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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 소돔의 120일 (1975) Salò o Le Centoventi Giornate di Sodo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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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
제작 |
알베르토 그리말디 알베르토 드 스테파니스 안토니오 기라산트 |
각본 |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푸피 아바티 세르지오 시티 |
원작 | 사드 후작의 < 소돔의 120일> |
장르 | 드라마, 전쟁 |
출연 | 알도 발레티, 파올로 보나첼리[1], 조르지오 카탈디 외 |
촬영 | 토니노 델리 콜리 |
편집 |
니노 바라글리 타티아나 카시니 모리기 타티아나 카시니 모리기 엔조 오코네 |
제작사 | Produzioni Europee Associati |
배급 |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
개봉일 | 1975년 11월 23일(파리) |
화면비 | 1.85:1 |
상영 시간 | 1시간 57분 |
상영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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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돔의 120일을 원작으로 하는 이탈리아의 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이탈리아 영화. 1975년에 개봉했다. 국내에는 "살로, 소돔의 120일"로 알려져 있다.2. 상세
원작 소설과 기본적인 내용은 같지만 배경이 바뀌었다. 원작의 18세기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가 배경이며, 2차 대전 때 이탈리아가 연합국에 항복하자 독일이 이탈리아 북부를 점령하여 세워진 살로 공화국을 배경으로 한다.사회적 강자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가둬놓고 쾌락용 도구로 사용한다는 내용[3]은 원작과 큰 차이가 없으나, 창작자의 의도는 다르다.
원작이 내면에 숨겨진 가학적 쾌락본능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것을 보여주며 마치 이를 인간의 본성이라는 식으로 풍자하는 것에 반해, 이 작품은 당시 68혁명의 후폭풍 이후 반동의 흐름에 대한 경계와 함께 권력층과 파시즘의 실상을 극도로 충격적이고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한 마디로 둘다 비판적 요소가 있으나 원작은 풍자와 냉소라면 영화는 강력한 정치적 비판이 목적이다.
3. 줄거리
1940년대 중반 패전이 짙어진 시점에서 파시스트 관료 4명[4]이 주둔 독일군들에게 돈을 주고 십대 청소년들을 데려다와 선별한 후, 마르차보토(Marzabotto) 근처에 소재한 비밀스러운 빌라에서 자신들의 사병들과 함께 위험한 쾌락을 추구한다는 내용이다.참고로 마르차보토는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이 이탈리아 레시스텐자에 대한 보복으로 이탈리아 민간인 770명 이상을 학살한 지역이다.[5]
4. 평가
- 영국 영화 협회 주관 2022년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감독 투표 부문 72위[6]
파솔리니의 유작이자 그의 작품 중 가장 강력한 논쟁의 대상이 된 문제작이다. 상당히 폭력적이고 염세주의적인 작품으로 현재까지도 평가와 해석이 갈린다.
예술 영화에 대한 평가가 높은 유럽 등지에서는 파졸리니 감독의 의도를 높게 평가한다. 예를 들자면 파시스트 관료 4명은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하던 권력층, 창녀들과 뚜쟁이들은 권력층에 빌붙는 지식인 계층, 십대 청소년들은 그들 밑에서 고통받는 국민들.
옴짝달싹 못하도록 묶인채 절대권력자들과 그의 하수인들이 지껄이는 고상한 개똥철학을 듣고, 권력자들의 강요에 의해 먹기싫은 똥을 억지로 퍼먹고, 마침내 무기력한 한마리의 순종적인 짐승이 되어 권력자들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 소비되어 사망에 이르는 영화속 피지배자들의 모습을 통해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 왜 권력자들은 국민들이 서로를 미워하게 만드는가?
- 성욕해소 행위와 절대권력 행사 행위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 어떻게 피학의 고통과 증오가 적응과 자기세뇌를 거쳐 쾌락과 폭력으로 전이되는가?
- 결국 절대권력의 폭압에 대응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없는가?
하지만 파솔리니 감독 특유의 무성의한 듯한 불친절한 구성과 지금 기준으로도 상상 이상으로 더럽고 엽기적인 장면들 때문에 일부 고어물 매니아들이나 평론가를 제외하면 호불호가 엄청 갈린다. 북미권 평단에서도 파시즘 비판 의식은 인정하면서도 지나친 장면들은 혹평을 보내기도 했다. 원작에는 없던 파시즘에 대한 비판이 추가된 것 정도는 나름 흥미로운 점. 단순히 '수위 높은 영화라던데 호기심에 봐볼까?'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괴작일 뿐이며 파졸리니의 기존 작품들을 좋아하는 팬들도 이 영화만큼은 손사래 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지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아 2022년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 감독 투표 부분 72위에 진입했다. 사실 예술 영화 지지 쪽에서는 장면이 너무 끔찍한건 인정하지만 그 속의 비판의식과 염세주의적 요소가 뛰어나다고 평가를 해주기도 한다.
