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10:44:23

더글러스 맥아더(검은머리 미군 대원수)

미합중국 제34대 대통령
더글러스 맥아더
Douglas MacArthur
<colbgcolor=#0d164a><colcolor=#ffc224> 본명 더글러스 매카서[1]
출생 1880년 1월 26일
미국 아칸소 주 리틀록
사망 1964년 초[2]
미국 워싱턴 D.C. 월터리드 육군병원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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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제34대 대통령
1945년 1월 20일 ~ 1949년 1월 20일
학력 미국육군사관학교 ( 학사)
정당

주요 이력 미합중국 제 34대 대통령
전쟁부 장관
캔자스 주 상원의원[3]
육군참모총장
필리핀 군관구 사령관
육군사관학교 교장
제42 보병사단 84여단장
제42 보병사단 참모장
군사 경력
복무 미합중국 육군
1903년 ~ 1932년
최종 계급 육군 예비역 대장
참전 멕시코 혁명
제1차 세계 대전

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clearfix]

1. 개요

대체역사소설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의 등장인물. 원전은 더글러스 맥아더.

2. 작중 행적

웨스트포인트에서 예전에 기수 단합을 위해 아나폴리스 예포를 지붕 위로 올린 선배가 있었다더라 식으로 잠깐 언급되었다가, 유진이 본격적으로 군문에 나서며 함께 등장한다. 원 역사대로 뛰어난 능력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인물로, 다른 장성들이 외형만 보고 혹평하던 주유기를 호평하거나[4] 유진의 레포트를 읽고 진가를 알아보는 등의 선구안을 보여 준다. 판초 비야 토벌전 때 유진을 ' 쿵푸마스터 소위'로 만들어 유명하게 만든 것도 이 사람이다.

다만 유진이 '비대한 자아'라고 부르는 자뻑 기질은 이 때부터 강해서, 1차대전 중 독단적으로 42사단을 움직여 326전차대대를 구원하고는 근처에 있던 1사단을 머저리들이라고 깎아내리는 등 주변으로부터 척을 질 일을 많이 한다.[5] 이후 84여단장을 맡아 뫼즈-아르곤 전역과 백일 전투에서 활약하고 스당을 점령하는 공을 세우지만, 전선에 나갔다가 한 번은 독가스를 마시고 후송되고, 다른 한 번은 사복 차림으로 시찰나갔다가 1사단에 스파이로 체포되기도 한다. 맥아더는 이를 두고 사령부와 다른 부대가 자신을 음해한 반역자들이라고 생각하지만, 마침 이걸 구경하러 나온 유진에게 배빵을 한 대 얻어맞고는 기절한다. 이 때 유진은 "사령부는 그냥 무능한 것뿐이며, 평균적인 인간의 지능을 생각할 때는 상상도 못할 모지리를 기준으로 하라"며 맥아더를 일깨운다. 맥아더야 워낙 천재적인 인물이니 다른 사람의 평균치를 자기 기준에 맞춰 생각하고 있었지만, 유진은 전생에서 한국군에 복무하며 머릿수 채우기용 징집병, 북한 간첩으로 느껴질 정도의 무능한 장교들을 수도 없이 봐 왔기 때문에 할 수 있던 말이다.[6] 이 사건 이후 맥아더는 원 역사에서의 독선적인 모습을 다소 버리게 된다.

전간기에는 웨스트포인트 교장을 거쳐 필리핀에 부임[7]하였다가,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된다. 그리고 검머대 세계와 실제 역사의 맥아더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다.
저는 지금 이 순간도 제가 즐겨 부르던 한 군가의 구절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노라...

지금 우리의 손엔 바로 그 노병의 피와 절규가 묻어 있습니다.
원 역사의 보너스 군대보다 규모가 커진 우유원정군 사건[8]에서 유진의 지속적인 설득 끝에 자신의 출세와 영광의 유혹을 뿌리치고, 탱크로 시위대를 밀어버리는게 아닌 전국적으로 송출되는 기자회견에서 후버 행정부의 추태를 고발함과 동시에 전역을 신청한다. 더글러스 장군님이 맥가놈을 죽였다! 예편 후에는 공화당에 적을 두고, 커티스의 캔자스 주 상원의원 자리를 승계받는다. 맥아더는 조지아 애틀란타에서 근무할 때 주민들이 남북전쟁의 영웅인 자신의 아버지 아서 맥아더 주니어를 조롱하는 꼴을 보고 남부와 민주당에게 크게 실망했기 때문.[9] 그리고 이번 폭로로 인해 원 역사에서는 바탄 반도 탈출 때나 받을 명예 훈장을 1차 대전에서 제대로 상훈이 지정되지 않은 공로를 기린다는 이유로 받게 된다. 물론 진짜 이유는 빨갱이 타령에서 합중국의 정의와 명예를 지켜낸 공로였다.

