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 말년 |
1. 개요
웹툰 고수의 등장인물이자 주인공 강룡의 스승. 작중 시점으로부터 약 30여년 전 남만과 가까운 국경 지역에서 파천문이라는 문파와 홀연히 나타나 10년만에 장강 이남 전 지역의 무림을 지배했으며 중원으로 진출한지 불과 3년만에 천하무림 통일 직전까지 갔다.[1] 별호는 파천신군(破天神君). 본명은 독고룡이다. 작중에선 본명보다는 주로 패왕 내지는 파천신군이라고 일컬어진다.
2. 상세
사파 무림의 절대자로 군림했으나 스승으로서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용비의 스승 육진강보단 훨씬 모범적이다. 스승보단 사육사에 가까웠던 육진강과는 달리 독고룡은 강룡을 자신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후계자로 여겼다.[2] 강룡 역시 스승을 소중히 여겨 강자와의 대결에는 흥미가 없음에도 스승의 원수와 관련된 일에는 크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끊임없이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사는 용비와 별다른 인격적 결함 없이 살아가는 강룡만 비교해 보아도 두 스승의 차이는 확연하다. 용비는 육진강을 떠올리면 이를 박박 갈지만, 강룡은 귀신으로라도 다시 한번 스승님을 만나고 싶다고 그리워 하는 모습을 보면 가장 이상적인 사제 관계였다. 파천신군이 강룡을 어렸을 때부터 키워준 것을 보아 단순히 사제 관계를 넘어서 부모로 보일 정도.한편으로는 한창 파천문을 이끌 시절에는 강룡이 아는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냉정하고 잔인한 인물이었던 듯 하다. 작중에선 이것이 패도를 걷는 이의 기본자세라고 나온다. 강룡이 백마곡을 공격했을 때, 진짜 파천신군이었다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고 하는 양정학의 말을 보면 파천신군의 과거 행보는 확실히 강룡보다 잔인했던 듯하다. 막사평이 언급하기로는 자신이 아는 한 무고한 이들을 누구보다 많이 죽인 자가 파천신군이며,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해 온 다섯 마을과 하나의 성에 있는 자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단지 본보기만을 위해 학살했다고 한다.
중원 무림에 뒤늦게 출사한 인물인 것 치고는 중원의 무공에 대해 매우 빠삭한 모습을 보여줘서 의아한 점이 있었는데, 밝혀진 과거에 따르면 남만과 인접한 국경지대를 방문하여 친구가 된 장운에게서 이것저것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이대는 용비불패 외전의 등장인물인 장운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용비불패 외전보다 최소 5년 전에 이미 약관을 넘겼던 나이이니 용비불패 시점에서 약관 남짓이라던 용비나 홍예몽보다는 확실하게 연상이다.
3. 행적
3.1. 독고세가 시절
파천은 원래 남만과의 국경 인근 독고 세가의 젊은 가주였다.[3][4] 남만의 이민족이 국경을 침범해오자, 불과 약관의 나이에 민병대를 조직하여 이에 맞서 일대를 제압한 군벌과도 같은 행보를 보였으며, 이 때부터 파천이라는 별호를 사용했다.[5] 그러던 어느날 천하를 유랑하며 수행중이던 개방의 분타주 장운이 방문해 도전장을 내밀었고, 이에 파천은 장운과 몇날며칠을 겨루었지만 승부를 내지 못하였다[6]. 처음으로 만난 호적수였기에 두 사람은 매우 가까워졌고, 이후 이민족에 함께 맞서싸우며 서로의 무공을 절차탁마했다. 5년 후 장운은 중원으로 돌아갔고, 언젠가 중원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나눴지만 재회하지는 못했다고 한다.[7]여담으로 용비불패를 보면 용비가 북방으로 파견되어 흑색창기병대를 이끌기 전, 10대 초중반 즈음으로 보이는 시기에 남만으로 파견 가 30여차례의 전투를 치르고 돌아왔다는 내용이 있다. 양정학에 따르면 대대적 군사도발이 아닌 이상 조정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니, 조정 소속 무관이던 용비가 파견되었다는 것은 그 즈음에 큰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대상으로 볼 때 남만 세력이 대대적인 규모로 침공을 해오자 용비가 파견되어 이를 진압하고 생환하여 '귀신'이란 별명을 얻었고, 이후 남만의 잔여세력으로 인한 소규모 국경 침범과 약탈이 끊이지 않자 지역 토호 세가인 독고룡이 맞서 싸우며 위명을 떨친 것으로 보인다. 용비불패m에서 남만 국경 인근에는 오무제를 배출한 정파 오대문파중 하나인 승유문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 시기 전대 오무제가 죽어 공석이었던 시기로 추정된다.[8]
3.2. 무림출사
장운이 돌아간 10년후 중원 무림에서는 아수라혈교와의 전쟁인 대마교전이 벌어졌고, 인해 중원의 정파와 사파가 크게 힘을 잃고 무림맹도 기울면서 강호는 중심축을 잃고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다. 독고룡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고향을 버려두고 떠날 순 없었고, 그런 와중 조정에서 보낸 밀사가 독고룡을 찾아온다. 당시 대장군부는 새로운 조직개편과 함께 그동안 미뤄왔던 남만 정벌을 계획하고 현지 사정에 밝은 독고룡과 그의 민병대가 동참해 주기를 요청한다. 독고룡의 입장에서도 남만인들과의 싸움은 중원으로 진출하기 전에 반드시 매듭지어야 했기에 승낙한다. 그렇게 길고 혹독한 원정이 시작된다.처음에는 연전연승하며 단기간에 승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남만 깊숙히 들어갈수록 온갖 악재[9]들이 겹치며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기까지 예상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인 6년이 소요된다. 그렇게 원정을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장운의 안위가 걱정됐던 독고룡은 만사를 제쳐두고 중원으로 갔지만 장운의 사망 소식과 폐허가 된 중원을 목격한다.