현재 기준으로 봐도 충격적인 내용으로 유명하여 '어떻게 저 시대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냐'고 놀라는 경우도 있는데 70년대는 반문화, 히피 문화, 68혁명의 영향으로 오히려 21세기인 현재보다 수위가 높고 파격적인 영화들이 전세계적으로 만들어지던 시절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영화의 원작 소돔의 120일은 18세기 작품이다. 소설도 영화수준으로 잔혹하고 충격적이다.
간혹 이 영화때문에 감독이 B급 고어물 전문인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파솔리니는 테오레마, 메데아, 데카메론, 켄터베리 이야기 등 유명한 작품들을 감독하고 아라비안 나이트로 칸 영화제 그랑프리도 받은 인정받았던 감독이다. 사실상 필모그래피 중 고어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5. 여담
감독의 동생인 귀도 파졸리니는 2차 대전 당시, 본 영화의 배경 국가인 살로 공화국에서 반 파시스트 레시스텐자 활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모리코네는 이 영화를 보는 것이 매우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파졸리니와 좋은 친구였기 때문에 음악을 맡아준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평소 파졸리니와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져있던 모리코네는 후일 파졸리니의 살해 사건을 다룬 영화 <파졸리니: 이탈리아의 어떤 범죄>의 음악을 맡기도 했다.
파졸리니 감독과 친했던 영화 감독 마르코 벨로키오가 목소리 더빙 연기로 참여했다.
영화는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옥의 문, 기벽의 장, 똥의 장, 피의 장으로 나뉘는데 각각의 장의 이름에 걸맞은 이야기들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똥의 장은 이름에서도 알수 있듯 스카톨로지 관련 내용이고 피의 장은 잔인한 장면이 나온다.[7][8]
한 출연 배우의 증언에 의하면 의외로 당시 촬영장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고 한다.[9] 참고로 작중에 나오는 똥은 초콜릿과 오렌지 마멀레이드, 씹히는 재료들로 만들었고 오줌은 탄산을 다 날려보낸 맥주를 썼다고 한다. 해당 배우는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야 끔찍한 내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알려진 바와 달리 의외로 대역으로 찍은 장면도 있다고. 다만 배우들이 촬영을 하면서 크고작은 부상을 입은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만든 직후 파졸리니가 의문의 린치를 당해 살해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부검 결과 여러 사람에게 흉기로 구타당해 살해됐으며 자동차로 그의 얼굴을 짓이겨버린 잔혹한 범행인 것으로 확인됐으나, 당시 이탈리아 경찰은 용의자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해버렸다.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소년인 주세페 펠로시는 살인죄로 기소당해 수감되었다가 풀려났는데, 사건 발행 30년 후 자기는 협박당해 거짓으로 자백했다고 고백한다.
파졸리니는 이전부터 붉은 여단과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우익의 공격 대상이었으나, 학생과의 동성애 혐의로 문제가 커져서 공산당과도 결별하여 좌익과도 사이가 나빴고 이탈리아 영화계에 도사리던 마피아도 끔찍히 싫어해 그야말로 사방에 적투성이었다. 심지어 소돔 120일에 출연한 아역 배우의 부모가 살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건 진지하게 거론되지 않은 낭설이다.[10] 살인범으로 투옥된 주세페 펠로시는 영화 업계와는 관련이 없고 진범은 아직도 밝혀진 바가 없다. 주세페 펠로시는 출소 이후 2000년대부터 각종 책과 방송 출연을 통해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다니다[11] 2017년 폐암으로 타계했다. 파졸리니가 우익 마피아 세력에게 정치적인 이유로 살해 당했다는 설이 가장 지지를 받고 있다.
당시의 유럽이니까 제작이 가능한 영화였다. 우선 당시 이탈리아는 지금보단 성에 대해 보수적이지만 미국이나 영국보다는 아니었던 데다[12] 68혁명의 흐름 등으로 더 자유로운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1970년대만 해도 유럽 선진국조차 아동 포르노가 판매될 정도로 아동 성범죄에 대해 심각한 인식이 없었으며 아역배우들에 대한 인권의식도 매우 낮았다. 만약 지금 이 작품을 만든다면 감독은 엄청난 비판을 받고 미성년자 노동법 문제와 학대로 고소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배우들이 실제로 고통받거나 감독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찍지는 않아서 다행이기는 하다.
일각에서는 영화가 너무 충격적인 나머지 스너프 필름처럼 사람을 진짜로 고문하는 영화라는 소문도 있는데 그건 결코 아니며 의외로 분장 티가 많이 나는 부분도 있다. 유튜브에 메이킹 필름도 돌아다닌다.
의외로 메이저 제작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가 제작에 참여했다. 파졸리니 감독도 당시 이미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하던 명감독이었고 사후에 개봉되어 꽤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단 너무도 외설적이고 잔혹한 장면이 검열 당하긴 제격인지라 세계적으로 정식 개봉한 국가가 많지는 않았다. 유럽 일부 국가 및 일본 정도.
1976년 서독에서는 개봉되었는데, 원래 이 영화는 슈투트가르트 지방법원이 불법 포르노로 분류하여 상영을 금지하였지만 며칠 후 그 판결이 번복되어 영화는 전국적으로 배급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당시 이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공식적으로 불법이었고[13] 런던의 한 아트하우스 영화관에서 몰래 상영하는 바람에 경찰에게 압수수색을 당하기까지 했다.