원역사에서나 작중에서나 언플과 정치에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맥아더답게 빠르게 정치인으로서의 삶에 적응한다. US MILK를 활용한 슈퍼맨 프로젝트의 성공, 대공황 이후 꼴이 말이 아니게 된 공화당의 입지 덕분에 빠르게 중진급 의원이 된다. FDR의 3선 계획을 듣고는 그와 대립하지만, 평소 스캔들이 될 만한 사고를 많이 친 까닭에 FDR에게 협박당해 대선 출마를 포기한다. 결국 공화당의 구국의 결단으로 거국내각의 전쟁부 장관으로 합류하게 된다.

전쟁부 장관을 역임하면서는 유진을 든든히 지원하며, 유진이 헨리의 실종 소식을 듣고 기절했을 때도 그의 유임을 관철시킨다. 원래는 필리핀을 돕고 싶어했으나, 바르바로사 작전 진주만 공습이 같은 날 터지면서 FDR이 '유럽 우선'을 방침으로 정했기 때문에 필리핀을 바로 돕지는 못하게 되었다. FDR 서거 이후에는 월레스를 배제하고 전쟁을 지휘하고자 하는 꿈을 꿨지만,[10] 유진이 일선에서 물러난 사이 영국군이 부대를 독일군에 갖다 바쳐서 원하던 아시아 전선에 집중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이후 유진이 복귀하여 발터 모델의 독일군을 전멸시키자 총사령관 교체를 반대했던 그의 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며, 태평양 전선 상황도 호전되어서 기어이 필리핀의 모래밭을 밟고 아나스타시오와 인증샷을 박았다. 이 때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을 알게 되었다. 알게 된 직후에는 전시 상황에 대한 고려, 자신의 권력욕 등이 뒤섞인 이유[11]로 묻어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진이 맥아더를 카사블랑카에서 만났을 때는 미라 같이 말랐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도의와 자신의 정치적 야망 사이에서 고뇌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독일 점령 후 유진의 반발로 일어난 월레스 내각의 레임덕, 체코의 공산당 쿠데타, 월레스에 반발한 민주당 일부가 주권민주당으로 분열, 처음 실시된 라디오 대선 토론에서의 승리 덕분에 결국 미국 34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12] 사실 주권민주당 분당 사건이 아니었으면 민주당의 승리였다. 본작에서는 킴가의 영지 노릇을 하는 캘리포니아가 당대 미국 본토에서 가장 인종차별이 적은 동네라서 진보 성향이 강한데, 캘리포니아가 600표 차이로 공화당이 승리해 선거인단을 가져갔지만 이때 주권민주당이 캘리포니아에서 받은 표는 900표(...)밖에 안 되었다. 캘리포니아 선거인단이 공화당에 넘어간 탓에 공화당이 승리한 거라서 민주당은 이게 다 딕시크랫 때문이라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지나간 버스. 결국 딕시크랫은 맥아더와 악연이 심한 공화당으로 갈 수도 없어 이런저런 해프닝 끝에 민주당에 복당했다.[13]

취임식 연설부터 새로운 악은 공산주의라고 선언하여 냉전이 시작된다. 본인은 총사령관으로서 활동하고, 내정 디테일은 공화당 경제 전문가들이 꾸리며, 군부는 합참의장 유진 킴이 통제하고, 외교는 초강경 반공주의자인 존 포스터 덜레스가 맡는 구성이다. 일단 반공을 내세우긴 했지만 2차 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라 군사력 투사 대신 경제 원조를 통해 공산주의 확산을 제어하고자 하며, 유럽에서는 한 발 물러나는 대신 중국에서는 국제연합을 이용해 국공내전에 참전한다. 드럼을 유엔평화유지군 총사령관으로 다시 중국으로 파견하고 중국에 핵폭탄을 배치해서 장개석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우한에 쏘게 만들었고[14], 결국 중화민국을 장강 이남에 유지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국공내전이 사실상 패배로 끝난 것 때문에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어닥쳤는데, 유진의 활약으로 매카시즘 역풍이 불어 매카시가 궁지에 몰리자 그와 아이젠하워를 지지하며 재선 불출마 선언을 한다. 이로서 맥아더는 작중에서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군인임을 포기하고 국민을 지킨 위대한 군인이자 위기의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재선을 포기한 위대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본인도 만족스러웠는지 퇴임 후 유진과 함께 퍼싱의 묘소를 방문했을 때 죽어서 천상의 베드로 앞에 서도 자신의 책무를 다 했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다고 소회를 밝힌다.

