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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타일러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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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e9e9b><colcolor=#fff> 스티븐 타일러 Steven Tyl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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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Steven Victor Tallarico 스티븐 빅터 탈라리코 |
출생 | 1948년 3월 26일 ([age(1948-03-26)]세) |
미국 뉴욕 주 맨해튼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싱어송라이터, 배우 |
소속 | 에어로스미스 |
학력 | 루즈벨트 고등학교(중퇴) |
활동 | 1970년 – 현재 |
악기 | 보컬, 키보드, 하모니카, 기타, 드럼 |
장르 | 하드 록, 헤비 메탈, 블루스 록, 글램 메탈, 컨트리 록 |
가족 | 딸 리브 타일러, 미아 타일러, 첼시 타일러, 아들 타지 먼코 탈라리코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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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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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he Demon of Screamin'
미국의
록밴드
에어로스미스의 보컬.2. 생애
1948년 3월 26일 출생으로, 뉴욕 맨해튼에 태어났으나 어렸을 때 브롱스로 이주했다가 9살 때 다시 같은 주의 용커스로 이주 후, 그 곳에서 자라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계와 독일 계의 혼혈, 어머니는 폴란드 계와 영국 계의 혼혈이었으나, 외할아버지가 우크라이나 출신이며, 심지어 부계 쪽으로 5대를 거슬러 올라간 조상 중에는 흑인도 있는 다소 복잡한 혈통이다.20대 초반에 타일러는 에어로스미스를 결성하고, 보스턴으로 이주하여 그 곳을 기반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뉴욕 출생임에도 보스턴 레드삭스의 광팬이다.[1]
3. 가창력
굉장히 날카롭고 허스키한 보이스에 강력한 성량으로 3옥타브 솔 이상의 샤우팅을 난사해대는 그야말로 괴물 보컬리스트로[2], 더욱 무서운 사실은 70이 넘어가는 나이에도 저 괴물같은 음역과 성량이 거의 손실없이 그대로일 정도로 성대의 내구성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6, 70년대를 주름잡던 하드록 보컬리스트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실력이 급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스티븐 타일러는 샤우팅의 파워가 약간 떨어지고 목소리가 더 허스키해진 것 이외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시피 그대로다.이런 목소리 때문에 지미 페이지, 존 폴 존스 그리고 1980년에 세상을 떠난 존 본햄의 아들 제이슨 본햄이 주도한 레드 제플린의 재결성 프로젝트인 "뉴 레드 제플린"의 보컬로 고려되기도 하였다.[3] 그러나 스티븐 타일러의 보컬이 로버트 플랜트의 스타일과 꽤 차이가 나는 만큼, 최종적으로는 무산되었다.
4. 여담
- 입이 큰 것으로 상당히 유명하다.
- 김장훈의 롤 모델로 추정되고 있다. 일단 링크된 영상의 다른 근거는 추정이라도 김장훈이 콘서트에서 직접 스티븐 타일러를 여러 차례 그런 뉘앙스로 언급한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영상
- 리브 타일러와의 일화는 참으로 비범하다. 리브 타일러가 임신된 당시에 스티브는 마약에 빠져서 폐인처럼 지냈다. 그래서 위험하다고 느낀 리브의 어머니는 스티브와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살면서 리브를 키웠는데 나중에 TV에서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 본 리브는 그를 만나기 위해서 유명해지기로 결심했다고. 다만 실제로는 스티븐은 리브가 태어나기 2년 전부터 다른 여자와 동거 중이였기 때문에 스티븐이 바람을 피워서 낳은 자식일 가능성도 있다.
-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까지 바람끼가 넘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40살 연하인 여성 비서랑 동거를 한 적도 있다고. 또한 튼튼한 성대를 가지고 있어서 환갑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3옥타브 솔(G5) 이상의 고음을 쩌렁쩌렁하게 낼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젊은 시절 대표 곡들을 아직까지도 매우 쉽게 부른다.[6][7] 비슷한 연배의 하드록 보컬들이 고음을 엄청 질러대다가 목이 나가서 키를 낮춰 부르는 것과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 리브 타일러의 절친인 카메론 디아즈에게 작업을 걸다가 딸에게 야단을 맞고 망신살을 산 적이 있다. 뉴욕[8]에서 열린 패션 브랜드 행사에서 그의 오른편에 카메론 디아즈가 앉게 되었다. 그래서 같이 영화를 보러 가거나 도시를 소개해주겠다며 접근했는데, 마침 이 장면을 발견한 리브 타일러가 "아빠! 제 절친한데 그러시면 어떡해요!"라며 분노를 표출했다고 한다.
- 헤네시 베놈 GT를 전세계에서 최초로 인도받아 1호차 소유자가 되었으며, 엄청난 자동차 애호가로도 알려져 있다.
