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근의 수상 및 영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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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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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역대 기량발전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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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97 시즌 | 1997-98 시즌 | 1998-99 시즌 | 1999-2000 시즌 | 2000-01 시즌 |
노기석 삼성 / 포워드 |
박재헌 LG / 센터 |
봉하민 기아 / 가드 |
박훈근 LG / 포워드 |
조우현 LG / 포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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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01-02 시즌 | 2002-03 시즌 | 2003-04 시즌 | 2004-05 시즌 | 2005-06 시즌 | |
조동현 빅스 / 가드 |
황진원 코리아텐더 / 가드 |
표명일 KCC / 가드 |
이병석 모비스 / 포워드 |
송영진 KTF / 포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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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06-07 시즌 | 2007-08 시즌 | 2008-09 시즌 | 2009-10 시즌 | 2010-11 시즌 | |
강대협 동부 / 가드 |
이한권 전자랜드 / 포워드 |
박구영 모비스 / 가드 |
박종천 모비스 / 포워드 |
김동욱 삼성 / 포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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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14-15 시즌[a] | 2015-16 시즌 | 2016-17 시즌 | 2017-18 시즌 | 2018-19 시즌 | |
이재도 kt / 가드 |
허웅 동부 / 가드 |
송교창 KCC / 포워드 |
김태홍 DB / 포워드 |
양홍석 kt / 포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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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19-20 시즌 | 2020-21 시즌 | 2021-22 시즌 | 2022-23 시즌 | 2023-24 시즌 | |
김낙현 전자랜드 / 가드 |
정창영 KCC / 가드 |
정성우 kt / 가드 |
하윤기 kt / 센터 |
이정현 소노 / 가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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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10-11 시즌을 마지막으로 폐지했다가 4년 만에 다시 시상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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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역대 주장 (대구 동양 시절 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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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00> 1997~2001 | 2001~2002 | 2002 | 2002~2011 | 2011~2012 |
미상 | 김도명 | 박훈근 | 김병철 | 전정규 | |
2012~2013 | <rowcolor=#fff> 2013~2014 |
201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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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21 | 2021~2022 | |
