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8 07:33:54

비요른 회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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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요른 회케
Björn Höcke
파일:Björn Höcke.jpg
출생 1972년 4월 1일 ([age(1972-04-01)]세)
서독 베스트팔렌 주 뤼넨
(現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뤼넨)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현직 튀링겐주의회 의원 ( 독일을 위한 대안 원내대표)
독일을 위한 대안 튀링겐주 대표 겸 대변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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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9ee0> 배우자 (불명)
거주지 아이히스펠트 보른하겐
자녀 자녀 4
학력 바르운스부르크 초등학교 (졸업)
라인-비드-김나지움 (졸업)
유스투스 리비히 대학 (법학 / 학사)
(경영학 / 석사)
전직 플뤼겔 지도자
소속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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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AfD 활동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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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정치인.

독일을 위한 대안 소속의 튀링겐주 대표이며, 튀링겐주의회 의원으로서 원내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 원내대표 겸 대변인을 겸임하고 있다.

우익 포퓰리즘과 극우 민족주의가 혼재되어 있는 독일을 위한 대안 당내에서도 손꼽히는 극우 인사이며, 2020년부터 연방헌법수호청에 의해 극단주의자로 분류되면서 정부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2. 생애

동프로이센에서 추방된 특수교사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1972년 4월 1일에 태어났다. 회케는 안하우젠에서 브라운스부르크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91년 노이비트의 라인-비트 김나지움에서 아비투어에 합격했다.

이후 1992년까지 군복무를 마친 이후 유스투스 리비히 대학에서 법학과를 전공했다. 1998년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교사가 되어 역사, 체육을 가르쳤으며 2003년에서 2005년까지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헬무트 콜을 지지하며 CDU 청년연합에 가입했었으며 아버지의 영향으로 우익 극단주의 노선을 걷게 되었다. 회케는 통일 이후 교사 자격으로 극단주의적 발언을 남발하다 제재를 받기도 하였는데 이후 2011년에 회케는 "독일 애국자 협회"를 설립하며 극단주의적 활동을 이어가기 시작했는데 이런 정치적 발언과 행동으로 졸업생들 사이에서 "AfD 가족부장관"(Familienminister für die AfD)라고 불렸다고 한다.

3. AfD 활동

2013년 독일을 위한 대안에 입당했다. 같은 해 4월 튀링겐 독일을 위한 대안을 공동으로 창당하며 인지도를 쌓았고, 2014년 튀링겐주 총선에서 당선되어 주의회에 입성한 다음 그 해 8월에 튀링겐주 대안당의 대변인이 되었다.

2015년 에어푸르트 선언 이후 플뤼겔 계파를 창설하여 계파 지도자가 되었는데 이후 당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당시 당 내 1/5의 당원이 플뤼겔을 지지했던 만큼 그 영향력의 기반도 어마어마했는데 당대표 후보로 나와있던 페트리를 지원해 당선시키는 등 당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이에 반발해 루케가 탈당하여 자유보수개혁당을 창당했다. 당 내 영향력이 강해진 회케는 당의 우경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 이런 당의 급진화와 우경화를 우려하던 당대표 페트리마저 사퇴, 탈당하여 청색당을 창당하는 등 당 내 중도파가 대거 이탈하는데 가장 큰 요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2017년 1월 회케는 2019년 튀링겐주 선거 에서 튀링겐 주총리 후보에 출마선언을 했으며 2019년 알렉산더 가울란트의 도움으로 미테 계파의 후보를 누르고 튀링겐주 선거 후보로 공천됐다.

이후 회케가 2015년 아돌프 히틀러의 생가를 방문해 추모했다는 논란이 발생하자 당에서 회케를 축출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AfD튀링겐에서 이를 반대하며 출당을 면하기도 했으며 2018년 11월 3일, 회케가 튀링겐 AfD 주의장 재선된 이후 극단주의 단체의 해산에 맞섰다는 이유로 당국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2019년 튀링겐 주 선거에서 23.4%의 득표율을 기록한 이후 다양한 요직에 플뤼겔 소속 당원이 진출하면서 회케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당에서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급부상하였다.

러우전쟁에 대해서는 대러 유화정책을 지지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무기 중단을 주장하며 시위를 연 급진좌파 정치인 자라 바겐크네히트에게 AfD 입당을 권유했다.[1] 회케는 유로마이단을 서방이 부추긴 폭동으로 보고 있으며 러시아와 경제적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해야한다고 본다.

2023년 튀링겐 법원에 나치 발언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

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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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겐크네히트는 강경 사회주의자이지만 이민이나 정체성 정치, 그외의 이슈에서 문화적 보수주의 성향을 보여서 미디어에서 보수좌파(left-conservative)라고 지칭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