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09:35:40

마리스 얀손스

마리스 얀손스의 주요 수상 및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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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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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르지 쿠르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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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 4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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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지휘)
볼프강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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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알프레드 브렌델
(피아노)
마우리치오 카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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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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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ss Jansons
파일:external/www.br-so.de/Mariss_Jansons_800x450px-800x450.jpg
파일:external/pxhst.co/003d14e1.jpg
2016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에서.
본명 마리스 이바르스 게오르그스 얀손스
Mariss Ivars Georgs Jansons
출생 1943년 1월 14일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 리가
사망 2019년 11월 30일 (향년 76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적
[[라트비아|]][[틀:국기|]][[틀:국기|]] |
[[러시아|]][[틀:국기|]][[틀:국기|]]
직업 지휘자
활동 시기 1973년 ~ 2019년
학력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주요 경력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1979~2000)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1997~2004)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수석지휘자(2003~2019)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2004~2015)

1. 개요2. 생애
2.1. 소련 활동기2.2. 국제 무대 데뷔 및 성공2.3. 사망
3.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clearfix]

1. 개요

라트비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피츠버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를 거쳐, 사망 시까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로 재직했었다.

2. 생애

2.1. 소련 활동기

파일:jansons3.jpg
세살 때(!) 지휘자 놀이를 하는 얀손스... 아빠 나도 지휘자 할래요!

파일:external/www.goclassic.co.kr/1183509591eroica3997.jpg
카라얀의 1968년도 마스터클래스에서의 얀손스.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1943년 1월 14일 현재 라트비아의 리가[1]에서 유명한 지휘자였던 아버지 아르비드 얀손스와 소프라노였던 어머니 이라이다 얀손스 사이에서 태어났다.[2] 아버지인 아르비드 얀손스는 1946년 소련 국내 지휘 경연에서 2등을 차지했는데 심사위원장이었던 예브게니 므라빈스키의 조수로 발탁되어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부지휘자가 되었다.

얀손스는 1956년에 레닌그라드 콘서바토리에 입학, 지휘와 피아노를 익혔다. 그 후, 1969년에는 한스 스보로브스키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지휘를 배우기도 했다.[3] 1971년 카라얀 지휘자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했고, 1973년 아버지를 이어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부지휘자가 되어 므라빈스키의 지휘법을 직접 보고 배웠다.[4]

2.2. 국제 무대 데뷔 및 성공

1979년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발탁되며 국제 무대에 데뷔를 하게 된다. 이 때, 연주도 많이 하고 녹음도 많이 남기고 투어도 열심히 돌며 굉장히 활발한 활동을 한다. 그는 2000년에 오슬로 콘서트홀의 음향 문제로 사임할 때 까지 21년 동안 자리를 지켰다.[5] 그 중간에 런던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의 객원지휘자로도 활발하게 활동했고, 런던 필하모닉과 녹음한 말러 교향곡 6번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던 1984년, 아버지인 아르비드 얀손스가 영국 맨체스터에서 할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도중 심장마비로 급서하게 된다. 그리고 이 불행은 그에게도 찾아오는데...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도중인 1996년, 푸치니의 '라 보엠'을 지휘하다가 엔딩을 7분 남겨놓고 무대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거의 사망 직전까지 갔었다.[6][7][8] 포디움에서 쓰러졌을 때에도 얀손스의 왼팔은 계속 공중을 휘젓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요양차 스위스로 가게 된다.

1997년, 그는 심장마비 이후 6개월 만에 카디프에서 콘서트를 가지며 성공적으로 재기한다. 동시에, 그는 피츠버그 심포니의 음악 감독으로 선임되어 피츠버그에서도 활동하게 된다.[9] 여기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2004년 피츠버그를 떠나게 되는데, 사유는 "시차로 인한 피로의 누적." 건강이 좋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이렇게 양국을 오가면서 활동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2004년에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로 선출되어, 1년에 10주씩 연주활동을 하게 된다. 맨 처음에는 3년 계약이었으나, 나중에는 계속 연장되어 마지막 계약상 임기는 2021년까지로 되어 있었다.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이끌면서 내한 공연도 3번이나 했는데, 올때마다 극찬을 받았다.[10]

2002년에는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에서 제6대 수석지휘자로 지명되어, 2004년 리카르도 샤이의 후임으로 취임했는데, 이는 얀손스의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력이기도 하다. 여기서 활동하면서 RCO Live 레이블로 말러 교향곡 사이클[11], 브루크너 9번 등등의 많은 음반들을 발매하고 호평을 받았다. 2014년에는 건강이 다시 악화되어 2015년을 끝으로 RCO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 2015년에 네덜란드의 막시마 왕후가 참관한 가운데 마지막 콘서트를 지휘하고 은퇴하였다. 그 이후로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활동에만 오롯이 전념했다.

