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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adec2>누가 누가 잘하나 |
<colbgcolor=#cadec2> 시청 등급 | 전체 관람가 | ||
장르 | 음악 | ||
채널 | KBS 2TV | ||
방송사 | KBS Kids | ||
방송 시간 | 목요일 16:30 ~ 17:30 | ||
방송 기간 | 2005년 5월 6일 ~ | ||
제 작 진 |
PD | 이병창, 김효진 | |
극본 | 박성혜, 황설윤, 황지은 | ||
FD | 김설웅 | ||
음악 | 홍지혜 | ||
출연 | 김진현, 켐벨 에이시아 | ||
링크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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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 2TV의 어린이 프로그램. 쉽게 말하면 동요 경연 프로그램이다.이혜성, 이슬기 등도 과거에 진행을 맡았다. 캠벨 에이시아는 꼬마 조교라고 불리는 캐나다계 한국인이다.
원래는 KBS 간판 아나운서들이 초창기에 진행을 많이 맡았으며 역대 진행자로는 한석준, 강수정, 고민정, 이영호, 최동석, 전현무, 이선영, 오언종, 윤수영, 가애란 등이 있었다.
과거 KBS 동요 프로에 출연했던 참가 아동들이 커서 연예인으로 데뷔해서 해당 프로 출연분이 발굴되어 화제가 되기도 한다. 확인된 인물로는 세븐틴의 승관(본명 부승관), LE SSERAFIM의 김채원, 래퍼 빅나티(본명 서동현), 가수 송유진이 있다. <열려라 동요세상> 시절까지 넓히면 EXID의 하니, 배우 안태환, Apink의 정은지, 배우 박은빈, 이세영 등이 있다,
2. 역사
2.1. 누가누가 잘하나
- 누가누가 잘하나의 첫 방송은 1954년이었다.[1]
- 1960년대에 TV가 개국하면서 TV로도 방송되었다.
-
그 뒤 TV와 라디오를 오가고 요일과 시간대를 옮기면서 1982년까지 방송되었다. 다만,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보관한다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이 당시의 방송은 흑백화면인 1979년 연말결선대회만 남아있다.
- 가수 윤형주, 성우 권희덕, 성악가 조수미, 배우 정호근 및 김선경, 정치학자 신율 등 유명인들도 어린 시절 이 방송을 거쳤다. #
2.1.1. 종영
-
1982년에 누가누가 잘하나를 종영한 뒤 이 제목을 모두모두 잘한다로 바꿔서 초등학생 대상 퀴즈 프로그램 제목으로 붙였다. 초등학생 대상 퀴즈 프로그램을 신설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있던 초등학생 대상 퀴즈 프로그램의 제목을 바꾼 것.
오프닝곡 |
모두모두 잘한다 배운 것을 익히며 새로운 것 배우는 재미있고 유익한 모두모두 잘한다 |
- 1984년
- KBS와 서울YMCA가 공동으로 제1회 가족동요창작경연대회를 개최하였다. 대상곡은 ‘숲 속의 음악회’. 지금은 비표준어가 된 온가지(온갖)가 들어간 노랫말이다.
2.2. 전국어린이동요대회
오프닝곡 |
도레미파솔솔라라솔 즐거웁게 노래해 라라라 우리들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자 빰빰빰 온세상 어린이 맑고 고운 우리들노래 온세상 어린이 모두 함께 부르자 |
엔딩곡[a] '아이들은'(선용 작사, 이수인 작곡)[3] |
세상이 이렇게 밝은 것은 즐거운 노래로 가득찬 것은 집집마다 우리들이 자라고 있어서다 어른들은 모를거야 우리들이 해인 것을 노래인 것을 하지만 금방 알 수 있지[4] 우리들이 잠시만 사라져도 노랫소리 들리지 않는 것을 낮도 밤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지[5] |
엔딩곡[a] '동요는 즐거워요[7] |
1. 동요는 즐거워요 동요는 즐거워요 신나게 불러봐요 즐거운 우리노래 (각종 동요 제목) 신나게 불러봐요 신나게 불러봐요 2. 동요는 아름답죠 동요는 아름답죠 귀기울여 들어봐요 아름다운 노래 (각종 동요 제목) 귀기울여 들어봐요 아름다운 노래 랄라랄라라랄라 즐거운 노래(반복) |
- 1985년
- 동요경연대회가 전국어린이동요대회라는 이름으로 부활해서 라디오에서 매주 일요일 오전에 방송되었다. 이 때의 사회자는 원종배 아나운서였다.
