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19:58:20

사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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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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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행적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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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조위의 인물이자 서진 황족. 자는 자사(子思). 사마의의 동생 사마통의 차남. 사마사, 사마소 형제의 4촌이다. 동명이인 사마순 조카. 사례 하내군 온현 사람.

2. 행적

위나라 황제 하내 사마씨의 괴뢰 군주가 되어 실권을 사마씨가 차지하고 권력을 전횡하고 있으면서 종회, 등애 등이 촉한멸망전으로 촉한을 정벌하고 강유 중흥하려는 촉한부흥운동 시도까지 제압한 후에 진왕에 봉해진 사마염이 조위 마지막 황제 조환을 협박해 제위 선양하면서 265년 서진이 건국되었다.

사마순은 습양정후에 봉해졌다가 사마염이 찬탈한 것을 듣고 , 의 일에도 따르지 않고 거짓으로 선양했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소리없이 슬피 울었고 이 일이 알려지면서 사마순은 폐출되어 양주 무위의 고장현으로 옮겨지게 되었으며, 죄를 받아 유배된 것이지만 죽을 때까지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3. 평가

사마순이 조위 왕조 자체에 충성심을 바치고 있기에 진무제의 찬탈을 부정한건지 아니면 심각한 막장 상태에서 전개된 사마진의 건국과 진무제의 선양을 부정한 것 뿐인지는 불명이지만, 진나라 무제 선양 자체를 찬위라고 단정하고 부정하여 신왕조의 정통성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치명적인 역린이 되는 발언을 하고 그 뜻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황적에서 쫓겨나 평생 변방 유배 상태에 처해진 것으로 보인다.[1] 흔히 조위 최후의 충신이라 일컫는 사마부가 조위의 신하임을 잊지 않고 근심했다고 하지만 이와 달리 실제로는 사마씨의 집권에 얼굴마담으로 활약하여 진나라 치하에서 실질적으로 원로 대우를 받은 행적으로 신왕조 사마진의 개국공신 황족이라는 실리와 구왕조 조위 최후의 충신이라 명예를 모두 취한 행적을 생각해보면 둘의 삶은 대조적이다.

사마순이야말로 사실상 큰아버지인 서진의 안평헌왕 사마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조위 최후의 진정한 충신이라 할 수 있는데 삼국지연의에서는 아예 등장하지도 못하고 사마부에게 조위 최후의 충신이라는 영예까지 빼앗겨 인지도가 없어져버린 연의의 막판 피해자 중의 하나로 전락했다.

[1] 그나마 사마순은 같은 사마씨 황족이었기에 평생 변방 귀양 처분으로나마 여생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지 사마씨가 아닌 다른 성씨였다면 황제 조모까지 백주대낮에 시해한 사마씨의 파행으로 볼 때 사마순같이 정상적으로 생을 부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