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colcolor=#fff> Sir Reginald Fleming Johnston 레지널드 플레밍 존스턴 경 KCMG C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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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4년 10월 13일 |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 |
사망 | 1938년 3월 6일 (향년 63세) |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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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외교관 |
학력 |
에든버러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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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지널드 존스턴(Reginald F. Johnston)[1]은 영국의 식민지 관료로서 영국령 홍콩의 관료,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의 영어교사(제사)를 역임했다. 이후 영국령 웨이하이웨이[2] 마지막 총독을 지냈다.2. 생애
1874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중국 문화에 정통하고 중국의 군주제를 옹호했다. 1919년에는 선통제의 제사(帝師)가 되었고 또한 선통제의 영어 이름인 헨리(Henry)를 지어준 인물이라고 한다. 1924년 선통제가 자금성에서 추방당한 이후에는 영국 관리로 돌아가 위해위 총독으로 근무했다. 1932년에는 영국으로 돌아가 런던 대학교 동양학과 주임교수로 일했다.1937년 은퇴한 후에는 스코틀랜드의 작은 섬에 중국식 정원을 꾸며놓고 소일하다가 이듬해 에딘버러에서 별세했다.
3. 선통제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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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통제와 함께 찍은 사진 |
그는 군주제를 지지했다. 저서《 자금성의 황혼》에 따르면 존스턴은 광서제의 무술변법이 성공했으면 중국에도 입헌군주국이 들어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고[3], 1912년 선통제의 퇴위 이후에도 민심에 따르면 제정복고가 가능했거나 청나라가 만주로 후퇴하여 북 - 청나라, 남 - 중화민국이 양립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그리고 선통제가 1924년 톈진으로 망명했을 때에는 이를 긍정적으로 기술했고 만주국 역시 청나라의 연장선 그리고 제정복고의 성공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 물론 존스턴은 1938년 사망하여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을 제대로 겪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존스턴은 선통제에 대해 매우 친밀한 감정을 갖고 있었으며, 소년이었던 선통제가 자금성 안의 청나라 소조정에서 지내는 것이 건강과 발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걱정하여 중화민국과 맺었던 황실 우대 조건에 나온 대로 이화원의 별궁으로 옮기자는 주장을 끊임없이 했다. 이를 추진하면서 청실 소조정의 내무부가 관리하던 이화원을 1923년부터 존스턴이 황실감독관[4]이 되어 관리하게 되었다. 이때에 존스턴은 광서제가 감금되었던 옥란당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4. 저서
- 자금성의 황혼(Twilight in the Forbidden City) - 1934년작으로 청나라 소조정 시대를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저서로 손꼽힌다. 영화《 마지막 황제》시나리오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영화 결말부에 선통제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어 재교육 받는 장면에서 이 책이 등장한다. 아이러니해 보이지만 마오쩌둥도 이 책으로 영어 공부를 했으며 마오가 가장 좋아했던 영어 원서도 바로 이 책이라고 한다. 마오 정권이 신중국 수립 후 푸이를 핍박하지 않은 데에 간접적 영향을 주지 않았나 추정되고 있다.
- 북경에서 만달레이까지(From Peking to Mandalay)
- 화북의 사자와 용(Lion and Dragon in Northern China)
- 유교와 현대중국(Confucianism and Modern China)
- 불교도의 중국(Buddhist 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