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00:48:56

상족


1. 개요2. 상세3. 신앙4. 여담

1. 개요



중원의 고대 국가 상나라를 세운 집단이며[1], 주나라를 세운 화하족과 함께 한족의 기원이 된 민족이다.

2. 상세

일단 전해지는 시조는 로, 하나라 우임금을 도와 황하의 치수를 행한 공로로 자(子) 성을 받고 상(商) 땅에 봉해졌고, 사도(司徒)에 임명되었고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였다고 한다. 다만 이때 상족이 (하나라로 추정하기도 하는) 얼리터우 문화에 실제 속했는지는 모호한데, 학계에선 당대나 상주교체기 당시의 갑골문 기록들을 고려해보면 상족이 한족의 원류인 화하족과 연관이 있든 아니면 주변 이민족이든 간에 상나라의 중심지 자체가 얼리터우 문화의 중심지인 허난성 부근과는 멀기에 얼리터우 문화와는 관계 없었을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편이다.[2]

오늘날 상나라 하나라를 무너뜨린 조상(早商) 초대왕 탕왕부터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라 멸망 이후 세력을 크게 넓힌 상나라는 중기 무렵 쇠락기를 걷다 반경 은허 천도[3] 이후 다시 부흥하기 시작해, 무정 시기 등의 재전성기를 맞는다.[4]

상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 목야대전 패배 이후 분신자살하고 주나라가 중원을 통일하자, 은허는 폐허가 되고 상족 일부는 주나라에 의해 처형되거나 박해받았지만, 나머지는 관중, 낙읍 등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5] 아니면 주나라가 허가한 제후국 송나라[6] 등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일부는 북쪽의 고죽국으로 이주했고 또 일부는 남쪽으로 이주해 초나라의 형성에 기여했다고 보기도 한다.[7]

3. 신앙

상족이 숭배하였던 신은 (帝)였다. 제는 조상신으로서 그들은 왕이 죽으면 제가 된다고 믿었다. 즉, 인간을 신적 존재로 받드는 고대 신정국가였다. 왕은 제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제사장으로서 제에 대한 숭배 의식을 주도하였다. 제는 혈통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같은 제를 숭배하는 씨족끼리 연합하여 한 국가를 이루었다.

이를 통해 상나라가 씨족들이 모인 도시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帝) 신앙은 상나라의 멸망 후에도 유지가 되었는데[8]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에서는 위대한(皇) 상제(上帝)라는 뜻의 황제(皇帝)가 등장했고 진나라 멸망 후 전한과 후한 시기에 발흥한 도교신앙과 결합이 되어 도교의 최고 신인 옥황상제가 등장했다.

그리고 16세기때는 다소 뜬금없이 외부 종교와 결합을 했는데 바로 기독교였다.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중국어로 표현하기 위해 신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수집했고, 결국에는 상제라는 단어가 중국인들에게 잘 받아들여서 상제로 번역을 해 이후 교리상 천주 외에는 어떠한 단어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교황의 칙서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선교에서 폭넓게 쓰였다.

4. 여담

유교의 성인인 공자가 이 상족의 후손이라고 전해진다. 주나라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에 협력한 기존 상나라 세력들을 제후국 송에 분봉시켜줬는데, 공자 윗대에 이 송나라에서 노나라로 이주 혹은 망명해와 공자가 태어났다. 일각에선 더 나아가 상왕족의 후손 드립도 치는데, 이게 공자의 위명에 기댄 기록들이라 실제 그런지는 따져볼 문제긴 하다. 공자도 스스로를 상나라 후예라고 여기긴 했으나, 애초에 공자는 거의 반 사생아 수준의 별볼일 없는 집안 출신이었던지라 실제는 어떤지 모를 일.

한편, 공자 동이족이라 주장하는 이들의 논거가 상족이 동이족에 속한다는 논거에서 나온다. 여기서 더 나가 한국의 국수주의 계열 유사역사학자들인 환빠들은 상나라 주나라 시기에 동이족이 고대 한국인을 가리키는 이명이기에 공자도 한국인이라는 식으로 주장하기도 하나, 이때 동이족은 그냥 중원의 동쪽(오늘날 산둥 지역 등)에 거주하는 비 한족계 민족을 뭉뚱그린 표현으로 쓰였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이때 동이족은 이후 한족화된 이민족이거나[9], 현대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10] 게다가 갑골문 금문을 해독한 결과에 의하면 상나라나 주나라나 둘 다 상고 중국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즉, 이 말이 사실이라면 비 한족계 민족으로서의 동이족에 속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상인, 상업 등에 쓰이는 상()이라는 한자가 상족에게서 유래했다. 상나라 멸망 후 여기저기 이주하거나 떠돌아다니며 물건을 판 유민들에서 유래했다고 보기도 하고, 상나라 건국 전후 시기부터 이미 무역에 정통했기에 이렇게 불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1] 참고로 중국에서는 하나라를 화하족(華夏族)이 세운 최초의 나라라고 말하고 있으나, 아직 학계에서는 그 실체를 완전히 인정받진 못하고 있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 [2] 애초에 고고학적으로 드러난 얼리터우인들은 비교적 고립적인 생활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3] 덕분에 은나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4] 물론 국가적으론 전성기였지만, 오늘날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인신공양 문화 등을 고려하면 무서운 시절이기도 했다. [5] 애초에 후술되어있듯 상인이라는 말도 이런 행보를 내포한다. [6] 주나라를 돕거나 우호적이었던 상족 세력들이 주축을 이뤘기 때문에, 주도 조정에 와도 다른 제후국들과 달리 절을 하지 않아도 되는 등 나름의 예우를 해줬다고 한다. [7] 애초에 당대만 해도 상족 인구가 주족 인구보다 많았기 때문에, 주족은 상족을 통치하기 위해 이들을 여러 군데 분산 배치시키고 동화시키는 등 여러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8] 점술가이기도 했던 주문왕이 자기 나름대로 상제 개념을 재해석해 계승했다. 다만 아들 무왕 주공단 대를 거치면서 상제 개념은 점차 약화되고, 대신 천명으로 대표되는 '천' 개념이 강해져, 상제는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아닌 신화적 얘깃거리로 남게 된다. [9] 애초에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초나라, 진나라 등은 모두 이민족 집단이었다가 한족화된 케이스다. [10] 백번 양보해서 공자가 한민족계였다한들 혈통만 한민족계인 중국인이라서,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우기는 소수 환빠들의 주장은 사실로 보기 어렵다. 애초에 한족이란 개념조차 정립이 제대로 안되어있던 그 시절에,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있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이런 논리면 현대에 남은 또다른 동이족 국가인 일본에서도 비슷한 부류들이 똑같이 공자를 일본인이라고 떠들 순 있겠지만, 이런 주장은 환빠던 아니던간에 그저 황당하게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