- 제2회 가족동요창작경연대회를 개최하였다. 대상곡은 ‘귀여운 아가’
- 1986년
- 제3회 가족동요창작경연대회를 개최하였다. 대상곡은 ‘비의 속삭임’.
- KBS가 자체적으로 10월 12일을 '동요의 날'로 정하고 제1회 동요의 날 기념행사를 했다.
- 1987년
- 1987년 5월에 초등학생 대상 '모두모두 잘한다'를 폐지하고 중학생 대상 중학생퀴즈를 신설하였다. 전국어린이동요대회 라디오 방송의 사회자였던 원종배가 중학생퀴즈 사회자가 되었다. 그리고 라디오로 방송하던 '전국어린이동요대회'를 TV로 옮겨와서 매주 월요일 오후 6시에 방송하였다.[8] 사회는 김자영 아나운서가 맡았다.
- 제4회 가족동요창작경연대회를 개최하였다. 대상곡은 ‘우주선’.[9]
- 이 당시에 반주를 전담하는 'KBS 동요앙상블' 실내악단[10]이 만들어졌고, KBS(성인)합창단 단원이 어린이가 부르는 노래에 화음을 넣었다. KBS 어린이합창단의 단장이면서 작곡가인 이수인이 편곡과 지휘를 맡았다.
- 1988년
- 제5회 가족동요창작경연대회를 개최하였다. 대상곡은 ‘친구’.[11]
- 1988년에 계절별 기말결선대회가 생겼고, 기말결선대회의 수상자들을 모아서 연말에 연말결선대회를 했다.1988년 기말결선은 봄, 여름, 겨울 세 번만 열렸고 연말결선에 18팀이 참가했다. 연말결선 자체는 누가누가 잘하나 시절에도 있었다.
- 1989년
- 제6회 가족동요창작경연대회를 개최하였다. 대상곡은 ‘참 좋은 우리 집’
- 1989년 5월부터 사회자가 이금희 아나운서로 바뀌었다.
- 제4회 동요의 날이 되는 1989년 10월 12일에 KBS 창작동요대회를 방송하였다. 전국어린이동요대회를 매주 방송한 인력이 그대로 KBS 창작동요대회를 주관했다. 사회자는 송승환과 전국어린이동요대회 초대 사회자인 김자영 아나운서가 맡았다.
- 1989년 전국어린이동요대회 연말결선대회는 호암아트홀에서 진행하였다. 네 번의 기말결선대회를 모두 개최해서 연말결선대회 참가자가 24팀이나 되었다. 이 대회에서 당시 부산동성국민학교(현 부산동성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박시연(본명 박미선)이 우수상을 받았다.
- 1990년
- 제7회 가족동요창작경연대회를 개최하였다. 사회는 원종배 아나운서가 단독으로 맡았다. 대상곡은 장미꽃.
- 1990년 여름에 방송민주화를 외치며 KBS 노조가 파업하는 와중에 KBS어린이합창단이 해체되었다. 노조가 업무에 복귀한 이후에 합창단원을 새로 뽑으면서 파업 전후의 어린이합창단원 구성이 완전히 달라졌다. 새로 뽑은 단원은 대부분이 4학년으로 3년 동안 인원 구성이 거의 변하지 않았고, 일부는 1993년에 중학교로 진학한 뒤에도 활동했다.
- KBS(성인)합창단이 맡던 화음 반주를 전담하는 '한잎코러스' 중창단이 생겼다.
- 1990년 가을기말결선을 앞두고 '동요앙상블' 실내악단에 전기기타와 드럼도 추가하면서 실내악 편성 + 밴드 세션이 완성되었다.
- 가을기말결선을 앞둔 서울지역예선 2차 대회에서 1, 2, 3번 참가자가 부른 노래가 ‘가을’, ‘비’, ‘섬마을’이었다. 각각 MBC 창작동요제의 7회, 6회, 5회 금상 수상곡이다.
- 1990년 KBS 창작동요대회 사회를 원종배, 이금희 아나운서가 맡았다.
- 겨울 기말결선 참가자 15팀 가운데 중창이 네 팀이나 되었으나, 한 팀도 수상하지 못 했다.
- 여름의 파업으로 여름 기말결선을 열지 못 했기에 1990년 연말결선대회는 봄, 가을, 겨울 기말결선 참가자 18팀이 참가했다.
- 1991년
- 1월 중에 눈 쌓인 스키장에서 특별프로그램을 꾸민 적이 있다. 경연과 공개방송은 하지 않고 예년 출연자들과의 토크쇼로 구성했다.
