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17:38:55

모로코-모리타니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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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모리타니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2.2. 19세기2.3. 20세기2.4. 21세기
3. 문화 교류, 교통 교류4. 관련 문서

1. 개요

모로코 모리타니의 관계. 모로코와 모리타니는 언어, 종교, 문화에서 공통점이 있다. 오늘날 모리타니의 국명은 고대 로마 시대 모로코 일대의 지명 마우레타니아(Mauretania)에서 빌려온 것이다.

전반적인 국력은 모로코가 월등히 앞선다. 인구만 봐도 모로코는 3800만 명에 이르는 반면 모리타니는 500만 명에 불과하다.[1] 외부로부터의 인지도 역시 모로코는 관광 산업이든 역사로든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모리타니는 매우 낙후된 편이다. 때문에 전반적인 교류는 모로코에서 모리타니 쪽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모로코는 모리타니에 경제적 투자, 철도/도로 산업의 지원 등으로 영향력을 쏟고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

모로코 지역이 우마이야 왕조의 정복으로 아랍화, 이슬람화된 뒤, 모리타니 지역은 아랍의 영향으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 아랍어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하라 사막을 통해 사하라 종단 무역처럼 교류가 활발했다. 모리타니 남부 지역에서 발흥한 무라비트 왕조는 북진하여 모로코 일대를 병합한 뒤 이베리아 반도 일대까지 장악하였다. 무라비트 왕조는 남쪽으로는 가나 제국을 격파하고 모리타니 남부의 월로프족, 세레르족, 소닝케족 등을 몰아내고 북쪽으로는 모로코와 이베리아 반도의 아랍인들을 합병하면서 모리타니 지역에도 아랍-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2.2. 19세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세웠다. 프랑스는 모리타니 지역을 차례차례 식민지배하면서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일부로 모리타니 지역을 식민지배했다. 모로코를 두고 스페인과 프랑스는 영토갈등을 벌이다가 결국 모로코 지역은 북부와 남부가 스페인령 모로코, 중부의 대부분 지역은 프랑스령 모로코의 일부로 식민지배를 받았다. 또한, 서사하라는 스페인령 사하라로 불리게 되었다.

2.3. 20세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랑스령 식민지에서 독립 열기가 높아졌다. 스페인령 사하라에서도 독립열기가 생겼고 이후에 모리타니와 모로코는 프랑스,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스페인령 사하라도 70년대까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가 스페인군이 철수했다. 1975년 11월 6일에 350,000명의 모로코인들이 녹색행군을 진행했다. #

스페인과 프랑스의 지배에서 각각 벗어난 뒤 양국은 스페인으로부터 해방된 서사하라를 북위 24도선을 기준으로 2:1로 분할하여 양도한다는 마드리드 협정을 맺게 된다. 그러나 모리타니는 누아디부 인근 접경 지역에서 몇 차례 승전을 거두기는 했지만 서사하라의 폴리사리오 전선에 지속적인 테러를 당한 결과 1979년 서사하라의 영유권을 포기했다. 한편 모로코는 모로코 장벽을 건설해가면서도 서사하라에 대한 지배권을 놓지 않고 있다. 모로코 장벽은 점점 남하하면서 최종적으로 장벽 최남단 게르게라트(Guerguerat)는 누아디부와 불과 60km밖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양국은 사실상 접경 국가가 되었다.

1999년 10월 28일에 모리타니는 모하메드 코우나 총리를 모로코로 파견해 이스라엘과의 수교결정을 설명했다. #

2.4. 21세기

양국은 프랑코포니, 이슬람 협력기구, 아프리카 연합, 아랍 연맹, 아랍 마그레브 연합의 회원국들이다.

2007년 2월 15일에 모리타니 항공기 납치범이 모로코인이었다고 모리타니측이 밝혔다. #

2018년 7월 3일에 누악쇼트에서 개최된 아프리카 연합 정상회의에서 나세르 부리타 모로코 외무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이주민 정책을 조율할 기구를 세우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

2020년초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양국에서 진행하려던 경기가 취소됐다. #

3. 문화 교류, 교통 교류

문화적으로 양국은 언어, 문화, 종교에서 공통점이 있다. 모로코와 모리타니는 아랍어가 공용어이지만, 아랍어 방언이 널리 쓰이고 있다. 양국은 아랍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슬람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국교이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어서 프랑스어가 아랍어와 함께 널리 쓰이고 있다.

누악쇼트의 모리타니 국제공항과 모로코의 무함마드 5세 국제공항이 연결돼 있다.

다카르 랠리는 모로코와 모리타니, 서사하라를 연결하고 있다. #

4. 관련 문서



[1] 후술하듯 모로코는 서사하라에 매우 강경하지만 모리타니는 일찍이 손을 뗀 것 역시 이에 기인한다. 신생국 모리타니로서는 폴리사리오 전선의 산발적 테러조차도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국 땅에서 분리독립하려는 세력이라면 모리타니로서도 국력을 총동원하겠지만, 서사하라라는 별도의 지역에서 독립하겠다는 세력이니 모리타니로서는 포기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물론 딱 그뿐으로, 모리타니도 당연히 서사하라의 독립을 지원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