대마교전은 수많은 일화를 남겼지만 정작 그 싸움의 당사자들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독고룡은 신무림맹을 찾아간다. 그러나 신무림맹은 독고룡의 면전에서 천박한 이권다툼을 숨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보였으며, 이를 항의하는 독고룡에게 노골적으로 대마교전의 영웅들을 모욕하고 폄하한다. 독고룡은 분노와 한탄을 쏟아내며 고향으로 돌아간다. 한동안 슬픔에 젖어 두문불출하다가 독고세가를 폐쇄하고 간단한 여장만 꾸린 뒤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어디론가 떠났고, 15년 후에 돌아온다.
이 세월 동안 천재적인 재능과 오랜 수련을 통해 독고세가의 독문무공과 남만의 기괴한 무공을 접목시켜 새로운 무공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파천신군의 독문무공 파천신공이다. 독고세가를 무단 점거한 불한당 집단을 상대로, 스스로도 정확히 자신의 수준이 어떤지 모르는 압도적인 이 무공을 선보인다. 이렇게 독고룡이 복귀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독고룡이 아무런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음에도 남만 원정때 함께 했던 사람 대부분, 원정 당시 귀의해 왔던 남만인들, 평소 독고룡의 행보에 감화했던 이들, 독고룡의 힘에 이끌려 찾아든 특출난 인재들 등 많은 이들이 모여들어 파천문이 세워진다. 점차 주체할 수 없는 힘을 가진 파천문은 중원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중원을 비우고 물러나라는 독고룡의 통보에 신무림맹은 처음에는 변방 신생문파의 헛소리 취급하며 무시했지만 약 10년 만에 장강 이남의 전 지역을 파천문이 지배[10]하자 신무림맹은 다급히 중원의 절반을 양보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당연히 독고룡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한 다음 한 달만 더 기다려줄 것이고 더 이상의 타협은 없을 거라며 최후통첩을 날린다.
환사는 '시간을 벌기 위한 신무림맹의 수작이었을 것이다. 파격적인 제안으로 파천문이 느슨해지길 기다렸다가 허를 찌르거나, 그것이 아니라도 신무림맹은 끝까지 저항하려 들 것이다' 라고 파천신군의 결정에 동의하나, 일전의 신무림맹의 썩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봤던 독고룡은 그런 결기라도 있는 자들이라면 좋겠다고 혀를 찬다. 이후 본격적으로 신무림맹으로 인해 더럽혀진 땅을 정화하고 죽은 벗의 넋을 달래겠다며 본격적인 중원 진출을 선언한다.
무림출사 이후 혈교나 그들과 싸운 이들 혹은 독특한 무공을 쓰는 은거기인[11]들과 싸워보기를 바랐으나 혈교는 생존자가 있는지조차 불투명했고 혈교와 맞서 싸웠던 이들 중 생존자들은 속세를 떠나버렸고, 은거기인들은 찾지도 못했다. 결국 남은 자들은 이름만 거창한 자들이었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구 무림의 강자였던[12] 암존 사패천은 이미 대마교전 당시 입은 혈맥 파열 부상으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고, 때문에 제대로 된 싸움을 펼치지 못했다. 패도의 야망이었지만 진정한 고수를 만나고 싶었던 순수한 무인으로서의 마음도 있는 듯 하고 그런 고수들을 만나지 못한 것을 상당히 안타까워했다.[13]
독고룡은 형편없이 약해진 무림맹을 압도적인 힘으로 3년만에 제압하고 중원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중원의 새로운 절대자, 패왕 파천신군으로 군림하게된다.그리고 그 즈음, 구무림에서 무공으로는 최강이라 불렸던 사패천이 찾아와 자신과 싸워서 이기면 구무림의 생존자들과 신선림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고 제안하여 한차례 대결을 벌인 적이 있다. 대결 자체는 파천신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사패천이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한 대결이었기에 그것을 눈치챈 파천신군이 배려를 해서 제대로 된 대결은 다음으로 미루자고 제안한 상황이었다.[14] 그러나 이때 자존심 때문에 사패천이 독비철주편으로 뒤에서 공격을 해 다리에 상처를 입고, 그의 독 때문에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만다.