국내에서는 90년대부터 00년대 초중반 영화 동아리들에서 이 영화의 비디오를 몰래 구해서 신입생들에게 보여주고, 수많은 학생들이 구토를 하며 뛰쳐나갔다는 전설이 있다.
미카엘 하네케, 가스파 노에, 마틴 스코세이지, 데이비드 크로스가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당시 미국에서도 상영이 금지되었는데, 오하이오주 한 서점[14]의 주인이 이 영화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자 마틴 스코세이지가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주장하며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의 관람을 꺼렸다고 하며, 결국 죽을 때까지 끝내 보지 않았다.
빌 헤이더는 데이트 영화로 좋을 거라고 크라이테리온 영상에서 농담을 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재해석해 화제가 됐었던 이탈리아의 심리학자 '마시모 레칼카티'가 해당 영화가 주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썼었던 적이 있다. 이를 알려면 먼저 작품 외적인 부분을 살펴봐야 하는데, 바로 감독 파솔리니가 오랫동안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루소와 바타유의 철학, 즉 섹스가 자연으로부터 불가능한 회귀라는 명목 아래 그것을 법의 강제적이고 억압한 차원에 도전하는 하나의 '도전적 위반'으로 여러 사상들을 표현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파솔리니는 법과 욕망의 충돌을 그려낸 입장에서 완전히 벗어나 쾌락과 쾌락 예찬에 내제하는 순수한 소모의 논리가 자본주의의 밑천(담론)이 지배하는 새로운 계율 아래 육체를 정치적으로 조직, 관리하는 체제로 정립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듯이 비춰진다.
영화 극초반 네명의 파시스트(가해자) 중 한명이 말한 '모든 것은 과도할 때 제 맛을 내놓는 법입니다.'라는 대사 후 피해자 내지는 희생자들이 쾌락이라는 유일한 계율에 복종하는 순수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토대로, '통제 능력을 상실한 성행위', '법을 상실한 자유', '사드적인 행위와 끝없는 반복'이 영화 내내 비춰지며 이는 우리 시대가 쾌락을 하나의 명령어로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 마시모 레칼카티가 관찰한 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서 고발하고자 하는 내용이라는 것.
영화의 본질은 작중 체자레 무자티가 주장한 것처럼 단순히 파솔리니가 남녀간 정상적인 성관계에 접근하지 못했기에 야기된 퇴폐적 성욕을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자본주의 담론 속 숨어있는 무의식을, 욕망과 에로티시즘의 본질적 파괴를 통해 묘사하려는 '훨씬 숭고한 시도'라고 마시모는 이야기한다.
6. 관련 문서
[1]
후에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리프키 역으로도 등장한다.
[2]
DVD 판정 기준. 극장 개봉시 무삭제로 청불을 받을지는 알 수 없다.
[3]
파졸리니의 아버지는 귀족이자 군인으로 파시스트 고급 당원이었으나 어머니는 하층계급 출신 고용인이었던 탓으로 아버지에겐 지독한 혐오와 애증을 함께 품게 되었고 그런 감정은 영화에서
흑인
메이드와 관계하다가 권력이 있는 네 사람에게 살해되는 파시스트 병사 에치오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참고로 파졸리니의 어머니는 아들의 영화에서도 배우로서 열연했고 아들의 사망을 끝까지 살해로 믿고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했다. 파졸리니도 매우
효자였다고 한다.
[4]
직업에 약간 변화가 생겼는데 각각 공작(Il Duca, 파올로 보나첼리 분), 의장(Il Presidente, 알도 발레티 분), 판사(ĽEccellenza, 우베르토 퀸테발레 분), 성직자(Il Monsignore, 죠죠 카탈디 분)이다. 참고로 공작과 성직자는 서로 형제 관계로 나온다. 성직자는 주제에 성직자라고 작중에서 혼인식 세레모니 때 주례를 서 준다.
[5]
2차 대전 중 서유럽에서 일어난 최대 민간인 학살 사건
[6]
알리 압바시,
아벨 페라라,
미첼 프랑코,
가스파 노에,
왕빙 등이 이 영화에 투표했다.
[7]
남녀 청소년들을 성폭행하고, 배설물을 이용해 고문하며, 마지막에는 혀를 자르고 가죽을 벗기는 등 각종 엽기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8]
특히 똥의 장의 경우 본편이든 DVD나 블루레이든 아무 삭제나 순화도 전혀 거치지 않고 원작 재현 그대로 나온다.
[9]
의외로 고어한 영화 촬영장은 분위기가 좋은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영화의 소재가 소재이다보니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는 경우가 많다. 다른 예시로는
학살된 구토 인형들이 있다.
[10]
파졸리니 감독의 친구의 자녀가 이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11]
시칠리아 억양을 쓰는 남성 3명이 파졸리니를 죽였다고 한다.
[12]
특히 영미권은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기 때문에 영화라도 할지라도 미성년자를 잔혹하게 고문하거나 살해하는 장면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
[13]
현재는 아니다.
[14]
LGBT 서점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