조상현 | 김동욱 → 전형수 | 김도수 | 허일영 | 김강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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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중앙고등학교 농구부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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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AN JUNGANG HIGH SCHOOL BASKITBALL TEA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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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근 朴薰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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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2041b> 출생 | 1974년 9월 22일 ([age(1974-09-22)]세) | |
부산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종교 | 불교 | |
신체 | 키 195cm| 체중 99kg | |
직업 |
농구선수(
스몰 포워드,
파워 포워드 / 은퇴) 농구 코치 |
|
학력 |
부산대신초등학교 (졸업) 경남중학교 (졸업) 부산중앙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졸업) |
|
프로입단 | 1997년 ( 창원 LG 세이커스) | |
현역시절 등번호 | 34[1], 14[2] | |
소속 | <colbgcolor=#e2041b,#191919> 선수 |
창원 LG 세이커스 (1997~2000) 대구 동양 오리온스 (2000~2003)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3~2006) 창원 LG 세이커스 (2006~2007) 서울 삼성 썬더스 (2007~2010) 대구 오리온스 (2010~2011) |
코치 |
고려대학교 농구부 (2011~2014) 서울 삼성 썬더스 (2014~2017) 부산중앙고등학교 농구부 (2021~)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농구인. 고교 시절만 해도 주목받는 장신 유망주였으나, 대학과 프로 시절엔 주로 식스맨으로 뛰었다. 장신임에도 슛과 스피드가 좋아 KBL 총 14시즌을 뛰면서 4개 팀에서 부름을 받았다.2. 선수 경력
2.1. 고교-대학 시절
부산 중앙고 3학년 시절, 당시 동년배 중 최강센터였던 서장훈에 이어 고교 No.2급 센터로 손꼽혔었다. 당시 부산중앙고 동기로 추승균, 박규현이 있었는데, 이들 3인방은 1992년 5월 협회장기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부산중앙고 농구부 사상 첫 전국대회 우승을 달성했고, 이후 가을 전국체전까지 제패, 2관왕의 위업을 달성한다.[3] 서장훈- 현주엽 콤비의 휘문고(3관왕)에 이어 1992년도 전국 No.2팀의 주전센터였던 박훈근은, 같은 해 열린 베이징 아시아청소년농구 대표팀에 팀동료 동기 추승균과 함께 뽑혀[4] 대회 준우승 멤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화려했던 고교시절 활약 덕분에 박훈근은 당시 대학팀들간 스카웃의 표적이 되었고, 당시 고교 유망주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던 고려대학교로 진로를 정하게 된다.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중이던 1990년대 초 라이벌 연세대, 중앙대는 물론 경희대에도 밀리는 성적으로 자존심을 한껏 구겼던 고려대는, 92학번 전희철, 김병철 콤비를 시작으로 고교 유망주들에 대한 분노의 싹쓸이 스카웃을 시작했고, 93학번에선 최대어 서장훈을 놓친 대신 고교 랭킹 2~4위라던 박훈근, 양희승, 박규현을 전부 영입한데 이어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캘리포니아 특급" 박재헌까지 입학시킨다. 덕분에 고교시절 촉망받는 센터유망주였던 박훈근은 같은 포지션에 대학생 국가대표이자 1년선배 전희철을 비롯, 3학년 전수훈(195cm), 동기 박재헌, 양희승 등 너무도 많은 경쟁상대들이 있었고, 광주고 시절 센터 라이벌이었던 입학 동기 양희승이 외곽슈터로의 포지션 변경에 성공하며 금세 주전 스몰 포워드 자리를 꿰찬 반면, 박훈근은 비슷한 스타일의 전희철에 밀려 후보신세를 면치 못했고, 이듬해엔 슈퍼루키 현주엽까지 가세한 탓에 고려대에서의 4년 동안 후보선수로 머물러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박훈근이 2학년이던 1994년부터 대학생 국가대표 현주엽, 전희철은 수시로 국대에 불려가야 했고,[5] 이들이 국대차출된 사이 열린 대학농구연맹전에서 박훈근과 박재헌이 함께 이들의 공백을 메운 덕분에 고려대는 1994년과 1995년 대회에서 연속우승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가장 중요한 대회였던 농구대잔치에선 이들 국대멤버가 모두 복귀한 탓에, 박훈근은 출장기회조차 잡기 힘들었고, 들쭉날쭉한 출장시간 탓에 기량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이바람에 당시 농구인들 중 다수는 "고려대의 중복스카웃 때문에 많은 유망주들(박훈근, 박규현, 박재헌 3박을 주로 언급했다.)이 고사되고 있다."고 언급했고, 특히 최부영 당시 경희대 감독은 "고대 후보 선수 중 아무나 줘도 경희대를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전희철이 졸업한 1996년도에도 박훈근은 대부분 벤치에서 시간을 보냈고, 하반기들어선 신입생 이규섭에게도 기회를 뺏기는 모습을 보였다. 1996년 창단한 LG 반도체 농구단이 신생팀 연고지명 대학으로 고려대를 택하면서[6] 졸업 직후 박훈근은 양희승, 박규현, 박재헌과 함께 신생팀 LG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2.2. 프로 시절