그렇게 길바닥에 쓰러져있던 독고룡을 구해준건 다름아닌 해동검문의 前 문주이자 강룡의 아버지인 '강윤'이었다.[15] 그 당시 해동검문은 무림맹의 운용방식에 반대해 연맹에서 제명을 당한지 오래였고, 강윤은 사제에게 문주직을 맡긴 채 재야에서 아내와 둘이 살고 있었으나 파천문의 중원 정복이라는 시국으로 인해 다시 문주로 복귀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강윤은 아내와 협의를 한 후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해동검문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간간히 강윤을 찾아온 독고룡은 때마침 이 대화를 듣고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데 부인을 혼자 남겨두고 가겠다는 건지, 해동검문은 상술한 이유로 무림맹에 제명당한 문파로 파천문과 지향하는 바가 궁극적으로 같을 수도 있는데 왜 굳이 대항하려는 건지 묻는다. 강윤은 지향점이 같을지는 모르지만 파천문의 강압적인 방식 또한 또다른 폭력에 불과하다고, 미워서 때리건 사랑해서 때리건 맞는 입장에서는 똑같이 아플 뿐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한다. 강윤과의 여러 번의 만남을 거친 뒤 독고룡은 그에게서 젊은 시절의 자신과 장운을 겹쳐보고, 그의 말에 흔들리며 패도를 지체하기 시작한다.
한편 무림맹 역시도 못마땅하게 여겨 파천문과의 전쟁을 방관하고 있던 중립 문파들 사이에서도 반 파천문 기조가 점차 강해지고 무림 전체의 여론도 악화되기 시작하자, 사천왕들은 당혹감과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혈비는 파천신군에게 패도의 재개를 재촉했으나 강윤의 영향을 받은 파천신군은 새삼스럽지만 정당한 명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에 환사는 강윤을 제거한다면 파천신군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패도를 추구할 것이라며 혈비를 비롯한 사천왕들을 설득하고, 결국 사천왕은 강윤을 죽이고 해동검문을 멸문시키고 만다.
이에 파천신군은 크게 분노하고 사천왕들을 때려눕힌다. 그리고 자신이 패도를 추구한 이유는 무림계의 '정화'를 위해서였지 파멸을 위해서가 아니라며 환사에게 일갈한다. 교룡갑이 강룡에게 보여준 과거 속에서 파천신군이 사천왕들을 냉혈한처럼 짓밟는 모습은 사실 제자들이 학살을 자행하는 스승을 말리는 장면이 아니라 반대로 무고한 자들에게 학살을 저지른 제자들을 스승이 질책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파천신군은 사천왕에게 가담해 해동검문을 멸문하고 귀의해 온 자들 모조리 처단하였다. 교룡갑의 기억을 통해 보여준 당시의 광경은[16] 말 그대로 지옥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수많은 시체들로 가득한[17] 성이였으며 파천신군은 그 시체들이 가득한 성채 지붕 위에 서있었다. 곧이어 성은 붕괴하며, 악마와도 같은 눈빛의 독고룡을 보여준다. 이후 더 나온 묘사에 의하면 아예 무기를 버리고 주저앉아 항복한 자들을 말 그대로 지워버리며 두려움에 도망가는 자들 역시 모조리 죽여버리고 주변을 말 그대로 초토화 시켜버린다.
그러나 이는 가문이 멸문되어 무림에 증오심을 품고 멸망을 바라고 있던 환사의 바람과는 어긋나는 일이었다. 게다가 파천신군은 사패천의 마호산에 당한 다리를 제대로 치료하기 힘들어 곧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될 것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이를 엿들은 환사는 파천신군의 근자에 보였던 행보까지 포함하여 그가 자신의 귀인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옥천비의 '조언'에 따라 몰래 사천왕들에게 환술을 걸어 파천신군을 증오하게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결국 파천신군을 배신하게 만들었다.
결국 파천신군은 일전에 사패천과의 싸움에서 마호산이란 독에 당한 상처와, 강윤의 아내를 미끼로 삼은[18] 사천왕의 배신으로 깊은 내상을 입고 겨우 목숨만 부지한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깊은 협곡 안에 버려지게 된다. 이후 중립 문파들까지 합세한데다 파천신군 사망 소문을 듣고 기세가 올라 점점 거세지는 중원 무림의 반격을 견디지 못 한 파천문은 사천왕 사이의 내분을 가장하여 음지로 숨었다.[19][20]
3.3. 은거
은거중이던 어느날, 협곡 속에서 떨어져서 기절한 것으로 보이는 강룡의 어머니를 발견하게 된다.독고룡은 강룡의 어머니를 치료하여 자신의 은신처에 눕히고 그후 강룡의 어머니는 께어난다. 독고룡을 발견한 강룡의 어머니는 많이 수척해졌다며 웃으며 안부를 묻고 이에 독고룡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다시 웃으며 부인이야말로 수척해졌다며 안부를 묻는다.
독고룡은 담담히 강윤의 죽음에 내가 가담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담했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강윤의 원수를 갚으러 왔다면 쓸모없는 목숨밖에 줄수없지만 제대로 온것이라며 강룡의 어머니가 복수로 왔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목숨을 주려고 한다. 하지만 강룡의 어머니는 무림에 적을 둔 사람은 젊은이나 늙은이나 똑같다며 남편도 그렇기에 그런 모습에 반했다며 웃고, 당신이나 남편이나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했고, 개인적으로 원망이나 서운한 감은 있지만. 공적인일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았다해서 바판받아야 할일은 아니라 생각하니 자책하지 말라 독고룡을 위로한다.
