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의 국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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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沙伐國.[1]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에 있었던 진한계열 소국이다. 사량벌국(沙梁伐國)[2]이라고도 한다.2. 내용
삼국사기 열전 석우로전과 지리지 상주에 등장하는 소국으로, 신라를 배반하고 백제에 붙었다가 석우로에게 토벌당했다고 전한다. 지금도 상주시에는 동명의 면인 사벌국면[3]이 있으며, 그곳에 전(傳) 사벌왕릉이 있다. 6가야중 하나인 고령가야에 비정되기도 하지만, 상주는 진한의 세력권이었기에 사벌국은 고령가야와는 관련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신라가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시기에 추풍령 일대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고 그 일대 호족들을 우대하면서 거의 신라 왕실의 직할령으로 만들다시피 했었는데, 그 지역이 바로 훗날 아자개와 견훤을 배출하는 이 사벌국 일대다. 물론 사벌국은 이미 그 이전에 지배 구조를 전면 해체당하고 신라국의 직접 지배령으로 편성되었으나, 신라 왕실이 서라벌에서 백제로 진출하는 길목이자 백제가 서라벌로 쳐들어오는 걸 막는 데 대단히 중요한 이 일대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적어도 고고학적으로는 거의 왕실 직할령이나 마찬가지나 된 건 진흥왕 시기부터다. 그전까진 눌지계 왕가가 경북 서북부 영주 일대, 즉 죽령 일대를 왕실 직할령으로 삼아 그곳에서 주로 근위대 및 정예군 장병을 선발했는데, 법흥왕 이후 등장하는 습보계 왕가(=일명 무열왕계)가 여기에 추풍령 일대를 개발하면서 옛 사벌국 일대를 포함한 지역 또한 죽령 지역과 마찬가지로 신라 왕실의 직할령에 추가하기 때문이다. 이 일대 출신들은 왕권강화를 위해 경북 서북부 죽령 일대 출신들과 함께 신라 왕궁근위대를 배타적으로 구성하게 된다.[4]
이 일대는 의외로 후삼국시대 쟁패전에서도 중요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는데, 후기 박씨 왕실의 신라가 사실 내물왕 때의 그 신라보다 딱히 세력에서 못할 건 없었으나 근초고왕 백제보다도 판도가 훨씬 딸리는 후백제를 상대로 일방적으로 방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 건 옛 사벌국 지역이 엉뚱하게도 바로 견훤의 후백제에게 포섭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자개가 세력을 유지하는 지역은 견훤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으나, 그밖의 옛 사벌국 판도는 죄다 견훤의 후백제에게 넘어갔던 데다 아자개라고 딱히 적극적으로 신라 왕실을 도운 흔적은 없었으니 후삼국시대 신라가 밀릴 수밖에 없었음은 짐작이 어렵지 않다.
3. 기타
-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의 이씨(李氏) 집안의 기원인 사벌국 일대는 400년 동안 신라 왕실 친위대를 배출한 바 있었고 견훤 또한 대단히 어린 나이에 서라벌에서 군 경력을 시작한 것이 이목을 끈다. 신라군 최종 승진 계급이 비장인데 이 자리를 무려 20대 중반에 간 것을 보면 개인 능력도 대단했으나 아무래도 5두품이었을 신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아자개가 부농 출신이라는 사서 기록과 신라 6두품의 대명사인 이씨 성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사벌국과 연관이 깊은 상당한 유력자 가문이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금관국 왕가 김씨 진골, 고구려 안승 처럼 진골 대우를 받은 건 아니었으나 5두품 자체도 애초에 서라벌 바깥 진한 거수국들의 거수 가문들 출신이 대부분이었고, 백제계 대성팔족들 대부분이 5두품이었던 걸 보면 적어도 견훤의 가문은 사벌국 지배층이 받았을 정도 대우는 받은 대단한 은수저 가문임을 알 수 있다. 지연으로는 사벌국, 혈연으로는 신라 6부 및 신라 왕족 방계와 연결이 있는데 형식적으로만 깡촌 패서에서 6두품 대우를 받은 왕건 가문보다는 오히려 이쪽이 훨씬 신라 사회의 이너 서클에 가깝다.[5]
4. 둘러보기
[1]
삼국사기 지리지의 표기
[2]
석우로전의 표기
[3]
2020년 1월 1일 사벌면에서 사벌국면으로 변경되었다.
[4]
물론 진흥왕 개혁 이전까진 왕궁근위대에 서라벌 출신들도 당연히 있었을 개연성이 높지만, 진흥왕의 군제 개혁 이후로는 왕궁근위대에서 서라벌인은 전면 배제되게 된다.
[5]
다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신라 왕실에게 강렬한 미움을 받게 된 게 아이러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