- 예년 같으면 3월 말에는 봄 기말결선을 해야 할 텐데, 4월이 다 지나갈 때까지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 언젠가부터 매주 무대 구성을 바꾸는데, 깔끔하다기보다는 난잡한 느낌을 주었기에 도대체 왜 이러지? 라는 반응이 나왔다.
- 밑도 끝도 없이 1990년에 열린 유니세프 국제어린이음악제의 참가자 영상을 매주 한 팀씩 보여주기 시작했다. 방송 중에 KBS가 주한유니세프와 공동으로 유니세프 국제어린이음악제 한국예선대회를 개최한다는 언급은 일절 없었다.
- 4월도 다 지나가고 5월 중순을 넘어갔을 무렵, 매주 월요일 오후6시에 방송되는 전국어린이동요대회가 어떤 사전 안내도 없이 갑자기 일요일 아침 9시에 방송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프로그램 제목이 노래는 내친구로 바뀌었다.
2.3. 노래는 내 친구
1991년 5월에 이름을 노래는 내 친구로 바꾸고 이한숙 아나운서가 사회자가 되었다. 방송 시간대는 일요일 오전으로 옮겼다.전국어린이동요대회는 계절별 기말결선을 치러서 1년에 기말결선이 네 번이었으나, 노래는 내 친구는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서 두 번 치렀다. 1991년에는 프로그램을 어정쩡한 시기에 개편하는 바람에 노래는 내 친구를 불과 3주 방송하고 전국어린이동요대회 시절의 참가자까지 모아서 상반기 기말결선을 위한 예선을 열었다.
전국어린이동요대회는 연말결선에만 최우수상 수상자의 노래를 앵콜곡으로 들었으나,[12] 노래는 내 친구는 기말결선대회와 연말결선대회에서는 최우수상 수상자의 노래를 들으면서 마무리했다.
이 때부터 가창자가 핸드마이크를 들고 노래부르는 것으로 바꿨다.
전국어린이동요대회 때에는 학년말인 1~2월에 6학년이 참가할 수 없었으나, 노래는 내친구는 1~2월에도 6학년이 참가할 수 있게 하였다. 물론 이 때 참가한 6학년 학생이 수상하더라도 기말결선 및 연말결선에 참여할 수는 없었고 국민학교에서의 마지막 추억으로 남기도록 배려하는 의미였다.
- 1991년
- 제8회 가족동요창작경연대회 사회를 원종배, 이금희 아나운서가 맡았다. 대상곡은 ‘엉터리 노래가족’.
- 신관 공개홀에서 5월 24일에 녹화해서 26일에 방송된 유니세프 국제어린이음악제 한국예선대회에서 우리나라 동요 역사상 처음으로 라이브 반주 없이 MR 반주를 쓰면서 처음으로 이수인이 KBS어린이합창단의 단장 자격으로 심사위원이 되었다. 사회는 원종배, 이금희 아나운서가 맡았다.
- '한잎코러스' 중창단은 해체되어 KBS(성인)합창단이 화음을 맡았고,[13] 'KBS 동요앙상블' 실내악단[14]의 반주와 이수인의 지휘는 유지하였다.
- 1991년 KBS 창작동요대회부터 (성인)합창단의 화음 반주가 없어졌다. 사회는 가수 유열[15]과 이한숙 아나운서가 맡았다.
- 하반기 기말결선대회와 연말결산대회는 처음으로 신관 공개홀에서 진행하였다.
- 연말결선대회에는 원종배, 이한숙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면서 김자영, 이금희 아나운서와 역대 최우수상 수상자가 초대되었다. 이 대회도 라이브 반주 없이 MR 반주를 썼고 역시나 이수인도 심사위원이 되었다. 1989년 연말결선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박미선이 도입부 사회를 맡았다.
- 1992년
- 자연농원 장미축제 때 야외특설무대를 꾸미고 야외녹화를 하였다.
- 경연대회를 하지 않고 애니메이션 주제가 특집으로 꾸민 날도 있다.
- 사전 녹화한 제9회 가족동요창작경연대회를 어린이날에 방송하였다. 제10회 MBC 창작동요제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에 방송을 시작해서 다행히 방송 시간은 겹치지 않았다.[16] 사회는 방송인 이상벽과 이한숙 아나운서가 맡았다. 대상곡은 ‘자전거 가족’.
- 1992년 중엽 'KBS 동요앙상블' 실내악단이 해산[17]되면서 KBS 관현악단이 실내악 편성 + 밴드 세션으로 반주를 맡았다. 지휘는 이수인이 그대로 맡았다.
