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1-11 20:03:55

미하일 아센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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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미하일 아센 2세
(영어: Michael Asen II, 불가리아어: Михаил Асен II)
출생 1270년
사망 미상
직위 불가리아 제2제국 차르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불가리아 제2제국 11대 차르.

2. 생애

1270년 콘스탄틴 아센 1세 동로마 제국 팔레올로고스 왕조 초대 황제 미하일 8세의 조카 마리아 팔레올로기나 칸타쿠지니의 아들로 출생했다. 1272년 콘스탄틴이 낙마 사고를 당한 뒤 하반신이 마비되자 공동 차르로 즉위하였고, 어머니 마리아가 국정을 장악했다. 1277년 부친이 반란을 일으킨 이바일로를 진압하고자 친정했다가 전사하자 단독 차르가 되었다. 그러나 실권은 수도 타르노보만 통제한 어머니 마리아에게 있었고, 불가리아 대부분은 이바일로의 수중에 들어갔다.

미하일 8세는 농민 반란의 주모자 이바일로가 지나치게 강성해지자 동로마 제국에도 큰 위협이 될 거라 판단하고, 지난날 동로마 제국에 망명했던 미초 아센의 아들 이반 아센 3세를 자기 딸 이리니 팔레올로기나와 결혼시킨 뒤 새 차르로 옹립 후 트라키아 대부분을 공략했다. 이리하여 이바일로의 반란군과 이반 아센 3세의 동로마군에게 동시에 압박받게 되자, 교회 통합 정책을 추진한 것에 반감이 있던 데다 도와주진 못할 망정 새 차르를 세운 삼촌에게 분노한 마리아 황후는 자기 남편을 죽인 이바일로와 연합하는 길을 택하고, 협상 끝에 그와 결혼하되 자신의 아들인 미하일 아센 2세를 공동 차르로 삼게 하였다.

미하일 8세는 미하일 글라바스가 이끄는 군대를 파견해 타르노보를 공략하게 했지만, 이바일로는 모조리 격파했다. 이에 킵차크 칸국에 도움을 청했지만, 이바일로는 칸국의 군대까지 다뉴브 강 이북으로 축출했다. 그 사이에 동로마군이 시프카 가도와 흑해 반도에서 불가리아를 협공했지만 격파당했다. 하지만 킵차크 칸국의 주력 부대가 재차 침입하자, 이바일로는 이번엔 쉽게 막아내지 못하고 드러스터르 요새에서 3개월간 포위되었다. 귀족들은 이 때를 틈타 타르노보에서 반란을 일으켜 마리아 황후와 미하일 아센 2세를 폐위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추방하고, 이반 아센 3세를 새 차르로 옹립했다.

그렇게 축출된 미하일 아센 2세는 1302년 불가리아 귀족들이 토도르 스베토슬라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재차 차르로 추대되었으나 끝내 실패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여생을 보냈다. 언제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