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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의 스테파니 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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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8B1B2><colcolor=#000000> 모나코의 스테파니 공녀
Stéphanie de Monaco
파일:Stephanie of Monaco.jpg
이름 스테파니 마리 엘리자베트 그리말디
Stéphanie Marie Elisabeth Grimaldi
출생 1965년 2월 1일 ([age(1965-02-01)]세)
모나코 모나코 대공궁
배우자 다니엘 뒤크레 (1995년 결혼 / 1996년 이혼)
아단스 로페스 페레스 (2003년 결혼 / 2004년 이혼)
자녀 루이, 폴린, 카미유(사생아)
아버지 레니에 3세
어머니 그레이스 켈리
형제 알베르 2세, 카롤린
종교 가톨릭
계승 서열 8위

1. 개요2. 생애
2.1. 조상2.2. 자녀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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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나코 대공 레니에 3세와 그레이스 켈리의 차녀이자 모나코 공국의 공녀. 카롤린 공녀 알베르 2세의 여동생이다.

1986년 2월에 가수 데뷔를 했다.

2. 생애

1965년 2월 1일에 레니에 3세와 그레이스 켈리의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났다. 늦둥이에다가 스테파니 공녀를 낳기 전에 그레이스 켈리가 여러번 유산을 했기에 더 애지중지 다 받아주었다고 한다.

1982년 9월 13일에 어머니 그레이스 켈리가 운전하고 있던 차의 조수석에 탔다가 차가 산비탈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겪었다. 스테파니 공녀는 부상만 입고 목숨은 건졌으나 그레이스 켈리는 사망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큰 트라우마가 생겨 한동안 엄청 고생했다. 심지어 "사고 당시 자신은 운전대를 잡지도 않았다."고 계속 얘기해 왔지만 애석하게도 믿는 사람이 별로 없던 탓에 세계적으로 비난받아야 했다. 워낙 속 썩이던 날라리 자식으로 세간에 찍혀있던 탓인지, 켈리가 음주한 상태라 운전이 미숙한 스테파니 공녀가 운전하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는 루머가 지금도 정설처럼 돌고 있다. 운전 중에 모녀가 다투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는 루머도 있는데 전기 작가들은 당시 상황으로 보아 이를 신빙성 있게 보는 듯 하다.

켈리의 사고에 대한 의문이 넘쳐나는 와중에 혼자 살아남은 스테파니는 언니와 카롤린 공녀와 사이가 험악해졌고[1] 죄책감 때문인지 온갖 기행을 일삼으며 막장으로 살아서 구설수에 올랐다.
파일:모나코 스테파니 공주 리즈시절.jpg
모델 활동 시절의 스테파니 공녀
명색이 공녀임에도 모델과 가수로 활동하겠다고 나서거나[2][3] 평판 나쁜 남자들을 골라서 사귀기로 유명했다. 빽으로 샤넬에 들어가 디자인 실습을 하다가 때려치우고 모델로 나섰고, 공국의 프린세스라는 배경으로 그녀는 한 때 세계 최고로 비싼 몸값을 받는 모델이 되기도 했다. 정작 거기서도 스트레스를 받아 약에 중독되어 약물중독 치료소에 갇히거나 유부남인 보디가드에게 빠져 기어코 두 아이를 낳고 결혼까지 하는 등, 연일 파파라치의 가십거리로 등극했다. 이 경호원 남편은 후일 파파라치의 함정에 빠져 다른 여자와 그렇고 그런 사진이 찍혔고 스테파니는 외도했다며 분노해 가차없이 이혼했다.

심지어 코끼리 조련사와 사랑에 빠진 후 서커스 단원으로 활동하겠다며 서커스단과 유랑 생활을 하기도 했다. 또한 몇 차례나 유부남들과 바람이 나서 가정을 깨기도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경호원과 사생아를 낳기도 했다. 아버지, 자녀들이 있는 왕궁에서 일꾼과 19금 행각을 하다가 화난 아버지에게 쫓겨나 아이들과 같이 왕궁 맞은 편 호텔 스위트룸에 가는 등 실행가능한 막장은 다 보여주었다. 스테파니 문제로 아버지와 다투기도 하던 언니 카롤린은 약물중독 치료소나 출산 후 병원에 있는 스테파니를 전혀 만나지 않았다. 레니에 공도 조련사와 유랑할 때쯤엔 완전히 질려서 아예 반응도 하지 않았다고. 세 자녀들도 그녀의 개념 없는 애정행각에 휘말려 제대로 학교도 못 다니고 서커스 기술을 익히거나 같이 떠돌아야 했다.