강룡의 어머니는 자신이 여기 온 이유는 강윤이 독고룡에게 남긴 말을 전하기 위해서. 서로 각자의 입장에 충실했기에 원망은 하지 않는다고 강윤의 말을 전하고, 이말을 들을 당시엔 전하기 싫었지만. 오늘 이렇게 만나고 나니 전하길 잘했다며 다시 웃는다. 이에 독고룡은 "자신은 오로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만을 위해 살아왔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로인한 희생은 불가피하고 전부 책임을 떠맞고 비난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남편의 죽음을 책망하려 온것이라면 모를까 자신의 후회하는 모습을 보러온것이라면 잘못 찾아왔다" 며 냉정히 말하지만.
지금까진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소... 그러나...
늙은 아집으로 희생되기에는 너무 고결한 생명들이었소. 조금더 빨리 그것을 깨달았어야 했소...
자신의 사상을 늙은 아집이었다며 강윤의 마음에 탄복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린다.
강룡의 어머니는 자신의 이곳을 찾아온 또다른 이유는 자신이 임신중인 아이, 즉 강룡을 지키기 위해서 라며 현재 바깥은 전쟁중이고 양쪽 세력이 자신을 찾고 있으며, 파천문이 이기면 말할 필요도 없고, 다른 한쪽이 자신을 찾고 있는 이유도 불순한 의도기에 파천신군이 있는 이곳이 곧 태어날 아이를 지킬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하여 찾아왔다고 독고룡에게 지켜줄 것을 부탁한다. 독고룡은 자신이 있는 한 누가 온다 하더라도 아이를 넘볼수 없을 것이라며 아이를 지켜줄것을 약속한다.
그후 시간이 지나 강룡의 어머니는 강룡을 낳은지 얼마되지 않아 죽어가기 시작했고, 결국 강룡까지 무인의 삶을 살게 하긴 싫지만. 자신이 원한다면 자신이 선택하는 삶을 살게 하고 싶다며 독고룡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고 사망한다. 독고룡은 마지막 부탁도 받아들여 강룡을 받아들인다.
독고룡은 강윤의 아내가 남긴 자식인 강룡을 거두어, 그를 자신의 한을 풀어줄 제자로 키운다.[21] 바깥 세상에선 이미 파천문이 멸문한 것으로 알려져있음을 전혀 몰랐던 파천신군은 복수의 일념으로 마지막 제자인 강룡을 절대고수로 키우는데 성공한다. 강룡의 회상과 사패천의 추측에 따르면 파천신군은 이 과정에서 평생을 쌓아온 공력까지 전부 강룡에게 물려주었고, 이로 인해 수명마저 단축된 것으로 보인다.
"나…로 인해 너무 많은 목숨들이 죽어갔어…. 혈겁은…내 대에서 끝내야 한다. 그러니…이, 이것이 내 마지막 유언이니라. 새겨듣거라. 나 때문에
네가 살겁을 저질러서는 안 돼…."
"
네가 익힌 무공은…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사용하거라. 그리고 내가 남긴 힘은…내…속죄를 위해 사용해 다오…."
그러나, 처음에는 프롤로그에 나온 것처럼 강룡을 통해 자신을 배신한 4명에게 복수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말년에 들어선 자신이 일으킨 혈겁과 그로 인해 죽어간 수많은 목숨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오직 패도만을 추구했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한 듯 하다. 패권을 이루고자 한다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의문을 갖거나 뒤를 돌아봐서는 안되지만 자신은 그것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패도는 실패했고 제자인 강룡의 성품 역시 패도의 길을 추구하기에 어울리지 않기에 결국 과거와 복수에 대한 미련을 접고 강룡에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고 유언을 남겼다.
비록 치매 때문에 어떨 때는 철저하게 4명을 응징하라고 했다가 또 잠시 후 혈겁은 자신의 대에서 끝내야 한다고 말하는 둥 하루에도 몇 번이나 유언이 바뀌긴 했지만 그가 입버릇처럼 항상 말하던 본심은 "나 때문에 네가 살겁을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22] 강룡은 사부의 말대로 복수 같은 건 잊어버리고 원수를 찾지도 않을테니 빙벽이 녹으면 이곳을 나가서 자신과 만두집을 차리자고 했고 파천신군은 거기에 대해 알겠다고 했으며, 임종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도 강룡에게 자신이 죽거든 이곳을 나가 바깥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나 함께 살아가야 한다 타일렀고 자신이 강룡에게 남긴 힘을 자신의 속죄를 위해 사용해 달라 부탁했었다. 그리고 강룡을 좀 더 빨리 떠나게 했어야 했는데 자신이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 강룡을 묶어두었다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것이 죽기 직전 파천신군이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다.
사후 강룡이 파천신군을 잊지못해 무덤만 지키고있자 유령의 형태로 나타나 강룡을 이끈다. 아마 이 시점부터 강룡이 걱정되어 혼령 상태로 강룡의 옆에 붙어있기 시작한듯.
3.4. 현재
시작부터 1년 전에 이미 고인이 되어 회상에서나 등장할 것으로 보였으나, 고수의 세계관에는 영혼의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끔 등장하고 있다. 송예린의 말이나 작중 묘사를 보면 현재는 유령 상태로 강룡에게 붙어있는 것으로 보인다.직접적으로 처음 묘사된 것은 58화. 사천왕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룡은 복수행에 앞서 망설이고 있는 자신을 질타하는 독고룡의 환상을 보며 자신을 채찍질했지만, 진짜 독고룡은 실제로 혼백을 보는 예린에게 오히려 복수행을 떠나는 강룡을 말려달라고 송예린에게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 예린 역시 강룡이 내심 떠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강룡이 믿지 않을 거라며 말리지 못한다.