2.3. 사망

2019년 11월 30일 오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자택에서 수년간의 심장병 투병 끝에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미 2019년 여름부터 잡혀있던 공연을 취소하는 등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마리스 얀손스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수석지휘자직은 사실상 종신직으로 마무리된 것이기도 하다.

3.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2006년 신년음악회에서 지휘한 프랑스풍 폴카 <전화>. 끝에 전화가 울리는 이벤트가 인상적이다.

2012년 신년음악회에서 빈 소년 합창단과 함께 한 <트리치 트라치 폴카>

2016 신년음악회에서의 <라데츠키 행진곡>. 얀손스의 관중 컨트롤(...)이 압권이다.

2006년에 처음으로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지휘를 맡은 이후, 2012년과 2016년에 두번 더 지휘해, 총 세 번이나 무대에 섰다. 이는 빌리 보스콥스키의 25번[12], 클레멘스 크라우스의 13번[13], 로린 마젤의 11번[14], 리카르도 무티의 6번[15], 주빈 메타의 5번[16]에 이어 제일 많은 것이고, 다니엘 바렌보임[17] 프란츠 벨저-뫼스트[18]와는 지휘 횟수가 같다. 세 번의 공연 중 2006년을 제외한 두 해에는 빈 소년 합창단과의 콜라보 무대를 가져, 많은 호평을 받았다.

지휘 도중 이벤트도 많이 하는 편인데, 2006년에는 프랑스풍 폴카 '전화'를 지휘하다가 중간에 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연출을 했고, 2012년에는 폴카 '틱톡'의 연주가 끝날 때 즈음에 시계를 꺼내서 직접 돌리는 퍼포먼스를, 2016년에는 빠른 폴카 'Mit Extrapost'를 지휘하기 전, 집배원이 무대에 난입해(...) 얀손스에게 지휘봉을 주고, 얀손스는 악장의 옷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건내주는 퍼포먼스를 했다.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 여러모로 흥이 넘친다.


[1] 그 당시에는 소련. [2] 이때, 유대인이었던 어머니는 라트비아의 게토에서 탈출해 얀손스를 낳았다고 한다. 얀손스의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은 나치에 의해서 사망했다. [3] 이때 카라얀은 이 젊은 지휘자의 재능을 알아 보고 내심 높게 평가했던 듯 하다. 그래서 카라얀은 얀손스에게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지휘자 보조를 제의했으나 소련 정부가 아예 소식을 원천 차단해 정작 본인은 알지 못했다고 한다. [4] 그래서 얀손스는 자신이 므라빈스키를 자신의 영적인 아버지로 생각할 만큼 존경한다고 밝힌 바 있다. [5] 90년대 말에 오슬로 필하모닉과 내한공연을 한 적이 있다. 협연자는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6] 다행히 가장 가까운 응급실이 2분 거리에 있어서 살 수 있었는데 나중에 "내 가슴을 양쪽에서 짓누르는 기계와 어둠 속에서 씨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7] 무대 위에서 지휘하다가 사망한 지휘자들도 꽤 많은데, 당장 얀손스의 아버지만 해도 그렇고, 2001년에 아이다를 지휘하다 쓰러진 주세페 시노폴리, 1960년에 브람스 교향곡 제1번 리허설에서 쓰러진 에두아르 판 베이눔 등등이 있다. [8] 노먼 레브레히트 칼럼 " 지휘가 건강에 좋지 않은 이유" [9]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차후에 심장마비가 올 것을 대비해서 피츠버그에서 심장에 제세동기를 달았다고 한다. [10] 마지막 내한인 2016년 12월 공연에서는 하이든 교향곡 100번 "군대" 4악장에서 'I LOVE KOREA'라고 적혀 있는 대고를 치는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 한국에 대한 호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 날 2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이었다. [11] 9번을 제외한 모든 교향곡을 발매했다. [12] 1955-1979 [13] 1939, 1941–1945, 1948–1954 [14] 1980-1986, 1994, 1996, 1999, 2005 [15] 1993, 1997, 2000, 2004, 2018, 2021 [16] 1990, 1995, 1998, 2007, 2015 [17] 2009, 2014, 2022 [18] 2011, 2013,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