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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대 공화당 전국위원장 하비 리로이 애트워터 Harvey LeRoy Atwa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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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81018> 출생 | 1951년 2월 27일 |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 |
사망 | 1991년 3월 29일 (향년 40세) |
미국 워싱턴 D.C.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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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뉴베리 대학교 (
B.A.)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 (M.A.) |
종교 |
감리교 (1991년 이전) 천주교 (1991년) |
직업 | 선거 참모 |
재임기간 | 공화당 제53대 전국위원장 |
1989년 1월 18일 ~ 1991년 1월 25일 | |
서명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선거 전략가.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조지 H. W. 부시 캠프의 선거 참모로 활약하여, 네거티브 전략으로 민주당의 마이클 두카키스를 상대로 공화당이 승리를 거두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유명하다.2. 생애
2.1. 초기
1951년에 조지아의 최대도시인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이 후 유년기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보냈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뉴베리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2.2. 중앙정계 진출
학업을 마친 후, 그는 공화당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지역당에 입당하여 당의 선거 전략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애트워터는 당시 주지사와 상원의원 선거에서 큰 활약을 하였으며, 특히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선거 전략을 잘 구사하는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명성을 바탕으로 애트워터는 중앙에 진출하여, 레이건 행정부에서 애드워드 롤린스라는 선거 전략가와 함께 백악관 참모로서 일하게 된다. 이 후 그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레이건 캠프의 참모로 활약한다.2.3.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자세한 내용은 마이클 두카키스 문서 참고하십시오.2.4. 이른 죽음
부시를 당선시킨 킹메이커로 등극한 그는, 3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공화당 전국 의장에 오르며 탄탄대로를 걸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화양연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1990년 5월에 연설 도중 실신하여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뇌종양을 진단받았고, 이듬해 3월 29일 입원해 있던 워싱턴 대학병원에서 4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죽기 직전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정적들에게 사과하는 글을 남겼다.애트워터같은 유능한 선거 참모가 없어진 탓인지, 이 후 부시는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아칸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에게 패배하여 재선에 실패한다.
3. 여담
- 미남이었다. 영어 위키백과의 'Lee Atwater' 문서에 그의 사진들이 많이 있다.
뇌종양으로 쓰러진 이후부터 사망하기 직전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신체가 너무 부어서 같은 사람인지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져 있다.
- 샐리 던바라는 여성과 결혼하여, 3명의 자녀를 두었다. 샐리 던바는 2014년 사우스캐롤라이나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는데, 이 때 조지 부시는 애트워터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선거운동을 지원해 주었다.
- 아버지 부시 뿐만 아니라 5살 연상인 아들 부시와도 막역한 관계였다고 한다. 애트워터는 그를 이름 대신 '주니어(Junior)'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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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주와 노래에도 일가견이 있어, 1989년에는 블루스 뮤지션들과 합작 앨범을 발매하기도 하였다. 동년 백악관에서 열린 파티에서도 아버지 부시와 함께
야! 신난다!신나게 기타를 친 것은 현재도 사진으로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