이후 71화에서는 사패천과 싸우면서 불살주의 때문에 힘을 제대로 쓰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리던 강룡의 뒤에서 혼령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걸 본 사패천은 놀라워하면서도 '망령 따위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라면서 물러가라고 일갈하는 패기를 보여준다.
그러면 되었다. 네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것으로 된 게야.
기억하거라. 이 사부가 마지막에 한 말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강룡이 독고룡의 행적을 알게 된 뒤로 점점 전의를 잃어가며[23] 제운강과의 싸움 도중 쓰러진 탓에 다시 나타나 일어나라, 사부의 복수는 이대로 그만 둘 것이냐라며 전부터 해온 말을 언급하지만, 강룡은 드디어 그의 일침을 거절하면서 그제서야 마음이 바뀌게 된 그를 보고서 더 이상 내 지도는 필요없다는 것을 알게 되며 사라진다. 이제 그는 판단하는 것을 스승의 힘 없이 본인이 판단했기에 이제 스승 없이 향하는 강룡의 목표는 불확실하게 되었다.[24]
4. 평가
올곧은 명분을 가지고 대의를 바로세우겠다는 일념으로 무림원정을 시작하였으나 결국은 실패하고 현 무림인들에게 악명 높은 악인으로써 생을 마감한 인물.중원 출사의 목적이 구 무림인들[25]에 대한 존중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신 무림맹의 썩어빠진 작태를 환부 도려내듯 제거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는 것이었기에 구 파천문 초기 결성 시절 당시에는 그의 인품을 알아보았던 수많은 인물들이 파천문의 깃발 아래 모여들 수 있었다.[26] 2부 39화에서 독고룡은 강룡에게 "패도를 추구하면서 무고한 자들이나 무림에 적을 두고 있지 않는 이들에게는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았다."고 말한 이유 또한 자신의 중원 출사의 본 목적이 본래는 선한 의도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계속되는 살인과 살상은 결국 무고한 피해자와 많은 적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고[27], 그의 패도는 강룡의 아버지 강윤의 해동검문을 제자인 사천왕들이 멸문시키면서 좌초하게된다. 1부 79화에서 패도에 대한 이야기를 강룡에게 말하면서 "패권을 이루고자 한다면 자신이 하는 일에 의문을 갖거나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되니"라고 말한것이 바로 본인의 경험담에서 나온 이야기였던것.
결국 구 파천문의 와해, 은거 후 그리고 사망에 이르고 난 뒤에도 파천신군에 대한 공포와 악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얼마나 악명이 높았는지 2부 114화에서 나온 내용으로는 송예린을 만나기 전에, 제자인 강룡이 어느 한 마을에 들렀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파천신군에게 원한을 가진(추정) 사람들이 쫒아와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했을 정도였다.[28]
파천신군이 비록 환사의 간계에 의한 피해자라 해서 완전한 선인으로 보는 것도 무리가 있다. 일단 파천신군이 패도를 추구한 것 자체는 사실이며, 파멸이 아닌 정화라는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무리하게 정벌을 시도한 것도 사실이다. 무고한 민간인들을 건드리지 않은 건 사실인 듯 하지만 작품 내에서 어느 정도 악역으로 묘사되는 부활 파천문의 천곡칠살이 역시 무리한 무림 정벌을 시도했는데, 이 상황을 무림계의 전설의 구원자이자 영웅들인 신선림 측에서 지적하며 책임을 물을 것이라 한 것을 보면 똑같이 정벌을 시도한 파천신군 역시 목적이 어쨌든 무림계 측의 관점에서는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애초에 무림계라 해서 무조건 힘으로 모든 걸 결정하고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게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파천신군 또한 그것을 패도라 여기고 불필요한 살생은 하지 않았다고 자부해왔으나, 말년엔 그런 급격한 무림 정벌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살생 자체를 후회했다.
종합해보면 비록 그 나름의 뜻은 있었다고는 하나, 무림출사 시기 이후 패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업이 쌓여 악인이 되어 버린 인물. 강윤을 만나고, 이후 강룡을 거두어 가르치게 된 이후에야 비로소 심경에 변화가 생겨 자신이 얼마나 미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아 후회하며 자책하고 자신의 비참한 몰골을 학살과 악행에 따른 자업자득이자 인과응보로 여기게 된 듯.
5. 강함
"만일
저기 있는 자가 패왕 파천신군이라면, 아마도 현무림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야." ▶우대장
"
제가 끌어들인 자가 파천신군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습니까? 지금 이 백마곡에 살아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양정학
본격적으로 용비불패 시절의 구무림 인원들이 나오지 않은 1부 시점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고수 세계관 최강자이자 천하의 대부분을 지배한 패왕으로 설정된 모양이었으나, 2부에서 본격적으로 구무림의 인물들로 파워인플레가 일어나 상대적으로 빛을 바랜 감이 있다. 물론 지금와서도 열두존자급이라고 추정되는만큼 절대 약한건 아니지만 1부 시절 묘사에 비하면 아쉬운건 사실.