- 유니세프 국제어린이음악제 한국예선대회 사회를 안성기, 강수연이 맡았고, 반주는 KBS 관현악단이 오케스트라 편성 + 밴드 세션으로 맡았고 KBS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가 지휘했다. 이수인은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 1992년 KBS 창작동요대회는 김병찬, 이한숙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고, KBS 관현악단이 오케스트라 편성 + 밴드 세션으로 KBS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가 지휘했다. 당시에 '행운의 스튜디오'를 매주 녹화하던 별관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는데, 이 때 하도 행사를 허접하게 운영해서 한 시간 반짜리 방송으로 내보낼 행사를 녹화하는 것이 세 시간 가까이 걸렸다.
- KBS 창작동요대회에 이어 연말결선대회도 김병찬, 이한숙 아나운서가 사회를 봤다.
- 1993년
- 서울YMCA와 공동으로 제작하던 가족동요창작경연대회를 ‘KBS가족동요제’로 바꾸어서 KBS가 단독으로 개최하였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제10회 가족동요창작경연대회가 되어야 하지만, 93KBS가족동요제가 되었다.
2.3.1. 종영
- 1993년 5월에 열린음악회를 신설하면서 종영되었고 교양제작국이 만들던 프로그램도 모두 종영되었다. 중학생퀴즈, [18]어린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연례행사인 가족동요제, KBS 창작동요대회, 청소년창작가요제, KBS 대학가요축제 등도 1993년을 마지막으로 종영되었다.
- 1993년 10월 12일에 KBS 창작동요대회가 마지막으로 개최되었다. 사회는 배우 유인촌과 진양혜 아나운서가 맡았다.
- KBS본부가 동요프로그램을 제작하지 않는 동안에 KBS부산방송총국에서 매년 창작동요대회와 매주 동요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이 때 KBS부산방송총국에서 개최한 동요경연대회는 '밝은 마음 고운 마음 가자 동요나라로'라는 제목이었다.
- 1995년까지 EBS가 방송하던 창작국악동요제를 1996년부터 KBS가 국악동요제라는 제목으로 방송하게 되었다.
2.4. 열려라 동요세상
- 1998년에 열려라 동요세상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해서 일요일 오전에 방송되었다. 10월이라는 상당히 어정쩡한 시기에 편성되는 바람에 불과 8주 개최하고 연말결선대회를 열었다. 이전 대회가 4 ~ 6학년만 참가가 가능했던 것에 비해 1학년부터 참가할 수 있게 하였다.
- 이전에는 사회자가 한 명 뿐이었으나, 이 때부터 사회자가 남녀 아나운서 두 명으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1999년부터 국악동요제 사회는 열려라 동요세상의 남녀 아나운서 두 명으로 고정되었다.
- 반주는 KBS관현악단이 맡았는데, 여태까지의 실내악 편성(현악기 + 목관악기)+밴드 세션[a]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편성(실내악 편성 + 금관악기)+밴드 세션[a]으로 확대되었다. 가요무대 편성과 같아진 것. (성인)합창단의 화음반주는 없어졌다.
- 그 뒤 격주 방송으로 바뀌었다가 매주 방송으로 돌아갔고, 경연 형식 없이 공연 위주의 프로그램이 되기도 하는 등 변혁을 많이 겪었다.
- 경연이 사라진 동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던 2003~2004년에는 남녀 아나운서 사회자 두 명에 어린이 사회자 한 명이 추가되었다. 그 한 명이 박은빈이며, 매주 진행된 열려라 동요세상 녹화 뿐만 아니라 KBS가 방송하는 동요제의 사회도 맡았다.
- 2003년부터 초록동요제를 KBS가 방송하게 되었다. 2003년엔 열려라 동요세상의 남녀 아나운서 두 명 + 박은빈에다가 KBS 어린이 드라마의 주인공 한 명이 추가되어 모두 네 명이 사회를 보았다.
- 2004년에는 KBS 창작동요대회를 다시 KBS 본부가 개최하게 되면서, 박은빈은 2004년 한 해에만 동요제 사회를 초록동요제, KBS 창작동요대회, 국악동요제 무려 세 번을 보게 되었다.
2.5. 누가누가 잘하나
- 2005년에 원래 이름으로 돌아왔다.
-
2014년에 누가누가 잘하나 60주년을 맞아 기념방송을 했다.
동일한 방송사의 전국노래자랑 방송기간을 넘어섰다.1991년 노래는 내 친구 연말결선대회에도 초대손님으로 나왔던 1대 사회자 강영숙이 이번에도 초대되어 80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방문하였다.
[1]
당시의 사회자는 '강영숙'으로 1991년 노래는 내 친구 연말결선대회와 2014년 누가누가 잘하나 60주년 기념 방송에도 초대되었다.
