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浅野幸長
1576년 ~ 16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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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쇼쿠호 시대부터 에도 막부 설립 초의 다이묘. 도요토미 오봉행의 필두인 아사노 나가마사의 아들.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인인 키타노만도코로 네네의 조카로, 아버지와 함께 일찍부터 히데요시를 섬겼다. 1590년 호조 정벌에 종군하여 무공을 세웠고, 이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참전해 서생포왜성에 주둔했고 울산성 전투에서도 전투를 치렀다.
1595년 도요토미 히데츠구 할복에 연루되어 귀양을 다녀왔고, 이 때문인지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에 동군으로 참전하였다.
하지만 도요토미를 완전히 저버린 것이 아니었고 1611년 니죠 성에서의 히데요리와 이에야스의 회견 당시 가토 기요마사와 같이 동석하여 히데요리를 호위했다.
1613년 성병으로 사망하였다. 1611년 먼저 사망한 가토 기요마사와 똑같은 사인으로 사망하였기 때문에 도요토미 중진이었던 두 사람을 이에야스가 암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상당히 오래 된 가설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물론 둘 사이에 2년이라는 시간 차가 있기 때문에 가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남자 후계자가 없었다. 대신 세키가하라의 공을 인정받아 차녀가 고산케인 오와리 도쿠가와 가 초대 번주, 이에야스의 9남 요시나오의 정실이 되어 도자마 다이묘임에도 불구, 도쿠가와 가의 친척이 되었다. 사후 동생 나가아키라가 가독을 물려받아 기슈 번주를 지내다가 이에야스의 10남 요리노부가 고산케로 들어서고,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일궈 놓은 아키국 히로시마 번 43만 석으로 전봉되어 그 후손들이 번주로서 막말까지 정착한다.
2. 노부나가의 야망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
노부나가의 야망에선 C급 무장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