패림당 당원들에게 구 무림 시기 천하를 삼분했다고 하는 삼존 중 한명이자 무공만으로는 최강인 암존 독수마황 사패천을 꺾을거라는 기대를 갖게 했던 유일한 인물이자 사패천 본인 또한 대마교전 이후 유일하게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며,[29] 일평생 패배라는 것을 겪어보지 않은 당대의 무적자이자 절대고수. 구 무림 시절 뛰어난 재능과 잠재력을 선보인 용비와 구휘도 대단한 무공이라며 고평가했고, 옥천비는 파천신공 천원진을 기공의 극치라며 높이 평가할 정도로 뛰어난 무공이었다.
팬덤 사이에선 대체로 구 무림( 용비불패) 시절의 최고수들인 열두존자들과 대등한 수준으로 짐작하는 편. 파천신군 스스로가 열두존자와의 대결을 고대하였으며, 파천신군의 위명에 밀리지 않는 인물들로 열두존자들이 언급되었고, 과거사를 통해 수행시절의 장운과 라이벌 관계였음을 밝힌 것 역시 파천신군이 대략 어느 정도의 위치였는지 작가가 암묵적으로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30] 파천신군은 젊은 시절 익힌 독고세가의 무공과 6년간의 남만 정벌을 통해(또는 그 이전부터) 경험한 남만의 기괴한 무공들을 15년 동안의 수련을 통해 결합하여 파천신공을 완성하고 열두존자에 버금가는 실력을 얻었다. 파천신군은 적게 잡아도 50대에[31] 열두존자급의 무공 수위를 완성한 것이다. 즉, 구휘나 용비처럼 젊은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낸 무인이 아니라 현재양처럼 여러 풍파를 겪으며 단련된 무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마호산에 중독되고 배신까지 당해 폐인 수준이 된 몸인데다가 상당한 고령의 나이 때문에 몸 상태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던 상황에서도 성장중인 강룡을 압도했으며, 저 몸 상태인데도 강룡이 '최강의 상대'라고 말하는 등 무공의 숙련도나 노련함에 있어서 강룡보다는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32] 또한 사술에 집착하는 막사평은 까내리는 반면 귀영은 좋게 평가하는 등 꾸준한 무공의 정진을 강조하고, 정상적인 승부가 아니었던 사패천과의 일전엔 별 가치를 두지 않았던 걸 보면, 패왕 시절의 잔악한 행동과는 별개로 무공에 대한 마음가짐만은 훌륭한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즉 용비불패-고수 시리즈에서 거듭 강조되듯 무공의 고하가 곧 강함의 절대적인 척도는 아닌 것을 유념하면, 무공의 고하를 떠나 진정한 의미의 고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파천신군은 젊을 때 부터 남만 이민족과 생사를 다투는 전쟁을 거듭했던 인물인만큼 실전 경험이 남다른 인물임이 밝혀졌다.
덧붙여 사패천과 파천신군 누가 더 강하고 이기냐 논란이 많은데 작중 사패천은 천존이 더 강대한 힘 앞에서는 무너진다는 말에 과거 싸운 파천신군을 떠올리긴 했으나 저 장면 직후 사패천은 다친 혈맥의 절반만 회복했어도 달랐을 것이라고 제대로 측정한지와 별개로 최종적으로 파천신군을 만전의 자신보다는 하수 취급했다. 이는 사패천은 더 강한 것에 파천신군을 떠올린 것은 혈맥을 다친 자신보다 강하다라는 거지. 결코 파천신군을 만전의 자신보다 강했다고 봤다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독고룡도 사패천의 싸움에서, 본인의 파천십이신공중 절반밖에 쓰지 않았다. 강룡이 파천 혈비공을 사용하자 처음보는 기술인것에 당황하는 것을 보면, 앞서 적은대로 사패천도 파천신군의 전력은 알지 못한다.
거기다 애초에 파천신군의 무공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직접적으로 묘사된 바가 거의 없는데, 혈맥 부상이 나으면 자신이 이길 수 있다 자신했던 사패천, 자신의 무공 수위가 스승을 이미 넘어섰다 자부한 혈비, 파천신군이야말로 고금 제일의 재목이라 여겼던 환사 등 여러 의견이 있지만 애초에 이들 모두 제대로 된 분석이었을 거란 근거가 없으며, 특히 혈비와 환사는 작중에서 제대로 예측한 게 없어서 신뢰성이 없다. 사실 양정학의 설명에도 따르듯 혈비, 귀영, 막사평이 독고룡을 따르던 시기는 남만 정벌 시기로 이 시기의 독고룡은 파천신공을 완성하지 못 한 시기였으며, 남만 정벌이 끝난 후에는 15년동안 은거에 들어가 파천신공을 완성시켰고, 처음 자신의 전력을 드러낸 이후로는 장강 이남 지역의 정벌을 제자들에게만 맡겨두었다.[33] 무림 출사 시기에도 구 무림의 열두존자 수준에 버금가는 맹자들은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신 무림의 수준은 실로 형편 없었으며, 그나마 찾은 사패천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파천신공을 완성한 독고룡이 자신의 전력을 드러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며 이때문에 혈비나 환사가 판단한 파천신군의 힘은 그들이 생각하던 것에 비해 상당히 과소평가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나마 간접적으로는 파천의 무공은 물론 내공마저 이어받았다고 하는 강룡을 "파천신군의 모든 것을 전수받은 패왕의 후계자"라 지칭하는 만큼 강룡과 크게 차이가 없으리란 것은 짐작이 가능하고[34], 그런 강룡이 사패천의 투기가 파천신군 이상이라 평가한 것을 통해 용비불패, 고수 세계관에선 강함을 의미하는 투기는 사패천이 높은게 맞는 듯 하지만,[35] 반대로 천존이 말한 사패천에게 지적한 실전에서 예상외의 사태가 벌어질때 도움이 되는 것은 고지식한 강함이 아닌 부드러움과 평정심, 그리고 임기응변 이라는 요소에선 사패천보다는 독고룡에게 있어보인다는 점도 있어서 두 명의 승패는 재대로된 컨디션으로 싸워봐야지만 알수 있는 문제란 것만 거듭 결론될뿐이다. 물론 정작 작중에서도 작가가 의도적으로 독고룡과 사패천의 우열을 알 수 없게 끝내놓은 만큼, 실제 만전인 사패천과 파천신군이 붙을 경우 승패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선 작품내외로 제대로된 언급이 없어서 상상의 영역에 그칠 뿐이다.
