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9f51 {{{#!wiki style="padding: 5px 0 0; margin:-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582d2d, #663334, #663334, #582d2d)"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folding [ 20세기 ] {{{#!wiki style="margin:-5px -1px -5px; word-break:normal" {{{#555,#aa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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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나르 프리슈 | 얀 틴베르헌 | 폴 새뮤얼슨 | 사이먼 쿠즈네츠 | |
<rowcolor=#cd9f51> 1972 | 1973 | 1974 | ||
존 힉스 | 케네스 애로우 | 바실리 레온티예프 | 군나르 뮈르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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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하이에크 | 찰링 코프만스 | 레오니트 칸토로비치 | 밀턴 프리드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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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틸 올린 | 제임스 미드 | 허버트 사이먼 | 시어도어 슐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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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르 드브뢰 | 리처드 스톤 | 프랑코 모딜리아니 | 제임스 뷰캐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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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솔로우 | 모리스 알레 | 트뤼그베 호벨모 | 해리 마코위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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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턴 밀러 | 윌리엄 샤프 | 로널드 코즈 | 게리 베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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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포겔 | 더글러스 노스 | 존 하사니 | 존 내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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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 젤텐 | 로버트 루카스 주니어 | 제임스 멀리스 | 윌리엄 비크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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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머튼 | 마이런 숄즈 | 아마르티야 센 | 로버트 먼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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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헤크먼 | 대니얼 맥패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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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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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사이먼 쿠즈네츠 Simon Kuzne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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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사이먼 스미스 쿠즈네츠 Simon Smith Kuznets |
출생 | 1901년 4월 30일 |
[[러시아 제국| ]][[틀:국기| ]][[틀:국기| ]] 러시아 제국 핀스크 (現 벨라루스 핀스크) |
|
사망 | 1985년 7월 8일 (향년 84세)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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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컬럼비아 대학교 ( B.S. · M.A. · Ph.D.)[1] |
지도교수 |
웨슬리 클레어 미첼 Wesley Clair Mitchell |
지도학생 | 밀턴 프리드먼 |
직업 | 경제학자 |
소속 |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 / 교수) 존스 홉킨스 대학교 (정치경제학 / 교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경제학과 / 교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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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러시아 제국 출신의 미국인 경제학자.2. 상세
1901년 러시아 제국 핀스크[3]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둘 다 리투아니아계 유대인이었다. 하리코프 상업 연구소(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1922년 미국으로 이민와 1923년 컬럼비아 대학 과학학사학위, 1924년 동 대학 석사학위, 1926년 소매 및 도매 거래의 변동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27년 이후 지도교수인 미첼(W. Mitchell)이 이끄는 국립경제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에서 국민소득을 연구하였다. 1931년부터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시간제 교수로 재직했고 1936년부터는 정교수가 되어 1954년까지 재직하다 같은 해 존스 홉킨스 대학교 정치경제학과 교수로 옮겨 1960년까지 재근하였으며 1960년부터 1970년까지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근무했다. 그는 미국의 인적 자본형성에 기여했으며, 여러 학회와 위원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4]. 1971년 노벨경제학상과 1977년 미국경제학회의 프란시스 워커스 메달을 수상했다. 그 후 1985년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사망했다.3. 업적
쿠즈네츠는 주로 경제성장과 경제발전 연구에 몰두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뉴딜 정책의 성취도를 평가하기 위한 지표를 개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국가경제를 나타내는 척도 중 가장 유명한 지표인 GDP( 국내총생산)을 창시했다. 또한 쿠즈네츠는 쿠즈네츠의 역U자 가설(Kuznets curve)을 제시했다. 쿠즈네츠는 경제가 발전하면 종국에는 불평등이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그는 X축에 1인당 국민소득, Y축에 지니 계수로 표시되는 소득불평등 그래프를 만들었더니 국가의 산업화와 소득불평등 사이에 역U자 형태의 관계를 발견했다. 즉,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갈 때는 소득 불평등도는 높아지지만 선진국으로 가면서 소득 불평등도는 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이를 쿠즈네츠의 역U자 가설이라고 한다. 경제발전 초기에는 누군가가 먼저 부자가 되고 불평등이 심해지지만 계속 발전함에 따라서 나머지 사람들도 같이 부자가 되어서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이론이다. 또, 쿠즈네츠는 20년 정도의 주기로 나타나는 경제 순환을 발견했다. 이를 쿠즈네츠 사이클이라고 한다. 이 연구에서 쿠즈네츠는 인구이동의 동기가 소득차이에 있음을 가정하고, 인구이동의 동기보다는 인구이동의 효과를 명확히 하였으며 시장구조와 시장형태를 내부변수로 간주하고 이를 순환적 현상에 합리적으로 연계하였다. 쿠즈네츠는 또한 국민소득계측의 한계와 의미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그는 국민소득이 경제적 후생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4. 영향
쿠즈네츠는 저축과 자본형성 영역에서 케인스 경제학에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였다. 그는 순환적 변동에 관한 그의 초창작에서, 소득형성과정에서 산출량과 지출한 소득의 연관성 및 투자와 소비, 저축 간의 관계를 분석하고 그것을 장기 시계열자료를 활용하여 입증하였다. 쿠즈네츠는 케인스보다 선행하여 투자와 소비 및 소득 간의 관계가 누적적 과정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드러내었으며 다양한 모델을 활용하여 저축과정의 장기적 안정성을 탐구하였다.5. 여담
- '이스털린의 역설'의 창시자인 이스털린 교수의 지도교수이자 웨슬리 클레어 미첼(Wesley Clair Mitchell, 1874년 8월 5일 - 1948년 10월 29일)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 그가 다녔던 하리코프 상업 연구소는 그의 이름을 따서 2013년에 대학 이름을 하리코프 사이먼 쿠즈네츠 국립경제대학으로 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