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15:49:01

아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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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ignat

프랑스 혁명기인 1789년 ~ 1796년에 국민의회가 발행한 공채(토지채권). 나중에 불태환지폐[1]화되었다. 프랑스 혁명기의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경제 혼란의 주범이 되었다.

명목 상으로 교회 재산을 몰수하여, 교회 토지를 담보로 하여 발행한 5% 이자의 공채로서 토지 채권의 일종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는 것에 가까웠다. 이후에는 토지를 담보로 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땅을 헐값에 몰수한다는 개념으로 이해되어져서 반발만 심해졌다.

이후 금리가 0%로 떨어지면서 사실상 지폐화가 되었다. 당시 인플레이션에 대한 개념적인 이해가 부족했던 국민의회 정부는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시냐 증쇄를 남발했고, 발행 이듬해인 1790년부터는 몰수된 토지의 총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액수가 발행되어 사실상 불태환지폐가 되었다. 특히 당시 국민의회에서 옛 통화와 동등하게 교환해야된다는 명령을 발휘하지 않은것과 반혁명가들의 조직적인 반발까지 겹쳐서 어려웠던 상황에서 과도하게 공급하는 바람에 신용이 극도로 실추되어 아시냐의 가치가 급속도로 떨어져 휴지조각이 되어 갔다. 때문에 아시냐는 경제적 혼란을 심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1793년 말에 아시냐 발행책임자였던 시몬 프랑수아 라마르슈가 부패혐의로 단두대로 갔지만 그와 상관없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지속되었고, 이 때문에 자코뱅 정권은 가격상한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로인해 생필품이 사라지게 되고 그 결과 폭동이 반복되는 등 악순환이 거듭되었다.

이후 자코뱅 정권이 무너진 후 총재 정부는 가격제한제를 폐지했다. 그리고 가치가 떨어졌던 아시냐의 가치는 아예 동네 개도 안물어갈 정도로 추락하였다. 이에 총재정부는 새로운 채권을 발행하고 아시냐를 회수하려 했지만, 새 화폐인 만다트 역시 정착하지 못하고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리기는 매한가지라서 총재정부의 지지율이 하락하는데 일조했다.

이 당시에 윌리엄 플레이페어도 프랑스에 간첩으로 파견되어서 위조지폐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프랑스 경제를 혼란에 빠트린다는 계획을 시행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아시냐가 알아서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에 안해도 될일이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민들한테 "내가 집권한다면 다시는 아시냐를 발행하지 않겠다!"라고 공언했고, 실제로 황제가 되자 국민들 앞에서 아시냐를 쌓아놓고 불태워버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 덕분에 자코뱅 정권 때보다 나폴레옹 집권 시기의 프랑스 물가가 더 안정되었고, 그래서 나폴레옹이 심하게 독재를 하는데도 프랑스인들은 자코뱅 정권만큼 심한 불만을 갖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갔다고...물론 경제안정 외에도 나폴레옹이 가져다주는 군사적 영광과 막대한 배상금 등 다른 여러 요인도 있지만.
[1] 정화(正貨, 명목 가치와 소재 가치가 같은 본위 화폐. 금 본위국에서는 금화, 은 본위국에서는 은화. 외국환 시세에 상관없이 국제적인 평가로써 유통된다.)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지폐. 불환지폐라고도 한다. 반대로 태환지폐란 정부나 발권 은행이 발행하여 그 소지자의 요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정화로 바꾸어 주도록 되어 있는 지폐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