사고 직후 아내 켈리의 암살설에 휘말렸던 레니에는 충격을 받은 스테파니를 평생 감싸면서 그 막장 사고들을 감당하고 살았다. 야단도 치고 내쫓아봐도 소용없었으나, 스테파니는 레니에 공의 임종 전까지 곁을 지키며 극진히 돌보았다. 정작 그녀에게 떨어진 유산은 언니 오빠에 비해 정말 적은 액수였다. 이는 끊임없는 남자 문제로 결혼 이혼을 반복하다 위자료 주느라 거지꼴 예정이라 유산도 제일 적게 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레니에가 살아있는 동안 마음껏 놀아났던 스테파니였지만, 비빌 언덕이던 아버지가 죽고 애들이 커가면서 지금은 정신 차리고 조용히 사는 듯. 그러나 파란만장한 인생 탓인지 나이에 비해 할머니와 다름없을 정도로 폭삭 늙은 데다 인상이 좋지 않으며, 언니 카롤린과는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다. 불화의 원인이 남자 때문이라는 설은 유명하지만 정작 그 남자가 누구인지는 좀 충격이라 그런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듯. 실제로 카롤린은 스테파니가 사생아를 낳았을 때 신랄하게 비난하고 다녔다. 자기도 두번 다 혼전임신해놓고 결혼했으니 낫다는 건가

2.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모나코의 스테파니 공녀
(Princesse Stephanie de Monaco)
<colbgcolor=#fff3e4,#331c00> 레니에 3세
(Rainier III,
Prince de Monaco)
<colbgcolor=#ffffe4,#323300> 피에르 드 폴리냑
(Pierre de Polignac)
막상스 드 폴리냑 백작
(Count Maxence de Polignac)
수산나 데 라 토레 이 미에르
(Susana de la Torre y Mier)
발랑티누아 여공 샤를로트
(Princesse Charlotte,
Duchesse de Valentinois)
루이 2세
(Louis II, Prince de Monaco)
마리 쥘리에트 루베
(Marie Juliette Louvet)
그레이스 켈리
(Grace Kelly)
잭 켈리 시니어
(Jack Kelly Sr.)
존 켈리
(John Kelly)
메리 코스텔로
(Mary Costello)
마거릿 메이저
(Margaret Majer)
카를 마예르
(Carl Majer)
마가레타 베르크
(Margaretha Berg)

2.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배우자 / 자녀
1남 루이 뒤크레
(Louis Ducruet)
1992년 11월 26일 ([age(1992-11-26)]세) 마리 슈발리에
슬하 1녀
1녀 폴린 뒤크레
(Pauline Ducruet)
1994년 5월 4일
([age(1994-05-04)]세)

3. 여담

미국의 장미 재배자 칼 마이어는 1971년에 자신이 개량한 장미를 스테파니 공녀의 이름을 따서 Stéphanie de Monaco라고 명명했다.

파일:모나코 폴린 공녀.jpg
딸 폴린은 할머니의 미모를 이어받아 미녀 왕족으로 유명하다.

[1] 이 역시 스테파니 공녀가 운전하다 사고를 냈다는 루머를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데 크게 일조했다. 카롤린 공녀와는 한 남자를 두고 신경전까지 벌인 적도 있었다. [2] 정작 본인 명의로 발매한 앨범은 혹평받고 망했다(...) 그나마 잘 알려진 건 마이클 잭슨의 노래인 'In the Closet'에서 Mystery Girl 명의로 내레이션을 한 것인데 음색은 꽤 괜찮다는 평을 받았다. [3] 다만 재위 중인 왕가의 왕족이라면 몰라도 유럽의 구왕족 중에는 모델이나 가수 활동을 하는 사람도 간혹 있기는 하다. 콘스탄티노스 2세의 손녀 마리아 올림피아나 시메온 2세의 손녀 마팔다, 카를 1세의 증손녀 엘레오노레 등의 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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