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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까지 대한제국( 조선)[1]과 러시아 제국 사이에 녹둔도와 두만강 인근 지대와 섬들을 두고 벌인 영토 분쟁. 1860년 10월 18일부터 1910년 한일합병(경술국치) 직전까지 무려 50년이 넘도록 벌였던 영토 분쟁이며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단순히 이 사건은 현재는 연해주에 완전히 붙어 버린 녹둔도만의 영토 분쟁이 아니고 러시아 제국에 귀속된 조선지역 영토와 그 일대의 영유권, 일대 세금, 인구의 관할에 대한 부분까지 모두 포함된 조선 역사상 딱 2번밖에 없었던 대규모 분쟁이다. #2. 배경
조선초기인 세종때에 본격적으로 북방지역의 개척과 국경지대의 고정을 위해 경흥부에 속해있던 녹둔도 지역에 성을 쌓고 군사를 배치하는 등의 노력을 이어갔으며, 이후 세조 원년에는 녹둔도 지역은 물론, 그 일대 여진족 부락들이 완전히 조선의 번호로 복속하게 되었다. 이는 곧 국경지대의 안정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신입 무관들의 부임지로 지정되게 되었다.1455년에 기록에 의하면 당시 사람들은 이 곳을 사슴섬, '녹둔도' 또는 '녹도'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그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 속 에서도 녹둔도에 대한 기록이 21번이나 나온다. # 이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의 고지도와 함경도 향토지리지 등에는 빠짐없이 녹둔도가 등장한다.
한편, 충무공 이순신도 이 섬에서 '조산만호'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이순신은 함경도 경흥부에 속하는 이 섬의 조산만호로서 둔전을 관리하고 백성들의 안전과 치안을 유지하였던 것. 거기다가 1587년 발생한 여진족의 녹둔도 공격사건 때 경흥부사 이경록과 함께 나서 여진족을 격퇴했다가 누명을 뒤집어 쓰고 해임된 곳이 바로 이곳 녹둔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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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제작된 「아국여지도」 속 두만강 하구의 국경지대와 조선이 점유한 연해주 지역의 모습. |
이 섬이 법 상으로 러시아 제국으로 넘어간 때는 철종 11년인 1860년. 당시 러시아 제국은 청나라가 제2차 아편전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하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영국, 프랑스와 청 사이의 중재를 제의했다. 1860년 10월 18일, 청은 중재해준 대가로 베이징 조약을 통해 연해주를 러시아에 넘겨주게 된다. 그 과정에서 녹둔도도 중국령 연해주의 일부로 착각해 조선 정부는 물론 현지인들도 모르게 뜬금없이 러시아 영토로 둔갑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第一條
決定詳明一千八百五十八年瑪乙月十六日(即咸豐八年四月二十一日)在璦琿城所立和約之第一條
遵照是年伊雲月初一日(即五月初三日)在天津地方所立和約之第九條,此後兩國東界定為由什勒喀、額爾古納兩河會處,即順黑龍江下流至該江、烏蘇里河會處。其北邊地,屬俄羅斯國,其南邊地至烏蘇里河口,所有地方屬中國。自烏蘇里河口而南,上至興凱湖,兩國以烏蘇里及松阿察二河作為交界。其二河東之地,屬俄羅斯國;二河西屬中國。自松阿察河之源,兩國交界逾興凱湖直至白棱河;自白棱河口順山嶺至瑚布圖河口,再由瑚布圖河口順琿春河及海中間之嶺至圖們江口,其東皆屬俄羅斯國;其西皆屬中國。兩國交界與圖們江之會處及該江口相距不過二十里。且遵天津和約第九條議定繪畫地圖,內以紅色分為交界之地,上寫俄羅斯國阿、巴、瓦、噶、達、耶、熱、皆、伊、亦、喀、拉、瑪、那、倭、怕、啦、薩、土、烏等字頭,以便易詳閱。其地圖上必須兩國欽差大臣畫押鈐印為據。
上所言者,乃空曠之地。遇有中國人住之處及中國人所佔漁獵之地,俄國均不得佔,仍準由中國人照常漁獵。
從立界牌之後,永無更改,並不侵占附近及他處之地。
第二條
西疆尚在未定之交界,此後應順山嶺、大河之流及現在中國常駐卡倫等處,及一千七百二十八年,即雍正六年所立沙賓達巴哈之界牌末處起,往西直至齋桑淖爾湖,自此往西南順天山之特穆爾圖淖爾,南至浩罕邊界為界。
第三條
嗣後交界遇有含混相疑之處,以上兩條所定之界作為解證。至東邊自興凱湖至圖們江中間之地,西邊自沙賓達巴哈至浩罕中間之地設立界牌之事,應如何定立交界,由兩國派出信任大員秉公查勘。東界查勘,在烏蘇里河口會齊,於咸豐十一年三月內辦理。西界查勘,在塔爾巴哈台會齊商辦,不必限定日期。所派大員等遵此約第一、第二條,將所指各交界作記繪圖,各書寫俄羅斯字二分,或滿洲字或漢字二分,共四分。所作圖記,該大員等畫押用印後,將俄羅斯字一分,或滿或漢字一分,共二分,送俄羅斯收存;將俄羅斯字一分,或滿或漢字一分,送中國收存。互換此記文、地圖,仍會同具文,畫押用印,當為補續此約之條。
1860년 10월 18일 채결된 베이징 조약 속 연해주 지역의 러시아 귀속에 관한 문항. 이 문항속 두만강을 국경으로 한다는 전제에는 이미 연해주에 연륙되어져 버린 녹둔도가 포함되어져 있었다.
