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10:29:13

센트레일리아

1. 개요2. 역사3. 사고 발생4. 현재5. 매체6. 비슷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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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entralia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콜럼비아 카운티에 위치한 탄광촌으로 현재는 유령도시다. 이 도시의 타이틀이 무척이나 화려한데 무려 [age(1962-05-27)]년간 불타고 있는 도시다. 도시 자체가 불타고 있는 게 아니라 지하 탄광에서 화재가 일어난다.

2. 역사

파일:external/www.offroaders.com/cent62.jpg
사고 전 시가지 모습
센트레일리아의 역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현재 펜실베이니아주 콜럼비아로 여겨지는 땅을 1749년 신대륙 개척자들에게 500파운드에 파는 것으로 시작한다. 개척자들은 1770년 리딩에서 포트 오거스타까지의 리딩 로드를 건설하면서 새로운 땅을 발견했다.

1828년 무연탄에 불을 붙이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센트레일리아에 사람들이 모여 탄광촌이 형성된다. 이후 센트레일리아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뀌고 1842년 센트레일리아의 땅은 로커스트 광산 회사와 광산 기술자였던 알렉산더 래이에게 팔렸다. 래이는 그의 가족을 그 땅에 이주시키면서 도로를 만드는 등 개발한 뒤 그 땅을 Centreville이라 이름지었으나 1865년 오늘날의 지명인 Centralia로 바꾸는데 그 이유는 이미 Centreville이란 지명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1]

한편 1854년 센트레일리아에서 생산되는 석탄을 실어나르기 위한 철도가 완공되고 최초의 광산이 1856년애 열렸으며 1865년에 또 다른 철도가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서 센트레일리아에 들어오면서 작은 소도시가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었고 광산이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1890년에는 인구수가 2761명에 이르게 된다. 센트레일리아가 가장 잘나가던 시절에는 교회가 7개, 호텔이 5개가 있었고 27개의 주점과 2개의 극장이 있었으며 그 외에도 은행이나 우체국 등 있을 건 다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광부들이 군대에 입대하고 1929년에는 대공황으로 센트레일리아는 점차 쇠퇴하면서 버려지는 탄광이 늘어갔다. 그럼에도 1960년대까지만 해도 채굴은 계속되고 있었고 이전만큼은 못 하더라도 여전히 꽤나 잘나가는 소도시였지만 1962년에 센트레일리아의 운명을 바꾸는 화재가 발생하게 된다.

3. 사고 발생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지역은 센트레일리아 광산 화재(Centralia mine fire)로 불리는, 꺼지지 않는 화재로 유명하다. 1962년 5월 27일 지방정부에서 고용한 소각회사 직원들이 센트레일리아 쓰레기 매립장의 쓰레기를 소각하기 위해서 쓰레기에 불을 붙이고 어느 정도까지 타도록 내버려뒀다. 이후 소방관들이 불을 진압했지만 불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남은 불씨가 매립장이 위치해 있던 버려진 탄광 구덩이의 석탄에 옮겨 붙으면서 지하의 버려진 탄광에 불이 옮겨 붙기 시작했다.

센트레일리아에서 주로 생산되던 석탄은 무연탄이었는데 한 번 불이 붙으면 끄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2] 그 해 2번의 진화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하고 다음해 한 번 더 진화 시도가 계획됐지만 주에서 이를 포기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1979년까지도 탄광에서 일어나는 화재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1979년 센트레일리아의 주유소 주인이었던 존 코딩턴은 주유소 연료 저장고의 연료량을 측정하기 위해서 저장고에 긴 막대를 넣어 보았다. 그런데 저장고는 몹시 뜨겁게 느껴졌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 저장고에 온도계를 매달아 넣어 보고 그 결과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장고 안 가솔린의 온도는 무려 172°F(약 77.8°C)에 달했으며 심지어 탱크 10m 밑에서는 999°F(약 537°C)라는 경이로운 측정값이 나왔는데 이마저도 온도계가 표시할 수 있는 최대치가 표시된 것으로 보여 실제 온도는 이보다 높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태로 펜실베이니아주 전체에서 센트레일리아의 화재가 주목받게 되었다. 지하 온도는 점점 높아졌고 도로마저 갈라져 차량 운행이 불가능해지자 소방관들은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애썼으나 상황은 더 나빠져 갔다. 1981년 2월 14일에는 12세 소년 토드 돔보스키(Todd Domboski)[3]가 뒷마당에 생긴 직경 1.2m, 깊이 46m의 싱크홀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는데 소년 밑의 땅이 갑자기 꺼졌고 소년은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간신히 매달렸다. 다행히 그의 사촌이 달려와 그를 끌어 올려 구조하였다. 불타던 탄광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설상가상으로 유독가스마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자 연방정부 차원에서 1984년부터 4200만 달러를 들여 주민들을 강제이주시키기에 이른다.

4. 현재

센트레일리아의 경고 표지판
[4]
경고 - 위험함

지하 광산 화재

이 지역에서 보행이나 운전을 하는 것은 심각한 부상이나 사망을 초래할 수 있음

유독 가스 존재

지반이 갑자기 붕괴될 수 있음

펜실베이니아주 환경보호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dr_1647.jpg

갈라진 도로, 유독가스가 새어나오는 게 보인다. 이 도로는 남쪽에서 센트레일리아로 진입하는 61번 도로였는데 도로 밑의 석탄층이 타들어가면서 지형이 변형되고 아스팔트가 녹으며 쪼개지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 이 도로는 폐쇄되었고 남쪽으로 우회하는 도로를 새로 냈다. 폐쇄된 도로에는 현재 매우 빼곡하게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는데[5] 이게 센트레일리아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센트레일리아의 스트리트 뷰 #