이후 말년에 월터 리드 육군 병원에서 유진과 재회하며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을 주장하는 정치인과 국민들의 얘기를 듣고는 '내 부하 중 아프간에 쳐들어가자고 주장하는 놈이 있다면 군복부터 벗길 것'이라며 냉소적으로 일침했다. 작중에서 크게 수혜를 입은 인물답게 그의 전략적인 안목도 늙어서까지 유지되었다는 표현인 듯.[15][16] 대담 이후 요로결석으로 쓰러진 유진에게 수명이 며칠 줄었다고 한 소리 한 것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3. 기타

  • 기본적으로 원 역사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본작에서 가장 많이 인생이 바뀐 인물 중 하나다.[17] 원 역사의 맥아더는 더글러스 맥아더 참조.
  • 유진 평에 따르면 굉장한 워커홀릭이라고 하며, 필리핀에 부임했을 때도 아나스타시오가 맥아더의 워커홀릭 기질에 진절머리를 쳤다.
  • 유진과는 사적으로도 매우 친해서, 맥아더의 자식들은 유진을 삼촌이라 부르며 매우 잘 따르고 유진도 만날 때마다 선물을 챙겨주는 등 매우 귀여워한다. 또 브룩스와 부부였을 당시 브룩스와 전 남편의 자식들은 자식을 방치하던 브룩스보다 새아버지였던 맥아더를 더 잘 따랐는데 유진은 이들과도 잘 놀아준 편이었다. 다만 그와 별개로 루즈벨트에게 약점으로 잡힐 만큼 스캔이 많았다고 한다.
  • FDR은 맥아더를 '여전히 사람들을 아군과 적의 이분법으로 보는 군인의 세계관을 간직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와 별개로 정치인 물을 꽤 먹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와 필적하는 뛰어난 인물인 유진 킴의 존재 덕분에 좀 더 유한 태도를 보인다.[18] 그래서 독자들은 맥황상이 맥가놈을 죽였다고 평하곤 한다.
  • 유진 못지 않게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를 아낀다. 필리핀에는 유진이 가면서 오래 곁에 두진 않았지만 1차 대전부터 내심 점찍어뒀는지 육군참모총장이 된 후에 유진으로부터 그를 부관으로 추천받는다.[19]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인재'라고 생각하며 2차 대전에서 그가 장관, 아이젠하워가 태평양 전선 총사령관일때도 회동해서 자신의 구상을 털어놓고 유진이 아시아 전역에 가게 되더라도 자리와 진급은 보장해준다고 할 정도.
  • 작중 맥아더는 마셜, 드럼과 긴장관계였다. 드럼과의 긴장관계는 우유원정대 사건 이후 드럼이 기민한 정치적 감각으로 맥아더에게 붙고 맥아더가 군복을 벗은 이후 해소됐지만, 마셜과는 전쟁부 장관-육군참모총장으로 갈등이 지속된다. 그러나 본인이 최종보스가 되어서 마셜은 유진 후임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드럼은 국공내전의 UN군 총사령관으로 알차게 부려먹는 최종 승자가 되었다. 드럼과 쇼몽 일파는 한때 맥아더가 멘붕에 빠질 정도로 압도하기라도 했었는데, 마셜은 언제나 맥아더의 하급자였어서 단 한번도 유효타를 날려보지 못했다.
  • 원 역사에서 맥아더는 정치권의 경계를 사서[20] 몰락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 어떤 무기에도 그의 이름이 붙지 않았으나, 작중에서는 오히려 참군인으로 남았기 때문에 다양한 무기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 작중 국공내전에서 투하된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은 맥아더의 이름을 꼬아 더그 아웃이 되었고, 미 해군의 항모 중 한 척에도 맥아더의 이름이 붙었다. 맥아더는 해군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서 해군 내부에서도 이 문제로 시끄러웠지만, 소련이 터지고 난뒤 예산이 대폭 삭감되자 '해군과 사이가 좋지 않은 맥아더조차 우리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언플을 펼치기 위해 맥아더의 이름으로 항모를 뽑았다고 한다.