2.2.1. 창원 LG 세이커스 (1997~2000)
창원 LG 세이커스의 창단 첫시즌(97-98) 개막을 앞두고, 거액의 계약금을 주고 야심차게 영입한 루키 양희승이 아킬레스건 파열로 인해 뛰어보지도 못하고 시즌아웃 판정을 받게 되었고, 고려대 출신이라지만 대학 4년내내 후보였던 선수만 모인 창원 LG는 같은 신생팀 청주 SK와 더불어 유력한 꼴찌후보였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개막하자 고대 후보출신 3박이 주축이 된 창원 LG는 당시까지만 해도 신선한 농구란 소리를 듣던 이충희 감독의 원조 "수비농구"를 선보이며 시즌 내내 돌풍을 일으켰고, 이상민- 조니 맥도웰 콤비의 대전 현대 다이냇에 이어 정규리그 2위에 오르며 플옵 4강에 직행하는 기염을 토한다.[7] 박훈근은 비록 여전히 식스맨이긴 했지만 이전과는 360도 달라진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주며 동문선배 이충희 감독의 신뢰를 받았고, 출전할때마다 KBL 수위권의 토종빅맨으로서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98-99 시즌 주전센터 박재헌이 무릎부상으로 골골댄 탓에 박훈근은 출장시간이 크게 늘며[8] 팀의 주전 파워 포워드 자리를 차지했고, 빅맨 파트너 아미누 팀버레이크(202cm)의 다소 부족한 존재감에도 불구, 한시즌 동안 팀 골밑을 잘 지켜내며 9.4득점-3.3리바-1.2어시의 괜찮은 기록을 남겼고, 팀을 2년연속 플레이오프로 이끈다. 원주 나래 블루버드와 만난 6강 플레이오프에서 박훈근은 3경기 평균 17득점을 올리며 원주 나래를 괴롭혔지만, 팀의 에이스 버나드 블런트가 침묵한데다 또다시 폭발한 허재(1차전에서 30득점 7어시)를 막지 못하면서 3연패로 물러나고 만다. 어쨌든 박훈근의 활약은 탈락한 LG에게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고, LG 팬들도 장차 박훈근이 팀을 지탱할 토종 에이스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99-00 시즌 박훈근은 완벽히 주전으로 올라서며 시즌 전경기에 출장하지만, 이 시즌엔 그 유명한 " 버나드 블런트 야반도주 사건"이 일어나 창원 LG의 시즌 외인선수 플랜이 무너져버렸고, 대체로 들어온 외인 듀오 쉔드릭 다운스(193cm, SG)와 마일로 브룩스(202cm, C)는 너무도 평범했다. 박훈근은 평균 11.8득점-3.7리바-2.8어시에 경기당 0.7개의 3점슛을 꽂으며(3점슛률 37.1%) 대학선배 전희철의 하위호환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한팀의 주전 파워 포워드로 자리하기엔 다소 부족한 영향력이었고, 팀은 1게임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다.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창원 LG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한 박훈근이었지만, 시즌 종료 후 새로 부임한 김태환 감독은 박훈근을 대구 동양 오리온스로 트레이드시키고 중앙대 감독 시절 제자였던 슈터 조우현을 영입한다.[9]
2.2.2. 대구 동양 오리온스 (2000~2003)
지난 두 시즌 동안 주전 빅맨으로 활약한 박훈근이었지만, 새로 이적한 대구 동양에는 익숙한 그 이름, 전희철이 있었고, 박훈근은 고려대 시절에 이어 또다시 1년선배 전희철의 백업이 되고 만다. 하지만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였던 전희철도 이 때쯤부터 서서히 전성기에서 내려오고 있었고, 00-01 시즌엔 김병철- 전희철 두 간판스타의 불협화음 속에 팀은 시즌 최하위로 추락했다. 이 때쯤부턴 전희철도 박훈근도 외인들을 상대로 골밑을 지키기 버거워진 탓에 점차 외곽으로 밀려나 3번 자리에서 뛰어야했는데, 아직 3번이 익숙하지 않았던 박훈근은 아직 3점슛은 쓸만했던 전희철은 물론 중고신인 박재일에게도 밀리는 신세였다.01-02 시즌 매직키드 김승현와 1순위 외인 마르커스 힉스가 입단하면서 대구 동양은 일약 정규리그 1위, 그리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창단 첫 우승을 달성한다. 시즌 내내 주전라인업( 김승현- 김병철- 전희철- 마르커스 힉스- 라이언 페리맨)이 확고부동했던 탓에 박훈근은 박재일, 위성우 등과 함께 여전히 식스맨이었지만, 시즌 내내 팀내 자신의 비중이 줄어드는게 불만이었던 전희철이 본인 요청으로 전주 KCC 이지스로 트레이드되는 바람에, 박훈근은 02-03 시즌 주전 3번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갑작스레 주전으로 올라선 박훈근은 비시즌동안 대구 동양과 1억 5천만원에 FA 재계약을 맺는다.
02-03 시즌 초반 박훈근은 전희철이 잊혀질만큼 인상적인 활약들을 펼치며 디펜딩 챔피언의 주전 멤버로 손색없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갑작스런 부상을 당하며 약 한달간 결장해야만 했고, 이틈을 타 박재일이 맹활약하며 주전 3번자리를 냉큼 차지하게 된다. 다시 식스맨으로 돌아간 박훈근은 팀의 2년연속 정규리그 우승 및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기여하지만, 식스맨 치곤 높은 연봉 탓에 시즌 종료 후 인천 전자랜드의 이은호와 1:1 트레이드로 이적한다.