6분 30초에 2016년에 열려야 했던 1966년의 타임캡슐이 나온다. 타임캡슐은 2년 이른 2014년에 개봉되었다. 개봉되는 모습

현재는 유령도시다. 1981년까지만 해도 1000명에 이르던 주민들이 강제이주 정책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도시를 떠나면서 2007년에는 9명, 2013년에는 8명이 남아 있었다가 2014년 센트레일리아의 마지막 시장으로 재직했으며 마을에 남아 집을 지키던 칼 우머(Carl Womer, 1923 ~ 2014)가 세상을 떠나고 2016년 그의 자손도 이주를 결정하면서 2017년 기준으로 남은 인구는 4명으로 추정된다.[6]

파일:F2yT38wa8AYddSr.jpg

도시의 건물도 거의 모두 무너져내렸으며 빈 주택들은 주에 의해 철거되었다. 2002년에는 센트레일리아의 우편번호인 17927이 말소되었다. 현재는 도시에 남아있는 주민들에 대한 이주금 지원 정책이 끝나 주민들이 이주하더라도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2013년에 이루어진 주민들과 주정부 간의 합의에 따라 몇몇 남아 있는 주민들은 계속 그곳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사망하면 그들의 재산은 펜실베이니아 주로 귀속되며 다른 곳으로 이사할 경우에도 살던 주택은 펜실베이니아주로 귀속된다.

센트레일리아에서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번즈빌(Byrnesville)이라는 도시 밑으로도 불이 번져 번즈빌 또한 폐쇄되었다. 여기는 주민이 모두 다 이주해서 사는 사람이 없고 반파된 집 한 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지금은 구글 지도맵을 보면 숲만 무성하고 반파된 집조차도 없다.

탄광은 계속 불타며 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250년 동안은 더 불탈 것이다.

2017년 기준으로 유독가스가 새어나오는 일은 없어졌지만 성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건물이 붕괴되고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 얼핏 본다면 한때 마을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몰라보게 바뀌었다. 다만 기적적으로 우크라이나 가톨릭 성당[7]이 있는 자리는 불과 무관하여 이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이 찾아와 계속 예배를 드리고 있고 그 종파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성지로 받들어진다.

센트레일리아로 가는 도로에는 스프레이로 그려진 음경이 엄청나게 많다. 반달리즘에 충실한 전형적인 그래피티들이다.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기승을 부린 가운데 센트레일리아의 그래피티 하이웨이가 흙으로 덮여 폐쇄되었다. 주 정부 관계자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가운데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하루에 100명 이상을 쫓아냈다. 특히 이들이 언제 지반이 붕괴될 지 모르는 위협을 감수하고 그래피티만 구경하고 가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이들이 마을에 들러 타이어와 다쓴 그래피티 캔을 버리거나 태우고 가며 심지어 전자제품이나 자신이 들고온 쓰레기를 봉투째 태우기 위해 버리고 간다.

5. 매체

  • 사일런트 힐(영화): 호러 게임인 사일런트 힐 시리즈 영화 사일런트 힐 마을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매우 유명하다. 센트레일리아가 영화의 사일런트 힐의 모티브가 된 것은 맞지만 게임의 모티브가 된 것이 아니다. 영화 사일런트 힐의 각본가 로저 아바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센트레일리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IGN 인터뷰에서 밝혔다. # 2021년 사일런트 힐 시리즈 팬이 팀 사일런트 해체 이전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미술 및 크리처 디자인을 담당한 이토 마사히로에게 "센트레일리아가 사일런트 힐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사일런트 힐에 내리는 것은 재이다."라고 말했는데 마사히로는 "팀 사일런트의 멤버입니까? 나는 미술 감독 및 환경과 크리처 디자이너였는데 당신은 만난 적이 없는 것 같군요. 사일런트 힐에 내리는 것은 눈입니다."라고 말했다. # # #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13년 2월 24일자에서 이 내용을 다루었다.

6. 비슷한 것

  • 불의 정원: 대한민국 경상북도 포항시에 있었다. 2017년 공사 중 우연히 약간의 천연가스가 채굴되어 불이 붙었는데, 이를 다 탈 때까지 놔두고 관광 자원으로 삼았다. 2024년 불이 꺼진 상태.
  • 지옥의 문: 투르크메니스탄 카라쿰 사막 중부의 마을 다르바자에 있는 것으로 1971년 소련 서기장이었던 브레즈네프가 이곳에 자원 매장량을 조사하라고 명령하여, 파견된 연구 팀이 땅을 파고 조사를 하는 도중 천연가스전에 이 붙었는데, 갑자기 지반 침하로 시설 전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천연가스 분출이 시작되었으며, 가스가 퍼졌을 때 주변 환경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여 태워 없애려고 불을 더 붙였는데 매장된 가스가 많아서 싱크홀이 타오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화염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것이 마치 기독교의 지옥을 연상시켜 지옥의 문이라고 불린다. 앞으로도 수백 년 더 불꽃을 피울 수 있다고.


[1] 이 지명은 훗날 동부건설의 아파트 브랜드인 동부 센트레빌에도 영향을 주었다. [2] 연탄이 잘 안 꺼지고 오래도록 타는 이유와 같다. 연탄도 무연탄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3] 이름상 폴란드계 미국인으로 추정된다. 1968년 3월 9일 출생. 싱크홀 사고로부터 41년 후인 2022년 2월 4일, 향년 53세로 사망. 사인은 약물 중독. [4] 우측 하단에 센트레일리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고 낙서되어 있다. [5] 그래피티 하면 흔히 생각나는 상스럽고 저질스러운 그림이다. 현재도 계속 그려진다. [6] 출처: 공식 센트레일리아 사이트 기사 [7] 즉 이 동네에 주로 우크라이나계 이민자들이 살았음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