[a]
동요프로그램에 엔딩곡이 있는 까닭은
전국노래자랑류의 모든 프로그램이 1등 가창자의 노래를 다시 한 번 부르면서 끝나는 반면, 전국어린이동요대회는 엔딩곡을 들으면서 방송을 마치고 최우수상 수상자를 다음 주 오프닝 무대에 초대해서 앵콜곡을 부르는 자리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3]
똑같은 제목과 비슷한 노랫말의 노래가 1989년 제7회
MBC 창작동요제 때 다른 작곡자의 이름으로 발표된 바 있다.
[4]
대충 이쯤부터 사운드 아웃되면서 프로그램이 끝난다.
[5]
노래는 내 친구로 바뀌고나서 쓰이지 않다가 오랜만에 1991년 하반기 기말결선 오프닝곡으로 쓰이면서 풀버전이 방송되었다.
[a]
[7]
1990년
90KBS창작동요대회 엔딩곡으로 쓰였고 1990년 연말결선 때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8]
라디오로 '전국어린이동요대회'가 방송되던 일요일 오전 시간에는 KBS 동요잔치가 편성되었다.
[9]
이 노래는 전주시의 어린이가 만든 노래(문영화 작사, 작곡)로 발표되었으나, 나중에 교과서에 실리면서 해당 어린이의 담임교사가 작곡(나성 작사, 김석곤 작곡)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10]
실내악 편성(현악기+목관악기+피아노) + 전자악기(전자피아노) + 타악기(목금)
[11]
그리고 이 대회의 금상곡은
연날리기. 제7회
MBC 창작동요제에서 어머니 작사, 아버지 작곡, 아들 노래로 소개되고 대상을 받은 그 노래이다. 이미 한 번 발표한 노래를 또 발표한 것. 가족동요창작경연대회가 아는 사람만 아는 대회여서 가능했겠지만, ‘발표곡의 저작권은 3년간 주최측에 귀속된다’는 규정이 YMCA에는 없었던 것 같다. 참고로 이 때에는 아들 작사, 아버지 작곡으로 소개되었다.
[12]
물론 최우수상 수상자의 노래를 들은 뒤에 엔딩곡으로 마무리했다.
[13]
애초에 KBS(성인)합창단에서 어린이동요경연대회에서 화음을 넣어줄 팀에 이름을 붙인 것이 한입코러스 중창단이었으므로 사람이 해고된 건 아니었다.
[14]
노래는 내 친구 초창기의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멀쩡하게 존재하는 KBS 동요앙상블의 이름을 날려버린 것이다. 팀을 해체하고 새 인물로 재구성한 것도 아니고 기존 팀 그대로인데, 지난 주까지 "이수인 선생님의 지휘로 KBS 동요앙상블 선생님들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라고 소개하던 사회자 멘트가 "우리 어린이들의 노래에 반주해주실 여러 선생님들이 계시고 지휘로 KBS어린이합창단 단장이신 이수인 선생님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로 바뀐 것이다. 거기다가 어린이가 노래하는 뒤편 화면에 잘 보이는 자리에서 갑자기 화면에 잡히지도 않는 무대와 객석 사이의 공간에 배치되어 지휘자가 지휘하는 모습만 보이게 되었다. 그 뒤 또 무대 구성이 몇 번 바뀌면서 다시 전국어린이동요대회 때와 비슷한 위치로 돌아왔지만 그 이해할 수 없는 멘트는 그대로 유지되다가, 1991년 5월 제9회 가족동요창작경연대회 때 비로소 KBS 동요앙상블의 이름을 회복했다. 1990년 5월 제8회 가족동요창작경연대회 때 KBS 동요앙상블의 이름이 사라지고부터 1년만이었다. 그리고 몇 달 되지도 않아서 KBS 동요앙상블 자체가 해산되었다.
[15]
이후에
유열은 국악동요제, KBS부산창작동요대회, EBS고운노래발표회 등 각종 동요대회의 사회를 연달아 맡으면서 창작동요제 전문 사회자가 되었다.
[16]
그런데 2010년대에 KBS는 초록동요제를
MBC 창작동요제와 동시에 방송해서 욕을 먹었다.
[17]
한잎코러스 때와는 달리 이번엔 사람들이 해고되었다.
[18]
흑백TV 시절부터 '모이자 노래하자' -> '재미있는 금요일' -> '신나는 목요일'로 이어지던
[a]
전자악기(전기기타, 전자피아노)와 타악기(드럼)
[a]
[21]
뿐만 아니라
KBS 창작동요대회 역대 수상곡도 일부 불렀다.