2.2.3.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3~2006)
인천 전자랜드에서 박훈근은 주요 식스맨이자 2쿼터 전용 토종 빅맨으로 나서며 03-04 시즌 인천 전자랜드의 4강 돌풍에 기여한다.(이때 주전멤버는 최명도- 조동현- 문경은- 앨버트 화이트-제이슨 윌리엄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유재학 감독이 울산 모비스 피버스 감독으로 옮기고, 박수교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팀은 2년 연속 리그 꼴찌로 추락하고, 여기에 당시 일명 '개그랜드'라 불렸던 막장 팀 운영 탓에 시즌 내내 외인 센터난에 시달리면서 선수생활 말년에 출장시간이 다시 늘어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05-06 시즌도 또 꼴찌로 마감한 인천 전자랜드는 창원 LG의 포인트가드 황성인을 영입하기 위해 박훈근, 박규현, 박지현, 임효성을 내주는 충격과 공포의 1:4 트레이드를 실시했고,[10] 박훈근은 친정팀으로 복귀하게 된다.
2.2.4. 창원 LG 세이커스 (2006~2007)
6년만에 친정팀에 복귀한 박훈근은 현주엽- 찰스 민렌드- 퍼비스 파스코로 이루어진 창원 LG 프론트 코트의 백업자원으로서 한시즌 쏠쏠히 활약했고, 오랜만에 플옵 4강까지 오른다. 시즌 종료 후 33세의 나이에 두번째 FA가 된 박훈근은 창원 LG와의 협상 결렬 후, 연봉 1억 5천만원에 3년 계약으로 서울 삼성 썬더스 유니폼을 입는다.
2.2.5. 서울 삼성 썬더스 (2007~2010)
서울 삼성 이적 첫해에는 이규섭의 백업으로 경기당 약 12분가량 출장하는 주요 식스맨이었지만, 08-09 시즌에 김동욱이 상무에서 제대한데다 루키 차재영에게도 밀리며 박훈근의 출전시간은 점차 줄어들었고, 09-10 시즌에는 아예 시즌 절반도 출전하지 못했다.
2.2.6. 대구 오리온스 (2010~2011)
서울 삼성과 재계약하지 못한 36세의 FA 박훈근은 김남기 감독이 이끌던 대구 오리온스에 재영입되어 마지막 불꽃을 태우지만, 일명 꼴리온스 시절이던 당시 팀은 또 꼴찌에 그쳤다. 박훈근도 이동준, 허일영에 밀려 거의 나오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직후 2011년부터 2014년까지 3년 동안 이민형 감독 아래에서 모교인 고려대학교 농구부 코치를 역임하였다. 2014년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이상민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이규섭과 함께 서울 삼성 썬더스 코치로 부임하였다.2017년 2월 15일 부친상을 당한 이상민 감독을 대신하여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일일 감독대행을 맡은 이후 2016-2017 시즌 팀의 KBL 파이널 진출과 함께했으나, 2017 시즌 이후 이규섭 코치의 수석코치 승진과 양은성 코치의 선임과 함께 정들었던 서울 삼성 썬더스를 떠나게 되었다.
3년 뒤인 2020년 드디어 모교인 부산중앙고의 코치로 활약하게 되었는데 사유는 박영민 코치의 개인사로 인한 사퇴였다.
4. 관련 문서
[1]
고려대 시절
[2]
KBL 시절
[3]
1992년도 부산중앙고의 전국대회 2관왕은 이후 2016년
양홍석(199cm,C)-서명진(190cm,G)-곽정훈(193cm,F) 트리오가 전국대회 3관왕을 달성할때까지 24년간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4]
추승균은 대체 선발이었다. 원래 선발인원이었던
전희철,
김병철, 박준영(이상 고려대 1),
우지원(연세대 1)이
고연전 대비 출전을 위해 빠지는 바람에(;;;) 명단 발표 한 달만에 이들 명문대생 멤버들은 고교생인
이세범, 전재경(이상 용산고 3), 이종호(대경상고 3),
추승균(부산중앙고 3)으로 긴급 교체되는 촌극을 빚었다. 박훈근은 최초 12인 엔트리 멤버였다.
[5]
1994년: 캐나다 세계선수권 &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 1995년: 서울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6]
당연하게도 국가대표 슈터
양희승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7]
하지만 플옵 4강에서
허재-
클리프 리드가 대폭발한
부산 기아에 1승 3패로 패하며 돌풍은 다소 쉽게 사그러들었다.
[8]
97-98시즌: 평균 15분 39초 → 98-99시즌: 평균 26분 57초
[9]
1:2 트레이드였다. 대구 동양 get: 박훈근 ↔ 창원 LG get:
조우현, 이현주
[10]
황성인+3억 원 ↔ 선수 4명 트레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