6. 기타
프롤로그 맨 처음부터 등장한 캐릭터지만, 특이하게도 고수에서 유일하게 외형설정이 변한 캐릭터중 하나이다. 처음 전성기 시절의 모습이 등장한 1부 74화, 75화, 그리고 76화에서는 턱수염이 많이 나 있긴 하지만 관우마냥 길게 내려오는 수염이 아니었는데, 두번째로 전성기 시절이 등장했던 2부 24화에서는 관우수염으로 그려져 있다. 아무래도 은거시절의 설정과 통일하기 위해서인듯. 이후 1부 76화는 변경된 설정에 맞추기 위해서인지 회상컷 전체가 수정되었지만, 그 이전인 74화와 75화는 여전히 짧은 수염으로 고정돼있다.7. 관련 문서
[1]
2부 142화에서 밝혀지길 전 무림의 7할을 점령했다고 한다.
[2]
다만 육진강 역시 용비를 후계자로 생각하고는 있었다.
흑색창기병대를 토사구팽 하면서도 대장이었던 용비만은 대장군부의 중요 인물로 키워내기 위해 호위대까지 보내서 살려두었다. 물론 용비는 부하들이 토사구팽당한다는 사실에 격노해 죄다 없애버렸지만...
[3]
양정학이 들려준 과거 이야기에서 독고룡은 남만과의 국경지대 출신이라 했으니 분명 중국의 남부 출신인것은 맞기에 단순히 중국 남방까지를 말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이렇게 잡을 경우 중국 동남 지방(산동,허난,장쑤,후난,후베이,저장,푸젠,광둥,구이저우 등)/서남 지방(티베트 자치구,칭하이,쓰촨,윈난성) 중 어딘가(...) 쯤이 그의 출신지라고 추측 가능.) 넓게 보면 동남아인 베트남 쪽까지도 잡을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중국 남부 중 서남부는 베트남과 맞닿아있기 때문. 실제 수하였던 막사평은 남황 출신이라고 자칭하여 베트남 인근의 중국 국경 지방 즈음이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
[4]
이 설명이 나올때의 컷에서는 여태까지 나왔던 일반적인 숲 컷신이 아니라 열대기후의 밀림 컷신이 실려있다. 아열대기후 특성의 밀림지대는 중국 서남부-베트남 국경지대에 걸쳐 있기에 서남지방 출신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5]
당시에는 아직 '신군'이라는 칭호는 붙지 않은, 파천 독고룡이라 불렸다. 여담이지만 이때까진 무기를 사용하며 싸웠다.
[6]
대결 당시 평범하게 서로를 디스하는 대화를 나눈 걸 보면 딱히 은형수마권을 쓰면서 싸우지는 않았던 모양
[7]
이를 보면 시기상 용비불패 외전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다. 작중 장운이 10년 동안 남만 등을 떠돌며 수행하다 돌아왔다는 대사가 나오기 때문
[8]
옥수연이 오무제로 인정 받은 것은 용비불패 시작 시점 쯤이며 이때도 문파 내에서 장로들에게 휘둘리는 등 세간에 얼굴을 드러내거나 명성이 은폐되었다는 식으로 나온다.
[9]
생소한 지형, 기후, 수많은 벌레들, 각종 풍토병,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거대 짐승, 밤낮없이 덮쳐드는 야생 맹수들, 상상을 초월하는 무공 고수들과 그들의 기괴한 전투 방식, 포기할 줄 모르는 끈질긴 저항, 원활하지 못한 후방 보급
[10]
이런 엄청난 업적도 파천문의 위세에 비하면 오래 걸린 거라고 한다. 파천문의 위세에 비해 오래 걸린 이유는 양자강 이남 지역이 드넓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독고룡이 직접 개입하지 않고 제자들에게만 맡겨두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양정학은 이를 보고 독고룡이 중원 무림맹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11]
가우복의 스승인 팔공진인 양소 등의 인물들. 덧붙여 팔공진인 양소도 열두존자중 한 명이다.
[12]
그것도 단순한 강자도 아니고 단순 무공만으로는 천존과 지존을 뛰어넘는 최강자급의 거물이었다.
[13]
무엇보다 위에도 적혀있지만, 젊은 시절 장운과 사흘밤낮을 싸우고도 결판을 짓지 못했을 정도로 치열하게 싸워본 경험이 있었으니 안타까움이 배가 되었을 것이다.
[14]
당시 사패천은 파천십이신공 중 6개를 받아냈다고 한다.
