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아랍어 دير القمر영어 Deir el Qamar
레바논 중부의 도시. 베이루트에서 동남쪽으로 20km, 시돈에서 동북쪽으로 30km 떨어진 산지에 위치한다. 17-18세기 레바논 아미르국의 수도였기에 여러 유적이 남아있다.
다만 현재는 대다수의 주민이 마론파 및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기독교도이다. 지명은 '달의 수도원'이란 뜻인데, 고대에 달의 신에게 바쳐진 신전이 있던 것에서 유래했다. 해발 800m의 고지대에 위치하여 기후는 서늘한 편이다.
2. 역사
페니키아 시절부터 도시가 있었고, 아슈타르트 여신에게 봉헌된 신전은 동로마 제국기에 성당으로 전환되었다. 859년, 지진으로 도시와 성당은 파괴되어 버려졌다가 12세기 십자군 시기에 재건되었다. 기록상으로 데이르 엘카마르는 13세기 중엽 예루살렘 왕국의 쇼우츠 영주 율리안 및 안드레이가 일부 토지를 튜튼기사단에 판매하며 처음으로 등장한다.16세기 들어 데이르 엘카마르는 레바논 아미르국의 수도가 되었고, 1493년에 세워진 파크렛딘 모스크는 레바논 산지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이다. 17세기에 파크르 앗 딘 2세가, 18세기에는 유수프 시하브가 궁전을 세웠고 후자는 현재 시청사로 쓰이고 있다. 1600년 경까지도 현지 3백여 주민은 모두 드루즈교도였지만, 도시가 문화적으로 번영하며 기독교도 및 유대교도 역시 유입되어 다양해졌다.
1837년에 현지 유대인들은 지진으로 파괴된 사페드의 유대 구역 재건을 도왔다. 1842년 레바논 아미루국이 붕괴된 후, 데이르 엘카마르는 남쪽의 바아클린과 함께 각각 동계/하계 주도가 되었다. 1847년에는 현지 기독교도 아이를 유대인들이 납치해 피의 제물로 바쳤다는 소문이 돌아 9명이 구금되었지만, 베이루트 주재 영국 영사의 개입으로 풀려났다.
3개 종교가 공존하던 도시는 1860년, 드루즈-기독교 갈등의 와중에 방화되는 등 파괴되었다. 프랑스 군의 도움으로 시가지는 복구되었지만, 드루즈 및 유대인 주민들은 부동산을 기독교도에게 팔고 실향민이 되어야 했다. 이후로도 데이르 엘카마르는 기독교 주도 도시로 남아있다. 1864년, 데이르 엘카마르는 오스만 제국령 아랍 지역에서 처음으로 자체적인 시정부를 수립했다. 시나고그는 1893년에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