決定詳明一千八百五十八年瑪乙月十六日(即咸豐八年四月二十一日)在璦琿城所立和約之第一條
遵照是年伊雲月初一日(即五月初三日)在天津地方所立和約之第九條,此後兩國東界定為由什勒喀、額爾古納兩河會處,即順黑龍江下流至該江、烏蘇里河會處。其北邊地,屬俄羅斯國,其南邊地至烏蘇里河口,所有地方屬中國。自烏蘇里河口而南,上至興凱湖,兩國以烏蘇里及松阿察二河作為交界。其二河東之地,屬俄羅斯國;二河西屬中國。自松阿察河之源,兩國交界逾興凱湖直至白棱河;自白棱河口順山嶺至瑚布圖河口,再由瑚布圖河口順琿春河及海中間之嶺至圖們江口,其東皆屬俄羅斯國;其西皆屬中國。兩國交界與圖們江之會處及該江口相距不過二十里。且遵天津和約第九條議定繪畫地圖,內以紅色分為交界之地,上寫俄羅斯國阿、巴、瓦、噶、達、耶、熱、皆、伊、亦、喀、拉、瑪、那、倭、怕、啦、薩、土、烏等字頭,以便易詳閱。其地圖上必須兩國欽差大臣畫押鈐印為據。
上所言者,乃空曠之地。遇有中國人住之處及中國人所佔漁獵之地,俄國均不得佔,仍準由中國人照常漁獵。
從立界牌之後,永無更改,並不侵占附近及他處之地。
第二條
西疆尚在未定之交界,此後應順山嶺、大河之流及現在中國常駐卡倫等處,及一千七百二十八年,即雍正六年所立沙賓達巴哈之界牌末處起,往西直至齋桑淖爾湖,自此往西南順天山之特穆爾圖淖爾,南至浩罕邊界為界。
第三條
嗣後交界遇有含混相疑之處,以上兩條所定之界作為解證。至東邊自興凱湖至圖們江中間之地,西邊自沙賓達巴哈至浩罕中間之地設立界牌之事,應如何定立交界,由兩國派出信任大員秉公查勘。東界查勘,在烏蘇里河口會齊,於咸豐十一年三月內辦理。西界查勘,在塔爾巴哈台會齊商辦,不必限定日期。所派大員等遵此約第一、第二條,將所指各交界作記繪圖,各書寫俄羅斯字二分,或滿洲字或漢字二分,共四分。所作圖記,該大員等畫押用印後,將俄羅斯字一分,或滿或漢字一分,共二分,送俄羅斯收存;將俄羅斯字一分,或滿或漢字一分,送中國收存。互換此記文、地圖,仍會同具文,畫押用印,當為補續此約之條。
1860년 10월 18일 채결된 베이징 조약 속 연해주 지역의 러시아 귀속에 관한 문항. 이 문항속 두만강을 국경으로 한다는 전제에는 이미 연해주에 연륙되어져 버린 녹둔도가 포함되어져 있었다.