[15]
처음 구했을 당시 독고룡이 자신이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을때 강윤이 담담하면서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알아야 하냐고 되묻는 것을 보면 독고룡이 파천신군이라는 것을 어느정도 짐작은 했을 듯. 독고룡이 계속 찾아온 이후에는 독고룡이 파천신군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으나 강윤이 파천신군을 대하는 태도는 여일했다.
[16]
참고로 이 사건은 내막은 좀 다르기는 했지만 묘사 자체는 사실이었음이 밝혀진다.
[17]
심지어 시체 사이엔 어린 아이와 아이를 감싼 자세로 죽어있는 여자도 있었다.
[18]
실제 강윤의 아내가 아니라 닮은 사람을 분장시킨 것이었지만, 파천신군이 평정심을 잃기에는 충분했을 거라고 한다
[19]
사건 이후 정복했던 곳곳에 반란의 조짐이 있었고, 이때 귀영은 사태 수습은 커녕 사천왕과 틀어지기 시작했으니 혈비 혼자 반란을 진압해야했을 것이다. 반란도 반란이고 파천신군이 없어지자 정-사를 가리지 않고 파천문 잔당을 정벌했던 걸 보면 당시 혈비가 혼자 감당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훗날을 기약하며 사천왕끼리 자멸한 걸로 위장해 몸을 숨긴 모양.
[20]
이 시기는 후술된 강윤의 아내가 은거중인 독고룡을 찾아온 이후이다. 그녀의 대사로 미루어 보아 파천문은 아직 무림을 상대로 싸우고 있던 시기였다.
[21]
강룡의 어머니와의 약속은 지켰다. 강룡이 부모님의 원수를 갚고자 무공을 배우려 했기에 가르치기 시작했던 것.
[22]
강룡이 사패천과의 일전에서 밀리고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해진 뒤에야 '죄송해요, 스승님! 죽여야겠어요!' 라며 진심으로 사패천을 상대하며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도 스승의 저 유언 때문일 것이다.
[23]
파천신군에 대한 태도 역시 달라지는데, 전과 다르게 옆에서 파천신군이 혼령 상태로 꾸짖자, 짜증난다며 중얼거리고는 그냥 무시한다.
[24]
일단 그 전까지 목표였던
혈비와
환사를 죽이러 가기는 했다만...
[25]
특히 개방 출신 장운에 대한 각별한 정이 컸던 듯 하다. 중원에 가자마자 장운을 찾아갔으니..
[26]
2부 141화에서의 양정학의 설명에 "그는 아무런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라는걸 보면 독고세가 시절의 명성과 인품이 그만큼 타인이 스스로 받들만큼 대단하였다는걸 알수 있다.
[27]
막사평뿐만 아니라 진가령 역시 파천신군의 손에 무고한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지적했으며, 죽기 전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시절에는 정작 독고룡 그 자신도 "나로 인해 너무 많은 목숨이 죽었다" "자신에 대해 의문을 품고 뒤돌아보았다"는 식으로 피를 토하듯 말하기도 했다.
[28]
물론, 이를 보고 분노한 강룡은 마을 주민들을 학살한 이들을 몰살시켜버렸다. 이를 보면, 강룡은
송예린을 만나기 전까지는 파천신군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에게 쫒기는 삶을 살았던 듯 하다.
[29]
다만 사패천과의 일전을 기준으로 파천신군의 강함을 추측하는 건 무의미하다. 이 부분은 사패천이 혈맥 부상으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상황이었던지라 파천신군 스스로가 "승부라고 부를만한 것도 아니었다"고 단언한 사실이다.
[30]
장운은 용비불패 외전 시점에서 은형수마권을 일부 통제하는데 성공했고, 더 나아가 은형수마권을 완성했다면 열두존자인 사부 일죽거사나, 역사상 개방 최고수인 염화신개에 비견되었을 것으로 묘사된다. 즉, 장운 자체가 열두존자급 포텐을 지닌 인물이었으므로, 그와 대등한 재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파천신군 역시 파천신공을 완성한 시점에서는 열두존자와 대등한 강함을 지녔을 것이다.
[31]
장운과 처음 만났을 때가 약관이라 치면 남만 정벌을 시작했을 때가 서른 중반, 이후 정벌을 마치고 돌아왔을 시점이 마흔즈음이니, 15년간의 수행을 마치고 돌아온 파천신군의 나이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대 중반이다
[32]
다만 이 최강의 상대 운운은 사부이기에 강룡의 습관이나 버릇등을 전부 알고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비장의 수나 성격 전부 알고 있는 스승인만큼 비슷한 수준으로 놓고 비교하면 어떤 상대보다 까다로운 건 사실이다.
[33]
이부분은 양정학의 추측이지만 양정학을 보면 거의 확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34]
가진 걸 전부 다 물려받았다면 강룡이 내공에서는 파천보다도 한 수 위일 것이다. 다만 내공을 얼마나 물려준 것인지도 분명하지는 않다
[35]
강룡이 본 파천신군은 이미 다리 하나를 절고 제자의 공격으로 만전의 상태는 아니었긴 하지만 강룡에게 높다고 평가받은 사패천도 늙고 혈맥에 큰 타격을 받아 전성기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였다. 심지어 저 평가를 받고 난후 사패천은 더 힘을 드러내 강룡을 번번히 놀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