕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강자의 편에 설 수 있다면 뭐든 좋은 것이다. 실제로 혁명당에 대한 시선도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다. 어느 의미로는 문화대혁명 중에 온갖 반달리즘 약탈 등 난동을 부린 홍위병을 예언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10] 이러한 현상은 비슷한 공산권 국가였던 소련에서도 벌어졌다. 동네에서 무뢰배에 건달 취급 받던 이들이 혁명이 일어나자 재빨리 그에 가담한 뒤 서로 한 자리씩 해먹고 유세를 부린 것. 그리고 이들의 절대 다수는 스탈린 시절 대숙청에 그야말로 쓸려나갔다. 사실 이런 무뢰배들의 행패는 스탈린이 대숙청을 벌인 여러 사유 중 하나기도 하고, 여기서 대숙청이 그쳤다면 스탈린이 그리 욕을 먹진 않았을 것이다. [11] 마을 혁명당 지부장은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그리고 혁명당 들어가면 털어먹으려 했던 동네 유지인 '가짜 양놈' 전씨 아들이었다. 결국 당대 중국에서 혁명은 민중의 것이 아니고 윗사람들끼리 다 해먹는 그들만의 리그였다는 걸 풍자하는 셈. 실제로 신해혁명은 프랑스 혁명처럼 온 민중이 들고 일어난 혁명이 아니라 청 왕조에 불만을 품은 소수의 고위 계층이 일으킨 혁명이라서 민중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고, 북양정부는 사실상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정치체제만 바뀌었을 뿐 그 이상의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12] 이때 조씨 집에는 거인 나으리가 맡겨둔 귀중품들까지 있었는데 함께 다 털렸기 때문에 거인 나으리도 큰 손해를 입었다고 묘사된다. [13] 실제 신해혁명의 역사로 정황을 따져볼 때, 혁명군이 아Q가 사는 곳을 점령한 뒤 "강도질을 해서 혁명을 더럽힌" 불순분자들을 처형하러 왔다는 게 유력한 해석이다. 재판관이 중처럼 까까머리를 하고 있다는 묘사나, 변명조차 못하고 벌벌 떠는 아Q더러 " 노예 근성!"이라며 비난한 걸로 봐도 재판관은 청나라 관료가 아닌 혁명당 소속 인물이다. [14] "수박씨" 이야기는 실제 원문에 나오는 내용. 혁명당에 들어갔다던 전씨 아들의 행방은 불명인데, 이전 각주에서 지적한 대로 신해혁명이 소수 엘리트들만의 혁명이었던만큼 혁명당의 중추와 결탁하여 의심을 피하고 대신 아Q를 희생양으로 내세운 듯하다. 특히, 본명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두가 부르는 별명이나 칭호도 아닌 자기만의 멸칭인 '가짜 양놈'이 주도자인 것처럼 말했는데 그게 누군지 캐묻지 않고 바로 처형을 집행한 걸 보면 애초에 이들은 진범을 찾는 게 목적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15] 이마저도 이 노래 저 노래 재어보다가 결국 제대로 부르지도 못한다. [16] 여기서도 참수형은 '구식' 형벌이고 총살형은 '신식' 형벌이라는 점에서 아Q의 사형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 역시 봉건 시대의 잔재를 풍자하기 위한 요소라는 해석이 존재한다. 물론 사형수의 입장에서 보면 참수형이 총살형보다 훨씬 무거운 형벌이긴 한데 총살형은 한 방에 가는 걸 보증해 주지만 참수형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참수형의 고통은 총살형과 거열형의 중간 정도 된다. [17] 사실 20세기 초까지의 형벌은 동서를 막론하고 잔혹하기 그지없었으나, 한편으로는 이로 인한 극도의 잔인성 때문에 오락거리라 할 만한 것이 많이 않던 과거에는 오히려 재미있는 오락거리 취급받기도 했다. 중세 유럽을 다룬 창작물에서는 을 채운 상태로 저잣거리에 방치된 죄인들에게 주민들이 싸구려 과일이나 채소를 던지며 놀리는 장면이 한번쯤은 나올 정도며, 이는 중세 유럽이 배경인 국내 소설 "바비도" 후반에도 ' 교수형 눈알이 튀어나오는 게 재미있다' vs ' 화형은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게 재미있다'는 괴악한 취향 싸움으로 나온다. 중국 1906년까지 대낮에 저잣거리에서 능지형을 당한 사람도 나왔을 정도니, 신해혁명 즈음인 작중의 시기상 총살형은 상대적으로 시시하게 보였을 법하다. 어느 쪽이든 죄인의 인권 따위엔 관심도 없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임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