녹둔도는 작은 변방의 섬이라 관리가 잘 안 되었기 때문에 조선은 수십년이 지나서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1883년 서북경략사 어윤중을 현지로 보냈다. 어윤중은 "녹둔도는 모래가 쌓여 러시아 땅에 연접했으나 본래 우리 땅이었으며 섬 주민 또한 모두 우리 백성으로 중국이나 러시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고종에게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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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측량하여 제작한 2만분의 1 축척 군사용 지도인 「일로국경부근지도(日露國境附近之圖)」에 나타난 녹둔도 부근의 지형. |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조선어 지명이 사용됐으나 이후 점차 사라졌고, 러시아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게다가 1937년 연해주의 조선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면서 오늘날의 고려인이 되었고, 그들이 원래 살던 두만강 하류의 델타 지역은 텅 비었다.
문제는 두만강의 토사가 밀려오면서 퇴적을 거듭해 녹둔도가 러시아 쪽으로, 원래 섬의 형태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완전히 붙어버렸다는 점이다. 충적평야인 녹둔도 일대는 특성상 자연스럽게 러시아 쪽의 땅과 육속되면서 세월의 흐름과 함께 물길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즉, 기존의 북쪽 물길이 계속 퇴적해 육지가 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는 것.
근래 들어 녹둔도가 한국 영토라는 목소리가 제기된 것은 1972년. 동국대 박사과정을 이수하던 박태근이 장서각에서 '아국여지도(俄國輿地圖)'를 찾아내면서였다. 박태근은 한 신문 기고에서 아국여지도 옆에 '녹둔도는 남북으로 28km, 동서로 2km[2], 조선 거민 113호에 822명이 거주하며 농토는 비옥하다'고 기재돼 있다고 밝혔다. 이 지도는 1884년 고종이 밀파한 전오위장 김광훈과 신선욱에 의해 제작된 것이었다.
1984년 말에는 북한과 소련이 국경 문제에 관한 회담을 열었지만 녹둔도 문제는 이렇다할 성과 없이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고, 1990년에도 대한민국 측이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에게 섬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2000년 가을에는 서울대 지리교육과 이기석 교수진이 현지탐사를 시도했으나 군사기밀 지역이라는 이유로 탐사시간이 3시간으로 제한된데다 갈대의 키가 2m에 이르는 등 현지의 악조건 때문에 별 소득없이 돌아와야 했다.
3. 1차적 참고자료 및 연구논문
- 국제법상 朝中邊界條約(북중경계조약)의 승계에 관한 연구 : 국가승계 법리와 남북한 특수관계론의 교합적 검토 #
- 대청관계에서 (對淸關係) 본 녹둔도 (鹿屯島) 귀속문제 : 녹둔도의 귀속문제 4 [Articles : The Issue of the Recovery of Noktun Island in terms of Korean Relations with the Ch'ing- The Recovery of Noktun Island ( Part Ⅳ )] #
- 조선시대 녹둔도(鹿屯島)의 역사와 영역 변화 [ The History of Nokdun Island(鹿屯島) and Transition of Area during the Chosun Dynasty ] #
- 조선중기 鹿屯島 확보와 北兵使 李鎰에 관한 일고찰 [ A study of security of Nockdundoe(鹿屯島) and Lee-il(李鎰) of North commander in the middle age of Chosun Dynasty ] #
- 두만강 하구에 자리한 녹둔도의 위치와 범위 [Location and Scope of Nokdundo located in the Dumangang Estuary ] #
- 두만강 하구 鹿屯島의 위치 批正에 관한 연구 [ Geographical Study on the Location of Nokdun-do in Lower Tuman River ] #
- 녹둔도의 노령화 과정과 그 현재적 음미[The History of the Occupation of Nok-doon Do(Islet) by Russia and its Significance of the Present Time]
- 러시아 연해주 두만강 하구의 한인마을 크라스노예 셀로(鹿屯島)의 형성과 변화 = The Formation and Changes of the Korean Village, Krasnoe Selo at the Mouth of the Tuman River in the Russian Maritime Province(Primorye)
- 연해주(沿海州) 지역의 한인이민과 녹둔도(鹿屯島)의 영속문제(領屬問題) = Korean Immigration in the Siberian Area and the Issues Territorial Sovereignty over Rokdun Island #
- 두만강 하류지역의 토지이용에 관한 연구 : 러시아 핫산지역과 녹둔도를 중심으로 Focusing on Khasan Area and Nokdun-do [ A Study on the Landuse in the Lower Tumen River Area] #
4. 2차적 참고자료 및 연구논문
- 남·북·러의 나선-녹둔도 이순신유적 발굴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