- 2003년도에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 사실 6, 70년대는 하드락 음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임과 동시에 기존의 모든 사회적 제약을 거부하던 히피 문화의 영향으로 뮤지션들 사이에서 마약과 알콜, 섹스 등이 난무하던 시기이다.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같이 요절한 스타들부터 이후 알콜과 마약 중독을 극복한 에릭 클랩튼까지 웬만한 락스타들은 마약과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다. 타일러 역시 마약과 알콜 중독에 시달렸으며 헤로인같은 막장 마약까지 중독되어 밴드 활동에 지장을 줄 정도였지만, 다행히도 80년대에 재활치료를 통해서 마약을 끊고 80~90년대에 다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이 당시를 기점으로 창법은 그대로이지만 목소리가 상당히 많이 바뀌었는데, 초창기의 " Dream On"같은 곡들을 들어보면 목소리가 허스키하기는 하지만 후기의 "Rag Doll" 아니면 "Janie's Got a Gun" 같은 곡들에서처럼 메마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놀라온 것은 재활 치료 이후에 80년대에 녹음한 "Rag Doll" 과 10년 뒤에 녹음한 "I Don't Want to Miss a Thing" 도 목소리 변화가 거의 하나도 없으며, 그 이후에도 힘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 외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즉, 첫번째 전성기와 두번째 전성기 사이의 목소리 변화는 오직 마약 중독 때문이였다는 것.
-
마약 외에도 위에 언급된 대로 여성 편력이 화려한데, 27세 시절에 16세 소녀인 줄리아 홀콤과 3년간 동거하면서 마약에 빠져서 산 적이 있었는데, 그 기간동안 파혼, 화재, 낙태 등 화려하게 사고를 치다가 결국 헤어지게 된다. 그의 밴드 동료인 레이 타바노에 따르면 낙태로 인해서 스티브가 굉장히 망가졌다 (Really Messed Steven Up)이라고 하는데, 그 아이가 아들이였기 때문이라고. 웃긴 건 그의 딸인 리브 타일러는 1977년생으로, 홀콤과 동거하던 중에 베베 뷰엘과 동침해서 리브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만 당시에는 스티브가 리브의 존재에 대해서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벨은 막장 인생을 살던 스티븐으로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 당시에 남자친구였던 뮤지션인
토드 런그렌이 리브의 친부라고 속였고, 진짜 아빠가 스티븐이라는 게 드러난 것은 리브가 10대 시절이였다. 홀콤과 헤어진 이후에 스티븐은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그 이후에 약혼과 파혼을 한 번씩 더 하게 된다. 그러던 중, 피소당한 상태였다.
#
스티븐 타일러는 이전에 회고록에서 홀콤이란 여인을 언급한 적이 있다. 문제는 과거에 청산하고 조용히 살고 있었던 사람을 아무런 동의도 없이 책에 이름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홀콤이 주장하는 그루밍 성범죄가 실제로 있었는 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당사자의 사전 동의 없이 실명을 언급한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9] - 마지막 투어인 Peace Out: The Farewell Tour 도중에 후두결절에 걸려 모든 투어가 연기된 상태이다.[10] 결국 영구적인 성대 손상을 진단받고 투어 계획 백지화 및 은퇴를 발표하였다.
[1]
사실 뉴욕과 주변 도시들은 지역색이 강하고 주민들이 자기 지역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하기에 용커스가 뉴욕과 가까운 도시라고 해서 이 곳의 주민이 자동으로 뉴욕 양키스나 메츠 팬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같은 뉴욕 시 내에서도 브루클린, 퀸즈, 맨해튼, 브롱스, 스태튼 아일랜드 등 지역 내에서도 "같은 뉴욕 시민"이라는 동질감이 강하지도 않다. 이는 LA같은 다른 대도시도 마찬가지.
[2]
그 사례로 Get A Grip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Cryin'이라는 곡에서 " I was Cryin' " 이 2옥타브 시인데, 아래 라이브(5분 19초부터)에서 이 부분을 3옥타브 라의 샤우팅으로 대체한다.
[3]
로버트 플랜트는 지미 페이지와 사이가 약간 서먹해졌다.
[4]
그래서 리브가 주연을 맡은 영화인
아마겟돈의 OST를 맡았으며, 에어로스미스의 뮤직 비디오(Crazy)에 출연시킨 적도 있었다.
[5]
부녀가 함께
헬스키친에 출연해서 VIP 테이블에서 식사를 즐겼었다
[6]
Dream on 같은 경우에는 앉아서 피아노 치면서 샤우팅을 하기도 하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었다.
[7]
그러나 나이는 속일 수 없었는지 피치는 그대로이지만 파워는 예전에 비해서 많이 떨어졌다.
[8]
스티븐 타일러가 이 사연을 고백할 땐 영국 런던이라고 소개하였으나 후일 같은 방송에 나온 리브 타일러가 뉴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정정하였다.
[9]
반대로 록스타 자서전의 모범으로 평가받는
존 테일러 자서전의 경우, 과거 연인과 전처의 사전 동의를 구했다. 그래서 전처인 어맨다 드 카드네는 sns로 전남편의 자서전을 홍보해 주기까지 했으며, 전 여친 르네 시몬센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여담으로 르네 시몬센도 자서전을 썼는데 이때는 존 테일러를 만나 동의를 구했다. 이후 르네의 현 남편과 존 테일러가 같이 만나 식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10]
2024년까지 연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