[1] 이름의 한글 표기에 대해서는 더글러스 맥아더 항목의 ' 기타' 문단 참고. [2] 1963년 9월에 3차 중동전쟁이 종결되었고 1964년 9월이 되기 몇달 전에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었는데 맥아더는 이 사이 기간에 죽었다. 참고로 원 역사에서는 1964년 4월 6일에 사망하였다. [3] 작중 나온 내용대로 추정해 보면 커티스의 자리를 물려받아서 초선, 재선 후 전쟁부 장관 취임으로 사퇴, 이후 다시 의원직에 복귀했다는 서술이 나오는 것을 보면 3선을 했다. [4] 회의실의 장성들이 전부 불만을 터트리고 있을 때 혼자 집어들더니 구석에 대고 풀 오토로 갈겨(...) 성능을 확인시켜 모두의 입을 다물게 만든다. [5] 특히 이 때 1사단 참모장을 맡고 있던 조지 마셜과 이후로 척을 지게 되는 큰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6] 작 중 표현으로는 맥아더 본인은 자신을 1맥아더로 쳤을 때 주변에 모자라다고 생각하다는 사람들도 0.7맥아더 정도는 쳐주고 있는데, 유진이 보기에는 0.7도 높게 쳐준거고 0.3 정도로 쳐줘야 한다고 독백한다. [7] 이 때 퍼싱의 전 연인인 루이스 브룩스와 애정행각을 나누다 걸리는데, 이게 하필 퍼싱이 주최한 파티에서였다. 맥아더 본인은 괜찮다고 판단했지만 유진은 위험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필리핀으로 튀라고 조언하고, 퍼싱의 분노는 전부 마셜이 감당했다. [8] 보너스 군대가 참전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발한 사건이라면, 우유원정군은 참전 군인들의 생업을 끊어버린 게 계기였다. 이마저도 멀쩡히 돌아가던 낙농업을 후버가 자신의 정적인 찰스 커티스의 기반을 깨뜨리려고 무리하게 벌인 일이었다. [9] 해당 시기의 군인들은 남부의 딕시크랫을 지지층으로 끌어안은 민주당에 적대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FDR이 유진에게 민주당으로 오라고 농담하는 것도 둘이 워낙 친하니 그럴 수 있다 정도지, FDR이라는 매개체가 없었다면 유진의 민주당행은 상상도 못할 찌라시에 불과하다. [10] 이때 묘사된 모습들은 전시 상황에 장관이 행정부를 흔드는 모습이라 일부 독자들은 맥가놈이 돌아오고 있다며 비판적으로 보는 독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작중 맥아더는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 그것도 전시 거국내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내각의 일원이 된 야당의 거물이기 때문에 이견을 표출하고 대통령과 대립하는 것은 당연하며 원 역사에서 문민통제를 거부하던 진짜 맥가놈모습과 비교할 수 없으며, 일부 독자들의 불편함은 실제 가지고 있는 정치관이나 견해가 투영된 것일 듯. [11] 전쟁 도중에 터트리면 나치에게 너희도 우리와 같은 놈이다라고 반박당하기 딱 좋고 전쟁의지까지 꺾어버리는 대형 사고다. 애초에 사건 자체가 전쟁부의 관할도 아닌데다가 야당 정치인인 맥아더가 책임질 일도 아니었다. [12] 취임식도 처음으로 TV중계가 되었다. [13] 다만 딕시크랫 분당 사건은 딕시크랫이 바보라서 분당한 게 아니라 루즈벨트의 사망으로 원래부터 취약했던 뉴딜 연합이 붕괴되면서 벌어진 다소 필연적인 사건이기는 했다. [14] 일본이 원자폭탄 투하 이전에 항복했기 때문에 소련이 원폭 개발을 하기 이전이었다. [15] 유진 역시 리처드 닉슨과의 대담에서 아프가니스탄 참전은 마켓 가든 작전마냥 대차게 말아먹을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16] 여담으로 실제 역사에서도 맥아더는 말년에 베트남전을 반대하며 이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하기도 했다. [17] 작중 맥아더와 비견될 주요 인물로 이승만이 있는데, 맥아더처럼 원 역사에서의 부정적인 행보를 걷지 않아 긍정적인 면이 많이 남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18] 맥아더가 폭주하여 그를 잘라내더라도 유진 킴이라는 훌륭한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19] 이때 유진은 오마르 브래들리 제임스 밴 플리트를 순서대로 추천하지만 맥아더가 거부하자 아이젠하워를 거론하는데, 그러자마자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는 잘 모르지만 니가 추천하니 쓴다"는 개드립을 친다. 미들네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걸 알고 있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다른 사람은 염두에도 두고 있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20] 맥아더는 한국전쟁 당시 독단적으로 작전을 수립하는 등 문민통제를 거스르는 짓을 많이 했고, 이 때문에 위험인물로 찍혀 훅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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