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14:33:45

루이 생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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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의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역대 국왕 · 역대 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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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제12대 총리
루이 스티븐 생로랑
Rt. Hon. Louis Stephen St. Laurent
PC CC QC[1]
파일:Louis_St._Laurent_1954_37112_(cropped).jpg
<colbgcolor=#700F1E>원명 루이에티엔 생로랑
Louis-Étienne St-Laurent
출생 1882년 2월 1일
캐나다 자치령 퀘벡주 콤프턴
사망 1973년 7월 25일 (향년 91세)
캐나다 자치령 퀘벡주 퀘벡시
국적
[[캐나다 자치령|]][[틀:국기|]][[틀:국기|]]
재임기간 제12대 총리
1948년 11월 15일 ~ 1957년 6월 21일
직업 정치인, 변호사
정당
서명 파일:루이 생로랑 서명.svg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캐나다의 정치인이자 제12대 총리이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으로는 제7대 총리인 윌프리드 로리에에 이어 두 번째로 총리 자리에 올랐다.

2. 생애

루이 생로랑은 퀘벡주 콤프턴에서 프랑스계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집안 환경 덕에 어릴 적부터 영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자랐다고 한다.

1905년 라발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한 후 변호사가 되었다. 자유당 소속으로 1941년에는 법무장관에 임명되었고, 1946년에는 외무장관이 되어 샌프란시스코에서 유엔 창립을 위한 회의에 대표로 참석하였다. 1948년 11월에 캐나다 총리에 취임하였다.

총리 재임 중에 캐나다가 국제적으로 더 많은 활동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고, 1949년 북대서양 조약 기구를 설립한 지도자들 중의 하나였다. 1949년 캐나다가 영국으로부터 확실히 독립하여 자치권을 얻게 되었고, 뉴펀들랜드가 캐나다의 10번째 주로 승격되었다. 1949년 총선에선 (2020년대 기준) 캐나다 총선 역사상 한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한 191석(총 262석)이란 대승을 거뒀다.[2]

1950년대 초반 캐나다 총독에 캐나다 본토 출신의 빈센트 매시를 추천했다. 참고로 한국전쟁 당시 캐나다는 26,791명의 캐나다군을 파병했는데[3] 당시 총리가 생로랑이었다. 1957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패하자, 총리직을 사임하였다. 이후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1973년 7월 25일 퀘벡시에서 울혈심부전으로 사망하였다.

3. 여담

  • 역대 캐나다 총리 중 가장 마지막으로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다. 루이 생로랑 이후 캐나다 총리는 모두 전부 면도를 했다.

[1] Queen's Counsel, [2] 여담으로 비율로만 치면 자유당이 승리한 1940년 총선이 총 245석 중 179석으로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1949년은 2위. [3] 미국, 영국 다음가는 3번째 규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